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아버지와의 재회
유성탄이 한주현으로 떠난 후 연 소주는 팔지신타와 함께 북창부로 들어갔다.
어두운 밤에 은밀히 북창부주를 찾은 연 소주는 황금패 하나를 부주에게 보였고, 부주는 그대로 그 자리에 부복을 했다. 단지 자신보다 높은 검찰관에게 하는 인사로 보기에는 과했다.
“내가 여기에 온 것은 비밀로 하세요.”
“알겠습니다.”
“부주는 그다지 평판이 나쁘지는 않더군요. 하지만 북창부에 딸린 한주현의 포장이 마약을 유통시켰으니 어떻게든 책임추궁이 있을 거예요.”
북창부주는 평판이 나쁘지 않다는 말에 희색을 띠다가는 책임추궁이 있을 것이라는 말에 얼굴이 똥색으로 바뀌어버렸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데 최대한 협조를 한다면 책임추궁을 면할 수도 있어요.”
북창부주는 연 소주의 다음 말을 듣자 머리를 조아리며 소리쳤다.
“무슨 하명이든 말씀만 하시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도울 것입니다.”
“우선 이번 마약을 유통시켰다는 혐의로 잡힌 사람에 대한 모든 조사서와 그 자의 신병을 내가 인수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아무도 모르게 처리를 해 주세요. 다른 사람들은 그자가 이곳 북창부의 옥에 계속 있는 것으로 알도록 하세요.”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신타!”
“예, 공자님.”
“유성방의 호법이라는 자가 왜 이곳에 숨어 있는 거지요?”
팔지신타와 연 소주는 유정삼을 먼저 만날 생각으로 옥으로 향했다. 그 앞에는 북창부주가 허리를 구십 도로 꺾은 채 그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연 소주는 조황이 유정삼을 보호하기 위해 은잠술을 사용하여 근처에 숨어 있는 것을 당장에 눈치 챈 것이다.
“잡아올까요?”
팔지신타도 이미 알고 있었는지 조그맣게 물었다.
“아니에요. 이유가 있겠지요. 괜히 유성방을 건드려서 그 괴물과 척을 질 필요는 없어요.”
“부주! 이자의 죄가 백일하에 밝혀졌나요?”
유정삼을 본 연 소주는 얼굴이 굳어졌다. 유정삼은 산송장에 가까울 정도로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였다.
죄가 확실하게 밝혀지기 전에 고문은 나라법으로 금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단지 법으로만 이었다. 아직도 모든 관아에서 고문을 범죄를 밝히는 수단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스스로 자백을 했습니다. 거기다 그 아들이 적었다는 횡령목록과 마약장부도 이미 확보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정식으로 재판을 받지는 않았다고 들었는데 어찌 이리 심한 고문을 했다는 말이오?”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한주현에서 현령이…….”
북창부주는 연 소주의 목소리가 그리 곱지 않은 듯하자 황급히 변명을 했다.
“마약은 나라에서 중벌로 다스리는 금지품목입니다. 특히 마약대금의 흐름은 대단히 중요하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 죄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식의 고문은 법으로 금지되어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연 소주는 북창부주의 변명을 들을 생각이 없는지 그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팔지신타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팔지신타는 간단하게 유정삼의 목에 걸린 칼을 떼어내더니 유정삼을 어깨에 멨다.
“죄인을 데려가는 것은 상관없지만 인수증은 하나 써주셔야…….”
“지금 나를 의심하는 것입니까?”
“그럴 리가요. 그냥 가십시오.”
북창부주는 연 소주의 반문에 기겁을 하며 손을 내저으며 급히 말했다. 그리고 연 소주는 북창부주의 인사를 받으며 유유히 밖으로 나갔다.
“신타, 저자는 아무리 봐도 부주의 자격이 없네요.”
“제가 봐도 그렇군요. 오로지 자리 보존에만 여념이 없는 것 같습니다.”
대화를 나누며 몸을 날린 그들이 도착한 곳은 북창부 외곽에 자리 잡은 조그만 장원이었다.
연 소주와 팔지신타가 도착하자 연 소주가 주루에서 보았던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인과 등에 두 개의 창을 엇갈리게 찬 키 큰 사나이 둘이 연 소주를 맞았다.
“다녀오셨습니까?”
“갔다 왔어요. 이곳의 부주도 반역과는 관련이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부주로서의 자격은 부족한 것 같더군요.”
“하지만 금의위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곳 북창부가 가장 의심스럽다고 했습니다.”
“알고 있어요. 지금쯤이면 동창에서도 조사를 시작했겠지요?”
“그럴 것입니다.”
연 소주는 미소를 짓더니 팔지신타의 어깨에 들려 있는 유정삼을 쳐다보았다.
“그래서 동창에서 손을 쓰기 전에 급히 이자를 이리로 데려왔어요. 분명 이자와 반역의 무리들과 어떤 관계가 있을 거예요.”
연 소주가 검찰관인 것은 확실한 듯했지만 동창과는 경쟁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말을 했다.
“그자가 이번에 마약과 관련이 있다는 자입니까?”
“그런 것 같아요.”
연 소주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등에 창을 차고 있던 사나이가 갑자기 창을 빼 들더니 담벼락을 향해 던졌다.
“죽이면 안 돼요!”
연 소주의 외침이 터지자 날아가던 창의 속도가 줄어들었다. 이미 날린 창의 속도를 조절한다는 것은 최소한 삼십 년 이상의 공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으로 창을 던진 사나이의 무공이 이미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멀쩡하던 담벼락에서 한 인영이 나타나더니 그대로 밖으로 도망쳤다.
“누군지 아십니까?”
“제가 말한 괴물의 부하예요.”
“저 정도면 살수를 해도 당장 일급소리를 듣겠는데요. 저런 부하를 거느리고 있다면 보통 낭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맞아요. 보통 낭인이 아니지요. 사망회의 패존을 두들겨 팬 사람이니까요…….”
연 소주는 말하면서 무엇이 재미있는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수하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보통 검찰관은 세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암행검찰관으로 홀로 변복을 하고 나타나 고을의 현령부터 부주까지 주위의 평을 듣고 황도로 올라가 보고서를 올린다. 그들에게는 오직 조사만 할 뿐 어떠한 권한도 없기 때문에 조사를 당한 고을의 장들은 그들이 왔다 간 줄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두 번째 검찰관은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검찰을 나오는 경우였다. 물론 어디에서 보낸 검찰관이냐에 따라 권한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보통은 현령 정도는 마음대로 목을 칠 수 있었다.
하지만 검찰관이라는 지위 자체가 부주보다는 품계가 낮기 때문에 부주까지는 손을 대지 못했다.
세 번째가 중요한데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검찰관의 자격으로 나오는 경우였다. 그런 경우는 보통 황제의 어명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 힘이란 성주를 갈아치울 수 있을 정도였으니 현령이나 부주는 그 앞에서 슬슬 길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런 검찰관에게는 상당히 많은 수행원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권한만 가지고 자신의 경호를 소홀히 했다가는 암살을 당하기 십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연 소주가 데리고 나온 사람은 이곳에 있는 세 명과 몸이 빠른 수행원 십여 명뿐이었다.
수행원들은 호위로 따라왔다기보다는 주위의 정보를 수집하는데 사용하기 위해 데려왔다고 할 수 있었으니 연 소주의 호위는 그들이 다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 세 명의 면면을 보면 그럴 만하다는 것을 곧 알 수 있었다.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인은 대내제일고수로 불리는 황지용이라는 천호장이었다. 천호장이면 무려 천 명의 군사를 거느린 대장군 정도의 지위를 지닌 자였다. 품계는 정오품으로 부주와 같지만 격이 달랐다.
그리고 두 개의 창을 등에 맨 사나이는 역시 군부의 백호장 출신으로 섬광신창(閃光神槍)이라 불리는 용대철이었다. 아직 나이가 많지 않아 백호장에 머무르고는 있지만 영락제의 북방 친정 때면 언제나 옆에 둘 정도로 무공이 높았다.
* * *
“뭐! 연 소주가 아버지를 데려가? 그놈이 뭔데?”
조황이 급히 돌아와 유성탄에게 보고하자 유성탄이 커다랗게 소리쳤다.
“뭔지 모르지만 조금은 높은 지위에 있는 것 같던데요.”
“뭐! 야, 그놈이 높은 지위에 있다면 나는 황제다. 씨!”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리는 유성탄의 말을 귀로 흘리며 조황이 계속 보고했다.
“어쨌든 방주님의 아버님께서는 옥에서는 나오셨습니다. 연 공자라면 얘기가 쉽게 될 것 같습니다.”
“당장 가자.”
유성탄이 당장 일어서자 강태웅도 따라 일어났다.
아버지의 생사가 달린 일이니 말릴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따라가는 것이 좋겠다고 본 것이다.
여자인 고화월은 유성화와 같이 강추화를 간호하기로 하고, 철패와 장우왕 그리고 영호충을 비롯한 방도들은 유성탄의 집을 경호하기로 하고는 나머지는 모두 유성탄을 따라 나섰다.
쾅쾅!
조황이 안내한 장원에 도착한 유성탄은 무조건 문부터 두들겼다.
“누구요?”
“나 유성방의 방주인 마질대형 유성탄이오. 연 소주 좀 만나러 왔소이다.”
“공자님께서는 이미 침소에 드셨습니다. 약속이 없으시다면 내일 다시 찾아오십시오.”
‘어쭈구리! 이게 높은 지위에 있는 것 같다더니 갑자기 벼락출세를 한 모양인가? 갑자기 비싸게 구는데…….’
하지만 이렇게 물러날 유성탄이 아니었다.
“내가 연 소주와 이미 만나기로 약속을 했소이다. 아마 이 친구가 깜빡한 모양인데 가서 물어보시오.”
“연 공자님께서 이 장원에 오신 것이 겨우 한 시진 전이고 그전에는 이곳에 대해 알지도 못하셨는데 어떻게 약속을 했다는 건지 모르겠소이다. 나는 거짓말 치는 사람을 가장 경멸하오.”
용대철의 소리에 유성탄이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이보시오! 나 유성탄이 이래봬도 남자로소 거짓말을 쳐본 적이 없는 사람이오. 수하가 되어서 상전을 만나러 손님이 오면 우선 알아보고 나서 그런 말을 해야지, 알지도 못하면서 상대를 거짓말쟁이로 만들다니. 나는 그런 사람을 정말 경멸하오!”
잠시 문을 사이에 두고 침묵이 흘렀다.
“좋소이다. 그럼 내 알아보기는 하겠소만 만약 거짓말이라는 것이 발각되면 그때는 각오하시오!”
용대철이 안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자 마동파가 물었다.
“대형, 요새 말을 너무 잘하시네요?”
“내가 그랬잖아. 사람들이 나 어렸을 때 천재라고 했다니까!”
“그런데 성화 낭자 얘기로는 엄청 미련해서 공부할 때마다 엄청 맞으셨다고 하던데요.”
“으잉! 누가 그런 유언비어를… 누구야? 데려와 봐!”
“성화 낭자가 그랬다니까요?”
“성화가? 걘 나 있을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어. 걔 말은 믿지 마라.”
“알겠습니다.”
더 이상 깝죽대다 가는 한 대 맞을 것 같은 느낌을 받은 마동파가 즉시 대답을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이거 어째 뭔가 뽀록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유성탄은 아우들을 둘러보며 굉장히 찝찝함을 느꼈다.
끼익!
이상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그리고 등에 긴 창을 찬 용대철이 눈에 힘을 주고는 유성탄을 쳐다보며 말했다.
“공자께서 만나시겠답니다. 하지만 약속은 없었다고 하시더군요.”
“그 놈의 자식 벌써 잊어버렸군. 하여간에 젊은 놈이 그렇게 정신이 없어서야…….”
유성탄이 너스레를 떨며 안으로 들어서자 용대철의 눈에서는 살기가 뻗어 나왔다. 연 소주의 말만 아니라면 이미 창을 뽑아 유성탄의 목을 찔렀을 것이었다.
‘아이 씨! 엄청 무게 잡네…….’
살기를 느낀 유성탄이 구시렁대며 안으로 들어가자 용대철은 다시 문을 닫으려고 한다.
“무슨 짓입니까? 우리는 방주님을 호위해야 하오!”
강태웅이 급히 나서더니 닫히는 문을 손으로 막으며 소리쳤다.
“공자님께서는 유 방주 한 사람만 들어오라고 했소. 다른 사람은 밖에서 기다리시오.”
“그래, 밖에서 기다려라. 장원이 작아서 다 들어와 봐야 복잡만 할 것 같다.”
용대철의 말을 듣자 유성탄이 순순하게 수하들에게 기다리라 명하고는 그냥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유정삼만 아니었다면 이미 한바탕 난리를 부렸을 단순무식의 대명사인 유성탄이지만 아직 유정삼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상황이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야! 연 소주! 너 출세했더라?”
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연 소주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뒤에는 팔지신타와 황지용이 시립한 채 서 있었다.
유성탄의 말투를 이미 여러 번 겪은 팔지신타는 그러려니 했지만 유성탄을 처음 보는 황지용은 순간 검을 뽑을 뻔했다. 연 소주는 아무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지위를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만날 타박만 하더니 내가 출세했다는 말을 들으니 생각이 좀 달라졌냐?”
“하하하! 니가 아무리 출세를 해봐야 대 유성방의 방주이며 낭인칠웅의 대형인 마질대형보다야 더 출세했다고 할 수 있겠냐?”
연 소주는 유성탄의 말을 들으며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물었다.
“지금 시간이면 넌 한창 저녁을 먹을 시간인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 넌 밥 먹는 시간만은 절대로 놓치지 않는 걸로 아는데…….”
유성탄은 연 소주의 말을 듣자 갑자기 배가 고파지는 것을 느꼈다,
‘밥 먹을 시간이었나? 에이, 시간도 엄청 빨리 지나가네. 밥은 먹고 올 걸 그랬나보다…….’
“너는 내가 그까짓 밥에 목숨을 거는 사람인 줄 아는 모양인데, 나는 그런 거에는 전혀 동요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분명 동요를 하는 목소리로 말하는 유성탄을 보며 연 소주가 다시 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고…. 그래, 무슨 일이냐? 거기다 내가 여기에 있는 줄은 어떻게 알고?”
“나 유성탄은 천리안을 가진 사람이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나는 다 안다.”
유성탄의 말을 들으며 황지용의 얼굴이 점점 찌그러졌다. 말하는 투도 무식이 넘치지만 내용도 너무 유치했다.
“내가 뭔 짓을 했는데?”
“너 북창부의 옥에서 죄인 하나를 훔쳐 나왔다고 들었다. 그 죄인을 나한테 넘겨라.”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 죄인은 나라에서 금하는 마약을 유통시키고 공금을 횡령한 중죄인이다. 내가 너와 절친한 친구라도 된다면 모르지만 언제나 나를 소 닭 보듯 하는 너를 뭘 믿고 중죄인을 넘겨준다는 말이냐?”
‘아이 씨! 이 자식하고는 정말 친구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다. 내가 이번만은 한 번 봐준다, 씨!’
“야! 당연히 너하고 나하고 절친한 친구지. 우리가 그럼 원수 같은 친구였냐?”
“우리가 절친한 친구라고?”
연 소주는 뜻밖의 말을 듣자 유성탄과 자신이 데려온 죄인 사이에 분명 특별한 관계가 있음을 직감적으로 눈치 챘다.
단 며칠이었지만 연 소주는 유성탄의 성격을 다 파악한 상황이었다. 죽어도 자기가 싫은 것은 못하는 사나이가 유성탄이었다.
“도대체 그 죄인은 왜 데려가려고 하는 거냐?”
“그냥 달라면 줘라! 자꾸 꼬치꼬치 물으면 너랑 친구 안 할 수도 있다.”
연 소주는 유성탄의 말에 피식 웃는다. 협박도 협박 같아야 통하는 법이었다,
‘정말 재미있는 친구야. 어떻게 할까? 죄인이 중죄인인 것은 분명한데… 지금 무림에 떠오르는 신성에다가 사망회의 패존을 이긴 고수란 말야…….’
연 소주는 유성탄을 사귀어 놓으면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마약사범은 감숙을 중심으로 반역의 기운이 꿈틀댄다는 정보로 비추어 상당히 중요한 인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신타 생각은 어떠세요? 아무리 중요한 죄인이라 해도 저 친구와 친해지는 것보다는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거기다 너무 증거가 확실한 것도 좀 수상하구요.]
연 소주는 유정삼의 죄상이 너무 뚜렷한 것이 더욱 이상했다. 연 소주는 팔지신타에게 전음으로 의견을 묻더니 대답도 듣지 않고 결정해 버린다.
“좋다! 친구로서 믿고 죄인을 넘겨주겠다. 하지만 죄인은 이곳 북창부를 벗어날 수는 없다. 약속할 수 있겠냐?”
“약속한다.”
연 소주는 유성탄의 약속한다는 말에 황지용을 보고는 눈짓을 했다. 유정삼을 데려오라는 뜻이었다. 연 소주는 유성탄이 약속을 밥 먹듯이 어긴다는 것은 아직 모르는 듯했다.
“이게… 어떻게……?”
황지용이 유정삼을 메고 와서는 유성탄의 앞에 눕히자 유성탄은 먼저 유정삼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부터 치웠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분노의 침음을 내뱉었다.
놀랍게도 유성탄은 유정삼의 얼굴을 보자 당장 아버지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좀 늙고 얼굴 군데군데에 피가 굳어 있기는 했지만 언제나 유성탄에게 웃음을 지어주고 술 한 잔 마시면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던 아버지가 분명했다.
“내 이놈들을!”
유성탄의 음성이 갈라지며 몸에서 살기가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 후 정청 안의 공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유성탄의 몸에서 폭풍 같은 기운이 일더니 마치 주위를 날려버릴 것 같은 엄청난 기운이 뻗어 나온 것이다.
유정삼의 처참한 모습을 본 유성탄이 자신도 모르게 분노에 젖어 선천강기를 밖으로 쏟아낸 것이다.
“으흡!”
연 소주는 견디지 못하고 몸을 일으키더니 뒤로 물러났다. 심지어는 무림 백대고수의 상위에 자리하고 있다는 팔지신타와 대내제일고수라는 황지용조차 뒷걸음을 치고 있었다.
“으아악……! 이놈들! 가만 안 둬!”
유성탄이 자신의 성질을 제어 못하고 커다랗게 소리치자 모두는 뒤로 물러나는 정도로는 견디지 못하고 급히 운기를 하여 유성탄의 기운에 대항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탁자도 엎어졌고 화병들조차 날아가 깨져버렸다. 그리고 어느새 그들의 입에서는 가느다란 핏줄기가 나타나고 있었다.
“유성탄! 그만해라!”
연 소주가 참다못해 커다랗게 외치자 유성탄은 그때서야 정신이 든 듯 주위를 쳐다보더니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뭐야? 같은 편끼리 싸운 거야?”
뜬금없는 소리에 연 소주가 유성탄을 쳐다보자 유성탄이 말을 이었다.
“왜 다 때려 부수고 난리냐?”
“황 장군님 의견은 어떠십니까?”
유성탄이 유정삼을 안고 사라지자 연 소주는 아직도 두근거리는 가슴을 간신히 가다듬으며 황지용에게 물었다.
“한마디로 놀랍다고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순간적으로 일어났던 그 거력을 어떤 상대에게 사용했다면 무림 십대고수 이외에는 받을 사람이 없을 것 같더군요.”
황지용의 말을 들은 팔지신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독백하듯이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야?”
“뭐가 말입니까?”
연 소주가 팔지신타의 말을 듣고 궁금한 듯이 물었다.
“그 힘이 내공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제가 수십 년을 강호행을 하면서 별의별 고수들을 다 상대해 봤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비무가 무림십대고수 중 가장 강하다고 하는 소림의 대하선사님과 싸운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당시 삼 초를 못 견디고 패배를 자인했는데 대하선사께서는 전혀 무공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합장만 하고 계셨는데 뿜어져 나오는 거력을 제가 감당을 못하고 공격도 못하고 졌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느낀 힘과 유 방주가 지금 내보인 힘과는 완연하게 그 종류가 다릅니다. 그런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습니다.”
연 소주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에 흥미로운 눈으로 물었다.
“신타께서는 백대고수의 상위에 있으신 분인데 삼 초 만에 졌다는 말입니까?”
“무림백대고수니 하는 것은 강호의 호사가들이 구별을 하기 좋으라고 그냥 붙인 것이지요. 그래서 남쪽에서는 백대고수에 들어가는 사람이 북쪽에서는 백대고수에 들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십대고수만은 이십 년째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십대고수와 백대고수와 차이가 많기 때문입니다. 백대고수의 최상위 다섯 명 정도만 빼면 나머지 백대고수들은 십대고수의 십 초를 받기도 힘들 것입니다.”
연 소주는 자신의 무공 정도면 누구와도 한번 붙어볼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팔지신타의 말을 듣자 자신의 생각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는 잠시 입을 닫았다.
“그런데 그렇게 무공이 높은 자가 어째 좀 모자란 것 같던데… 잘못하여 나쁜 길로 빠지거나 반역의 무리들과 어울리기라도 하면 큰일 아니겠습니까?”
황지용이 불안한 듯이 말했다. 대내제일고수라는 그 역시 유성탄의 몸에서 나온 거력은 처음 당해보는 것으로 얼마나 놀랐는지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있었다.
“제가 같이 다녀본 결과로는 나쁜 짓은 안 할 사람이었습니다. 입이 무척 걸고, 자신의 뜻대로 안되면 억지도 많이 쓰고, 하여간 상식적인 사람과는 다르기는 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잘 구별하더군요.”
연 소주는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사람,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모르는 것 같아요…….”
* * *
“아빠! 아아앙!”
유성화는 유성탄이 업고 온 유정삼을 보자 울음부터 터트렸다.
“엄마는 어떠시냐?”
유성탄이 고화월에게 물었다.
“아직 주무십니다. 너무 진이 빠지셔서 오늘 하루는 푹 주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그냥 주무시게 놔두고 전부 안으로 들어와라. 그리고 표도행 너는 빨리 가서 의원을 데려와라.”
유정삼을 아랫목에 눕힌 유성탄은 강태웅과 고화월을 보며 말했다.
“어차피 머리 쓰는 일은 너희들이 더 잘하니 어찌해야 할지 계획을 짜라.”
“성화 낭자 말대로라면 대형의 남동생도 행방불명이 된 것 같던데 그것은 어찌하시겠습니까?”
“내가 지금 그것 때문에 참고 있는 거 아니냐! 성질대로 하면 전부 다 때려 부셔야 할 것인데, 동생 놈이 잡혀 있다니 우선 그 자식부터 구해야 내가 마음대로 움직일 것 아니냐!”
유성탄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치자 모두 고개를 숙였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동생에 대한 걱정이 그들에게까지 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우선 표 당주와 전화생은 한주현 주위에 수상한 장원은 다 뒤져보세요. 그리고 조황 너는 한주현의 현령이란 놈을 감시해라. 아무리 봐도 그놈이 수상하다. 그리고 부방주님께서는 하후 낭자를 찾아가 이 근처에 수상한 놈들은 모두 거처를 알려달라고 하세요. 그리고 장 당주와 황 당주 그리고 마 당주는 방도들을 이끌고 어디서든 연락이 오면 곧장 출동할 준비를 하십시오.”
고화월이 마치 이미 준비한 듯이 쫘르륵 읊자 모두 눈이 동그래진다.
“고화월! 세상에 나만한 천재가 또 있는 줄은 몰랐다.”
유성탄이 헛소리를 하자 모두 눈을 살짝 돌린다. 동의할 수 없다는 무언의 반항이었다.
“우리는 뭐 하냐?”
지정우와 나야종이 자신들에게는 임무가 안 떨어지자 약간 불만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그 놈들이 어떤 자들인지 아직 아는 바가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방주님의 가족의 안전이니 가장 무공이 강한 너희는 이 집을 지켜라. 만약에 그들이 증거를 없앤답시고 이곳을 쳐들어오거나 한다면 문제가 커진다.”
“어떤 놈들이 감히 내가 있는데 여길 와! 오기만 하면 내 당장……!”
고화월의 말을 들은 유성탄이 흥분하여 소리치자 고화월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짐작이 맞는다면 지금 이공자를 잡아놓고 있는 놈들은 사망회 놈들일 가능성이 제일 큽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로서는 당할 수 없구요. 방주님은 만약 동생분이 있는 곳을 찾았다는 소식이 들어오면 그곳으로 당장 달려가셔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는 무공을 모르는 여인 둘밖에 없는 것으로 알 테니 그리 강한 자들이 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역시 우리 머리로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까지 생각한다. 저들을 끌어들인 것은 정말 잘한 것 같구나…….’
강태웅은 고화월의 말을 들으며 감탄을 하고 있었다. 낭인생활로 얻은 강호경험과 살수로서 얻은 강호경험은 그 질에서 차이가 컸다.
* * *
“물건을 옮겨야 하는데 왜 통행증이 안 오는 것이냐?”
독안귀 시우진은 약간은 초조한 얼굴로 소리쳤다.
“갈추산 현령이 통행증을 만들었는데 갑자기 북창부주가 모든 통행증을 무효화 시킨다며 부로 들어와 다시 통행증을 만들라고 했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럴 때를 위해서 그렇게 뇌물을 먹여놨는데 그 정도도 처리를 못한단 말이냐!”
“검찰관의 명이라고 합니다.”
“이거 잘못하다가 사망회만 덤터기 쓰는 거 아닌가 모르겠구나?”
사망회의 사망지존은 야심이 많았다. 명호가 말해주듯이 그 성정이 잔인하고 누구든 시비가 나면 살려준 적이 없었다. 한창 무림에서 이름을 날릴 때는 무림공적으로 몰릴 뻔한 적도 있었다.
결국 중원을 떠나 감숙지방으로 떠나면서 무림공적이 되는 것은 면했지만 중원의 정파들에 대한 원한은 대단했다. 그런 그가 수십 년에 걸쳐 이룩한 것이 사망회였다.
하지만 사망회의 조건은 금모전보다도 못했다. 다행히 청해에서 감숙으로 이어지는 북쪽은 새외하고도 이어져 있어 무림 정파가 없었기에 넓은 지역을 자신의 세력으로 삼기는 했지만 지역 자체가 너무 가난했던 것이다.
호시탐탐 중원에 들어설 기회를 엿보던 사망지존으로서는 언제나 아쉬운 것이 자금이었다. 그런데 사망회에 청담이라고 하는 낭인이 접근해서는 아주 군침이 도는 제안을 한 것이다.
아편의 생산지는 신강이었다. 양귀비의 특성상 춥고 척박한 곳에서는 키우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들은 신강에서 양귀비를 키우는데 아주 좋은 곳을 발견하고는 수십 년에 걸친 노력 끝에 양귀비 밭을 이루는데 성공을 한 것이다.
신강에서 중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세 곳이 있었다. 하나는 북쪽을 우회하여 감숙으로 직접 들어가는 방법, 그리고 청해를 가로질러 감숙이나 사천으로 들어가는 방법, 그리고 신강의 남부로 내려가 사천으로 직접 들어가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사천 쪽은 아예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구파 중 세 개 문파가 그곳에 있었고 사천의 터줏대감인 당가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버티고 있는 사천의 서쪽을 지나지 않고 중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감숙을 지나는 수밖에 없었고, 그곳에는 사망회가 있었던 것이다.
청담은 사망회를 속이는 방법 대신에 이익금을 나누는 방법을 택했다.
독안귀 시우진이 불안해하는 것은 단지 감숙지방의 운반만 맡은 사망회가 아예 아편의 제조까지 하는 걸로 오해를 받는 것이었다.
“안 되겠다. 이대로 연락도 안 되는 상황에서 계속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다. 인원은 충분하니 우리끼리 물건을 옮긴다.”
“감숙의 경계에 북로군의 숙영지가 있습니다. 통행증 없이 그들에게 걸리면 잘못하면 다 죽습니다.”
“걸리지 않게 해야지! 그리고 만약 걸리면 돈으로 무마해 본다.”
시우진은 모험을 택했다. 사망패존을 이겼다는 마질대형도 북창부에 들어왔다고 하고 검찰관이 이미 북창부를 장악한 것 같은 상황에서 유정삼이 모든 것을 뒤집어썼다고 안심하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 * *
“공자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연 소주는 일어나자마자 팔지신타의 말에 인상을 썼다. 여간해서는 전혀 당황하지 않는 팔지신타의 입에서 문제라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마약사범으로 잡혔던 유정삼이란 자가 유성탄의 아버지랍니다.”
“뭐라고요? 그럼 설마……?”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주위의 말을 들어보니 십팔 년 전에 유성탄을 잃어버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유성탄이 부모를 만난 것 같습니다.”
“그것 참 공교로운 우연이군요.”
“어찌하시겠습니까?”
“낭인칠웅에 대한 보고서 읽어보셨어요?”
“읽어봤습니다.”
“그자가 행한 일을 보면 나라로서는 큰 상을 내려도 부족할 정도입니다. 거기다 이미 사천에서도 마약범들을 잡아 관가로 넘겼고 마약도 모두 관에 인계했다고 했습니다. 그런 자가 단순무식한데다가 무공까지 높습니다.”
연 소주의 말을 들으며 팔지신타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내키지 않는 음성으로 말했다.
“다행히 유 방주의 가족이 누명을 쓴 것이라면 모르지만, 만약 모든 혐의가 진짜 사실이라면…….”
“사실이라면요?”
“누명을 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역시 신타만이 제 마음을 알아주시네요. 황 장군이나 용 백호장은 모르게 하세요. 그들은 너무 고지식해서 말이 안 통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팔지신타가 나가는 모습을 보며 연 소주가 중얼거렸다.
“유성탄… 친구를 위해 법을 한번 어겨주겠다. 하지만 너도 나를 한번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 * *
“수상한 자들이 움직였다는 곳을 찾았습니다.”
표도행이 급히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어디냐?”
“여기서 가깝습니다. 약초꾼이 우연히 산속을 상자를 메고 움직이는 수십 명의 사람을 보았답니다.”
“상자를 메고 움직였다면 그들이 맞을 것 같네요.”
고화월이 당장에 일어서며 말했다.
“어디냐? 당장 간다.”
“방도들을 데려가시지요?”
“필요 없어. 고화월 너는 강태웅에게 연락해서 갈추산인지 갈본지 하는 놈의 신병부터 확보하라고 해라.”
“현령은 아무나 건드릴 수 없습니다. 잘못하면 관의 추적을 받게 됩니다.”
“씨! 상관없다니까! 난 아버지를 저렇게 만든 놈을 용서할 수 없다. 니들 살수라며? 아무도 모르게 잡아와!”
“알겠습니다.”
* * *
“저기 보이는 장원입니다.”
“이놈들 오늘 다 죽었어!”
“대형, 그렇게 뛰어 들어가면 동생 분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유성탄이 당장 쳐들어가려고 하자 표도행이 막았다.
“표도행, 너는 지금 당장 네 목에 칼이 들어오는데 갇혀 있는 놈을 죽일 생각이 나겠냐, 안 나겠냐?”
“그거야……. 하지만 동생 분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느끼면 먼저 죽일 수도 있습니다.”
“절대로 그렇게 못해!”
말을 마친 유성탄이 장원을 향해 뛰어갔다. 그런 유성탄을 보며 표도행의 입이 벌어진다.
“세상에 초상비를……!”
유성탄은 너무 흥분했는지 자신의 선천진기를 자신도 모르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자 달리는 그의 몸이 뜬 것이다.
유성탄은 장원에 도착하자 그대로 돌진해 들어갔다. 담을 넘는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쾅!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나듯이 장원이 흔들리더니 돌로 만든 벽이 그대로 무너지며 유성탄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적이다!”
경계를 서던 자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고 곧 사방에서 무기를 든 자들이 뛰어나왔다. 그냥 흑도나 용역이 아닌 사망회의 부하들인지 갑작스런 상황에도 전혀 당황함이 없이 일사불란하게 유성탄을 맞아나갔다.
하지만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한 유성탄의 주먹에 완전히 허수아비같이 쓰러져갔다.
“저놈이!”
독안귀 시우진은 나오다 쓰러지는 수하들을 보더니 하나밖에 없는 눈알을 휘번득이더니 그대로 유성탄의 목을 향해 검을 찔러왔다.
그의 무공은 분명 견준구나 사천에서 싸웠던 망상객 부성광보다 한 수 이상 높았다. 하지만 유성탄을 상대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유성탄은 시우진의 검에서 나오는 검기를 보고는 그가 이곳의 책임자임을 확신해 시우진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하지만 시우진도 보통 고수가 아니었고, 주위의 무사들도 일류급들이 이십 명은 넘었다.
유성탄이 끝장을 볼 생각으로 시우진에게 달려들자 시우진의 검이 그대로 유성탄의 심장을 찔렀다. 그리고 주위를 포위하며 공격하던 수하들의 무기가 모두 유성탄의 몸에 떨어졌다.
“내가 죽은 줄 알았지?”
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시우진은 갑작스런 유성탄의 말에 놀라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그러나 시우진의 검을 가슴으로 잡고 두 팔로 시우진의 어깨를 잡아챈 유성탄은 머리로 그대로 시우진의 얼굴을 받아버렸다.
빠악!
중앙의 코가 그대로 함몰하면서 시우진은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이 자식들 너희들은 내가 용서 못한다.”
시우진을 박치기 한 방으로 완전히 잠재운 유성탄은 자신의 몸에 무기를 한 대씩 맞춘 자들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괴물이다! 무기가 안 통한다.”
한 놈이 놀라 소리쳤지만 유성탄의 새로운 공격은 너무 화려해서 아무도 피하지 못했다.
유성탄은 충동에서 동굴을 뛰어다니며 벽 타기도 많이 했었다. 벽 타기란 한쪽 벽을 발로 차 다른 쪽 벽으로 날아가고, 다시 또 벽을 발로 차고 다른 쪽으로 날아가는 것이었는데 심심했던 유성탄은 그 짓을 거의 매일 했었다.
그런데 그게 싸우는데 유용하게 쓰을 줄은 그도 생각하지 못했다. 유성탄은 한 놈을 발로 차고 그 반동을 이용해 다른 놈에게 날아가 또 발로 차고 하는 수법으로 순식간에 이십여 명을 쓰러뜨린 것이다.
“이 자식들, 내가 지금은 다리 하나 부수는 것으로 끝내지만 안으로 들어가서 내 아우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그때는 다리가 아니라 머리통을 부숴버릴 거다.”
유성탄은 쓰러진 사망회의 무사들의 발들을 부수며 소리쳤다. 그리고 사방에서는 고통의 신음이 울려 퍼졌다.
쾅!
사방의 문을 때려 부수던 유성탄은 뒤쪽 으슥한 곳에 지어진 창고를 발견하고는 역시 주먹으로 그대로 부수며 안으로 들어갔다. 축축한 습기가 가득 찬 그곳에는 유성우가 완전히 기진맥진한 채로 의자에 묶여 있었다.
“이름이 뭐냐?”
유성탄이 묻자 유성우가 간신히 눈을 뜨며 말했다.
“죽일 거면 빨리 죽이시오. 남아로 태어나 죽음을 두려워해서 그대들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난 전혀 없소!”
유성탄은 유성우의 말을 듣자 이상하게 가슴이 찡해왔다.
‘이놈이 맞는 것 같은데… 하필이면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놈이 또 동생인 거냐. 에이!”
“유성우 맞냐?”
다시 묻는 유성탄의 말에 유성우도 조금은 이상함을 느꼈는지 간신히 고개를 들어 유성탄의 모습을 잠시 훑어보더니 힘에 겨운 듯 다시 고개를 떨어뜨리며 말했다.
“내가 유성우요.”
“하하하하! 네가 유성우 맞구나! 하하하하!”
유성탄은 처음 본 동생 앞에서 멋있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더니 급히 유성우를 묶은 밧줄을 풀어주고는 등에 업었다.
“누구십니까?”
등에 업힌 유성우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 하하하! 니 형이다. 유성탄! 바로 니 형이야.”
유성우는 유성화와 달리 유성탄의 말을 듣자 진짜 형이라는 것을 느꼈다. 유성우는 가만히 유성탄의 목을 감으며 말했다.
“성탄 형님, 정말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유성우는 그 말을 끝으로 자신을 지탱해오던 정신력이 풀어졌는지 그때서야 정신을 놓고 만다. 그리고 유성탄도 유성우의 마지막 말을 들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나도 보고 싶었다. 정말 보고 싶었다.”
유성우나 유성화나 유성탄은 알지도 못했다. 그러나 유성화를 보자 유성탄은 너무 예쁘다고 느꼈고, 유성우의 말을 듣고는 너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진한 가족의 정이었다. 유성탄의 눈에서 뭔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친구 정말 놀랍다.”
밖으로 나온 유성탄은 연 소주와 팔지신타가 마당에 서 있는 모습을 보더니 소리쳤다.
“이놈아! 너 아까부터 와 있는 거 알았는데 도와줄 생각은 하지 않고 다 잡으니까 이제 꼽싸리 끼려고 들어. 너 내가 친구로 해주기는 했지만 이놈들 잡은 상금은 다 내 거다. 욕심내지 마라.”
“하하하하! 내 절대로 욕심내지 않으마. 하하하!”
연 소주는 생각지도 않은 유성탄의 말을 듣자 자신도 모르게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내가 사방을 부수다 보니까 저쪽 창고에 뭔 상자가 엄청 쌓여 있더라. 냄새가 그 뭐야? 아편이지 뭔지 그거 같으니까 손대지 마라.”
“아편은 뭐 하게?”
“그거 엄청 비싸다고 하던데 욕심내지 말라는 말이다.”
“그럼 너는 저 아편을 어쩔 거냐?”
“관에다 갖다 주고 포상금 받을 거다. 왜?”
“너 잘났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