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_펜타는 없다
FWX와 유니버스의 경기는 서머 시즌의 일흔 여덟번째 경기였다.
그리고 이 경기는 꽤 핑퐁이 심했기 때문에 누구도 이 경기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러니까 지금..”
“초반에는 유니버스가 상당히 유리했었죠.”
중반부터 방송을 보기 시작한 사람들 입장에서도.
킬 스코어가 절대적인 지표였지만 이 경기는 크게 차이 나지 않아 보이기에 더 그랬다.
하지만 결국 주도권을 잡은 쪽은 FWX.
“근데 개인의 슈퍼 플레이가 아니라 후턴 점유 방식으로 FWX가 스노우볼을 막고.”
“그 뒤에 전장 선택권을 가진 FWX가 요른이 텔로 개입하기 불편한 위치를 선택하고. 한타에서 유리한 교환, 결국 4명을 잡아먹고 2명을 내주는 교환을 하면서 경기가 크게 기울었습니다.”
- 이게 테라포밍인가 뭔가냐?
- ㄹㅇ..
-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씇)
그건 운영이 첫 번째 근거였고.
전투의 결과가 두 번째 근거였다.
“서로 순간 판단력이 대단했어요. 종이 한 장 차이였죠.”
“와.. 이건 진짜, 와..”
- 세자는 사이다가 택시 태워줬는데 ㅆ1바 우리 쓸쉬는 뭐함?
- 억까 자제좀ㅋㅋ 건신 마크 중이었어ㅋㅋ 반박 시 적 정글로 권건 만남
- ! 아군 정글 붐보이
- 항소 포기하겠습니다..
“사실 후반 지향형인 유니버스가 초반부터 일어났을 때. 사실상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팀은 깃털처럼 가벼웠다가도 봉돌처럼 무거워진다.
“근데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유니버스가 서둘렀어요. 이 이득을 계속 굴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면, 그러니까 원래 생각했던 대로 차분하게 이불 깔고 자다가 일어났다면 오히려 지금 주도권을 잡은 건 유니버스 쪽이었을 겁니다.”
“그런 말 하는 게 아무 의미가 없어요, 육손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빈 찬합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않고 그대로 뒀더라면. 후회는 소용없죠.”
“근데 무서운 건 이런 유니버스의 선택 자체가 일반적으로 당연한 것에 가깝다는 겁니다.”
“질려요. 진짜 질려.”
“어쩌다 이렇게 됐지?”
- 그러게요? 형들?
- 따따따딷따 피어레스
- 해설 “줘”
제시해야 할 해설을 FWX에게 뺏긴 해설진이 손을 저었다.
“그래서.”
“네, 그래서 다시 한번 상황 짚어보자면.”
“아펠이 둥지 대첩에서 끊기긴 했지만 유니버스의 수습도 좋았어요. FWX도 결국 불리했다가 이득을 거둔 거니까 거기서 바로 바론을 시도하거나 할 수는 없었거든요. 막을 만하다는 얘깁니다.”
“그렇지만 지금 차니의 제이슨과 세자의 바류스가 포킹을 앞세워 전선을 쭉 밀어붙였고.”
결국 FWX는 불리했던 상황을 뒤집고 상대를 진영 깊숙한 곳까지 밀어 넣었다.
“그 사이 요른의 지원을 받은 아펠이 이제는 신발조차 팔아 치운 1인 군단, 살아 움직이는 포탑이 되어 마지막 저지선을 지킵니다!”
- 그래 믿을 건 킬샷 너 하나뿐이다
- 신발 벗은 아펠 어떻게 막을 건데? 어떻게 막을 건데!!
- 어떻게 막긴?
쌍둥이 타워 앞.
남은 아이템 칸이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있다.
용 스택은 서로 멈췄고, 장로는 나오지 않았으며.
바론의 주인도 없다.
하지만 이제 이런 성적표는 의미가 없다.
밀고 당기던 두 팀이 어느 순간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돈다.
아주 잠깐 타워를 깎은 곽지운이 고개를 들었다.
넥서스 앞 돌 광장의 장식품을 따라 서로 30도씩 틀며 움직인다.
마지막 싸움.
- 띠링!
여느 때처럼 날카로운 핑과 함께 권건의 세주가 몸을 날린다.
“세주, 단단해요, 단단해요, 단단해요!”
그때 계산이 또렷해진다.
“어어어어어어어! 체력 안 닳아요!”
이건 마지막 싸움이 아니라, 마무리 싸움이었다.
“이다음은요, 이다음은요!”
산짐승을 탄 메인 오더 정글러가 철퇴를 휘두르며 상대를 몰아 각을 잡아준다.
덩치 큰 느린 짐승은 빛살처럼 빨리 움직이며 시선을 빼앗는다.
“라온!”
거의 겹쳐서 따라 들어간 미드가 세상을 얼린다.
돌바닥도 온통 얼어붙는다.
느려진다.
상대의 스펠을 빼고 전투를 유도한다.
하지만 진짜는 이쪽이다.
“사이다!”
‘상대’가 피할 위치에서 잠수했던 폭군이 뛰쳐나오고.
“차니!”
뻐어엉.
그 위에 거대한 머큐리 캐논이 크레이터를 만들어낸다.
“이러면, 반격, 반격, 이러면 반격 못 합니다!”
어디선가 들리는 뿔피리 소리.
그리고 전격이 흩어지는 찰나.
“유니버스! 유니버스 반격 어려워요오오오오호오!”
그리고 상대가 안간힘을 쓰며 마지막으로 뽑아낸 월광포화가 번쩍이려는 순간.
그 위에서는 마법공학도 이유찬이 역수로 내려찍는 해머의 전류 역장이.
“세에에에에에에자아아아아아아아!”
앞에서는 쭈욱 뻗어나가는 곽지운의 역병 화살이 집어삼켜 버린다.
“이거, 킬샷 아펠..”
뒤늦게 달려온 산양이 불태우며 지나간 자리에는.
“버티지이이이이이! 못합니다!”
명백하게 1순위로 노려졌던 유니버스의 피해자만 남아있다.
“타워, 타워, 타워!”
승부가 갈렸다.
“더블 킬!”
“넥서스, 넥서스, 넥서스!”
이미 결과는 명백하다.
“트리프으을..!”
“넥서스으으으으으!”
하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투 속에서.
“경기가아아아아아아아아아?!”
화면이 점점 느려진다.
“어어어? 이대로!”
느려지고 느려진 끝에.
“이렇게나 오랫동안, 이렇게나 오랫동안 핑퐁해왔던 두 팀의 경기가아아아악!”
해설자들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흐읍..!”
“대구와 대전의 싸움, 유니버스와 FWX의 싸움! 그 경기의 승리는..!”
그들의 외침 소리와 함께.
“결구우우우우우우우욱!”
“대전 FWX가! 가져갑니다아아아아아아아악!”
끝내 넥서스가 터져나간다.
“GG!”
#
“결국 패인은 아펠의 딜에 올인한 조합이었기 때문에..”
분석 데스크의 대화가 흘러나온다.
“그다음에는 완전히 2세트에서 전략을 바꿔서 탑에 집중한 유니버스였는데요, 하지만 차니 선수가 요즘 폼이 정말 많이 올라갔어요. 최근에 무거운 짐이라도 내려놓은 것처럼..”
오늘 경기에 대한 평가다.
“멋진 경기였습니다. 솔직히 오늘 경기는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어요.”
“저도요.”
“근데요, 다시 보고 싶은 게 있는데. 1세트 마지막 시점에 트리플 킬까지 먹은 세자 선수의 보이스거든요?”
분석가 한명이 장난스럽게 웃는다.
“아하, 네. 저도요.”
아나운서가 곱게 웃으며 호응한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영상 다시 보실까요?”
자료 영상이 나온다.
넥서스 앞에서 마지막 한타.
“야!”
선수들의 보이스가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우리가 먼저 연 마지막 싸움에서 곽지운이 상대 아펠을 잡은 시점이다.
“이유찬! 너 킬뺏?”
“아닌데아닌데? 딜한 건데?”
“오함마로 장난치는 거 모를 줄 알어?”
정신없는 마지막 싸움 중 입이 터진 김예성이 우다다 잔소리를 쏘아붙인다.
우리를 위기로 몰아넣었던 유니버스의 구심점이자 최종 병기, 아펠이 궁지에 몰려 쓰러지는 순간 이미 승패는 정해진 거나 다를 바 없다.
“이게 어떻게 온 찬스인데! 지운이 형이 평생 가도 한번 먹을까 말까 한..”
그 사이에 곽지운이 더블 킬.
그리고 트리플 킬.
“지운형지금쟤네가형은근히멕이는중인것같은데이걸가만히보기만할거야당장쏴죽여야지!”
흥분했을 때만 나오는 유상준의 말투도 확실히 방송을 탔다.
이러니까 방구석 힙쟁이라는 별명이 나오지.
“됐고.”
하지만 곽지운은 남은 적을 노리는 게 아니라.
“그냥 끝내!”
시원하게 넥서스를 갈긴다.
“어?”
“숟가락에게 펜타는 없다!”
그건 지극히 주관적인 비난을 뱉으면서였다.
“어?”
“어?”
“어?”
모두가 어리둥절했고.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었을까요?”
“글쎄요.. 오늘 경기에서 세자 선수가 스스로를 숟가락이라고 부를만한 부분은 없었던..”
분석 데스크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영상을 껐다.
그리고 헤드폰을 벗는다.
“돈가스 먹을 사람.”
곽지운이 돌아다니고 있다.
“형.”
나는 곽지운을 부른다.
“어?! 나 오늘 일찍 안 잘 거야! 늦게 잘 거야. 진짜다. 자기 직전에 먹는 거 아니야!”
손 들었던 최은호가 스르르 외면하는 게 눈에 들어온다.
“성장기라 어쩔 수 없어!”
솔직히 성장기는 예전에 끝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런 잔인한 얘길 하려는 건 아니고.
“그거 말고.”
“뭐?”
“오늘 경기 펜타 먹을 만 하지 않았나?”
“뭐 말하는 거야?”
“1세트.”
곽지운이 고개를 기울인다.
“뭐?”
“넥서스 앞에서.”
“아~ 그거.”
LOS를 하는 사람 중에 넥서스 앞에서 흥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건 적 넥서스건 우리 넥서스건 마찬가지다.
적 넥서스를 터뜨리기 일보 직전은 더 그렇다.
끝내주는 고양감.
사실 그때의 그 기분 때문에 이 망할 게임을 오래도록 못 끊는 거니까.
맞지?
“넥서스 깨면 더 빨리 끝나니까?”
“어차피 끝날 게임이었는데.”
그래서 나는 좀 이해가 안 된다.
중간 교전이나 주요 한타에서 펜타를 먹는 게 더 멋진 거긴 한데.
그렇다고 마무리 직전에 펜타를 먹는 게 뭐 D급 펜타고 그런 기준은 없다.
그럼 펜타 딱 먹고 그다음에 적 넥서스 딱 부수면?
와, 이게 진짜 포상이지.
“펜타 먹고 싶다면서?”
근데 왜 줘도 먹질 못하니.
“어, 맞아.”
“근데?”
“건이.. 이제 동생 코스프레도 포기한 부분? 그래도 존댓말 써줘서 고마웠는데..”
곽지운은 벌벌 떠는 척한다.
요즘 팀원들은 아무래도 내가 따박따박 존댓말에 형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실제로 형 취급은 안 해주고 있다는 걸 눈치챈 것 같다.
아쉬운 일이다.
“그냥, 뭐. 내가 좋아하는 원딜도 그랬고..”
곽지운은 빈 의자에 앉아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왱알거린다.
“더 잘해서 먹으면 좋지. 내가 하드 캐리해서 먹는 거.”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
자기가 자기보고 숟가락 어쩌고 했던 걸 내가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충분히 할 일 다 하셨는데?”
“에이, 근데 펜타는 진짜 개멋있게 먹어야 되는 거야. 막 어? 역전의 월광포화 불꽃처럼.”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깍지야. 건이 눈 뒤집어진다. 작작해라.”
슬쩍 폰에서 눈을 뗀 곽지운이 과하게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큰 소리로 말한다.
“헤이, 건 다운! 나 진짜 손 미끄러진 거야!”
“그럼 그렇지. 건아, 원딜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 마라. 줘도 못 먹는 걸 어쩌겠어?”
최은호가 코웃음 치는 사이.
우리 원딜은 재빨리 다가와 나를 토닥인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춘다.
“펜타를 먹고 싶다는 건 기록만 남기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딱 나한테만 들리게.
“내가 직접 만들어서 먹고 싶다는 거야. 그걸 위해서 0.1퍼센트의 역전 확률을 만들긴 싫어.”
음.
뭐, 내가 있으니까 절대 질 일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음.
그래.
세상일은 모르는 거긴 하지.
항상 100퍼센트는 없으니까.
숟가락이라는 표현은 이 선수에겐 지금보다 더 많이 잘하고 싶다는 표현이었던 모양이다.
개인 기록보다는 팀의 승리가, 그리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우선인 그런.
뭐 그런 거.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너도 돈가스 드쉴?”
어쨌든.
이렇게 또 나를 반성하게 만드네.
“그럴까요.”
“그럴 줄 알았다. 어?”
“먹자구요, 형.”
“어?”
뭐.
기회는 또 오겠지.
“제가 살 테니까 앉아 계세요.”
연습실 일동이 모두 우르르 일어난다.
“뭐어어어어어? 거니가 쏜다고? 김치ㅡ 우도오오옹 선픽 박습니다악! 김미드 빨리 골라!”
“그럼.. 나는 로제 떡볶이.”
“형은 생선까스 좋아한다! 기억해둬라!”
“생선.까스? 절대로. 비정상적인. 선택.”
“그럼 넌 뭐 먹을 건데?”
“냉.모밀.”
“너나 나나..”
“니들이 뭔데 끼어드냐? 근데 나는 그냥 돈가스로 먹을게.”
그냥 지금도 나쁘지 않다.
“혹시 나도 시켜도?”
“감독님은 좀..”
“감독님도 드실래요? 먹은 사람 내일 운동 필참입니다.”
“급한 일이 생겨서 야식은 너희들끼리 먹는 게 좋겠다.”
충분히, 나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