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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성기사 오빠, 찾으러 왔는데요! (17/77)


17화. 성기사 오빠, 찾으러 왔는데요!
2023.01.27.


나는 오늘 멜로디아에게 충성을 바친 힘이 세고 강직한 성기사 한 명을 캐스팅하러 왔다.

우리 악역 가문으로, 나와 아빠를 지키는 기사로 데려올 거다.

멜로디아가 그의 마음을 얻었던 방법 그대로.

원작 속 지식이 있으니 그를 구슬리긴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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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분명 언젠가 나의 반대편에 서게 될, 악셀을 저지하는 데에 도움이 될 테니까.’

그의 강력하고 파괴적인 신성력은 흑마법을 사용하는 악셀과 상극이었다. 그렇기에 악셀을 저지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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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디아를 만나지 못한 지금은 충성을 바칠 주군을 찾지 못해, 능력을 숨기고 있겠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그가 있을 곳에 접근하기로 했다.

***

신전으로 들어가는 거, 내 발걸음으로는 엄청 오래 걸릴 예정이었는데.

보폭이 넓은 시녀 언니들은 나를 안아 든 다음 1분도 안 되어서 신전의 중앙에 나를 내려놔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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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어, 시엔 기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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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대의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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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너무 말랑하셔, 흑. 근육 붙이셔야 해.”

시녀 언니들은 주접이 너무 과하다니까! 이 정도면 대충 4~5세 어린이치곤 엄청 멋있는 편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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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이제 나가 봐야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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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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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신전은…… 미르모드 가문과는 상극이어서 여럿이 오래 머무르지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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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희가 방법을 찾아올 테니, 일단 들어가 계셔요!”

시녀 언니들이 눈을 반짝거렸다.

역시 악역 가문. 신전과 적대 세력이라니.

나는 속으로 포르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시녀가 소맷귀로 제 눈가를 찍어 누르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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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되네요, 잠깐이지만! 우리 아기님이 여기서 잘 버티실지.”

객관적으로 그렇게까지 울 일은 아니었다. 성기사 하나만 찾으면 되는데, 하여튼 과보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손사래를 쳐 시녀 언니들을 바깥으로 쫓아냈다. 그리고 짧고 통통한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 신전 내부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으나, 곧 큰 문제에 직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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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무대뽀로 들어오긴 했는데, 이제 어떻게 테드 성기사를 찾는담? 얼굴을 모르잖아.’

세노아 신전이 크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금세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열심히 뽈뽈거리면서 신전 안을 돌아다녔다.

신전의 복도는 커다랬지만 기도하러 오는 사람이 없어서 적막했다.

길을 물어볼 수 있는 어른 신관들도 없어서 의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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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저기 사람이다!’

신전 안에는 언제나 아기 신관과 신녀들이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말이다.

예상이 적중했다.

복도를 지나 층계참 근처로 가자마자, 나는 한 무리의 어린 신관들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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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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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어, 혹시…….”

나는 내가 찾으러 온 성기사의 이름을 말하려 했다. 아니면 매일 밤 열리는 성기사들의 계승식을 보고 싶다고 말하거나.

그들이 나를 보며 삐죽거리기 전까지 나는 희망에 가득 부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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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금을 헌납하러 왔어? 우리한테 먼저 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성금을 헌납하러 온 건 아닌데. 그나저나 이 어린애들이 지금 아기를 상대로 뭘 하는 거지,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주변을 빈틈없이 둘러싼 네 명의 어린 신관…… 아니, 왈패들을 보며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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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 삥 뜯기는 거야?’

성기사를 만나러 신전에 온 건데?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들에게 가려서 시야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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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좀 봐. 귀족인가? 그런데 혼자 있는 걸 보니 버려졌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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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진짜 그런가 봐. 시녀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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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거지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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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뜯을 거 없어 보이지?”

나는 몸을 굳혔다.

버려졌다는 말은 내게 커다란 트라우마였다. 그래서 그런 말을 듣고 나면 몇 초간 정신이 멍해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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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버려졌는데. 아빠는 시엔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다 그랬는데.’

생각 같아서는 입 바깥으로 되바라지게 쏘아붙이고 싶었다.

하지만 트라우마 때문인지 쏟아지는 악의에 곧장 대응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그 상태 그대로 가만히 굳어 있자 그들은 악의 섞인 말을 마구 쏟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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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혹시 바보 아냐? 우리 말 들었는데도 대답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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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뒤룩뒤룩 찐 것 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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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레한테 혼쭐이 나겠네!”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나는 겨우 정신줄을 잡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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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룩뒤룩이 아니라 포동포동이다. 이 바보들아!’

뒤룩뒤룩 같은 건 아기 돼지들한테나 쓰는 말이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포동한 주먹을 꽈악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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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나쁜 말, 못 참아!’

무시하고 갈까 했는데 안 되겠다.

인신공격까지 하다니, 아주 나쁜 애들이니까, 교육을 조금 해 줘야겠다.

나는 그들을 보며 무서운 추리 소설 속 탐정처럼 음산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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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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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이들이 나를 노려보며 도끼눈을 떴다.

아이들은 마냥 순수하고 맑지만은 않다. 그건 내가 깨달은 세상의 이치였다.

나는 짝다리를 짚은 채 눈을 홉뜨고 침을 바닥에 탁 뱉었다.

그리고 아빠한테 말했던 욕설을 내뱉으려다, 잠깐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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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까지는 안 해도 돼.’

나는 천진한 눈매를 반쯤 조각 난 해님처럼 꼭 접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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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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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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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거지 안니야. 찾는 사람 있어. 그러니까 비켜!”

잠깐 말문이 막힌 듯 보이던 애들은 서로 시선을 맞교환하다 다시 나를 노려보았다. 아마 저들끼리의 유대를 다지는 거겠지.

새하얀 신관복을 입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제법 악랄했고 따돌림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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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찾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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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고, 우리 신전에서 나가!”

급기야 어떤 아이는 내 머리채를 잡아 흐트러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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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 아포! 저리 가!”

할머니가 준 ‘안전장치’도 어린아이가 보내는 약간의 악의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 안전장치는 내 신변에 위험한 일이 있을 때만 작동하는데, 어린아이는 내 생명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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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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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잡는다, 이 바부야!”

한참을 머리채를 잡고 잡히던 찰나.

다행히 내게 구원 투수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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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일입니까.”

급하게 걸어오는 발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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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신관님들, 친구를 괴롭히시면 안 됩니다!”

무뚝뚝하지만 중후한 목소리가 들리자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흩어졌다.

나는 조금 뜯어진 머리채를 잡으며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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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

어, 저 도움 준 아저씨. 뭔가 인상착의가……!

익숙한 것도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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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저 사람……. 테드?’

금발에 푸른 눈을 한 하얀 옷을 입은 성기사님.

키가 크고, 항상 왼쪽에 검을 가지고 있으며, 왼쪽 뺨에는 희미한 상흔이 있는 남자.

완벽주의 덕분에 매일 흰 의장을 유지하는 것까지.

나는 그를 빤히 바라보면서 내 머릿속의 정보와 비교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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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찾았다, 내 사람.’

그러나 내가 기뻐할 틈도 없이 아기 신관들이 악질적으로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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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괴롭혔는데?”

어린 신관들이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굳이 이럴 이유가 없는데…….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나 미묘한 위화감은 곧, 어린 신관들이 다시 입을 열자마자 깨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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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믿어야지 않겠어, 성기사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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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먼저 막 우리한테 패악질을 부리고 난동을 피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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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엎드려서 막 머리칼을 풀어헤쳤다니까? 저 엉망이 된 머리 좀 봐!”

자기들이 뜯은 거면서!

나는 점점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성기사는 그들의 말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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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하시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계속, 시녀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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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아니라니까? 증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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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그러면 가브리엘레가 혼쭐을 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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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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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우리 신전의 최고 신성력을 가진 애야! 나중에 성녀님이 될 수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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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익숙한 이름이지?’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가브리엘레, 라는 이름에 고민할 틈도 없었다.

아이들은 겁을 먹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더니 이내 나를 몰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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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쟤 좀 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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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도 없는 외부인 내보내라고!”

나는 그들의 경악한 표정을 하나하나 눈에 담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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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설마 저 멍청이 편드는 거야, 지금?”

성기사가 난감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기일지라도 신관과 신녀는 그가 보호해야 할 존재다. 그러니 무작정 그들을 나무라기도 난감할 테지.

그러니까 내가 도와줘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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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루 나 안 괴롭혔어?”

나는 씨익 웃으며 자신만만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나, 자신감 완전 찾았거든.

괴롭혔다고 긍정해도, 아니라고 부정해도 몇 초 있다가 혼쭐나는 건 내가 아니라 저들이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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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뭔지 알아, 얘두라?”

나는 씨익 웃으며 내 손목에 찬 시계를 흔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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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우리 아빠에게 전달해 준, 할머니의 선물이거든!’

목소리와 얼굴까지 전부 완벽하게 재현하고, 영상이 아무리 흐려도 그 사람을 탐지할 수 있는 영상구 아티팩트였다.

주로 아이를 보호하거나 범죄를 추적할 때 사용되며, 저택 한 채 값이라는 특징이 있었다.

이렇게 값비싼 아티팩트를 처음 봤을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신만만한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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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내가 시계로 가장한 영상구 아티팩트의 화면을 톡톡 누르자, 허공에 커다란 영상이 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까 있었던 일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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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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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뒤룩뒤룩 찐 것 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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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레에게 보내서 처리해 버려!’

할머니가 날 보호하기 위해 채워 준 시계 아티팩트.

이 아티팩트의 특징이 뭐냐면, 내 신변에 커다란 이상이 생기면 할머니에게 바로 그 상황을 담은 영상과 함께 전송이 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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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가 나 엄청 좋아하거든!’

……사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뻔뻔하게 동그란 배를 앞으로 내밀며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이 아티팩트에는 또 다른 기능이 있었다.

바로 내 시야를 고스란히 녹화하는 것이었다. 이건 할머니가 내가 신전의 고위 신관들에게 부당 대우를 받을까 걱정해서 추가해 준 기능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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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구가 이만큼이나 쓸모가 있을 줄이야.’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시계를 톡톡 두드려 영상을 껐다. 그리고 그들을 보며 말했다. 마치 놀라운 이벤트를 준비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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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다행히 혀짧은 발음이 나오지 않았어! 여기에 탄력받은 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새침하게 한 마디를 더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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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구였슴미다!”

이번에는 말투가 조금 어눌하게 나왔지만 괜찮다.

나는 뻔뻔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당연하지, 내가 승기를 잡았으니까!

내 미소와 대비되게 어린아이들은 심히 당황한 듯했다. 그들은 앞니를 딱딱 부딪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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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래서 네가 뭘 어쩔 건데?”

역시 이럴 줄 알았다.

이것도 다 내 예상 범주 안에 있었다. 원래 사람은 허를 찔리면 억울해하거나 뻔뻔하게 나오는 법이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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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이제, 뻔뻔하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나는 그들을 향해 하얀 초당 옥수수 같은 앞니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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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미한테 다 말할 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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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할머니가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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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는 루켈라 미르모드 공작 부인잉데!”

나는 후훗, 웃으며 그들의 반응을 관찰했다.

미르모드 가문.

아이들에겐 ‘망태 할아버지’, ‘호랑이’ 같은 존재였다.

특히 신관들에게는 더더욱 악의 축처럼 느껴질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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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미르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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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일 거야!”

현실 부정을 하는 바보 녀석들을 향해, 나는 열심히 또박또박 발음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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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아, 미르모드가 너네 잡으러 온다아?”

아이들은 ‘미르모드’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와아앙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좀 전까지 악독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이들이 훌쩍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역시 애들은 애들이었다.

한 번에 나가떨어질 거면서, 왜 사람을 놀리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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