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From the New World
이 드넓은 넓은 협곡에는.
“FWX, 마무리 지으러 달려갑니다!”
“에이스, 에이스, 에이스를! 에이스르으으으으을! 띄웠잖아요오오오옥!”
- 트릭스터 꾸웨엑? 꾸웨엑 후회해?
- 도르마무! 도르마무! 거래를 하러 왔다!
- 도른 나무! 도른 나무 마오 권건!
- 아아 인천의 공기가 좋구나
- 헤에엥 형들 내 팬티 물어내ㅠ
- 권건 그는 신인가? 그는 신인가?
“진짜 결정적인 순간 에이스를 띄워내면서, 이제 완전히, 완전히 FWX가..!”
“스프링의 왕좌를 차지하기 일보 직전!”
- 그를 대전의 아들로! 그를 대전의 아들로! 그를 대전의 아들로!
- 우리 진짜 대전 가는 거야?
- 야 미리 기차표 예매해라
- 대전 어떻게 가요?? KTX에요 SRT에요???
- 나 지금부터 서머 결승 예매 페이지 열어둔다
- 주접들 좀 작작 떠세요 FWX C급이니까..
- C급? 문화재 제정 시급? ㅋㅋㄹㅃㅃ
- 올ㅋ
“아까 전 한타는 더 이상 리플레이가 나오지는 않을 것 같죠..!”
“왜냐하면, 곧..!”
“경기가..!”
“끝날테니까아아아아아아아악!”
- 아.. ㅈ된다
- 이걸 이렇게 지네..
- 솔직히 인정해..
여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 어어.”
“어어어어어.”
우리 말고는.
“어어어어어. 어어어?”
“어버버. 어버.”
“말로 해라. 말로.”
그리고 언제나 이런 순간에는.
“어버버? 아무무?”
모든 사람이 바보가 된다.
체력전의 다전제?
내가 꾸준히 시켜온 운동이 성과를 거둔 모양이다.
“어머머? 작년에 요른이었던 나 이세카이에서 요내 캐리?”
그리고 예전에 이유찬이 말했던 ‘나를 이길 걸 찾았다’는 말은.
바보 같지만 운동이었다.
“같은 요씨긴 하네..”
“요요현상이 이걸 말하는 거임? 나 그럼 요요? 할래요?”
다른 게임 팀 사람, 특히 이유찬이 지극한 팬심을 가지고 있는 격투 게임의 레전드 모 선배님과 오랫동안 하체를 단련했다고 한다.
미안하지만 날 이기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
“...”
어쨌든 탑의 장 트러블 이슈가 있긴 했지만 체력 이슈는 없었다.
내장은 단련이 어려웠던 모양.
“다들 정신 잡아.”
“건아..”
“예성. 잘했어.”
“나도 캐리한 거 맞지? 킹갓 적군 와해 봤지? 내가 이긴 거 맞지? 내가 더 잘하지? 나도 이제 세체미 타이틀 받을 수 있는 건가요? 제발 주세요 제발. 이제 콩 까기 싫어요.. 이제 갈레오로 버스 탔다는 말 듣기 싫어요..”
“...”
이성적인 미드도 정신을 놨다.
생각해보면 얘도 결승 경험은 있지만 만년 2등이었다.
“제발요.. 제발요.. 제발..”
2등이 1등이 되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세체미로 되겠어? 역체미 가야지.”
“흐으어업.. 역체미? 그 전설 아래에 나도 이름을? 내가? 나 따위가? 감히?”
“아, 타워다.”
곽지운이 떨리는 목소리로 사실을 적시한다.
이미 고속도로가 뚫렸던 탑.
그리고 빅 웨이브가 밀려오던 미드.
타워는 산산이 부서지고, 이제 챔피언 중심 시야로도 쌍둥이 타워가 들어온다.
“오늘. 내가.”
유상준이 드물게 큰 소리를 냈다.
“여기에올수있었던건어쩌면최은호라는사람덕분일지도모른다는생각을했다.”
너무 빨리 말해서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얘 흥분하면 이런 스타일이었구나.
“근데나도진짜말이안된다매멘해버림도대체뭐지내그랩이빗나간적이있었나내몸에서나가홍밍기!”
굳이 들을 필요는 없는 말인 것 같다.
어쩌면 이번 결승.
그나마 꾸준히 재활하고 있었던 최은호 정도가 문제가 됐을 수 있겠지만, 뭐.
명상을 많이 하더니 진짜 예언자가 되어버린 걸까.
결국 최은호가 선택한 유상준이 제 몫을 해내고야 말았다.
“설마나는지구최강의서포터다음시즌에는반드시이렐서폿을리그에서..”
유상준의 플레이에는 다소 실험적인 부분이 있어서 일부 팬들의 빈축을 사곤 했거든.
최은호라는 든든한 인재가 있는데 굳이 왜 리스크를 추가했냐는 식이다.
사실 그것 말고는 딱히 우리 팀을 깎아내릴 것도 없긴 했고.
“침착해.”
근데 아마 그것도 오늘로 끝.
“아직 게임 안 끝났다.”
슬슬 팀원들이 언어를 찾아가고 있다.
“위쪽 타워부터. 여기.”
집중할 대상을 잃고 나면 마치 둑이 터져나간 것처럼 감정이 쏟아진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중요한 건 다시 집중력을 찾는 일이다.
“억제기 신경 쓸 필요 없어. 타워만 봐.”
집중.
“건아, 너 핑은 아래쪽 타워 찍었는데.”
음.
“위쪽.”
다시 찍는다.
박 감독님은 결승이 전역 날 같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글쎄, 나도 올해 월챔에서 이 순간이 온다면 그런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번에야말로 나도 월챔 전역을.
“이제..”
꿈꿔 볼 수, 있을까.
“아래쪽 타워.”
쌍둥이 타워가 무너진다.
“아직, 아직, 아직 시간 남았습니다! 아직! 아직 시간 남았습니다!”
“트릭스터, 트릭스터 부활 시간 되나요? 부활 시간 되나요!”
- 진짜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할 게 “원코”!!!!!!
- 말넘심;
- 안돼안돼안돼안돼트릭스터릭스터!
이제 아무리 계산을 못 하는 사람이라도 알 수 있다.
“트릭스터가 부활할 수, 부활 시간이, 부활 시간이이이이이이!”
이 경기는.
우리가 이겼다.
“시간이, 시간이, 기적은.. 기적은..!”
“일어나지이이이이이이! 않습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제 정말로, 결국엔 그날이 오고 맙니다!”
“FWX가, FWX가 이 결승 무대에서..!”
정해진 미래 아래 점점 커지는 함성의 진동이 느껴진다.
손끝에 짜릿짜릿한 감각이 맴돈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것 같다.
“은호야, 야, 최은호! 듣고 있어? 듣고 있냐고!”
마지막 타워를 무너뜨린 곽지운이 외치기 시작한다.
“최은호! 너 듣고 있지!”
코칭 박스 안에서 소름이 돋고 있을 또 하나의 파트너를 향해서 처절하게 외친다.
“나는로열로더가되었어드디어해냈어!”
적의 심장부.
그 앞의 모든 것들을 깨부수기 전까지는.
공격 대상으로 선택할 수조차 없었던 넥서스가 드러난다.
“감독님!”
평소와 똑같이 잡은 마우스.
평소와 똑같이 손이 올려져 있는 키보드.
“코치님들!”
거기서 전류라도 흐르는 것처럼 온몸이 떨려오기 시작한다.
“우리가!”
이상한 감각을 떨쳐내기 위해서 외친다.
“우리가아아아아!”
“야, 우리가, 우리가!”
한명 한명.
더 크게 외치기 시작한다.
“우리! 우리가! FWX가!”
이제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다.
다시 언어를 잃어버렸다.
“그래, 우리가.”
나도 거든다.
“건이랑, 씨이발 내가 건이랑! 건이가! 건이랑!”
“내가, 여기를, 여기를 오려고! 매일매일 깨는 넥서스를 여기서도 깨려고!”
“똑같은 넥서슨데! 이, 씨, 이, 개같은.. 개.. 감사..”
“내가, 나가, 우리가, 위.. 우리가..!”
그리고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이겼어! 이겼다고! 우리가 이긴 거야!”
목에 칼이 박힌 것 같은 울컥함이 섞이고.
“이제서야.. 이제서야, 우리가 이렇게 먼 길을 돌아서!”
현실의 선수들은 손을 벌벌 떨면서.
끝까지 넥서스를 때린다.
챔피언만큼이나 넥서스는 공정하다.
결승이라고 더 단단하지도, 더 부드럽지도 않다는 이야기다.
“ㅡㅡㅡㅡㅡㅡ! ㅡㅡㅡ!”
남은 존야를 뽐낼 새도 없이, 그렇게.
주장의 마지막 4타가 장전.
“ㅡㅡㅡㅡㅡㅡ!”
발사.
“ㅡㅡㅡㅡ!”
착탄, 직전.
그리고 거대한 넥서스 폭발, 직전.
“으..”
주변 공기가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멈추는가 싶더니.
“아..”
“흐하억..”
총알이 날아가는 것까지 보일 정도로 느려졌던 시간이.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흘러가버린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올 시즌 가장 거대한 폭발음이 소리 없이 울린다.
“아아, 아악악, 악악, 악악악악!”
“악! 악!”
“우리가, 얘들아!”
정규 시즌, 이 팀으로 트릭스터를 처음 이겼던 그날.
끝없이 느려진 시간 속에 터져나가던 적 넥서스가 선명하다.
힘들게 이겨낸 승리에 저도 모르게 FWX 우승이라고 외쳤던 누군가가 떠오른다.
“진짜로..!”
스프링 결승전 3세트.
“이번에는.. 진짜로!”
화면 가운데에 아로새겨진 두 글자.
“FWX가!”
승리, 라고 적고.
“우승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우승, 우승, 우스으으으응!”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건.
우승이라고 읽는다.
#
축포가 경기장 안에서 터진다.
원형의 무대 주변으로 FWX, 파이어웍스의 근본과 다름없는 형형색색의 불꽃들이 꼬리를 치며 퍼져나간다.
무대 주변에서 터지는 만큼 자그마한 불꽃이었지만.
고품질의 화약은 오래도록 그 자리에서 고요한 소음을 내며 치솟고 있었다.
수십 대의 카메라가 조용히 우승팀을 주목한다.
넥서스 폭발 직후 헤드폰을 벗어던진 FWX 선수들이 뛰쳐나왔다.
이번 시즌을 전승으로 지배했던 팀의 선수들이라기에는 엉성하고 어색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FWX는 우승이 처음이었으니까.
이 멤버만이 아니라 FWX LOS 게임 팀 역사상 첫 우승이다.
이토록 오랜 시간을 지나 처음이었다.
그들은 이런 첫 만남이 어색했다.
폭죽 소리로.
관객들의 함성으로.
해설진이 질러대는 고함으로.
경기장은 떠나갈 듯 시끄러웠지만 동시에 고요했다.
선수들이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머리끝에서 폭발해버린 엔돌핀은 귀를 멀게 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소리 없는 아우성.
무성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트릭스터는 이전의 FWX와 같은 모습으로 퇴장했다.
반대로 팀 FWX의 일원들이 입장했다.
박진현 감독도, 최수철 코치와 김한빛 코치, 문백산 코치도 뛰어나온다.
첫 번째 세트와 두 번째 세트를 함께해줬던 최은호도 구르듯이 뛰어나온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우승컵을 향해 다 함께 달렸다.
평소보다 거대한 무대 위, 그들의 움직임은 꼭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한 숨.
한 걸음.
빠르지만 느리게.
한참을 달렸다.
길고 길었던 악몽이 드디어 끝이 났다.
FWX라는 이름 아래 항상 따라오던 패배의 꼬리표가 정말로 떨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래에 있던 팀이 등반을 하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곳.
스포츠는 그런 세계였다.
모두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있었다.
불과 작년 초의 FWX는 패배에 익숙해져 패해도 울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울고 있었다.
꼴사나운 모습이었지만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객석에서도 소리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이들도.
비록 이 무대에 오를 수는 없었지만 끝내 함께하게 된 이도.
바늘구멍같이 좁은 길을 선택한 제 아들에 대한 우려를 인제야 조금 내려놓은 이들도.
권건 하나만 보고 팀을 택했던 팬들도.
장난스럽게 약팀을 응원하기 시작했던 팬들도.
강산이 변하도록 그 자리에서 FWX의 우승만을 기다려왔던 팬들도.
그 누구에게도 차별 없는 시간.
우승을 짐작이라도 한 것일까.
혼자의 힘으로는 펼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현수막이 객석 길목 길목을 가득 메우며 몇 장이고 쏟아진다.
너희가 자랑스러워.
FWX가 왔고. 봄이 되었다.
언제나 이 자리에서 응원할게. 영원히.
덕분에 지난 10년을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앞으로도 행복할 겁니다.
해준 것 하나 없어도 끝없는 사랑을 주는 팬들을 향해.
하나,
둘,
셋!
선수들이 힘을 합쳐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후회 없을 광경을 선물한다.
어두운 객석에서 응원봉이 시선처럼 빛나고 있었다.
선수들의 머리 위로 형형색색의 종이들이 떨어져 내린다.
떨어지는 것은 기쁨의 눈물과 이것으로 족했다.
2026 LKL 스프링 시즌.
봄을 맞은 FWX.
그들은 여름비를 맞는 대신 꽃가루를 맞았다.
다시 한번 거대한 축포가 발사될 때.
[ 음.. ]
그제야.
선수들은 옹알이를 터뜨린 아이처럼 잃어버렸던 소리를 되찾기 시작했다.
“FWX! FWX! FWX!”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지고.
손은 여전히 긴장과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으며.
땀과 눈물로 얼룩진 얼굴에 색종이와 반짝이를 붙인 채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악! 최고야! 최고였어!”
많은 이들의 응원 속에.
어리숙했던 얼굴에 이제야 진짜 웃음이 퍼져나간다.
[ 정말.. 가겠네. ]
결승전이 끝났다.
그런 그들 곁에 선 메인 캐스터는 새로운 제국의 출현을 고했다.
FWX.
약팀을 상징하던 그 단어는 우승이라는 태양 앞에 완전히 사라졌다.
[ 이제 반년 남았나.. ]
새 역사.
신세계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