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한주현에 부는 바람
유성탄이 사망회에서 운반하려던 마약을 발견하면서 사건은 일사천리로 처리되기 시작했고, 유정삼과 유성우가 그들의 음모를 알고는 막으려다가 오히려 그들에 의해 누명을 썼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갈추산은 지정우에 의해 납치된 후 유성탄에게 무려 세 시진이나 터지면서 똥오줌까지 지린 후에 관으로 넘겨졌고 곧장 처형을 당한다.
“아이구, 니가 성탄이란 말이냐?”
정신이 든 강추화는 유성탄 덕에 모든 일이 풀린 것을 알게 되자 계속 유성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에이 참! 엄마, 내가 얘들 대형이라구요! 자꾸 머리 쓰다듬고 그러면 쟤들이 나를 어떻게 보겠어요?”
유성탄이 쪽팔리는 느낌에 강추화의 손을 밀어내자 강추화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 내가 잘못했다. 어릴 때 그렇게 속을 썩이고 말을 안 들어서 이게 커서 사람 구실이나 제대로 할까 걱정했었는데… 에구, 이 기쁜 날 웬 눈물이…….”
‘에이 씨! 완전 대형 꼴 이상해지네. 쪽팔리게 하고는 또 왜 우는 거야?’
유성탄은 짜증스럽게 속으로 말하면서도 강추화의 눈물을 보자 자신도 눈물이 나는 것을 느끼고는 황급히 눈을 닦았다.
“얼마나 고생했으면 이런 거지꼴을 하고… 누가 보면 산적인 줄 알겠다. 에구, 누구 탓을 하겠니 다 내 잘못인데…….”
‘이거 안 되겠다. 엄마랑 얘기를 할 때는 모두 멀리 보내야지 이러다가 완전 호구 잡히겠구나…….’
유성탄이 엄마인 강추화에게 뭐라고 하지는 못하고 자꾸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 같자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 혼인은 했냐?”
“아직 안 했는데요.”
“아이구, 이놈아. 네가 지금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혼인을 못 했다는 말이냐? 안 되겠다. 내가 당장 참한 색시 하나 알아봐야겠구나.”
“성탄아! 잠깐 이리 들어오너라!”
엄마와 한창 회포를 푸는데 아직 자리에 누워 있는 유정삼이 한결 몸이 좋아졌는지 밝은 목소리로 유성탄을 불렀다.
“성탄아, 좀 더 가까이 오거라.”
유성탄이 가까이 다가서자 유정삼의 손이 유성탄을 잡았다.
“미안하구나. 그날 이 아버지가 조금만 빨리 집에 돌아왔어도 너를 잃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을…….”
유성탄은 유정삼의 손이 참 따뜻하다고 느꼈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예전부터 계속 있었던 것같이 어색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성탄아, 너 혹시 낭인이 된 거냐?”
갑작스런 유정삼의 말에 유성탄이 펄쩍 뛴다.
“아버지도 참! 우리가 그래도 뼈대 있는 가문인데 내가 어떻게 낭인이 돼요?”
유정삼은 유성탄의 말에 약간 어리둥절하다가 자신이 유성탄 어렸을 적에 자신의 가문을 언제나 삼대를 포쾌를 한 뼈대 있는 가문이라고 뻥을 친 것이 생각나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말은 아직도 잊지 않았구나. 그럼 혹시 무림인이 된 것은 아니겠지?”
유성탄은 이번 말에는 펄쩍 뛰지 못했다. 자신은 사실 무림인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아우들은 자신이 이미 무림인이라고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아무리 아버지 앞이지만 아우들을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은 유성탄이었다.
“무림인이 된 모양이구나. 후우! 내 잘못이다. 이제 죽어서 네 할아버지를 어찌 볼지 걱정이구나…….”
“왜요?”
“할아버지께 큰 아들은 꼭 포쾌를 시키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됐으니 포쾌 집안인 우리의 전통이 여기서 끊어지게 되지 않았느냐.”
‘포쾌……?’
유성탄은 유정삼의 말에 옛날 아버지가 저잣거리에 나가서 무게를 잡고 걷던 모습이 생각났다. 어린 마음에도 포쾌 복장을 하고 몽둥이를 징글징글 돌리며 걷던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멋있었던 기억이 그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포쾌… 하지요 뭐!”
“정말이냐?”
“내가 유성탄이거든요. 유성방의 방주이며 낭인칠웅의 대형인 마질대형 유성탄하면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니까요?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거지 누구 허락을 받을 일이 아니잖아요?”
유성탄은 아버지 유정삼을 위해서라도 잠시 포쾌 일을 해줄 생각을 했다. 하다가 재미없으면 집어치우고 야바위판이나 벌이며 살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 * *
“어찌하시렵니까? 이번 일에 무림세력이 끼어든 것이 분명합니다. 사망회에 용 백호장을 보냈습니다. 조만간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것입니다.”
“지금 감숙에 군사가 얼마나 주둔하고 있습니까?”
“적어도 삼만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전부 퍼져 있을 것 아닙니까?”
“모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고… 황상의 재가도 필요할 것입니다.”
“사망회는 무림세력 중에서도 대단히 강한 곳으로 아는데… 정파 무림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을까요?”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지금 무림은 아주 평화롭습니다. 비록 오대사파가 중원을 다섯 군데로 분할하여 큰소리는 치지만 정파의 견제에 함부로 행동은 안 하고 있는 편이지요. 그러나 만약 사망회를 친다면 다른 사파에게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정사대전(正邪大戰)이 벌어지는데… 잘못하면 간신히 황상께서 만들어 놓은 강호의 안정이 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반역의 기운이 있는데 무림세력이라고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동창의 도움을 받으시지요.”
“동창의 도움은 싫어요.”
연 소주는 영락제가 제위에 앉은 후 동창의 힘이 너무 커지는 것이 못마땅했다.
환관들이 권력을 가진 나라치고 제대로 백성을 다스린 적이 없었던 것이 중국의 역사였다.
하지만 영락제는 철권통치를 하면서 동창을 자신의 친위대로 키워나갔다. 만약 이번 역모사건까지 동창이 해결한다면 그들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것이 분명했다.
“동창에는 고수들이 많습니다. 얼마든지 무림세력과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세력은 황궁에 동창밖에 없습니다.”
“아니에요. 또 한 사람 있어요.”
* * *
“대형! 포쾌라니요? 어떻게 대형 같으신 분이 그 별 볼일 없는 포쾌를 하신다는 말입니까?”
유성탄이 포쾌를 한다는 말에 마동파가 입에 거품을 물며 반대를 했다.
“맞습니다. 우리 오살도 방주님만 믿고 혈문을 배신했습니다. 그리고 곧 혈점사가 오면 우리로서는 죽은 목숨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방주님께서 배신을 때리면 안 되지요.”
“내 말 좀 들어봐라. 왜 내 말은 자세히 듣지도 않고 배신을 때리니 뭐니 하며 살벌한 소리만 하는 거냐?”
유성탄의 말에 모두는 조용해졌다. 그리고는 유성탄의 입에서 어떤 소리가 나올지 그의 입만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 씨! 되는 대로 지껄이려고 그랬는데… 전부 저런 눈으로 쳐다보면 안 되는데…….’
“어차피 유성방은 총단이 없잖냐?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총단이다 이 말이지. 그러니까 이곳 한주현을 유성방의 총단으로 삼고 너희들은 계속 유성방의 일을 하는 거다. 그리고 포쾌를 하면 좋은 게 있을 것 같거든. 봐라, 무림인들도 포쾌는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잖냐? 그러니까 포쾌의 권한으로 도박장이고 뭐고 다 때려 부숴도 아무도 덤비지 못할 거고 청담도 관부의 정보망을 사용하면 더 빨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대형! 포쾌는 관부인 중에 포졸 바로 위로 품계도 없는 하위직입니다. 무슨 동부지사도 아니고 포쾌한테 무슨 권한이 있다고 관부의 정보망을 사용한다는 겁니까?”
표도행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유성탄은 포쾌가 대단히 높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 * *
유정삼과 유성우는 북창부주의 부름을 받고는 북창부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깜짝 놀란다. 유정삼으로서는 하늘같은 북창부주가 웬 젊은 청년 옆에서 허리를 거의 구십 도로 꺾은 채 시립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사건의 전말을 보니 유 포장과 그 가족의 공이 대단히 크더군요. 그래서 제가 직접 유 포장과 유 공자를 만나고자 북창부주에게 명을 내렸습니다.”
유정삼은 젊은 청년의 정체도 모른 채 허리만 굽실거릴 뿐이었다.
“큰 아드님이신 유성탄 방주와 저는 친구 사이입니다. 그러니 너무 어려워 마십시오.”
연 소주의 말에 놀란 것은 유정삼과 유성우만이 아니었다. 연 소주의 신분을 아는 북창부주의 얼굴에 더 큰 놀라움이 나타났다.
‘이거 저 유 포장한테 잘 보여야지 잘못 보였다가는 큰일 나겠구나…….’
“제게 조금 권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몇 가지 인사를 하려고 합니다. 더 높은 지위를 내려야 그 공에 합당하겠지만 우선은 유 포장께는 한주현의 현령 자리를 맡기고자 하는데 어떠십니까?”
유정삼은 연 소주의 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포장과 현령은 그 차이가 엄청 컸다. 한 고을의 사법과 행정을 모두 책임지는 현령은 품계가 정칠품이었다. 고위관리의 시작이 종칠품인데 그것보다도 한 단계가 높았다. 거기다 녹봉부터가 포장의 세 배는 넘었던 것이다.
“저는 그런 자격이 없습니다. 배운 것도 짧고…….”
“아닙니다. 지금 감숙의 상황이 유 현령처럼 강직하신 분이 필요할 때입니다. 사양 마십시오.”
유정삼은 자신이 한 번도 강직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한번 해본 사양일 뿐, 그의 가슴은 진짜 터질 것 같았다.
“그리고 유성우라도 했던가요?”
“예, 제가 유성우입니다.”
“나이가 열여덟이면 아직 어리다면 어린 나인데 놀랍더군요. 유 공자께서 몰래 작성해 놓으신 장부 덕에 그들이 움직인 물건들의 꼬리를 잡기가 아주 쉬워졌습니다. 내가 알기로 성의 진시에 장원을 했다고 하던데, 어째서 아직도 관직을 못 받은 것입니까?”
연 소주의 말에 유성우는 뭐라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팔지신타가 연 소주의 귀에 뭐라고 소곤거렸고, 이내 연 소주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부주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연 소주가 갑자기 북창부주를 보며 물었다.
“무슨 생각을 말씀하시는지요?”
“성의 진시에 장원을 했고 이번에 이렇게 큰 공을 세웠으니 어떤 직위를 줘야 합당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오?”
“이목(吏目)이면 어떨까 합니다만…….”
이목이면 종구품의 가장 낮은 품계였다. 하지만 사실 그것도 어린 유성우에게는 대단한 것이었다.
“부주께서는 그 정도밖에 생각을 못 하시오? 내 친구의 동생이 이목으로 허드렛일이나 한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북창부주는 긴장한 듯 이마의 땀을 닦으며 다시 말했다.
“그럼……?”
“유 공자의 성정이 강직하니 판관의 자리를 주고 싶은데 어떻소?”
판관은 종칠품이었다. 품계는 현령보다도 낮은 것 같지만 사정(査定)과 감찰(監察)의 권한을 가지고 있으니 그 권한은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파격적인 인사의 예가…….”
“그러니까 지부께서 공문을 잘 써서 보내야겠지요.”
연 소주에게는 부의 부주를 자를 수 있는 권한은 있지만 부의 인사 소관은 전적으로 부주의 몫이었다.
“자, 차를 드십시오.”
북창부주가 나가자 연 소주는 유정삼과 유성우를 자리로 모시고는 차를 대접했다.
“저희들이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이런 엄청난 은혜를 베풀어주시니 정말 황송합니다.”
유정삼이 수십 년의 관직생활에서 얻은 아부성 말을 자연스럽게 내뱉었다.
“하하하! 은혜랄 것까지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 부탁 하나는 좀 들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연 소주의 말에 유정삼과 유성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어려운 부탁이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유 현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요.”
“말씀하십시오.”
유정삼은 자신보다도 유성우에게 판관의 직책을 내려준 것이 더욱 기뻤다. 유성우의 앞길만 열린다면 자신의 목숨을 달라고 한들 아까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유성탄과 제가 친구라고 한 말 기억하십니까?”
“예, 그놈이 어떻게 높으신 분과 친구가 됐는지는 모르지만, 그놈의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부탁은 유성탄을 관직에 들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유정삼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런 부탁이라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놈이 집안의 전통을 따라 포쾌를 하겠다고 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 중이었습니다.”
“포쾌요?”
연 소주는 뜻밖의 말을 들었는지 팔지신타를 보며 반문했다.
[공자님, 그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유 방주 성격에 높은 자리를 주기도 사실은 어렵습니다. 우선 포쾌를 하게 해서 이들이 유 방주를 확실히 제어할 수 있는가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포쾌를 우선 하게 하지요. 소속은 한주현, 직속상관은 유 판관이 하십시오.”
연 소주의 말에 유성우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형님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감히 나이 많은 형님의 위에서 명령을 한다는 것은 감당하기 힘듭니다.”
“명령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두 분께서 할 일은 유성탄이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할 때 그것을 막아만 주시면 됩니다.”
아직 유성탄에 대해 잘 모르는 유정삼과 유성우는 연 소주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모든 일이 유성탄 덕에 풀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유성탄의 모습에서 특별난 점을 발견한 것은 없었던 것이다.
* * *
“엄마, 이게 뭔지 알아요?”
유성탄은 강추화와 있으면서 계속 기분이 좋았다. 거기다 유성화는 유성탄의 무용담을 들으며 너무 재미있어 했다.
그렇게 한참 대화를 나누던 유성탄이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는지 웃통을 벗으며 물었다.
“다 큰 놈이 갑자기 왜 옷은 벗으면서 난리냐?”
“가만있어 봐요. 짠! 이게 뭘까요?”
유성탄은 몸에 두르고 있던 금자 오백 냥이 든 꾸러미를 풀더니 강추화에게 내밀었다.
“이게 뭔데……?”
꾸러미를 풀던 강추화는 깜짝 놀라 손을 떼며 소리쳤다.
“에구머니나! 이게 다 뭐냐?”
강추화는 안타깝게도 아직 금자를 구경해 본 적이 없었다.
“이 아들이 엄마 줄려고 모은 돈이에요. 이게 바로 금자라는 거예요.”
“금자!”
강추화는 금자라는 말에 놀라 꾸러미를 완전히 풀었다. 그러자 누런 황금빛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와아! 큰오빠 진짜 부자다. 오빠 이거 나 하나만 가지면 안 될까?”
“가져! 가져! 왜 한 개만 가져? 열 개 가져가도 돼!”
유성탄의 말에 유성화가 좋아서 금자에 손을 대려고 하자 강추화가 유성화의 손을 딱 때렸다.
“안 돼! 니 오빠가 얼마나 고생해서 번 돈인데 함부로 쓰려고 그러는 거냐? 엄마가 잘 가지고 있다가 너 시집갈 때 줄 테니 욕심 부리지 마라.”
“엄마는… 씨!”
“엄마, 걱정 마요. 조금만 더 있으면 이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 거예요.”
유성탄은 강추화와 유성화가 좋아하는 모습에 청담을 빨리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형, 아주 살판 나셨네…….”
“그러게 말야! 이렇게 하루 종일 웃는 경우는 처음 보는데…….”
방안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유성방도들은 처량하게 툇마루에 앉아 있었다.
“강 부방주!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어요?”
고화월이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강태웅을 보며 물었다.
“대책이 뭐가 있습니까? 대형이 하시겠다면 그걸로 끝이지요. 우리는 대형이 원하시는 대로 그분의 뒤만 따르면 되고요.”
하후란은 이미 북창부에 들어와 있었다. 강태웅은 유성탄이 포쾌를 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하후란을 찾아갔다. 그런데 하후란의 반응은 뜻밖으로 찬성을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현재 유성방으로서는 더 이상의 강호행은 위험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현재까지는 유성탄이 잘해내고 있지만 솔직히 외공이란 자신보다 더한 고수를 만나면 생각 외로 쉽게 무너질 수도 있었다.
유성탄의 신체의 비밀을 모르는 그녀가 보는 바로는 유성탄의 현 상황은 위태위태했다. 거기다 유성탄이 없는 유성방의 방도들은 진짜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였다.
하후란은 유성방의 낭인칠웅과 유성탄의 이름이 지금 무림에 퍼지고 있으니 잠시 모습을 감추는 것도 좋은 방법 같다고 조언을 했다.
강태웅은 정체를 감출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지만 하후란이 최대한 막아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우선 한주현을 거점으로 은밀하게 세(勢)를 넓혀가기로 마음먹었다.
* * *
밤이 되자 유성방의 방도들은 나야종만 남고 모두 북창부의 중심가로 들어갔다. 나야종이 유성탄의 호법을 서는 날이었다.
“이제부터 잘해야 합니다.”
마을에 도착한 강태웅이 고화월에게 말하자 고화월이 걱정 말라는 듯이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하후란이 짠 계획대로 오늘 낭인칠웅이 한주현을 떠나는 날이었다.
그리고 유성방의 방도들이 밤을 타고 북창부를 떠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사망회의 간세들이 쫓기 시작했다.
* * *
“아이고! 집에 갑자기 경사가 겹치다니……!”
강추화는 태어난 이후 가장 행복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유성탄이 엄청난 돈을 안겨주었고 늦게 집에 돌아온 유정삼은 자신이 한주현의 현령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너무 좋아 기절하기 직전까지 간 강추화에게 결정타가 터졌다. 유성우가 판관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엄마 넘어간다!”
유성화가 펄쩍 뛰며 강추화의 팔을 잡았다. 유성화도 세상에서 가장 기쁜 날이 아닐 수 없었다.
“아버지, 그럼 이제 우리도 높은 명문가가 된 건가?”
유성화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유정삼을 보며 물었다.
“하하하! 그럼. 이 아버지가 현령이고, 니 작은오빠가 판관이면 한주현에서는 우리 집을 무시할 집은 더 이상 없다고 할 수 있지.”
말하는 유정삼의 얼굴에는 흐뭇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는 유성탄은 이상하게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이상하네? 누가 잘되는 걸 보면 괜히 심술이 나서 골탕 먹이고 싶더구먼. 이게 가족인가?’
유성탄이 생각하는데 유성화가 다시 물었다.
“그럼 큰오빠는 뭐 하나?”
“우리 집은 삼대가 포쾌를 한 뼈대 있는 집안이다. 당연히 장남인 성탄이는 가풍을 따라 포쾌가 되어야지!”
유정삼의 말을 들은 유성탄이 펄쩍 뛴다.
“난 포쾌 안 해요!”
어제까지도 포쾌를 하겠다고 하던 유성탄이 갑자기 변덕을 부리자 유정삼이 근엄하게 말했다.
“성탄아, 남자가 한 번 한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모르느냐? 어제 분명 포쾌를 한다고 해놓고는 지금 와서 말을 바꾸는 것은 남아대장부가 할 일이 아니니라.”
다른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면 당장 나 남자 아니라고 하며 억지를 부릴 유성탄이었지만, 아버지에게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형님, 갑자기 그러시는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만약 이유가 합당하다면 군자도 말을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유성우가 나이답지 않게 점잖은 목소리로 물었다.
‘얘가 완전 애늙은이네? 군자는 또 뭐고… 에이, 공부 좀 하기는 해야지 동생 앞에서 쪽팔려서 안 되겠다.’
유성탄이 유성우의 얼굴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유성방의 방주이자 낭인칠웅의…….”
“오빠, 알아요. 마질대형이라는 거.”
이미 너무 여러 번 들은 유성화가 끼어들었다.
‘아! 이럴 때 끼어들면 내 무게가 떨어지는데… 귀여운 동생이니 봐주자.’
“난 포쾌가 되면 나쁜 놈은 누구나 다 때려잡을 수 있는 줄 알았는데, 포쾌는 지위가 너무 낮아서 그렇게 못한다고 하더라. 그렇다면 뭐 하러 포쾌를 하냐?”
* * *
“유 공자 말이, 유성탄이 포쾌를 안 한다고 고집이랍니다. 그래서 다른 직위라도 하겠느냐고 하니까…….”
“하니까……?”
황지용의 보고를 듣던 연 소주는 황지용이 말을 끌자 궁금한 듯이 물었다.
“자기는 포쾌 아니면 안 하겠답니다.”
“……?”
연 소주는 잠시 무슨 말인지 몰라 황지용을 쳐다보았다.
“하여간에 특이한 친구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때서야 연 소주가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다.
“포쾌는 안 한다. 그런데 다른 것을 하라니까 자기는 포쾌 아니면 안 하겠다? 하여간에 못 말리는 친구로군요. 그렇다면 뭔가 또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는 모양이군요?”
“포쾌는 권한이 너무 없어서 싫답니다.”
“맞군요. 유성탄이 감숙을 마음대로 설치게 하려면 보통 포쾌로는 안 되겠네요.”
잠시 턱에 손을 대고 생각을 하던 연 소주가 갑자기 품에서 황금 패를 하나 꺼냈다.
“이걸 주십시오.”
“공자님! 그건…….”
“아무리 봐도 어지간한 권한으로는 마음대로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마음 놓고 분탕질을 하려면 이 정도의 권한은 있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아직 그자에 대해 확실히 아는 것도 없는데… 그 패는 황상이 직접 하사한 황룡패입니다. 성의 성주의 목까지 칠 수 있는 대단한 권한을 가진 패인데…….”
“한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패입니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유성탄 너만 믿는다.’
영락제는 스스로가 정변을 일으켜서 황제의 위를 찬탈해서 그런지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것이 정복사업으로 이어지며 스스로 친정(親征)까지 하는 정벌전쟁으로 상당한 영토를 늘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실질적인 소득은 거의 없었다.
영토를 늘렸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말뿐이었다. 거센 저항으로 인하여 군사를 주둔시키지도 못하고 곧 물러 나와야 했고 관리의 파견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내치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그것 역시 힘을 바탕으로 한 철권통치 덕이었다.
언제나 자신과 같은 정변이나 반역이 일어날 것을 불안해한 영락제는 자신의 말만 듣는 친위대를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동창이었다.
그런데 동창을 견제할 세력이 없을 정도로 동창의 세력이 커지면서 사방에서 그들의 월권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모든 대신의 뒤를 캐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비위에 어긋나면 반역의 죄를 뒤집어씌웠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영락제의 통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어느 날 영락제가 붕어라도 한다면 문제가 클 수밖에 없었다.
감숙에서 반역의 기미가 있다는 정보를 처음 잡은 곳은 금의위였다. 물론 그 바람에 동창의 위신이 많이 깎였다.
그런데 영락제가 이번의 조사를 금의위에 맡긴 것이다. 금의위에서 먼저 낌새를 잡았으니 니들이 해봐라 하고 가볍게 생각하고 내린 명이었는데, 감히 영락제의 명에 동창이 반발을 했던 것이다.
반역은 동창의 소관이라는 것이었다. 거기다 동창의 위세에 금의위에서 스스로 조사를 포기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그것은 영락제로서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권력의 상징인 동창을 없앨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사후 다음대 황위를 이을 손자를 위해서도 동창의 수뇌부는 갈아야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하지만 아무리 황제라 해도 죄도 없는 높은 지위의 신하를 마음대로 경질할 수는 없었다. 뭔가 책임을 물어야 했는데 자신이 신임하던 그들에게 아무 죄나 뒤집어씌운다는 것은 그 자신에게까지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서 감숙의 반역사건을 미끼로 사용하기로 한다.
약간은 공평하지 않은 방법이었지만 자신의 손녀인 주소연을 검찰관으로 먼저 감숙으로 보냈다. 그리고 주소연이 감숙에 도착할 때쯤 동창에게 감숙의 반역사건을 해결하라고 명을 내리기로 한 것이다.
물론 동창에서 처리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빌미로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동창의 수뇌부들을 모두 숙청할 생각이었다.
자신의 손녀인 주소연을 보낸 것도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이었다. 놀랍게도 동창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일을 처리할 사람을 찾아보았지만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주소연은 공주답지 않게 대단히 소탈했고 어려서부터 무공을 배우기를 좋아하여 황궁무공을 거의 극성으로 익혔다.
주소연은 처음에는 간단하게 일을 처리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반역사건에 무림인이 관련이 된 것을 알자 일이 간단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사망회만 하더라도 군을 동원하지 않고는 조사 자체가 불가능했다.
주소연이 유성탄을 이용할 생각을 한 것은 그가 사망패존을 이겨서가 아니었다. 그런 정도로 죄 없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갈 성정을 그녀는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러나 유정삼을 데리러 왔을 때 보인 유성탄의 숨겨진 힘을 보고는 한 가닥 희망을 본 것이다.
주소연은 유성탄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권한을 주었다. 이제 그녀로서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그녀로서도 알 수 없는 만큼 어쩌면 그녀까지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 있는 모험이었지만 그녀는 유성탄의 무공을 믿어보기로 했다.
* * *
“그러니까 이 패만 보이면 누구라도 다 때려잡을 수 있다 이거 아니냐?”
유성탄은 유성우가 가져온 황룡패를 보더니 먼저 이빨로 깨물어봤다.
“이거 진짜 금 아닌가 본데?”
“형님, 연 공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패는 수천 명의 목숨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광장한 패라고 했습니다. 비록 형님께서 특별한 권한을 가지시기는 했지만 한주현 소속의 포괘일 뿐입니다. 당연히 현령님의 명을 따라야 할 것이고, 죄송하지만 직책이 저보다 낮으시니 제 의견을 따라주셔야 합니다.”
유성우가 조심스럽게 유성탄에게 말했다.
“걱정 마라. 내가 이래봬도 어렸을 때는 천재…….”
자신도 모르게 뻥을 치려던 유성탄이 말을 멈췄다. 여기는 고향이 아닌가. 자신의 어렸을 적을 다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뻥은 조심해야 하는 법이었다.
황룡패를 목에 건 유성탄은 기분이 무척 좋았다.
‘이제부터 이 패를 이용해서 돈을 긁어보아야겠는데… 누구부터 시작해줄까?’
쓸데없는 생각부터 하던 유성탄은 강추화가 들어오는 소리에 밖으로 나갔다.
“엄마, 누구예요?”
“잘 봐둬라! 근동에서 다 탐내는 여자다.”
강추화가 젊은 여인과 같이 들어왔는데 그 덩치가 보통이 아니었다. 거기다 생김새가 너무 씩씩하게 생겨서 마치 씨름 선수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진짜 여자예요?”
“그래. 내가 니 짝으로 생각하고 한번 데려와 봤다.”
강추화의 말을 들은 유성탄이 눈이 동그래져 가지고 소리쳤다.
“엄마! 나 유성탄을 어떻게 보고 저런 여자랑 엮으려고 그래요! 내가 밖에만 나가면 천하의 미인들이 줄을 섰다고요?”
“이놈아! 여자를 얼굴 뜯어먹고 살래? 여자는 저렇게 튼튼해야 애도 쑥쑥 잘 낳는 법이고, 밭일을 얼마나 잘하는지 저 애 집에서 저애를 낳고는 소출이 두 배나 늘었단다.”
“엄마, 분명 얘기하지만 저 여자랑 나랑 엮으려고 하면 나 다시 집 나갈 거예요.”
‘에이 씨! 나 좋아서 지금 상사병 걸린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저런 애를……. 하여간에 엄마가 되어가지고 아들을 그렇게 모를까?’
어떤 여자가 상사병이 걸렸는지는 모르지만 유성탄은 분명 자신 때문에 애가 타는 여자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유성탄의 협박에 강추화가 어쩔 수 없이 여자를 돌려보내자 방으로 들어온 유성탄은 심심한지 야바위점을 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얘들 다 어디 갔지?”
대여섯 번 점을 치던 유성탄은 계속 점이 재수 없음으로 나오자 흥미를 잃었는지 벌렁 누웠다가는 갑자기 아우들이 생각이 났다.
“야! 나야종! 얘들 다 어디 갔냐?”
나야종은 자신이 나름대로 은밀하게 숨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유성탄이 당장에 알아차리고 소리치자 못 당하겠다는 표정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지금 일이 있어서 모두 어디 좀 갔습니다. 며칠 안에 곧 돌아올 겁니다.”
“며칠? 이것들이 대형에게 말도 없이 마음대로… 오기만 해라. 기합이 빠졌어 이것들이…….”
“성탄아! 이리 오너라!”
유성탄은 강추화가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서더니 나야종에게 사라지라는 듯이 손을 흔들고는 건넌방으로 건너갔다.
“이게 뭐예요?”
유성탄이 방에 들어서자 강추화가 유성화와 함께 보자기를 방안에 깔아 놓고는 칼을 들고 서 있었다.
‘뭐야? 다시 집나간다고 했다고 설마 저 칼로 나를……?”
유성탄이 겁먹은 눈으로 강추화를 쳐다보자 강추화가 웃으며 말했다.
“여기 앉아라!”
‘설마 웃으면서 목을 찌르려고……?’
쓸데없는 공상을 하면서도 유성탄은 시키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오빠, 엄마가 오빠 머리 잘라준대요.”
“머리를? 자꾸 자라는 것을 잘라서 뭐 하게요? 귀찮게…….”
“그래도 아버지가 현령인데 이렇게 산도적같이 하고 다녀서야 체면이 말이 되겠니?”
유성탄은 강추화의 산도적이라는 말에 그냥 머리를 맡겼다.
“와아! 큰오빠 잘생겼다.”
머리를 자르고 면도를 깨끗이 한 유성탄의 얼굴은 생각 외로 무척 잘생긴 편이었다.
“내가 천하제일 미남 소리를 듣던 사람이다.”
기분이 좋아진 유성탄이 조금 무리한 뻥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