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전령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서
이번 메타에서는 정글의 성장 시간이 충분히 확보된다고는 하지만.
“지금 경기 속도 제법 빠릅니다.”
“네, 이른 타이밍에 바텀에서 FWX가 용을 가져갔죠?”
그렇다고 오브젝트가 여러 개라는 뜻은 아니다.
일단 가져가는 쪽이 유리하다.
“맞아요. 근데 이건 트릭스터 입장에서 특별히 불만이 있는 건 아닙니다. FWX가 하체 쪽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고 뭐 트릭스터가 대단히 손해 보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어, 너네 용 먹고 싶니? 그래, 그럼 용 가져가. 우린 시간 좀 더 필요해. 아펠이니까.”
“트릭스터는 아예 첫 용 내줄 생각 하고 있었고, FWX도 용만 먹었지 정글 장악까지 하려고는 하지 않았어요. 어느 정도 협의가 됐다는 거죠.”
그런데도 픽에 따른 전략적 땅따먹기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렇습니다. 선수들 집중력이 굉장히 좋아요. 그러다 보니 지금 서로 스펠 교환은 한 번 있었지만 사고가 나거나 한 게 아닌데다 CS도 아주 많이 밀리는 건 아니거든요.”
“경험치도 그래요! 질리얀이 어느 정도 보완해주고 있습니다.”
“세자 선수가 들고 있는 닐랴같은 경우에는 사실상 초반 주도권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봐도 좋습니다. 하지만 지금 원딜 헤인즈 선수와 서포터 케비 선수가 좋은 호흡을 보여주면서 벌써 두 번의 위기를 넘겼어요.”
- 트릭스터 “각성”
- 헤인즈 쟤도 숨겨진 꿀매물이었다니까ㄷㄷ
- 쟤 호넷 때 권건이랑 친추해서 강해진 거 아님?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ㄹㅇ
- 친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 GwonGun Maketh Man..
- 본격.. 권건은 될 놈만 친추한다 가설 등장..
- 아! 그래서 내가 친추를 못했구나?
“제 생각에는 두 번째 용까지도 그냥 내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트릭스터의 후반 밸류는 계속해서 올라가는 거거든요.”
“그럼 상체를 봅시다. 전령은요. 전령은 어떻게 될까요?”
“일단 오드의 카뮐과 차니의 요내가 기싸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릭스터의 오드 선수, 이 선수는 챔피언이 가진 역량을 최대로 뽑아내는 선수거든요! 카뮐이 이만큼 나가서 때려요. 압박 잘 해주고 있습니다. 이거, 완전히 대각선 느낌이거든요!”
“하지만 차니 선수도 대단해요. 지금 안쪽으로 몸 밀어 넣으면서 데미지 줄였죠? 위빙 아주 훌륭합니다?”
탑에서는 두 선수의 싸움이 치열하다.
해설진이 굳이 언급하지는 않지만, 이유찬은 중간중간 2025 트릭스터 마크를 띄우고 있었다.
특별히 타이밍을 가리는 것 같지는 않다.
전과 달리 두 팀의 관계가 라이벌 구도로 굳어진 데다.
두 탑 사이에는 특별한 친분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에 무슨 의도인지는 알기가 어렵다.
다만 짐작만 가능할 뿐.
“아무래도 권건 선수에게 밀려서 빛이 좀 덜하긴 하지만, 만약 권건 선수가 없었다면 신인상을 받았어도 됐을 것 같은 선수입니다. 아주 많이 늘었어요. 아아아아주 많이!”
“하지만 또 권건 선수가 없었다면 기용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인터뷰에서 많이 나왔던 이야기죠. 그리고 꽤 유명한 이야기인데. 반대로 권건 선수가 FWX 들어올 때 차니 선수가 불렀다고 하죠? 두 사람은 정말 끈끈한 사이인 것 같습니다.”
- 그러고 보니 그렇네
- ㄹㅇ 학연
- 같은 고등학교 출신? 거기 뭐 있음? 수맥?
- 수맥은 안좋은 거 아님?
- 거기가 어디냐 나도 우리 애 거기서 출생 신고하게
- 프로게이머 학군 ㄷㄷ
- 거긴 선생님들도 최소 플레라카더라
- 엄마 나 전학보내쪼!
“하지만! 결국 주도권은 트릭스터 쪽으로 넘어가 있습니다. 방금 무사 선수의 쟈크가 스펠 득점을 이뤘어요. 차니의 점멸이 빠졌습니다.”
“미드는 라온의 아자르가 압박을 해주고 있지만 리뉴는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한 선수입니다. 빅터르가 적당히 라인 당기면서도 CS를 차근차근 잘 챙깁니다. 아까와 달리 로밍이나 갱 위협이 상당히 적거든요?”
“권건 선수가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죠.”
“이러면 이제 두 팀 모두 해볼 만 하긴 합니다. 야, 전령 줘라! 너네 용 먹었잖아!”
용 이후 권건이 정글링에 몰두하고 있다.
조용히, RPG처럼.
팀원들과 충분히 협의가 이뤄진 이 플레이는 왠지 모르게 트릭스터 선수들에게 압박을 줬다.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까.
때때로 침투시켜놓은 와드로 짧은 모습이 확인되긴 하지만 이것도 썩 긍정적인 소식은 아니다.
정말로 RPG를 하고 있을까?
상식적으로는 그럴 것 같은데.
뒤로 빼서 잡고 있는 것처럼 해놓고 갑자기 뒤로 돌아 나타나면 어쩌지.
사실 그렇다.
권건은 갱을 와도 부담이고.
빠르게 정글링만 해도 부담이며.
정확하게 시야에 확인되지 않을 때는 더 부담스럽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건 오랫동안 활동을 하지 않을 때다.
누적된 만큼 충격적인 결과를 보여주겠다는 카운트 다운.
“시간 잘 끌면 우리가 유리해.”
“게임 길게 봐.”
“움직임 없는 건 우리가 오히려 좋아.”
올 시즌 이제서야 FWX와의 첫 번째 정규 경기, 두 번째 세트.
FWX와 스크림을 많이 하지 않았던 트릭스터 선수들은 묘한 압박감을 느꼈다.
상위권, 챔피언.
틀림없이 그건 우리에게 따라붙은 호칭인데.
“얘들아. 내가 압박 좆빠지게 해둬서 쟤네 요내 지금 빵딜이다. 어?”
첫 번째 세트를 패배하고 나니 묘한 감정이 어깨 위에 들러붙었다.
그건 기가 죽어야 할 상대 탑이 뻔뻔하게 2025 마크를 띄워 올리면서 태연하게 구는 데에서 나오는 불편.
그리고 결승에서 밟았던 저 신인이 전처럼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는 불안.
“알았지?”
“상하형, 믿고 있었다구?”
“그럼 전령보자.”
“오케이.”
“상대 바텀은?”
“안 움직일 것 같은데. 혹시 가면 바로 말할게.”
“그럼 상대 탑 점멸 빠졌을 때 진행하자. 지한. 어때?”
트릭스터의 정글과 미드가 방향성을 정했다.
“가는 중.”
결정은 빨랐고.
시간을 끌어야 하는 입장에서 전령이 좋은 건 당연하다.
근거는 5.
필요는 3.
불안은 2.
해볼 만하다.
트릭스터의 탑, 정글, 미드가 전령으로 모인다.
“상대 바텀 출발한다!”
바텀에서 콜이 올라오자.
“전령 뒤로 빼서 잡아! 시간 충분해. 천천히.”
약간 마음이 조급해진다.
나쁜 상황이 아니다.
스펙으로만 보면 상체끼리 꽝 붙으면 오히려 유리하다.
“람블 이퀄만 조심.”
FWX의 요내는 아직 탑 라인에 머무르고 있고.
아자르는 근처에 있지만 혼자 들어올 수는 없다.
하지만 람블이 보이지 않는다.
이게 2의 불안이다.
“우리도 가?”
“살짝 올라와 봐. 살짝만.”
바텀에서도 FWX를 좇기 위해 몸을 기울이는 순간.
“어, 아!”
용 근처 강가.
그 앞에서 덮쳐오는 것은 점멸과 함께 절묘한 각으로 꺾어져 들어온 세주의 맹습.
“아니다!”
외마디 소리를 내지르며 트릭스터 바텀 스펠이 빠진다.
“절묘한 노림수! FWX가 아슬아슬하게 킬을 놓칩니다!”
그리고 경기장에는 환호가 터진다.
“와, 이거! 진짜 감쪽같이 속았어요! 맞았으면! 맞았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는데! 닐랴가 순간 파고드는 능력이 진짜 뛰어나거든요!”
“케비 선수가 점멸 사용하는 타이밍이 진짜 기가 막혔습니다! 살아갑니다!”
“근데 이거, 기분 좋지만은 않거든요? 여태까지 잘 버텼는데! 이제 정말 압박이 심해질겁니다, 헤인즈와 케비! 이거 잘못하면 싸늘해져요?”
“이렇게 되면! 바텀 라인전을 빨리 끝내야 하거든요! 전령을 반드시 가져가야 할 이유가 생겼죠, 트릭스터!”
- 호우 방금 사이다 맹습 뒤졌다 저게 저렇게 꺾이네
- 존나 역시 리싱 장인;
- ? 서폿이 왜 리싱 장인
- ??? : 저는 서폿챔 빼고 다 장인이에요
- ? 서폿인데 도데채 외조?
- 헤인즈도 저걸 사네
- 아펠 왕자님; 라인 밖은 위험해요 십;
- 분명 잘 피한건데 왤캐 아슬아슬하게 느껴지지;
- FWX 바텀이 이렇게 공격적이었음? 오늘 존나 다르자너;
“살았어?”
“어, 일단 살았어. 세주 노 점멸.”
잠시 흩어졌던 집중력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얘네 안 올라가는 것 같다. 전령 킵 고잉.”
하지만 분명히 타격이다.
주요 스펠이 다 빠졌다.
이제는 바텀 압박을 흘려내기 어렵다.
“정글 바텀 갈지도 모르니까 빨리 정비해. 우린 마저 전령.”
“오면 진짜 안 되는데.”
“걱정 마. 이거만 먹으면 유리해진다. 우리 시간 끌면 절대 안 불리해. 내가 닐랴 실업자 만들어 준다.”
“땡큐, 은검이 형.”
“마지막 싸움처럼 임해. 천하삼분지계, 기억나지?”
“확인. 적벽대전 갈겨.”
하지만 전령 쪽에서도 점점 상황은 압박으로 다가온다.
분명 우리가 유리한데.
“근데 왜 안 오지?”
오면 와서 싫고.
안 오면 왜 안 오는 지 몰라서 싫다.
“집중.”
그리고 이미 전령 사냥은 중반부.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 그 순간.
정보가 모여든다.
탑 라인을 벗어나 강가로 들어서기 일보 직전의 요내.
덮치고 들어올 수 있는 최대 거리로 움직이는 아자르.
둘만 올 리 없지.
그렇다는 건?
“물러..”
시야가 넓은 모든 선수가 각자 판단에 따라 포지션을 옮기는 그 순간.
장전.
- 찰칵
“권건, 권건, 권건!”
조준.
“지금, 뒤에서, 뒤에서!”
“탕..”
그리고 투하.
“따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퀄라이저 미사이이이이이이이일! 착타아아아아아아아아안!”
절묘한 와드와 와드의 이격.
강 왼쪽 시야.
블루 진영 트릭스터의 탑 방향 언덕.
- 거니형이 왜 거기서 나와?
- 옵저버 당신 뭘 숨긴 거야?
- 시바 요즘 씨씨티비 믿을 게 못 된다더니
- 저기서 뭐 했는데? 뭐 했냐고!
- 두꺼비 너.. 바람폈니..?
그곳에서 출발한 미사일이 강을 불바다로 만든다.
아직 무서운 데미지는 아니지만 진영을 파괴하는 공격.
잘 훈련된 트릭스터의 군사들은 순식간에 몸을 튼다.
바로 이어질 다음 싸움을 위해서 체력을 보존해야 한다.
“침묵하던 권건이! 드디어 첫 번째 궁극기로 전장을 수놓습니다!”
“근데 이거 지금..!”
긴장한 만큼 순식간에 태세를 전환한 트릭스터가 완벽하게 권건을 인지한 순간.
솔방울탄을 타고 날아온 람블이 빠르게.
“지금..?”
멀어진다.
“어?”
접근에 응수하기 위해 던져진 몇몇 스킬들은 허황되게 하늘을 가를 뿐.
“빠지는데요?”
들어올 것처럼 움직였던 FWX의 탑과 미드 역시 라인에 복귀한 지 오래.
시야에 들어오는 실시간 미니언 웨이브 삭제 쇼.
“빠집니다, FWX?”
“따라갈 수가 없어요! 이거 지금 굉장히 빠릅니다! 처음부터 전투 시도할 생각이 없었어요!”
“눈치를 봤던 게 트릭스터 혼자였던 거예요!”
“너무 의식했나요?”
그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권건은 눈앞에서 다시 사라졌다.
그리고 한눈파는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 존재가 있다.
“아!”
“어, 아! 이거! 이거!”
“전령! 전령 초기화! 초기화! 안돼! 가지 마, 가지 마, 가지 마!”
- 아직 너를 위해
- 바텀에서 살아가는데 너는 어디에
- 니가 필요한데
- 워어어 저어어언령
- 이분들 주머니에 홍삼캔디 있을듯
- 캔디 압수
“전령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서 생각보다 쉽게 떠나버립니다! 이거 잡아둘 만했는데, 이퀄 위치가 절묘했던데다 트릭스터가 너무 멀리 당겨서 시작했어요!”
“이러면 시간 지연 많이 되는데요!”
“그럼 이거 지금, 이거 첫 번째 궁..”
“그냥 위협 사격이었어요?”
“곤란합니다, 이거 지금 바로 다시 시도하기에는 약간 타이밍이..! 잘못하면 탑 미드 웨이브 다아아아아! 타요! 실시간 화재 진행 중! 119! 119! 여기 웨이브가 타고 있어요!”
“이건 아무리 계산기 안 두드려봐도 답 나와요! LOS엔 화재 보험이 없거든요!”
머리가 핑 도는 기분이다.
챔피언 후반 밸류.
플레이 난이도.
탱커의 유무.
모든 것이 트릭스터 편이다.
싸움을 봤다면 우리가 유리했을 텐데.
그리고 분명 그런 움직임이었는데.
“전령 먹어야..”
“나 라인 복귀한다.”
“나도. 이따가 혼자 먹어놔.”
탑과 미드가 매정하게 사라진다.
궁극기를, 고작해야, 지금.
전령 초기화에 썼다고?
시간을 지연시키겠다는 이유만으로?
“아.”
문득.
강가 시야를 지우고 아래쪽에서 무빙을 치던 상대 미드가 떠오른다.
전령 견제가 아니었나?
이 새끼만 만나면 자신이 사고가 딱딱하다는 것을 느낀다.
간도 크지.
미친놈..
“쓰벌.”
가장 상대 정글을 많이 의식했던 사람.
트릭스터 정글 무사, 김은검.
“저 개새끼.. 또 개같이 벌어서 정승 되려고 저러나.”
“형, 정승같이 쓴다인데.”
멀리 있던 바텀에서 가벼운 토크가 날아온다.
“닥쳐.”
“개가 어떻게 정승이 됨? 정글 승상?”
“그래 쓰바.. 정글 승상..”
캠프가 깨끗하다.
“나는 그냥 정글 장승.. 시벌.. 신토불이 조오오오타..”
“갱은?”
“장승은 갱을 못 가요.”
정글의 미래도 깨끗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