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219화 (219/326)

219화. 주인을 찾습니다

금요일 야밤의 라이브 방송, [ 남동현 해설의 작두는 개나 줘].

“이번 주 스프링 1라운드의 마지막은 정말 치열했죠. 설 동안 선수들이 정말 많은 힘을 축적해서 돌아온 것 같았어요.”

남동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에. 진짜 그렇습니다.”

개인 방송 패널로 참여한 현수진과 이승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동현과 현수진은 해설, 이승수는 분석 데스크만 담당했다.

본래 남동현은 유니버스 출신인 이승수와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FWX에서 유니버스 출신 코치 문백산을 데려간 후 왠지 이승수의 태도가 호의적으로 변했다.

일반적인 팬이 아니라 업계 종사자로서 잘하는 팀을 싫어할 이유는 없다.

다만 이전 팀에 대한 애착이 강했을 뿐.

이승수는 언제든지 계기만 있다면 마음을 열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얼마나 치열했냐면, 예. 인천 트릭스터와 대전 FWX의 경기 말고는 단 한 경기도 스윕이 없었어요!”

“그렇죠. 대부분 경기가 길어졌습니다. 퍼즈도 상당히 길었었고요.”

“FWX는 퍼즈가 상당히 적은 편이네요.”

“뭐랄까. 버그도 별로 없고 장비 이슈도 별로 없습니다.”

- 퍼즈는 정신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 ?

- 하긴.. 중요한 순간에 퍼즈 걸리는 거 보면.. 가끔 컨트롤이 되는 건가 싶긴 해

- 현직 개발자로서 인게임 버그는 별수 없더라도 주변기기는 항상 업데이트가 중요합니다

- 그럼 최신 주변기기 쓰는 신인이라 퍼즈가 안나는거임?ㅋㅋㅋㅋ

- 꼭 그런 건 아니지만 필요조건 중 하나라는 뜻이지요,,^^

- 나도 업그레이드 해야겟숴

- 어쩐지 쏘닉스 제품이 좋더라니 ㄹㅇ 요즘 신상 라인 나와서 그랬구나

- LOS 파크랑 착붙이자너~

- 뜻밖의 주가 상승ㅋㅋㅋㅋㅋㅋㅋ

- 지금 사?

- 사지 마라

“그래서. 음, 어제도 사실 상당히 긴 경기였는데요. 어떻게 보셨나요?”

“어제 경기라면.”

“수원 해머스와 울산 피닉스의 끝장전, 그리고 광주 미라쥬와 성남 스톰의 상위권 쟁탈전이요. 어제 형님은 오프셨죠?”

바쁜 일정 때문에 라운드의 경계는 기록상으로만 존재할 뿐, 사실 오늘 진행된 경기도 첫 번째 경기가 1라운드고 두 번째 경기가 2라운드에 해당했었다.

이미 2라운드에는 들어선 것.

다만 1라운드 결산이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라운드가 끝났다는 건 모든 팀이 한 번씩 만나 봤다는 뜻이니까.

“뭐..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한번 라운드 종결 겸해서 각 팀에 대한 평가와 순위를 짚어보고 갈까요?”

“좋습니다.”

“솔직히 이 순위표를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요.”

“격세지감이죠. FWX에겐 특히나.”

방 주인인 남동현이 화면에 순위표를 띄운다.

1위 대전 FWX, 1라운드 무패 (18-0, 18)

2위 인천 트릭스터, 7승 2패 (15-7, 8)

3위 성남 스톰, 7승 2패 (15-9, 7)

4위 대구 유니버스, 6승 3패 (14-9, 5)

5위 광주 미라쥬, 5승 4패 (12-10, 2)

6위 부산 호넷, 4승 5패 (11-15, -4)

7위 서울 빅스, 3승 6패 (10-14, -4)

7위 제주 F.L.E, 3승 6패 (9-13, -4)

9위 울산 피닉스, 1승 8패 (3-17, -14)

10위 수원 해머스, 0승 9패 (3-18, -15)

“선수들에게는 이게 성적표인 거거든요. 누가 몇 위냐, 누가 어디에 있냐.”

“굳이 따지자면 이제 중간고사 끝났다고 해야 할까.”

“아래에서부터 짚어봅시다.”

수원 해머스와 울산 피닉스.

“수문장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해머스가 완전히 나락 갔다. 이거 좀 재밌는 일이죠?”

“어제 끝장전에서 결국 해머스가 패배하면서 이렇게 됐습니다.”

-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 피닉스는 원래부터 날개가 없긴 했음ㅎ

- 쉿펄럭펄럭 날아올라라 주작이ㅇㅕ

- 해머스는 시1발 정글러 F.L.E 보내서 이렇게 된 거잖아

- 지금 정글 누구임?

- 붐보이 개거튼 새기

- 왜 뭐 함?

- 경기력도 ㅈ같은데 얼마 전에 방송에서 샷건에 욕도 함

- ???

“여러분, 뭐, 그런 말은 여기서는 지양하도록 하고.”

“어쨌든 뭐. 난 그래요. 원래 해머스에는 A 코스, B 코스 이런 거 있었는데.”

개중에 가장 고참인 현수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랬죠. 작년까지.”

“이제 내놓을 코스 요리가 없어요. 영업 정지입니다.”

“동의합니다. 좀 더 분발해야 합니다. 지금 해머스는 서로 아무것도 안 맞아요.”

“원인은..”

“정..”

“붐보..”

“정글은 어쩌면 수발을 드는 포지션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또 핵심입니다..”

모두 잠시 묵념.

“그러면 또 여기 재밌는 게 있는데요. 서울 빅스와 제주 F.L.E가 7위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거.”

“빅스의 부진은 아마 팀이 산산조각이 나서겠죠. 지금은 재조립 중. 새로운 정글러가 아직 1군에서 활약을 제대로 못 보여주고 있어요.”

“참고로 유니버스 2군 출신입니다? 아마 잘 할 거예요. 유니버스 출신이니까.”

“뭐, 어쨌든 아직 호흡을 맞추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고.”

“제주 F.L.E는 전에 비해 좋은 모습 보여주고 있다고 봐야겠죠?”

“아무래도 F.L.E도 FWX에 선수를 보낸..”

“컷.”

가볍게 패스.

“그리고 5위에 미라쥬, 6위에 호넷.”

“호넷이 진짜 미쳤어요.”

“네. 지난번에 뭐였죠? 마이 정글?”

“이 팀 진짜 개성이 너무 강하고 낭만적인 팀이거든요.”

- 짭 프떱쓰

- 호넷ㄷㄷㄷ 얼굴만 반반한 줄 알았는데ㄷㄷㄷ 게임도 좀 쳐

- 근데 아무래도 제 발에 걸려 넘어질 때가 좀 있음

- 걔는요?? 2군 선수는 언제 올림?? 즈웨이??

- 존나 이름부터 중국 냄새 나네ㅡㅡ

- 아냐 오해 노

- 적의 적은 우리 편이다

“아, 그래. 2군에 대만 선수도 데려오고 그랬다면서요? 꽤 열린 팀이라서 그런가? 난 좀 설레.”

“솔직히 저도 그래요. 그런 거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예전에도 베트남 선수 데려왔었던 팀이 있긴 했죠. 결과는 아쉬웠지만요.”

이제는 그 횟수가 줄었지만 여전히 2군 중계 로테이션으로 도는 남동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외 선수의 영입이 아직 1군으로까지 이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해당 선수가 큰 활약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는 상태였지만.

해설진은 최소한 스카우트의 시선이 해외 시장까지 닿는다는 점에서 부산 호넷을 높게 평가했다.

“ 이게 또 교류란 게 진짜 중요한 게 우리 문백산 코치님이 FWX에..”

“승수님 컷. FWX 이야기는 제일 마지막에.”

“오케이. 근데 계속 생각이 그쪽으로 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 그저그저 FWX 이야기라면 몸이 달아가지구ㅎ

- 우리 자기 이야기 얼른 나오면 좋겠다ㅎ

- 미쳤니?

- 프떱 칡뿌리 같은 팀..

- 왠 칡

- 씹어도 씹어도 달아 앙

- 어우;

“제가 라이브 방송을.. 많이 안 해봐서. ”

“분석 데스크는 라이브가 아닙니까?”

“쉿.”

“어쨌든 미라쥬의 탑이 불안정한 이때. 5위라면 아직은 조금 순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는 상태인데요. 간신히 서부에 걸치고 있다고는 하지만 호넷이 언제 치고 올라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도.”

“동의.”

“자, 그럼. 이제 상위권으로 갑니다..”

“FWX, 트릭스터, 스톰, 유니버스. 네 개의 팀 이야기를 해보죠.”

- Oh my GOAT.

- 대황팀들의 시대가 찾아 왔~어

- 이제 세상은 새로운 천년을 맞지

대화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

FWX에게 패배한 뒤, 트릭스터의 사옥.

“이건 제가 원한 데이터가 아닌데요.”

귀환자이자 트릭스터의 새 미드인 채지한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주 앉아있던 트릭스터 감독 이길준 역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었다.

“그래?”

이 감독은 지난해에 이어 트릭스터에 연임했다.

하지만 올해 새로 영입된 미드와 그리 잘 맞는 느낌이 아니었다.

“지금 이건 지나치게 로우 데이터 상태입니다.”

특히 선수의 이런 꼿꼿한 태도가 그렇다.

채지한의 얇은 안경테가 신경질적으로 흔들린다.

채지한은 같은 팀의 팀원들을 이름으로 부르기보다는 선수명으로 부르고.

지난 미드였던 오미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까탈스럽다.

특히 데이터와 훈련 방향에 대해서 시도 때도 없이 개인 면담을 신청하는 터라 감독 입장에서 부담이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에게도 다른 일을 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음.”

이 감독은 채지한이 내민 서류첩을 들여다봤다.

팀에서 꽤 고심해서 만든 내용이다.

정확히는 외부 데이터 제공 프로그램 팀의 도움을 받아 재가공한 자료들.

구석에는 대외비라는 문구가 선명히 박혀있다.

“자세히.”

타 팀 감독들보다 연령대가 높은 편인 이 감독은 LOS 선수 출신이 아니다.

LOS 이전 세대의 게임에서 프로게이머를 했던, 이스포츠 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감독 중 하나.

“그렇게 고압적으로 말씀하시는 거 불편합니다.”

이 감독의 콧잔등이 찌푸려진다.

MZ, 알파 세대, 뭐 이런 건가.

이런 선수는 처음이다.

따박따박 모든 걸 따지고 드는 데다 서로의 위치나 체면치레, 연장자에 대한 예의도 없다.

솔직히 조금 부담스럽다.

“지한. 나 역시 네 말투를 공격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채지한 입장에서도 이 감독과 썩 잘 맞는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당시에는 데이터 분야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받았건만, 막상 팀에 들어오고 나니 트릭스터의 감독은 엄한 기숙사 사감처럼 굴었다.

그리고 이길준 감독은 잔소리가 많은 타입은 아니었지만 말투가 명령조다.

“그렇군.”

두 사람 사이에 잠시 기 싸움이 일었다.

오해.

사실 이 감독도 그리 능력 없는 인사가 아니다.

그는 트릭스터라는 팀명이 주는 파워를 통해 선수를 상당히 잘 뽑아내는 편이었고.

잘 따라오는 선수들을 아끼긴 했지만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기 위해 무뚝뚝한 말투를 사용했다.

이에 따라 팀 분위기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에 강점이 있다.

정확히는 인게임보다는 선수 관리에 힘을 쏟는 타입.

“그럼. 네가 원하는 게 정확히 뭔지 말해주면 좋겠다.”

하지만 채지한은 답답하다.

트릭스터는 의외로 분석팀도 작았고 채지한이 원하던, 가려운 곳을 쏙쏙 긁어주는 그런 분석 보고서는 공유되지 않았다.

그래서 채지한은 감독이 이런 주요 데이터를 숨기면서 선수들을 휘두르는 무기로 사용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데이터 분석원 한둘이 퇴사했다고 한들 경험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전에도 말씀 드렸을 텐데요?”

그는 선출 감독을 선호한다.

선수들만이 겪었던 데이터, 실전 경험이 있는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어떤 킥을 원했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서 부족함이 느껴졌고.

이건 백번 피드백을 해도 나아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건 그냥 AI 화면 분석 후에 나온 API를 재조합한 결과물일 뿐이고, 제가 바라는 건 여기서 더 나아가서..”

구체적으로 초반 설계 코칭을 해주거나.

지금까지 제공한 결과 외의 픽 통계 분석을 통해 연습할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

하지만 채지한은 이 말을 삼켰다.

여태까지 요구해왔던 말인데 또 해서 뭐해.

어차피 못 알아듣는데.

이러다가 중국에서는 이랬다느니, 저랬다느니 비교하는 이야기까지 나오면 팀에서 소외당하게 될 게 뻔하다.

“하..”

두 사람 사이에서 침묵이 감돌았다.

- 똑똑

침묵을 깨는 노크 소리가 들린다.

“이길준 감독님.”

김정욱 코치다.

“트릭스터 통합 정례 회의 시간입니다.”

“그래.”

이 감독은 채지한에게 시간을 내주다가 원래 준비하던 자료 정리를 다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말을 아낀다.

그리고 노트와 펜을 내밀었다.

“지한. 네가 원하는 게 있으면 여기에 적어주면 좋겠다. 내가 노력을 해볼 테니까..”

감독이 자리를 떴다.

채지한은 자리에 고요히 앉아 얼굴을 감쌌다.

이게 아닌데.

왜 이렇게 되어가는 거지?

데이터는 서류첩으로 전달이 되고.

종이와 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스포츠가 바둑이었던가?

기보를 쓰라는 것도 아니고.

“지한아.”

옆자리에 앉은 건 김 코치였다.

“왜 그러시죠.”

“우리가 한번 지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뻔한 소리.”

“...”

채지한은 마음속에 있는 말을 뱉고 후회했다.

이들이 실로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하지만 그가 한국으로 귀환하면서 바랬던 건 이게 아니다.

이런 게 아니라, 좀 더..

좀 더 확실하고 뚜렷한..

그래, 어쩌면 며칠 전에 봤던 그들처럼..

“죄송합니다.”

채지한은 안경을 벗어 던지고 마른세수를 했다.

“나도 미안하다.”

아무 의미 없는 감독과 코치의 사과.

데이터라는 세계를 모르는 다른 선수들.

그저 게임만 할 줄 아는 바보들.

“부탁드릴 게 있어요.”

“그래, 말해봐. 내가 최대한 편의를 봐줄 테니까.”

위로도 서툰 코치를 바라보며 채지한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한테 전에 보여주셨던 데이터 포맷, 그리드..”

아니, 정확하게 찾아야 한다.

자신이 봤던 그 보고서의 주인을.

“그냥 작년 분석 데이터부터 쭉 다 보내주세요. 보고 싶어요.”

채지한은 스스로 답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만약 그 유능한 분석원이 퇴사했다면.

자기 지분이라도 빼서 다시 데려오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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