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무서운 살수 아저씨들이 찾아왔다! (10/77)


10화. 무서운 살수 아저씨들이 찾아왔다!
2023.01.03.



 


‘자자, 생각해 보자. 교육원장 그 나쁜 놈을 구슬릴 방법을!’

나는 입꼬리를 음험하게 올리며 대응책에 대해 생각했다.


‘정말 교육원장이 준비한 함정이 환영 미로라면…….’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나는 뽀르르 서가 안으로 들어갔다.

나의 분주한 정신 상태만큼 발걸음 소리도 웅장했다. 아빠가 길 잃지 말라고 조그만 발에 신겨 준 소리 나는 신발이 뾱, 뾱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뾱. 뾱.

동그란 손과 발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한참 서가를 누비던 차! 마침내 나는 환영술에 관해 쓰여 있는 책을 잡아 냈다.

제목은 『환영술』이라는 심플한 내용이지만 그 안에는 제법 괜찮은 비기가 들어 있었다.

구체적으로 환영 미로를 벗어날 방법에 대해 알려 주는 건 아니지만 환영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하나가 적혀 있었다. 환영미로도 환영술로 기능할 테니 방법은 몇 가지 더 있었다.


‘거울 아티팩트가 하나 필요해.’

거울 아티팩트라면 하급 아티팩트라 여기저기 널려 있을 것이다. 좋아, 그건 어디선가 주워 오면 될 거고…….


‘거울을 챙긴다면, 남은 건 내가 <환영 미로>의 수법을 버티는 것뿐이야.’

책을 아래로 탁, 내려놓은 나는 다시 쪼르르 레온하르트가 앉아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 레온하르트는 내 발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발에서 나는 그 소리는 뭐지? 족쇄인가?”

“아빠가 줬어!”

레온하르트가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

나는 눈을 댕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했다. 왜 한숨을 쉬는 걸까?


“역시…….”

역시는 또 뭐고, 왜 눈시울은 붉어진 거지?


‘아빠가 줬다고 하니까 자기도 부모님이 그리운 건가?’

역시 그런 거겠지!

나는 그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레온하르트는 ‘역시 마티어스 공자.’라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마른세수를 했다.

‘살려야 한다.’라는 말도 했는데 잘 모르겠다.

한참 혼잣말을 하는 레온하르트를 힐끔거리다가 나는 탱글탱글한 볼에 한 손을 가져다 대고 턱을 괴었다.

입양아인 레온하르트도 힘들겠지만, 지금은 레온하르트를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환영미로를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고민하던 나는 내 마음속에 단단하게 뿌리 내린 아빠와의 행복한 삶을 떠올리고 작게 웃었다.

입가에 배시시 볼우물이 팬 걸 보면서 레온하르트가 문득 말을 걸었다.


“왜 그렇게 귀엽게 웃어? 케이크 생각해?”

“아니. 내가 귀엽나? 난 ‘어른이’인데!”

“……어른이라기엔 너무 키가 작아. 손도, 발도 작고.”

나는 고개를 어푸어푸 저었다.

……처음에 쫄았던 게 무색할 정도로 착한 레온하르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푸스스 웃으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아무튼, 알려 주어 고맙다네! 칭구!”

레온하르트는 좋은 애다.

내 마음속에 그렇게 각인됐다.

그는 나를 보며 머쓱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내 손을 놓진 않았다.

나는 그의 밤하늘을 닮은 까만 가죽 가면을 빤히 보면서 고개를 몇 번 갸웃갸웃했다.

***

바로 그때 시엔의 훈육 담당인 릴미는 교육원장과 은밀한 만남을 갖고 있었다.

상황은 레온하르트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그들은 교육원 내부의 비밀스런 응접실에 마주 보고 앉아, 시엔과 마티어스의 처분에 대해 논의하는 중이었다.

다리를 꼰 백발의 교육원장이 비열하게 웃으며 물었다.


“시엔 미르모드에 대한 보고가 잦군.”

“예.”

시엔은 아직 어렸지만, 너무 영리했다. 조금만 더 자라면 위험 분자로 등극할 소지가 충분했다.

그는 목을 가다듬은 뒤 말했다.


“추방자의 딸인 주제에, 어리고 맹랑해서 말입니다.”

그래 봐야 악셀 님이 돌아오시면 한칼에 죽을, 추방자의 딸 주제에……. 그는 교육원장의 집무실 안에 들어선 직후부터 꾸준히 씨근덕거리며 다시 말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야. 마티어스 대공자, 꽤 발칙한 딸을 데려왔나 보군.”

“이제 바로 처리를…….”

교육원장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릴미를 바라보며 일갈했다.


“그대는 잠자코 물러나. 내가 환술로 테스트를 해 볼 생각이니.”

그는 피식 웃었다.

아이를 짓밟을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있다.

미르모드 가문의 아이는 한 번씩 교육원장에게 의무적으로 테스트를 받게 된다.

그 자리에는 누구도 개입할 수 없었다.


“‘추방자’의 딸인 데다 그대를 화나게 한 자이니, 아무렴 싹을 밟아야 하지 않겠나.”

“…….”

“그리고.”

“예?”

“마티어스의 딸을 합법적으로 처리하라는 원로원장의 명이 있었다.”

속으로 모든 계획을 정리해 둔 그가 비릿하게 웃었다.

교육원장은 원로원의 휘하에서 손에 여러 번 피를 묻혀 왔다.

날개 꺾인 추방자 출신이지만 얕볼 수는 없었다. 교육원장은 마티어스 미르모드가 지금까지 어떤 악행을 자행해 왔는지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또 어떠하랴?

그들은 힘을 길렀고, 마티어스는 이미 한 번 패배한 전적이 있다.


‘싹을 짓밟아 둬야 해.’

그의 딸인 시엔 미르모드부터였다. 그의 딸을 밟아 두면 감히 그 눈을 들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었다.


“하면 언제쯤을 생각하십니까?”

“내일.”

“예?”

“방비할 틈을 줄 이유가 없잖은가?”

제 딸이 폭주하는 걸 보는 아비의 얼굴은 어떨까.

그 생각을 하니 그의 입가에 웃음이 피어났다.


‘한번 꼬리를 내리고 도망갔던 주제에 다시 돌아와 가문을 들쑤시고 다니니 벌을 받는 게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모두가 방관할 것이다.

본디 약한 자는 산 채로 잡아먹힌다.

그게 미르모드의 법칙이었다.


“아예 죽이는 것도 좋겠군.”

“테스트에서 자주 있는 일이긴 했죠.”

“그래.”

꽤 재미있게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교육원장이 흥미롭다는 듯 웃어 보였다.


“일단 북쪽 탑에 세작을 보내 두겠습니다, 그럼.”

그들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방 안에 음흉하게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퍼져 나갔다.

***

그날 새벽, 으슥한 공기를 틈타 시엔과 마티어스가 머무는 북쪽 첨탑에 침입한 세력이 있었다. 바로 교육원장이 보낸 살수 두엇이었다.


“제대로 처리했나?”

“물론.”

교육원장이 교육한 빼어난 살수답게 그들은 북쪽 첨탑까지 제대로 들어설 수 있었다. 첨탑을 지키는 어정쩡한 기사 둘 정도는 수면제를 먹여 재울 정도로 일가견이 있었다.

첨탑 안, 복도.


“마티어스 공자는?”

“확인해 두었지. 심판대에 올랐어. 후계 시험을 위해 첨탑을 떠난 상태다.”

무력의 신이라 불릴 정도인 마티어스가 없다면 충분히 해 볼 만 했다.

첫 번째 계획은 제대로 숨어 든 다음, 시엔을 납치해서 교육원장님께 보내는 것이었다. 테스트 전에 미리 공포심을 만들어 두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마티어스 미르모드였다.

그에게 꼬리를 잡힐 수 있었기 때문에, 납치 계획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여 두 번째 계획도 만들어 두었다.

전갈을 전달하러 방문한 척하는 것이었다. 밤이었기에 의구심이 들 수 있으나, 이곳은 미르모드였다. 밤이든 낮이든 전갈을 보내고 살수를 보내는 것이 특기인 악당 가문 말이다.


“시녀들은?”

“시녀들이야 적당히 재워 두면 그만이지. 기사도 재웠는데 시녀 따위를 못 재우겠나.”

“여기 시녀는 좀 다르다고 하던데.”

“그래 봐야 시녀는 시녀일 뿐이야.”

숨을 죽인 채로 복도를 빠르게 내달리던 살수 하나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한참 낄낄거리던 그들은 주머니 속 교육원장이 보낸 전갈을 힐끗 내려다보다 웃었다.

그리고…….

그들은 시엔의 방문 앞을 우뚝 서서 지키고 있는 시녀 둘을 볼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흉흉한 기세로 자신을 바라보는 키 180cm, 근육은 웬만한 보디빌더에 버금가는 시녀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하지만 괜찮다.

교육원장님이 특별히 제조한 수면제가 있으니까!

살수들은 주머니에서 급하게 수면물약을 꺼내 시녀들의 얼굴로 착, 하고 뿌렸다.


“뭐야, 이거?”

“이런 미친……!”

걸걸한 욕설이 들렸지만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저 시녀들은 곧 잠에 빠질 테니까.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순식간에 빗나갔다.


“수, 수면제가 안 통해?”

시녀가 신경질적으로 살수 둘의 멱살을 동시에 움켜잡았다.


“아, 이 멸치 같은 잡놈들은 또 뭐야? 근육도 하나 없이 말라 빠져 가지고는!”

다른 시녀는 그래도 좀 쫄 줄 알았는데!

그쪽은 더 음산했다.


“시엔님 깨신다. 조용히 해.”

“그래.”

다른 연약하기만 한 시녀들과 달리 눈앞의 저 시녀들은 자신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뚜둑, 뚜둑.

……한쪽에서 관절을 꺾는 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괜찮다!

저쪽은 시녀일 뿐이고 자신은 살수니까! 그럼, 그럼!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몇 분 뒤.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살수들이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한쪽 팔의 관절은 꺾이고 다른 쪽 팔은 거의 너덜너덜해졌다.

다리는 도망가지 못하게끔 아킬레스건이 잘리기까지 했다.

고작 몇 분 만에 그들은 완벽하게 패배했다.


“무슨 시녀가 이래?”

“내 마음이다.”

시녀들은 손바닥을 탁탁 쳐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나마 자신들에게 걸린 걸 다행으로 알아야지. 마티어스 소공자가 자신이 사랑하고 아끼는 딸의 방에 첩자가 침입할까 봐, 어떤 위험한 트랩을 설치해 놨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우리에게 당한 걸 감사히 여기라고, 형씨.”

“맞아.”

시엔이 준 프로테인 덕에 지독할 정도로 커다래진 대흉근을 자랑하며 시녀들이 스산하게 웃었다.

나동그라진 잡놈들을 꾸욱 지르밟아 주는 것도 잊지 않으며.

시녀는 그러고 보니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시엔님께서 칭찬해 주시겠지?”

그들은 문득 이 재수 없는 잡놈들이 마음에 든다는 생각을 해 버리고 말았다.

제대로 된 공을 세웠으니, 프로테인 가루도 얻을 것이요, 말랑 콩떡처럼 귀여운 시엔님의 마음도 얻게 될 것이었다.

그야말로 최고의 하루였다.

***

다음날, 주경야독으로 눈이 토끼처럼 빨개진 나는 기묘한 광경을 목격했다.

아빠가 잠시 시찰을 나간 와중에 북쪽 첨탑으로 웬 모르는 사람들이 잠입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다 무엇이느냐, 언니들?”

“침입잡니다.”

근육 시녀 언니들은 마치 죄인을 호송하는 포졸처럼 남자들을 줄줄이 엮어 내 앞에 무릎을 꿇렸다.

검은 복면을 쓴 사내 열 명이 내 앞에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은 걸 본 나는 경악했다.


‘저 사람들 다 피 줄줄 나!’

그러나 놀란 나와 달리 시녀 언니들은 강했다.


“저놈들이 감히 건방지게 시엔 님의 침실에 출입할 생각을 하지 뭡니까!”

“후, 적당히 밟아 줬죠.”

“허억……. 괘, 괜찮겠지?”

‘죽은 건 아니겠지?’

‘저 복면 쓴 아저씨들’ 괜찮냐고 물었는데, 시녀 언니들이 뿌듯하게 말했다.


“하……. 괜찮습니다.”

“역시 시엔님은 저희를 걱정해 주시는군요. 항상 그러셨죠…….”

……언니들은 가끔 착각을 심하게 했다.

내가 근육 빵빵한 시녀 언니들을 걱정할 일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데…….


 


“걱정 마십시오! 원래 17:1 정도는 가뿐합니다.”

“이번에도 시엔님의 야자나무 열매를 먹고 특훈한 게 효과가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항상 건강식을 챙겨 주시고…….”

그들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내게 다가오자, 복면을 썼지만 얼굴이 줘 터졌을 게 분명한 괴한들 중 하나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니, 무슨 소리야? 이게 시녀야 괴물이야!”

“시끄럽다, 세 번째 다리까지 또각, 분질러 줘?”

“근육도 없는 것들이 까부는군.”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속으로 땀을 흘렸다.


‘이 언니들 무서워…….’

시녀 언니들에게 타박을 들은 괴한은 입을 닥쳤지만, 눈탱이가 밤탱이가 됐을 게 뻔한 다른 괴한 하나가 분통을 터뜨렸다.


“우린 그냥 교육원장님의 전갈을 가져왔을 뿐이라고요!”

시녀 언니들과 내가 시선을 교환했다.


“그럼 왜 내 방에 몰래 들어오려고 한 건데. 얼굴은 왜 가려써?”

“그, 그건…….”

“이 막돼먹은 놈들을 당장 처리할까요, 시엔 님?”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물었다.


“처리는 난주에, 아니, 나중에 하거라!”

처리 안 한다는 말은 안 했다.

나는 더욱 근엄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말해 보거라. 교육원장님의 전갈이 무엇이지?”

“그, 그러니까…….”

그들이 땀과 피를 뻘뻘 흘리며 주머니 안에 있던 편지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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