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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296화 (297/326)

296_배틀 아레나

용은 둘, 하나.

우리가 하나인 쪽이다.

서로 타이밍을 주지 않아 시간에 비해 스택이 늦었고.

결국 두 번째 전령은 목숨을 부지한 채 퇴근했다.

나는 용 둥지에 있다.

빡빡하게 돌아가는 운영을 상대가 눈치채는 건 쉬운 일이다.

왜냐고?

보통 자기 의사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상대가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리고 이번 경우에는 그게 맞다.

감 좋네, 유니버스.

“맞네. 있다.”

“누구 확인됐지, 지금?”

“언덕. 위. 아펠. 쓰리쉬.”

“측면 르블란 견제 중. 내가 마크함!”

진심 펀치가 아닌 약간의 견제.

혼란을 주고 싶어 하는 움직임.

“빨려 들어가지 마.”

속지 않는다.

“요른은 텔 가능성.”

“궁 얼마나 남았어?”

“얼마 안 남았을 거야. 아마 그 타이밍 노리고 들어올 것 같은데.”

“40.초. 미만. 아직. 텔. 안 꽂은 듯. 마법. 룬.”

“그 전에 대격변 무조건 들어와. 얜 쿨감 더 있다. 조심.”

“선 진입하고 시간 끌 수도 있겠다.”

“르블란 조심.”

이유찬의 물물 교환이 꽤 성공적으로 진행된 지금.

상대는 우리를 억제할 힘이 없다.

다만 서로 어렴풋한 시야를 통해 엿보면서.

어떤 타이밍에 들어올지 서로 각을 재고 있을 뿐이다.

“싸움은?”

“템은 내가 막코 불리한데. 끝까지 못 올렸어.”

그렇다고 우리가 마냥 유리한 건 아니다.

“애매하네.”

한타에서도 그렇다.

상대의 숙련도가 뭐 어쨌건 요른을 들고 있는 이상 한타는 한 수 접어줘야 한다.

이건 곧 끝나버릴 평화다.

“먹자마자 싸움 볼까?”

“자르반. 초. 시계.”

곳곳에서 날이 선 정보가 쏟아져 들어온다.

모두 다 분위기를 아는 거다.

“마나 관리하는 거 보니까 한 판 세게 붙자는 얘긴데.”

“맞아.”

“어.”

다 함께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 중요하다.

“지금.. 용 먹었다.”

“나이스.”

“나이스.”

용이 둘, 둘.

별일 없이 유기 용 입양에 성공했다.

스택으로 휘둘리는 일은 최대한 억제한 셈.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칼 위에 서 있다.

일촉즉발.

“전선 유지.”

빈틈을 드러내는 순간 터진다.

목소리는 저절로 낮아진다.

“원딜. 내. 뒤.”

보이스는 속삭이는 소리로 가득하다.

“오케이.”

싸우고 싶겠지.

우리 바텀이 먼저 터지기 시작했어도 그 뒤 상체 3인방이 스노우볼을 묶었다.

하지만 잘 큰 풀스펠 아펠이 상점 주인한테 장물을 팔아치운 게 아니라면 그 힘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

그럼 그걸 보여주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 할 거다.

그나마 바로 들어오지 않는 건.

그만큼 유니버스가 우리를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조심스러운 태도와 망설임 덕분이다.

똑같은 아이템이라도 상대의 아이디가 뭐냐에 따라서 마음가짐이 달라지잖아?

골드를 상대할 때는 바로 들어갈 게 챌린저 상대로는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이게 쌓아 올린 시간의 힘.

하지만 아주 잠깐이다.

“일동.”

그럼 이건 어떨까?

그 틈에 적이 바랐던 아레나 무대를 전혀 다른 곳으로 옮겨 붙이는 거다.

빠르게 맵을 스캔한다.

“바론 쪽.”

방향을 지시한다.

“응.”

반론은 없다.

바론에 대한 반론이 존재하지 않는다니?

생활 밀착형 시인이 된 기분이다.

“어어어어어? FWX?”

잡소리는 그만하도록 하자.

“지금 미드 바로 지나가요?”

“양 팀 팽팽하게 서로 얼굴 살짝씩 봐가면서! 전선 위로 끌어 올립니다!”

“유니버스가 계속 쫓고 있거든요?”

“어디로 가요? 어디로 가나요? 바론? 바론 가는 거예요?”

“어디까지 가나요! 어디까지요!”

밖에서는 물음표가 따라붙을 것이다.

전투 선택권은 적에게 있을지언정 전장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민족 대이동을 일으킨다.

타이밍만 기다리던 요른이 당황했을 표정이 선하다.

거리감이 이상하지?

저쪽엔 와드 공항이 없어서 어떡해?

텔 비행기 버리고 자차 끌고 와야겠네?

“지나갑니다! 진짜 지나가요! 이러면 다시 좁은 길목 들어갑니다!”

근데 민족 대이동에는 항상 따라오는 게 있다.

병목 현상으로 인한 통행 지연.

“곧.. 이거, 곧, 곧!”

바깥의 소음은 커지고.

“준비.”

우리들의 대화 소리는 더욱 작아진다.

“가자.”

이제는 완전히 고요해지고.

- 띠링!

핑 소리만 남았다.

#

평화주의자 곽지운은 어두운 분위기에 예민한 선수다.

이유찬이 본능적으로 분위기를 느낀다면.

김예성은 표정이나 감정으로, 곽지운은 단어와 단어 사이의 호흡이나 상대의 몸짓에서 느낀다.

사실 큰 상관이 있는 분류는 아니다.

사람마다 기분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니까.

하지만 유독 남들과 다른 경우에는 눈치가 없다고 하겠지.

그렇지만 이제 FWX는 같은 기분을 공유한다.

큰 거 온다.

“조심.”

권건만 말한다.

누구한테 말하는 건지 모두가 안다.

지속딜을 담당할 사람은 곽지운 밖에 없다.

“요른 궁극기 11시! 11시! 째깍째깍!”

여기는 강의 상류.

탑에서부터 쏟아지는 물길이 시작되는 곳.

잔잔하게 이어지는 바텀과는 달리 격류가 휘도는 바론 둥지 아래.

바텀에 전입 신고를 마친 원딜에게는 상대적으로 낯선 장소.

FWX의 원딜은 오른쪽으로 몸을 틀어 르블란의 포킹을 피한다.

사슬이 뺨을 스친다.

아슬아슬했다.

진영이 살짝 흐트러진다.

“들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그는 줄타기 플레이를 선호하는 만큼.

상대의 몸짓에서 오는 의사 표현을 읽는 데에 익숙하다.

“...”

하지만 그걸 찰나의 시간 사이에 입 밖으로 내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스킬은 말 한마디보다 빠르게 꽂히니까.

그냥 팀원들이 보고 있을거라고, 알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갑니다아아아아아아아악!”

자르반이 발을 구르는 순간.

“대격벼어어어어언!”

기어코 땅이 솟아오르며 콜로세움이 열린다.

엉켜있었던 권건의 세주와 유상준의 탐치를 향해서다.

“이거어어!”

진영은 또다시 양쪽으로 갈라진다.

대격변을 도움닫기로 이용한 자르반의 시선을 느낀다.

“길이!”

오른손을 움직인다.

왼손에 힘을 준다.

코앞에 쏜살같은 깃창이 꽂힌다.

“열렸ㅡ!”

집중한다.

왼손 검지에 힘을 준다.

정확하게 두 번 두드린다.

그리고 동시에 상대 정글은 다시 한번 깃창과 점멸로 깊이 파고든다.

“피ㅡ!”

팀 보이스는 엄숙한 고요 속에 있다.

그 침묵 속에서.

FWX의 주장은 끝까지 당겼던 화살을 놓는다.

“피하면서! 부우우우우패의 사스으으으으으으으으을!”

“궁 점멸 적중!”

적 원딜과 눈이 마주친다.

칼정화.

상대가 총구를 들이대며 씩 웃는다.

“아..”

까비.

바로 쓰네.

곽지운은 고개를 갸웃한다.

“위아래 갈렸어요!”

“쓰리쉬가 권건이 지나가지 못하게 집중 마크!”

“벽, 벽, 진영!”

찰나.

이 그림을 기다렸던 아펠이 총을 바꿔 들면서 한 모션으로 미끄러지며 달빛을 쏘아 내린다.

아, 이거?

잘 알지.

월광포화.

잘 큰 상대와 맞붙었을 때 이길 수 있을까?

이것도 잘 안다.

어림도 없음.

그리고 그 달빛이 녹아내리기 전.

곽지운은 입으로 작게 말한다.

피ㅡ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이다! 이거 삼키고!”

유상준의 탐진치가 곽지운의 바류스를 삼킨다.

상대 르블란의 발끝이 스친 건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그리고 호시탐탐 카운터를 칠 기회만 노리던 김예성의 리산이 르블란의 발목을 잡은 것도 역시 그 순간이었다.

“뻐버버버버버버어어엉!”

신나게 바깥에서 불꽃놀이가 터지고.

“얼어붙어라아악!”

그 위로 거대한 얼음 동상이 세워진다.

어?

이거 완전 얼불 아니냐?

“앞!”

곽지운이 드디어 말을 꺼냈다.

원딜을 실은 바텀 열차는 적진 깊숙한 심연으로 잠수하고.

“어.”

유상준이 대답하는 순간 나왔다.

“얼, 불이 있으면.”

곽지운은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밖으로 나왔다.

“춤도 있어야지.”

그가 쏘아낸 화살이 비처럼 쏟아진다.

원딜은 그 위에서 춤을 춘다.

평, 평, 평평평.

이 춤에 탑이 화답하고.

어그로를 뺀 미드가 대지를 다시 얼린다.

“지속 딜! 지속 딜!”

“오히려 FWX가 유니버스를 감싼 상황! 서로 적진 깊숙한 방향으로!”

“요른 궁극기, 5초, 4초..!”

누가 말하지 않아도 전황을 뒤바꿀 이를 상대로 서포터가 시간을 번다.

“혀 채찍!”

“이거 궁 거의 다 왔는데!”

째깍째깍.

“FWX, 딜 집중! 르블란 죽으면서!”

“자르반이 라온 처치하고!”

죽고 죽이는 싸움.

“엉켜요, 다시 엉켜요!”

정신없이 숨가쁜 전장.

“리산의 얼음 노예! 시체! 시체!”

그리고 기어코 뿔피리 소리가 들려온다.

“뿌우우우우우우우우! 대장장이 신의 부름!”

“아펠, 바류스! 아직 살아있어요!”

언덕 위에서 적을 마주한 궁수는 활을 든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홀로 산을 오른 사람처럼 차가운 숨을 뱉는다.

뿔피리를 향해 달리는 산양을 외면한 채, 기어코 정면의 상대를 향해 화살을 긋고야 만다.

“바류스!”

그 화살은 분명히 상대의 심장을 관통했지만.

“딜 부족합니다!”

오히려 적은 다시 한번 화염 방사기를 그어대며 얼어붙은 땅을 녹인다.

멀리 튀는 불똥은 곽지운에게까지 닿는다.

“화염포, 이거, 묶이면!”

그리고 드디어.

아펠이 새로운 총을 끌러 메는 무방비의 순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등의 털이 곤두설 정도로 거대한 함성과 함께.

“쓰리쉬 완전히 제끼고, 궈어어어어어어어어언거어어어어어어어언!”

“윈터 이즈 커밍!”

왼손을 바짝 올린 그 자세 그대로.

“빙하아아아아 감옥!”

상대가 얼어붙는다.

원딜은 웃는다.

너 정화 없잖아.

“절경이다.”

이 말을 남긴 FWX 원딜은 산양의 불꽃에 휩싸이며 하늘로 높이 뜬다.

“써머의 요른, 스트으으라이크!”

부유감.

이 세상의 모든 속박과 굴레를 벗어던진 곽지운은 찰나의 관광을 즐긴다.

권건이 몰고 들어온 빙하는 산지 깊은 곳까지 침식하고 있었다.

타이밍 탓일까.

몸에 불꽃을 휘감고 달려오는 산양에 빙하가 산산조각으로 깨져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 협곡 빙하 피오르였냐?

그 순간 짓쳐들어오는 세주의 철퇴가.

탑이 쏘아 올린 작은 머큐리 캐논이.

“이런 집중 공격은!”

동시에, 뻐어엉.

“버티지이이이 못합니다! 아아아페에에에에에엘! 킬샤아아앗!”

상대 원딜을 집어삼킨다.

“제압고오오오오오올!”

오, 자연재해.

“유니버스 원딜! 따아아운! 따아아아아운!”

R.I.P.

기도가 너에게 닿기를.

유쾌한 궁수는 하늘에서 자세를 고친다.

“미드 교환, 정글 사망!”

“그리고 원딜 방금 사망!”

“이러면 4 대 2! 살아남은 게 탑이랑 서포터!”

단단하게 굳은 땅으로 착지한다.

“지속딜 부족한 건 FWX 뿐만이 아니었어요!”

고개를 들고 겨눈다.

“끝까지 살아남은 원딜이, 아니 끝까지 원딜을 살리는 쪽이!”

“지속딜 기회를 얻는다!”

화살은 이제.

“유니버어어어어어스! 비이이이이이사아아아아아앙!”

절대 뚫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거산의 화염.

요른을 정조준한다.

“현실 춤은?”

화살이.

“너네나 춰.”

산을 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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