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화. 탑 차이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LKL 스프링 2번째 라운드에 오신 여러분을 환
영합니다. 오늘은 현수진, 이승수 해설 위원과 함께 합니다. 오늘의 두번째
경기입니다. 경기 성남 스톰과 대전 FWX의 경기 소개해드립니다!”
“스톰은 현재 4위입니다. 수요일에 있었던 미라쥬와의 경기에서 이기면서 한
걸음 나섰습니다. 3, 4, 5위가 모두 8승 5패로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죠.”
“위, 아래로 모두 승점이 1점씩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요. 그래서 오늘 경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한두 번의 승리가 1, 5위를 가릅니다!”
“그런데 지난 FWX와 트릭스터의 경기에서 이변이 일어났죠.”
“그렇습니다. 상위권 팀들 같은 경우는 호재가 떨어진 거예요. 이대로 1위 자
리를 내어줄 뻔하다가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게 다 FWX 덕분이죠?”
“스톰도 절대 4위에 머무를 팀이 아닙니다. 작년 스프링과 서머 1위를 모두
거머쥐었던 대단한 강팀입니다! 이상하게 월챔과는 인연이 없지만요. 하하.”
- 1위만 해놓고 중국한테 져주는 승부 조작 팀
- 내수용ㅡㅡ
- 여름까지의 스톰
- 이번에 붐보이 데려왔으니까 ㄱㅊ
- 붐보이가 중국 우승권 선수도 아닌데 뭔ㅋㅋ
- 아직 적응 덜한거 아님?
- 무적 FWX! 무적 FWX! 무적 FWX!
“그렇지만 FWX가 만만한 팀이 아니라는 걸 모르시는 분들은 없을겁니다. 이번
시즌 최대 이변이었죠. 이야. 정말 가슴 뜨거워지는 승리였습니다.”
“권건 선수가 스톰에게 선전 포고를 하기도 했구요.”
“예! 거기다가 스톰은 권건 선수의 친정 팀 개념이지 않습니까. 2군이긴 했지
만요. FWX에서 날개를 펼친 이 선수가 스톰에게 뭔가 보여줄 수 있을지, 증명
할 수 있을지가 기대됩니다!”
“하지만 두 팀은 분명히 체급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특이한 전략은 이미
한 번 보여줬죠. 과연 이게 오늘도 통할까요?”
“아무래도 어렵겠죠. 그리고 스톰은 서열정리를 하고 싶을 겁니다! 자, 이제
부터 1 세트 경기부터 만나 보시죠!”
#
구단들 중 FWX의 트릭스터 전의 핵심 전략을 깨닫지 못한 팀은 없었다.
첫 번째 세트는 왕귀형 챔피언을 골라 탑을 묶고, 정글러가 드리블하며 하체
오브젝트를 중심으로 시간을 끌었다.
두 번째 세트는 바텀에서 빠른 템포를 가져가면서 정글 중심 스노우볼을 굴렸다.
그럼 이건 어떻게 뚫어야하는가?
쉽다.
밴픽이다.
장인 픽이 자주 안나오는 이유와 같다.
언젠가 다시 꺼낸다면 통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오늘은 아니다.
그 사이 메타가 변해 해당 전략의 핵심 픽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그리고 한 번 전략이 노출된 이상, 승리 플랜까지의 수행 경로는 치열하게 연
구된다.
일회용이다.
물론 이걸 벗어나 LOS판을 흔들어놓는 좋은 전략이 완성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할만한 전략들의 특징은.
밴과 픽으로 간단하게 막을 수 없을만큼 유연하면서.
인게임의 안정성을 꾀함과 동시에 변수를 최대한 닫아두는 식이다.
그래서 당장 시비루는 밴이다.
“트릭스터처럼 휘둘려주지는 않겠다는거지.”
“저희가 트릭스터를 이긴 덕분에 스톰은 지금 신이 났을 거예요. 반드시 우리
를 잡으려고 할 겁니다.”
트릭스터의 가장 큰 패인 중 하나는 FWX를 만만하게 봤다는 것이다.
하지만 FWX가 트릭스터를 이기면서 잡은 타이밍.
성적은 상대적이다.
트릭스터가 미끄러졌을 때를 노려야한다.
스톰은 이 경기를 져 줄 생각이 없다.
“탑 밴이 안하는거 보니까..”
“오늘 경기 레드 스타트인게 아쉽네요.”
선픽을 빼앗긴다.
셰나다.
“아쉽네.”
시비루는 막고, 셰나는 빼앗았다.
성남 스톰은 틀림없이 FWX를 경계하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아주 많지는 않았겠지만,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쓸 수 있는 전
략도 다시 한 번 훑었을거다.
지난 트릭스터 전에서 핵심이었던 안정적인 바텀, 그 중심에 셰나가 있었다.
FWX는 밴 카드에 여유가 없었다.
특히나 탑에서의 무력 차이가 심하게 난다.
밴 카드는 대부분 탑에 소모됐다.
혹시 경계하지 않으면 한번 셰나를 써볼까 했지만 빼앗겼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탑을 밴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어? 어어어어!”
“울라프! 울라프가 탑으로 갑니다!”
“꽤 오랜만에 탑 울라프가 나왔어요! 이거 상당히 많이 꼬았던 거거든요!”
“네! 저희 모두 스톰의 울라프 정글을 염두에 두고있었는데! 스톰이 마지막
순간에 정글을 틸론으로 확! 회전시켜버렸죠!”
“이건 저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김지훈 감독의 기가 막힌 한 수!”
“LKL 무력 원탑이라고 불리는 글로리 선수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픽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분명히.
성남 스톰의 글로리는 울라프에 대해 유의미한 지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주머니에 넣고 깜빡했던 사탕이라도 꺼내먹듯.
정글과 스왑을 해버린다.
모든 포지션이 강하다는 것은 결국 이런 것이다.
“FWX가 의표를 찔렸습니다! 오늘 밴픽 정말 재밌는데요!”
“스톰에서 울라프를 탑으로 보내고 틸론을 정글로 기용하면서! 죠이, 셰나 탐
조합까지 가져갑니다!”
“FWX는 최종적으로 빅터르까지. 그라가즈, 자르반, 칼리 레오니로 상당히 안
정적인 조합을 완성시켰네요. 이번 경기 어떻게 될까요? 지금 바로 만나보시죠!”
#
결과부터 말하자면 상당히 힘든 게임이었다.
“이게 말이죠. 울라프가 상당히 좋은 픽이 됐습니다.”
“이승수 해설님. 왜죠?”
“FWX가 상대 탑인 글로리 선수를 크게 견제하면서 실제로 탑에서 쓸만한 카드
가 거의 남지 않았었어요. 근데 울라프라는 챔피언 자체가 정글러로 쓰임과
동시에 솔랭에서는 꽤 인기있는 탑이거든요. 불완전성 때문에 리그에서 아주
많이 쓰이지는 않지만, 이 챔피언의 메커니즘이 중요해요.”
체급 차이가 여실히 느껴지는 경기였다.
예측을 한다고 해도 예외가 없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일단 붙어서 싸우기 시작하면 정말, 굉장히 강합니다. 벽을 넘는 다리를 포
기하는 대신 팔 근육을 길렀어요.”
“그러고보면 FWX의 조합이 거리를 벌리면서 싸우기보다는 모두 팔이 짧은 편
이죠?”
언제나 분석은 승자 중심적으로 돌아간다지만.
“울라프의 최고 장점은 CC기에 강하다는 건데요, 이게 플레이하다보면 변수는
있지만 이론상 정말 깔끔한 것같아요. 탑 구도로도 괜찮고, FWX의 자르반이나
레오니 같은 챔피언들도 CC기 중심이거든요. 판이 깔렸습니다.”
이번에는 진짜다.
“거기다 받쳐주는 기동성 좋은 정글러가 있구요. 이러면 보통 틸론을 뽑았을
때 강요되는 어떤 캐리력. 그런 부분에서 많이 나눠가질 수가 있겠죠.”
그리고 최고의 검은 결국.
“아.. 내 쫌 많이 밀린다. 집 가야할 것 같은디.”
“괜찮아. 괜찮아, 봉구야. 침착하게 해. 바텀에서 힘 내볼테니까.”
양산형 방패를 뚫어버린다.
“쏘리, 쏘리.”
문봉구는 멘탈이 꽤 강한 선수다.
하지만.
“울라프가 굉장히! 역동적인 라인전을 펼칩니다! 승모근 올라갈 때마다 그냥!”
“도끼, 도끼가 핵심인데, 뭐라도 붙었나요! 도끼에 쏘울이 있어요! 뭐가 붙은
거 아닌가요! 왜 이렇게 잘 맞춰요, 글로리!”
“또 다시 솔로 킬!”
“그냥, 그냥 들어가서 때립니다! 이리와! 팬시! 니가 그렇게 잘 맞아? 소문
났더라! 내 도끼 맛 좀 볼래?!”
멘탈이 강하다고 딜이 더 나오는 건 아니다.
문봉구는 약간 억울해했다.
“아, 이게, 진짜. 진짜 이게 죽을 각이 아니었는디.”
사방에서 엄청난 함성이 터진다.
상대는 정말 감이 좋은 선수다.
프로 대 프로에서의 싸움에서, 논타게팅 스킬을 모두 맞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거야, 피할 수 있으니까.
세상에 백퍼센트란 없으니까.
하지만 없는 각도 스킬샷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그것이 슈퍼 플레이고 스타 플레이어들이 하는 거다.
“이게, 바텀에서 FWX가 최선을 다해 주도권을 잡아보고 있는데!”
“탑이! 탑이 너무 잔인해요! 탑이 터진단 말이에요! FWX 비상!”
- ㅋㅋㅋ아 밑천드러나네ㅋㅋㅋ
- 별거 아니었죠?
- 괜히 긴장함ㅋㅋㅋ존나 뭐 있는줄알고ㅋㅋㅋ
- 트릭스터 애들은 얼마나 못한거임ㅋㅋㅋㅋ
- 글로리ㅋㅋ 죽이고나서 인장 띄우는거 지리네
“울라프가 지금 레오니를 완전히 카운터쳐버리거든요, 잘 큰 상태로 달려오는
울라프? 이거 못 막아요! 비켜, 저리 비켜!”
심리전.
한 번 말리기 시작하면 사람을 어지럽게 만드는 그것.
문봉구는 자신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지고 싶지 않아보였다.
“우리 용 볼게, 탑 간다. 곧 도착할거야.”
“내 함 버텨볼게. 어떻게 배로 잘 비비면..”
누구에게나 완전히 말리는 순간은 온다.
게임 속에서 말리는 건 연패의 순간과 비슷하다.
그럴 때 가장 좋은 건 잠시 휴식을 취하는거다.
심호흡을 하거나 스트레칭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혀라.
..라고 멘탈 코치님들은 말한다.
근데 이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당장 지고 있는데 경기 중에 그걸 어떻게 해.
문봉구가 딱 그렇게, 여유가 없어보였다.
상대는 제대로 탑을 노리고 온 듯 숨 쉴 틈도 없이 몰아붙였다.
내가 탑에 가줄 틈도 없이 망해버렸다.
이걸 억지로 풀어주겠다고 가면 더 상처가 벌어진다.
“음..”
솔직히 이 정도로 터져버린 건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만큼 오랜만이다.
벌써 탑 솔로 킬만 두 번, 눈 멀쩡히 뜨고 코 베인 것도 한 번.
이 정도면 문봉구와 상대 탑이 지금 서로 자리를 바꿔서 플레이를 해도 울라
프 쪽이 이길거다.
“그래도 빅터르와 자르반이 미드 방향에서 전투를 유도하면서! 아, 지금 죠이
가 전투에 참여하려다가 살짝 드리블되면서 귀환 타이밍이 꼬였죠!”
“FWX가 용을 다시 한 번 차지합니다! 굉장히 좋은 엇박자 시도에요!”
그래도 꽤 힘이 있는 바텀 쪽으로 메이킹을 해나갔지만.
운영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차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울라프가 내려오고 있어요! 그라가즈가 더 이상 탑
에 울라프를 잡아 둘 수가 없습니다! 이미 탑 라인전이 끝나버렸죠!”
“울라프가 진짜 싫어하는 건 퓨어 딜입니다! CC?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울라프, 유체화 켭니다! 달려요! FWX가 무수한 점멸 세례로 응답합니다! 솔
직히 잘 큰 울라프가 빨개지면서 쫓아오면 빠지는 수 밖에 없어요!”
“스톰이 자연스럽게 바론을 가져갑니다!”
이게 하위권 경기였다면.
분명 뒤집을 방법이 있었을거다.
그렇지만 상대는 성남 스톰이다.
경기는 넘어갔다.
상대의 모든 밴픽을 다 예측하고 준비해 올 수는 없다.
“FWX, FWX! 핑퐁, 핑퐁을 기가 막히게 하긴 했는데!”
“아니, 이게 뭔가요! 스톰! 칼리가 죽을 때 까지 창을 꽂는데! 죽을 때 까지
창을 꽂아도 죽지를 않아요!”
“지금 그라가즈가 전혀 탱킹이 안돼요!”
- 돔황챠..
- 탑 차이 존나 심하네;;
- 하체가 잘 해주면 뭐함?ㅋㅋㅋ
- 아아 이것이 “체급 차이”
- 스톰 상남자 엣큥
-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킬 교환은 어느정도 하는 데 성공은 했지만 지금 상황이 절대 좋지 않아요.
방금 전 전투 판단이나 결단력은 정말 괜찮았거든요? 근데, 스톰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FWX!”
“잘 버티면서 시간을 지연시키고는 있는데, 셰나의 존재도 너무 불편해요!”
문봉구는 언젠가부터 말수가 아주 적어졌다.
내게 이런 경기를 뒤집어 낼 수 있는 초능력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쯤 되면 버그가 아닐까?
솔직히 머리에 좀 열이 오른다.
탑 차이니 뭐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근데 이렇게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게임이 끝나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셰나, 셰나도 이제 충분히 힘이 있어요! 유지력부터 시작해서 압도적으로 유
리합니다, 스톰!”
“성남 스톰! 성남 스토오오오옴! 서부 최고의 상체! 우람한 폭풍! 스톰이 1
세트를 가져갑니다!”
“GG!”
그리고 세트가 끝난 뒤.
자리에서 일어나는 문봉구는 평소와 달라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