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너에게 닿기를
별거 아닌 대화였다.
평소와 똑같이 느닷없이 제 취향을 전파하는 동물 애호가의 축덕같은 말에.
“축구? 스포츠는 역시 야구지. 그리고 이건 게건프레싱이라고 불러야 하는 게 맞지.”
김예성이 뾰족하게 말대꾸했다.
솔직히 나는 게겐프레싱이건 게건프레싱이건 상관 없다고.
“축구가 킹갓일황이지.”
“야구지. 야구가 진짜 귀족 스포츠지.”
“응, 도구 스포츠임.”
“축구는 공 안 쓰냐?”
“방망이는 안 쓰는데?”
“도구. 라는. 말. 함부로. 쓰지. 마라.”
“깡통 말이 맞아. 스포츠는 LOS지!”
“LOS는 빼고!”
바텀까지 끼어들면서 난장판이 벌어진다.
음.
이거 이렇게 잡담하면 전략 집중도가 떨어지는데.
뭐, 상관없나.
긴장이 더 큰 적이니까.
“탑, 난 너랑 진짜 안 맞아.”
“...”
“뭐야, 유찬이 왜 그래? 왜 말대꾸를 안 해? 너 설마!”
그런데.
“메디컬. 그거. 터진 거? 왜? 나. 나 왔는데. 재수. 없게.”
“와, 깡통 서폿 공감성 제로 실화냐?”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다.
“...”
이유찬의 표정이 창백하다.
“아.. 저 새끼..”
라인으로 복귀하던 김예성이 앓는 소리를 낸다.
“유찬아, 어디 아파? 얼음 나? 코피 불러?”
곽지운만 심각한 목소리.
“...”
이유찬이 대답 없는 가운데.
“저 새끼 똥 마려운가 보다.”
가장 사이가 나쁘지만.
가장 탑을 잘 아는 미드가 정확한 진단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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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런. 화면이 저희에게 돌아왔군요.”
“갑작스러운 퍼즈에 많이 놀라셨을 텐데요.”
압박을 이어 나가던 FWX가 잠시 멈추어 섰다.
공포에 질려있던 트릭스터는 잠시 숨을 돌릴 기회를 얻었다.
“희소식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 퍼즈는 길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요.”
“그렇습니다. 퍼즈 시간은 모두 한 사람에게 달려있습니다.”
- 미친 또라이같은 새끼ㅋㅋㅋㅋ
- 지금 똥이 나와? 지금 똥이 나와?ㅋㅋㅋㅋㅋ
- 똥과 사랑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지..
- 어그로 존나 끌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우리 지금 차니 똥 싸는 거 기다리고 있는 거야? 이 많은 사람이?
“현장에 계시는 분들은 명확하게 아시겠지만 카메라에도 찍혔죠. 차니 선수가 황급히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장면이 보이십니까?”
거대한 경기장을 종종걸음으로 빠져나가는 한 또라이가 보인다.
“예, 그렇습니다. 전설의 레전드 토일렛 이슈입니다!”
“똥 버프가 오면 시청자 수가 증가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게 진짜 오늘이라니.”
“결승, 마지막 세트가 될지도 모르는 이 순간 토일렛 이슈라니!”
“지금 수십, 수백, 수천, 수만 명의 인파가 차니 선수의 쾌변을 위해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 경기 정말 다채로워요! 블츠에, 토일렛 이슈에!”
지난 결승을 아주 가까이에서 듣고 봤던 모든 스탭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빠꾸 없이 들어온 사생활이나 코피보다는 백번 나은 결과니까.
“우리 집 똥 덩어리라는 표현이 잘못된 거였을까?”
“엄마, 쟤 만들 때 장 좀 길게 만들지 그랬어.”
“미안하다.. 나도 내 새끼 십이지장이 앵무새만큼 짧을 줄은..”
“와.. 엄마만 할 수 있는 말이네..”
탑 가족 역시 한숨을 내쉬었다.
“오, 벌써? 벌써 돌아왔나요! 저 젊음! 부러워요! 원샷 원킬이야?”
“표정 정말 좋은데요! 차니 선수! 아까 얼굴이 하얗게 질렸었는데!”
“지금은 정말 현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죠! 시워언하게 비운 모양입니다!”
생각보다 빠른 복귀에 이례적인 함성과 박수가 쏟아진다.
쿵쿵, 관객들은 발까지 구르고 있었다.
- ㅗㅜㅑ;; 박수 소리 실화냐?
- 이유찬!! 우승!!! 우승!!!!!
- 나도 똥 싸고 박수받는 삶을 살고 싶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일단 유명해져라, 그럼 똥만 싸도 박수를 받을 것이다
- 오.. 가짜 명언..
- 암튼 코피보단 낫다ㅋㅋㅋ
- 결승 무대 생산성있네ㅋㅋㅋㅋㅋ 피와 똥을 생산
- 트릭스터도 생산 중..^^ 피똥이라고
- 어이 무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차니 선수! 이번 게임 정말 바쁘네요! 킬 받아먹으랴, 똥 싸랴!”
“네! 그렇습니다! 이게 화장실이란 게 사람이 거부할 수 있는 흐름이 아닌데, 이 자신감! 이 당당함! 우리는 보고 배워야 합니다!”
“이걸.. 배워요?”
“여기가 그만큼 편해지셨다는 거지!”
이유찬은 여유롭게 웃으며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다 동행했던 심판에 의해 저지당했다.
그를 따라 나갔다 온 심판은 몹시 지치고 슬픈 표정이었다.
“결승 똥지림 실화냐?”
“니 팬티 건강하냐?”
“건이 옆자리 아니냐 쟤? 건아 냄새나면 말해라, 꼭.”
자리에 앉자마자 팀원들의 질책이 쏟아진다.
하지만 이유찬은 태연했다.
“똥이란 건 버스와 같아서 한번 지나가 버리면 영원히 고통만 남는 법이지.”
“똥싸개 명언 지리네.”
“미드야, 생각해 봐. 만약 내가 똥을 더 참았다면? 그럼 어떻게 됐을 것 같음?”
“니 말에서 냄새나.”
“우리 경기가 더 망할 것 같지 않음?”
“설득력 있긴 해.. 게임에서 지리는 것보다는 싸고 오는 게 낫지.”
“오줌으로 또 퍼즈 거는 거 아니지?”
“물론 원 플러스 원으로..”
“그만 말해라.”
선수들의 앞쪽으로 스탭이 걸어 나가서 수신호를 보낸다.
축구보다는 야구를 좋아하지만 개 같은 탑과 배변 산책을 나가서 분데스리가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불쌍한 심판이 카운트 다운을 울린다.
“아, 콜 들어왔어요!”
“경기, 몸도 마음도 가볍게 속행됩니다!”
다시 한번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진다.
황당하고 일상적인 일의 연속에 FWX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새로고침 된다.
스크림 중 똥방귀 이슈는 그들에게 생활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진행, 현재 킬 수로만 따지면 FWX가 3킬로 앞서나가고 있는 상황!”
“트릭스터도 미드에서 킬을 가져왔지만 소모 값이 제법 컸던 탓에 첫 번째 용 주도권은 완전히 넘어갔죠!”
“다음 전령 싸움은 두 팀 모두 시도해 볼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트릭스터 탑 냐르가 조용히 썩어가고 있거든요? 3킬 중 2데스! 이러면 상당히 불리합니다.”
황당한 일이 발생하긴 했지만 권건은 태연했다.
“계속 압박 들어가.”
아니, 오히려 좋다.
“건. 탑 한 번 더? 아니면 미드 백업?”
어차피 한 사람의 오더에 집중하던 김예성의 질문에.
“미드 백업.”
빠르게 대답이 돌아온다.
흐름이 끊긴 건 FWX와 관련 없는 일이다.
어쩌면 얻은 게 더 많을지도 모른다.
집중력 이슈 따위는 그에게 없는 문제였을 뿐만 아니라.
팀원들은 여기가 신체의 변화를 느끼는 것보다 더 큰 중압감이 느껴지는 자리라는 것을 잊은 셈이니까.
“상준 미드 동선 확보.”
“나. 아직. 5.”
“미드 찔러보고 나머지 경험치는 미드에서 수급.”
“그럼 내가 미끼?”
자연스럽게 서포터를 위해 미드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 같지만.
“나야 좋지.”
김예성은 슬쩍 왼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어차피 다 이자 쳐서 돌아올 테니까. 이래서 메이지 챔은 피곤하다니까..”
“탑은! 이제! 나한테! 맡겨 둬! 노 모어 탑건!”
화장실 현자가 당당한 어조로 말했다.
“?”
“똥 한번 싸고 나면 여긴 내 영역인 거자너~”
여기가 제집인 것처럼.
“난 진짜 쟤 의식의 흐름을 따라갈 수가 없다.”
“저거. 제.정신?”
오히려 가장 이 분위기가 어색한 건 갓 출전한 서포터 유상준이었다.
“이해하려고 하지 마.”
누군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이 팀이 깃털처럼 가볍다는 건 알고 있다.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태도가 그렇다.
어떨 때는 한없이 가벼웠다가.
또 어떨 때는 한없이 무거워진다.
킬로킬로 열매라도 먹은 것처럼 오르락내리락해대는 통에 이 팀에 이제 반년 가까이 붙어 있었는데도 적응이 안 될 지경이다.
밀어붙이는 전략에 흔들리는 건 트릭스터만이 아니었다.
감정이 부족한 유상준 역시 마찬가지로 이 팀의 파도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물처럼 흘러가는 대화 속에서 서포터에 대한 처우가 다르다는 걸 느끼고.
우에엥 도라X몽만 외치기 바쁜 게 아니라 서포터를 먼저 챙기려 드는 원딜도 그렇고.
누굴 보고 배운 건지 팀을 위해 제 자리를 양보하는 최은호가 신기하다.
건강하지 못한 모임은 만나면 험담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엔 그런 게 없다.
“근데. 쟤가.”
그리고 개중에 거리가 멀었던 탑 역시 마찬가지다.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가.”
먼 과거의 동료를 통해 들은 이야기가 있다.
동료였던 사람.
작년까지 트릭스터에 있던 원딜 고수호.
지금은 미라쥬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깝고도 어색한 사이.
유상준의 선수명은 사이다.
고수호의 선수명은 고구미, 어원은 고구마.
선수명까지 고구마와 사이다라고 맞춰 지었던, 연습생 시절 가장 가까웠던 듀오.
그들은 둘 중 한 명만 트릭스터에 스카우트 되면서 멀어졌다.
어딜 가든 우리는 무조건 묶음 상품이 될 거라고 했었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명문 팀의 제안 앞에 함께 월즈 무대까지 제패하자던 학생 시절의 약속은 유야무야 버려졌다.
그건 유상준이 사람에게는 더 마음을 닫고 게임에는 더 매진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어느 순간 유상준은 제 포지션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캐리하고 싶어 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FWX, 슬슬 전령 주목합니다!”
“차니가 움직임이 커지기 시작합니다! 영역 넓어지고 있어요!”
“뭐 버프라고 하죠!”
느닷없이 트릭스터를 뜨게 됐다고 연락이 왔던 옛 친구는 트릭스터가 변했다고 말했다.
자질구레한 사연이었다.
환호가 어떻느니, 신입들이 어떻느니.
고수호는 미안함에 한 말이었지만 당시 제주 F.L.E라는 하위권 팀에 있던 유상준으로서는 코웃음 칠만한 이야기였다.
자기도 변했다는 사실을 모르나 보지.
“트릭스터는 미드 쪽으로 시선을.. 아무래도 FWX처럼 한 번 더 시도해 볼 생각인 것 같죠!”
근데.
근데 지금 내가 여기에 있다.
변하고 있는 내가 있다.
“상준.”
차갑고 이성적인 메인 오더의 목소리가 들린다.
“적 정글 언덕 뒤 방향, 아자르 돌입 5초.. 4초..”
내게는 완벽한 시야도, 완벽한 오더도 요구하지 않는 이 팀에서.
깡통 로봇이 된 내가 여기에 있다.
유상준은 그새 더러워진 안경 뒤에서 눈을 굴렸다.
“나 플 있다.”
상대가 들어올 타이밍을 예측한 미드가 말한다.
안경 닦는 천을 건네준 사람이다.
“플 쓸 테니까 니가 만들어 줘.”
미드들이 이러기도 쉽지 않다.
점멸을 개인 자원이 아니라 팀 자원으로 인식하고 있는 거니까.
“어.”
그래.
바쁜 세상, 고작 의리 때문에 못난 친구를 기다려주는 낭만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FWX도 마찬가지다.
오늘 객원으로 온 사람도, 저주 인형으로 소울 참여만 한 사람도 있다.
분명 다른 팀과는 달랐지만 그렇다고 무기한 기다려주는 게 아니라는 뜻일 거다.
보여줘야 한다.
보여주면 된다.
트릭스터가 아니라 FWX가.
이제 FWX는 나의 1지망이니까.
“3초.”
삐익, 어디선가 휘슬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2초.”
내가 잘하는 것.
“블츠, 블츠 달립니다! 깡통 로봇! 달립니다!”
힘차게 구른 발에서 얻은 동력을 크랭크축에서 바꾼다.
“이거, 들어올 거 예측하고 있었어요 FWX! 블츠, 블츠 대기 중! 아아아아아아!”
낡은 기계가 폭발적으로 가속한다.
“1초.”
역학 에너지가 전기 에너지로 전환된다.
“리이이이뉴! 아자르, 들어갑니다아아아아아악!”
“으아, 으아, 으아아아아아아!”
“너에게에에에에에에에 닿기르으으으으으을!”
“땡..!”
폭발 행정이 일어난다.
“겨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주우우우욱.
길게 늘어난다.
“점멸 그래애애애애애애애애애앱!”
유상준은 아직도 자기가 F.L.E에서 서폿 리싱을 했던 날을 떠올린다.
상대는 권건의 쉔.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피지컬.
아마도 피지컬 100.
똑같이 따라 할 수 없다.
하지만 나에겐 내 방식이 있다.
최은호가 하는 것이 심리에 기반한 예측이라면.
내가 하는 것은 실제 플레이 경험에 기반한 관찰.
“블츠는! 과학이다아아아아아아악!”
과학은 이렇게 정확한 데이터가 주어진 상황에서 더 완벽해진다.
“사아아아아아아아아이이이이이이이이이다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사람은 변한다.
“잡혀요, 잡혀요, 잡혀요! 권건 마오까지 대기!”
“나무 정령의 뒤틀린 전진, 전천후 파워 태클!”
“기회, 기회 놓치지 않습니다! 라아온! FWX, FWX가아아아아아아악!”
“아직 유일하게 흠집 하나 나지 않고 킬만 가져갔던 트릭스터 미드, 미드를 끄집어내면서어어어어억!”
“기어이! 기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또 한 번 스노우 볼 찬스를 놓치지 않고 다시 한번 점유합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렇지만 아직 나는 깡통이다.
“깡통. 나이스.”
제 말대로 점멸로 위기를 넘긴 미드가 킬킬거리며 웃는다.
“너.”
그리고 오늘.
윙어와 풀백, 투웨이 포지션으로 볼 배급을 담당하고 있던 선수이자.
방금도 적의 다리가 부러지도록 태클을 걸었던 우리 팀의 키 플레이어가 다시 입을 연다.
“블츠 할 줄 아네?”
그는 과학 발전의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