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STAR WALKIN
[ 7위의 성남 스톰, 평소보다 조금 이른 작별.. “마지막 경기를 온라인으로 마무리하게 되어 애석” ]
[ ‘강팀’들을 상대로 세트 승을 따냈던 돌풍의 제주 F.L.E., “우리도 하면 된다. 가능성을 봤다. 8위라는 성적은 아쉽지만 옆에서 본 8은 인피니트, 무한이다. 다음 시즌을 기다려달라. 응원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 ]
[ 수문장의 추락. 수원 해머스, “누가 헤임달의 최후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가만두지 않을 것..” ]
[ “F 팸! 어디가? 우리 F끼리 뭉치기로 했잖아..” 사실은 ‘P’였다, 울산 피닉스. 트릭스터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쓸쓸한 퇴장 ]
정규 시즌의 종결.
일부 팀은 더위가 가시기도 전에 시즌을 마무리하며 여름휴가를 갈 수 있게 됐고.
[ 대구 유니버스와 광주 미라쥬의 순위 결정전, 끝내 “방패” 사우전드(김진승)를 뚫어내지 못한 “창” 써머(최정인).. ]
[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승부.. 결국 미라쥬의 방어력이 ‘웃었다’ ]
[ 광주 미라쥬 감독 김병우, “위기는 곧 기회. 곧이어 있을 1R 2경기 미리보기” ]
[ 대구 유니버스 감독 김동원(Jack), “어차피 다음 주에 다시 만날 팀, 전략을 다 봤으니 분석팀을 총동원해서 읽어버리겠다” ]
[ 미라쥬 감독, “유니버스는 벌떼 LOS를 하는 팀. 인원이 많다고 좋은 건 아니다. 우리는 일당백.” ]
[ 유니버스 감독, “과연 그럴까? 우리는 1+1=2가 아니라 3이 되는 팀.” ]
[ 미라쥬 감독, “1+1은 창문 아닌가?” ]
[ 유니버스 감독, “미라쥬 감독님은 옛날 스타일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실 것 같다, 물론 경기 이야기” ]
[ 미라쥬 감독, “해외파들은 이해 못 할 코리안 감성, 유럽으로 다시 보내드리겠다” ]
예전부터 상당히 가까웠던 어떤 두 팀은.
다양한 인터뷰를 앞세우며 플레이오프에 대한 기대감을 자극했다.
[ (일정 미리보기) 3위 서울 빅스와 6위 부산 호넷의 P.O 1R 1경기, 차주 수요일 ]
[ 부산 호넷 감독 차규정, “드디어 플옵 참전! 우리의 새로운 락 스피릿을 제대로 보여줄 것” ]
[ 서울 빅스 감독 하상우(Double), “락 스피릿? ‘나락’의 ‘락’? 고마워요 FWX!” ]
어떤 팀은 행복해하고 있었고.
[ 인천 트릭스터, “언제나처럼 그곳에서 만나요” ]
또 어떤 팀은 당연히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 대전 FWX, “그저 앞으로 걸어 나갈 뿐” ]
그리고 꾸준히 내딛는 한 팀도 있었다.
[ (단독) 유니버스 최정인(Summer), “내 적수는 권건 뿐이다” ]
- 얘가 뭐래? 미라쥬나 이기고 말해
- 이 형 또또 뭐 이상한 거 봤지
- 권건 바이럴 왔니?
- 병 형신이야?
조금 이상한 사람도 있었고.
[ (LKL) 정규 시즌 순위 확정 완료, 월챔 일정으로 지체 없이 플옵 돌입! ]
#
아쉽지만 LOS 파크의 개장은 플레이오프 2라운드부터.
애석하게도 우리는 네 팀 중 한 팀과 LOS 파크에서 경기를 치르게 될 것이다.
어떤 게 아쉽냐고?
이유찬이 온라인 경기에서 강점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처음에 오프라인 경기에 쉽게 적응한다고 생각했는데.
온라인 경기를 진행해보니 이유찬의 성장 속도가 경기장이라는 환경적 요소에 가려져 덜 드러난 것 같다.
이유찬도 중압감이라는 걸 가지는 걸까.
어쨌든 5판 3선승제이니만큼 좀 더 집중력이 필요한 상황.
온라인이었으면 좀 더 유리했겠지만, 어차피 이런 요행이 또 발생할 리는 없으니 차라리 잘 됐다.
매도 먼저 맞는 게 편하니까.
수요일과 목요일에 3위부터 6위까지의 1라운드가 진행되고.
우리는 그 주의 일요일에 2라운드 2번째 경기를 진행한다.
그리고 그 다음 주 일요일에 바로 결승.
상당히 촉박한 일정이지만 선발전에 월챔까지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
나는 몇몇 선수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받았다.
- 에스티엠 킹 : 야; 건방진 애^^;;;;;
- 에스티엠 킹 : 이겨라ㅋ;;;;
스톰의 미드 강준윤.
- STM 강수달 : 안녕하세요^^
- STM 강수달 : 힘내요 권건 선수^^
- STM 강수달 : 누가 됐건 원딜 좀 많이 패줄래요? 다음 시즌 마우스도 못 쥐게^^
스톰의 원딜 강수달.
- 농구왕케너비스 : 스톰 이겨줘서 땡큐 힛ㅋ 드뎌 플옵ㅠㅜㅜㅋ
- 농구왕케너비스 : 건코 떡상 ㅠㅜㅠㅋㅋㅋ 나 어캐 친추햇누ㅋㅋㄹㅃㅃ
- 농구왕케너비스 : 민성이가ㅋㅋ
- 농구왕케너비스 : 아 걔 민성이 우리 정글요 세모라고
- 농구왕케너비스 : 걔가 완전 팬이래ㅋㅋ 나중에 팬 미팅 한번 해줘요
- 농구왕케너비스 : 성격 더러운 지운이 형도 잘 부탁하고
- 농구왕케너비스 : 근데 내가 더 잘하는 거 알죠ㅋ 연락해 알았지
- 농구왕케너비스 : 진짜 진심 찍고
호넷의 원딜 목해인.
그리고 2군 동료들, 해설자 동현이 형을 비롯해 부모님이나 잘 기억나지 않는 친구들까지.
무수한 메시지로 모든 답장을 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미리 만들어놨던 포맷의 답장을 작성해서 붙여넣기 했지.
이런 것도 하다 보면 늘거든.
그런데 유일하게.
- 정글맘에안드네 : 야
- 정글맘에안드네 : 너 질 거야
- 정글맘에안드네 : 백퍼 진다 왜냐?
- 정글맘에안드네 : 우리가 올라갈 거거든
악담을 퍼붓는 사람이 있었다.
- FWX GwonGun : 누구시죠?
- 정글맘에안드네 : 뒤질래?
유니버스의 탑 최정인.
이 사람은 정말 지치지도 않는다.
나는 포지션별 성격론이 틀릴 때가 많다는 걸 많이 느꼈는데.
최정인만큼은 정말 탑이 아닌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이다.
우리 원딜이나 미드가 이런 성격이라고?
난죽택.
- 정글맘에안드네 : 형이 포변을 하려고
- 정글맘에안드네 : 내년에 딱 기다려라
정글로?
농담도 참.
정글 누누밖에 할 줄 모르잖아.
이제 와서 포변은 나이가 좀 많으신 것 같은데.
- 정글맘에안드네 : 너 왜 우리한테는 이기고 빅스한테는 짐?
- 정글맘에안드네 : 그리고 내가 말 거는 거 다 씹고
- 정글맘에안드네 : 달면 뱉고 쓰면 삼키냐???
- 정글맘에안드네 : 솔직히 우리 만나는 거 무서워서 그러지
그럴 리가 있어?
바보랑 만나면 우리가 좋지.
사실 반말을 허락한 적도, 친하게 지내자고 한 적도 없지만.
매번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오는 이 관계가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오히려 항상 변화가 없는 사람은 고맙기도 하다.
- FWX GwonGun : 근데요 형
- 정글맘에안드네 : 어?
- 정글맘에안드네 : 머라고
- FWX GwonGun : 형
- 정글맘에안드네 : 어 말해 건아
쉽다, 쉬워.
- FWX GwonGun :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 정글맘에안드네 : 어어
때론 채팅의 속도만 봐도 상대의 집중력을 알 수 있다.
내 말을 기다리고 있을 최정인의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온다.
- FWX GwonGun : 들어주실 수 있어요?
- 정글맘에안드네 : 아ㅎ 당연하지ㅎ
- 정글맘에안드네 : 근데 들어보고
- FWX GwonGun : 형만 할 수 있는 일인데
- 정글맘에안드네 : 그래???
- FWX GwonGun : 어려우면 됐어요
- 정글맘에안드네 : 일단 말해봐ㅎ
- 정글맘에안드네 : 나 형이야ㅎ 안되는 건 없어ㅎ
이거 참.
말만 잘하면 FWX로 넘어오겠네.
#
서머 시즌, FWX는 드라마틱한 승리를 이어왔지만.
팀 자체가 ‘최강’이라거나 ‘약점이 없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정글을 중심으로 하는 날카로운 운영과 항상 이득으로 이어지는 교환이 FWX의 주된 전략이었고.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체급이 좋은 미드와 터지지 않는 바텀.
그리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탑이었다.
선수들, 특히 원거리 딜러는 포지션 상 어리다고 말할 수 없었지만.
의외로 가장 피지컬과 손목이 중요할 것 같은 원딜에게도 경험과 원숙함은 필수다.
먼 과거 원딜 캐리 원툴이었던 FWX에 새로운 전략들이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바텀의 부담감도 줄어들었고, 여기서 발생하는 작은 문제점 역시 감코진이 마련한 다양한 전략을 통해 최소화됐다.
“나는 외동이야.”
“저도 그래요.”
그 중, ‘티타임’이라고도 부르는 이 시간.
“은호는 형이 있다더라. 옛날엔 그게 부러웠어. 누나나 여동생보다는 형이나 남동생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곽지운은 테이블 위에 놓인 아이스 초코를 좌우로 흔들었다.
“왜요?”
“같이 LOS 하기 좋잖아. 편하게 욕도 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듀오 뛰면 좋을 것 같아서.”
주에 한 번, 약 15분.
정말 차 한잔할 시간 정도를 내서.
선수들은 두 명씩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눈다.
권건 역시 FWX에서 처음 겪어보는 제도.
온라인 업무가 일상화된 외국계 기업에서 처음으로 시행한 방식으로, 업무 이야기보다는 대개 반려동물이나 취미, 호불호 등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다.
평소 온라인으로 접하는 사람을 깊이 들여다봄으로써 각자의 유대 관계를 깊게 하고 업무 효율성을 올리기 위함이다.
다대일로 놀리며 사적인 부분을 밝히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을 분리하는 형태로 각 선수의 사회성과 유대감을 기르는 것.
물론 원하지 않는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된다.
초기에는 사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던 방식이었지만 팀워크가 필수인 선수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나쁘지 않았다.
조금 어색하긴 해도 남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 섭섭했던 점, 고마웠던 점 등을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근데 지금 와서 동생이 생긴다고 생각하면 그건 좀 그래.”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긴 하네요.”
“그치? 근데 우리 엄마아빠는..”
그냥 휴식이라고 생각해도 괜찮았다.
시간을 오래 잡아먹는 게 아닌데다, 서로 사이가 나쁜 선수들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지금은 너희가 내 가족이고 동생이지. 가끔보면 오히려 네가 형 같기도 하지만..”
권건은 곽지운의 이런저런 말을 들으며 따뜻한 컵을 양손으로 감쌌다.
“이제 금방이네.”
“네.”
플레이오프 1라운드가 끝났다.
빅스와 호넷은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빅스의 셧아웃으로 끝이 났고.
미라쥬와 유니버스는 다시 한번 용호상박을 보여줬지만 5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미라쥬가 승자로 거듭났다.
트릭스터는 미라쥬를 상대로 지목했다.
그래서 FWX의 상대는 자동으로 빅스.
여기서 이기면 이제 정말 결승이다.
“빅스 애들은.. 아니다. 지금 이런 얘기 하지 말자.”
꿈꿔왔던 무대까지 한 걸음.
우승? 준우승? 월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말이다.
곽지운은 잠시 손을 저어 상념을 떨쳐냈다.
“있잖아.”
키 작은 주장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최은호, 걔.”
이 스물 세 살의 청년은 서머, 스프링, 서머, 스프링을 거슬러 올라가는 먼 과거.
8, 9위를 하기 전인 FWX의 2021시즌에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성적을 남겨 본 마지막 남은 사람이다.
“잡아줘서 고마워.”
“별말씀을요.”
곽지운은 짧게 깎은 손톱을 매만졌다.
“그리고 이번 습격 이슈 말이야. 뉴스에는 안 나오더라.”
“다행 아닌가요?”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모든 이들이 힘을 모았다.
“맞아. 다행인데..”
“?”
“나. 최은호네 집에 놀러 가본 적이 있어.”
곽지운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여기는 티타임이 진행 중인 작은 피드백 룸 안.
평소 같았으면 웃고 떠들며 휘발되었을 감정들이.
플레이오프 2라운드의 중압감에 터져나갈 듯이 방 안을 메운다.
“은호네 할머니는 정말 좋은 분이셔. 그때 그 마그네슘 팔찌?”
“게르마늄 팔찌요.”
“아. 맞아. 그거. 챙겨주셨잖아. 근데, 사실 할머니께서는 최은호가 뭐 하는지 잘 모르셔.”
“...”
“하하. 이스포츠라고 했더니 ‘우리 손주 운동선수냐, 테레비전에 나오는거냐’고 하셔서 그냥 그렇다고 했대. 근데 야구랑 축구, 농구 이런 건 뉴스 보면 스포츠 코너에서 나오잖아..”
곽지운은 머리를 긁었다.
“우리는 안 나오고.”
연고지 개념이 생겼다 한들.
여전히 야구, 축구 등 명실상부한 1티어 스포츠가 있고.
그 뒤로 올림픽 등의 경기에서 다뤄지는 스포츠들이 줄을 잇는다.
게다가 이스포츠의 경우, 뉴스의 주 시청자층 및 게임 산업이 한창 악역을 도맡았던 역사로 인해 아직 보수적인 곳에 위치한 상황.
“...”
권건은 침묵을 이었다.
“그래서 최은호네 할머니께서는 맨날 뉴스만 기다리고 계시더라. 우리 손주 언제 나오냐고. 내가 갔을 때도 그랬어. 젊었을 적에 고생을 아주 많이 하셨다나 봐. 그래서 항상 방 안에서..”
“그런 줄.. 몰랐네요.”
“응. 걔는 이런 말 안 하니까.”
곽지운이 어색한 듯 책상 모서리를 매만진다.
“그래서 걔가 SNS에 집착한 거라고도 생각해. 그냥, 멀리멀리 알려지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어.”
“음.”
권건은 드물게 묘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가끔은 나도 그런 생각을 했어. 내 세상은 LOS가 전부였는데, 머리에 피 좀 마르고 본 세계는 정말 넓더라. 그래서 내가 왜 이런 비인기 종목을 했을까. 세계인이 열광하는 스포츠 선수가 됐으면 어땠을까. 하고.”
“상대적으로 그렇긴 하죠.”
“근데, 나는 LOS로 만들어졌고 FWX가 키웠으니까. 내겐 여기가 최초고 최고야.”
말에 웃음이 섞인다.
“그래서 나도 최은호가 뉴스에 나오는 걸 바라는 것처럼, 이 리그가 정말 정말 커져서.. 내가 은퇴하고, 내 자식이 LKL에서 데뷔하고, 펜타킬을 먹고, ‘아빠! 나 펜타킬 했어!’하고 전화를 해줬으면 해.”
“그럴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결혼부터 해야겠지만.”
FWX의 주장은 개구쟁이같이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