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43화 (44/326)

043화. 이걸 뺏어?

곽지운의 졔리가 쓸고 지나간 곳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FWX가! 에이스를! 달성합니다!”

“용을 가져간 FWX가 바론으로 향합니다! 챙길 건 챙겨야겠죠!”

“방금 전 한타는 정말 예술이었어요! 다시 보고 싶은데요! 아, 지금 나오네요!”

“네, 권건 선수의 헤크림 무빙에 텐 선수의 람블이 살짝 앞으로 딸려나가면서

순간적으로 피닉스 선수들의 시선이 전부 헤크림으로 쏠렸죠. 그 때 뒤쪽 포

지션을 잡았던 라온 선수의 아자르가 4인, 4인에게 궁극기를 적중시켰습니다.”

9위 피닉스와 10위 FWX의 싸움.

인기가 많지 않은 경기다.

물론 좋은 경기를 보여줄 때도 있다.

하지만 꽉 막힌 운영과 패배를 두려워하는 움직임은 시청자들을 답답하게 만

들기 일쑤다.

그래서 오랜만의 완벽한 한타에 해설진들은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 위로 다시 한번 헤크림의 궁극기가 덮이고 졔리가 프리딜을 하는 구도가

나오면서! 뒤에 빠져있던 진도 도망칠 수가 없었어요!”

“졔리의 추격을 따돌리기는 쉽지 않죠! 이렇게 전투가 끝나면서 FWX가 바론까

지 챙겨갑니다!”

“처음부터 탑과 정글을 파고든 밴픽을 했기 때문에 불균형한 조합이었죠! 약

점이 드러났어요!”

이후 피닉스는 바론 버프와 함께 밀고 들어오는 FWX의 공세를 막기 위해 다양

한 방식의 전투를 펼쳤지만.

- 저게 되겠냐고ㅋㅋㅋㅋ

- 녹턴 혼자 졔리 물면 뭐해ㅋㅋㅋㅋ

- 스노우볼은 무너졌냐?

- 구른 적이 없는데요ㅋㅋㅋㅋㅋㅋ

빈틈을 내주지 않는 FWX에 의해 무위로 돌아갔다.

“초반에 골드 차이를 냈던 게 마치 꿈만 같아요, 지금은 피닉스가 이길 방법

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조심스럽게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아무래도 많이 불편한 밴픽이었죠.

권건 선수를 픽으로 공략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피닉스도 최대한 막아보려고 노력해보지만! 진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쌍둥이 타워! 정말 마지노선이에요! 무너지나요, 무너지나요! 미니언 웨이브

는? 웨이브! 오고 있어요!”

“아, 싸움을 걸어보지만! 아무 위협도 되지 않아요, 피닉스! 이렇게 따로따로

싸우면 안되는데..!”

“결국! 우물 킬까지 내면서 에이스를 띄웁니다!”

“두 팀, 결국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서! 권건 선수의 데뷔전 첫 세트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GG!”

경기장에 환호가 울려퍼졌다.

- 우리 신인을 만만하게 보지 마라

- 진 하지 말라고 지금 메타에 맞지도 않는데

- 과연 진이 문제일까요?

- 감코 일 안하냐?

- 우리가 꼴픽박아서 진거임ㅋㅋㅋ 다음 세트도 이럴 것 같음?

- 솔직히 피닉스가 던져줬다

- 다음 세트도 권건 나오나요???

- 당연히 나오겠지

- FWX라 불안한데ㅋㅋㅋㅋㅋ

- 신인 멘탈 관리 차원에서 권건 빼주는 게 나을지도?

- 우리 멘탈은 생각 안해줌?

- 트릭스터 게 섯거라! 슈퍼루키 FWX가 간다

- ? 너네가 왜 루키?

- FWX는 권건 이후 “신생 팀”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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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1라운드의 마지막 주차의 첫번째

날인 오늘, 분석 데스크에는 아이템 강기수 해설 위원과 롤랑 최민웅님이 함

께합니다. 저는 류수정입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반갑습니다.”

세트 종료 후 분석 데스크에서 화제가 된 건 FWX 승리였다.

시즌 내내 두 번 밖에 챙기지 못한 세트 승.

오늘 드디어 세 번째 세트 승을 따냈다.

“이번 첫 번째 세트는 아주 오랜만에 FWX가 챙겨간 승리인데요. 그 외에도 반

가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바로 ‘권건’ 선수의 데뷔전이라는 거죠.”

“맞습니다. 이 선수는 2군에서 콜업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분석 데스크는 권건의 데뷔에서 경기 내용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저는 몇 번이나 권건 선수의 디테일을 확인하기 위해서 돌려봤어요.”

“중요한 장면이죠. 이 바위게가 경기의 승부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획

을 짠 모양입니다. 정글링도 좋았죠.”

대화가 이어지며 각 선수들의 오늘 기량과 달라진 점들에 대한 칭찬이 쏟아진다.

“..다만 피닉스에서 특정 전략에 매몰되면서 지나치게 밸런스가 망가진 조합

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네. 저도 이 조합은 뭘 하려는 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상대 정글을 원포

인트 마크하려고 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보통 팀을 상대로 이런 조합을 꺼내든

다고 생각하면, 음.”

“그렇군요. 다음 세트는 좀 더 나아진 면모를 보여줘야겠네요.”

피닉스에서 놓친 기본적인 실수들도 지적됐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

이번 세트의 POM이 선정된다.

“이번 경기의 플레이어 오브 더 매치! 권 건 선수입니다.”

“만장일치였네요.”

“권건 선수는 데뷔하자마자 첫 경기부터 POM을 가져가게 되었는데요. 이번 세

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벌써부터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저도 권건 선수의 데뷔 첫 승리를 응원합니

다. 경기, 만나보시죠.”

#

“좀 쉽게 생각했나보다.”

“얘들아, 괜찮아. 통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였으니까.”

피닉스의 감코진은 코치 박스로 들어온 선수들을 토닥였다.

피닉스는 성적이 좋지는 않았지만 제법 합이 잘 맞는 팀이었다.

서로의 아이디어를 존중하고 도전 정신이 뛰어난 편이다.

이번 조합 역시 엔트리가 공유되고 나서 서로 대화를 나눈 뒤 결정됐다.

결과가 좋지 않았을 뿐.

“이번엔 우리가 잘하는 조합으로 가자. 리스크가 컸어. 정석대로 상대해보자.”

“네, 그냥 전에 폴리 선수 상대하는 느낌으로 갈게요.”

피닉스의 최필립 감독은 잠시 그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할까 망설였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정도로 하면 괜찮을 것 같다.”

피닉스는 다같이 구호를 외치고 기존에 준비했던 밴픽 구도를 침착하게 돌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대편에 있는 FWX 코치 박스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야! 얘들아, 하면 되잖아! 진짜 최고였어. 잘했어!”

성과에 대한 인정과 칭찬은 선수 관리의 기본이다.

하지만 지금 FWX 감코진은 결코 그런 이론 따위에 얽매인 기분이 아니었다.

“솔직히 꼴 좋다.”

곽지운이 들리게 말했지만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피닉스가 정글을 파서 게임을 쉽게 가려고 했다는 것을 모두 얄밉다고 생각했

기 때문이다.

“자, 너무 신내지 말고, 다음 경기 준비하자.”

그렇게 말하는 박진현 감독의 입꼬리는 올라가서 내려올 줄을 몰랐다.

이번 시즌 처음으로 ‘진짜’ 승리를 맛봤다.

“저 다음 세트도 출전하나요?”

“당연하지. 무슨 소리야.”

권건의 물음에 박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 내내 신입 정글러는 안정적이였다.

설혹 상대가 정상적인 픽을 들고 나오더라도 지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그럼..”

“응, 우리 건이. 뭔데, 말해봐.”

박 감독의 눈빛은 따뜻했다.

“우리가 반대로 픽 해보면 어때요?”

“어?”

“상대편 픽이요.”

잠시 박 감독은 침묵했다.

“음, 그건. 음.”

“야, 막내. 게임이 감성이야?”

“깍지 너..”

“근데 난 감성이야. 나 진 가능.”

“미드 녹턴.. 재미로 좀 해봤어. 할 줄은 알아. 콜 잘해주면.”

“세츠는 좀. 솔직히 쟤네가 하는거 봤을 때도 별로였고.”

“나도 람블은..”

하지만 다소 좁은 챔피언 폭이 발목을 잡았다.

“앞 라인을 세츠 대신 봉구 형이 준비했던 탱커 쓰고. 저도 준비했던 릴리야

쓰고. 미드 녹턴, 바텀 진이랑 유틸폿 어때요.”

권건의 제안에 최수철 코치가 나섰다.

“될 것 같은데?”

“음..”

“녹턴 빼면 준비되어 있었던 픽이니까요. 상대가 진이나 녹턴을 의식할 가능

성은 낮으니까 밴픽도 편하고.”

“그래도 안정적인 픽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김한빛 코치가 불안감을 표시하자, 가만히 서있던 권건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한 대 때려주고 싶어서요.”

권건의 말이 떨어지자 세 사람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막내 너, 진짜 뭐 좀 안다? 지금 토테로스테론 돈다.”

곽지운은 감동받은 표정이었다.

“쟤네 진짜 개얄밉잖아. 아까 봤지. 응? 다들. 진짜 픽 거지같이 하지 않았냐?”

“솔직히 좀 그렇긴허지. 나 무시하는 티도 팍팍 내던디.”

“깍지야. 테스토스테론. 나도 유틸폿은 괜찮아. 전 판 보니까 우리 운영에 대

응도 못하더라.”

박 감독은 작게 감탄했다.

한 대 맞았으면 되갚아 주는 게 승부욕이다.

박 감독은 상대의 밴픽에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해놓고 물러날 생각 먼저 하

고 있었던 자신이 우스워졌다.

그래.

꼴픽해서 한 번 더 지면 어때?

어차피 여태까지 숱하게 졌는데.

최소한 상대에게 한 방 먹여줄 수는 있겠지.

그리고 내 선수들이 원하고 있는데!

“사실 원래 우리 조합에서 엄청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 식으로 가면 네가 AP 딜 다 맡아야할 수도 있어. 괜찮겠어?”

“네.”

“좋아. 그럼 상대 밴픽하는 거 봐가면서 결정하자. 일단 알겠어. 하지만 무조

건 한다는 건 아니야. 흐름상 불가능 할 수도 있다.”

선수들은 박 감독이 저렇게 말한다는 것이 허락이라는 것을 알았다.

“오케이!”

“똑같은 픽으로 패버리기. 기강 잡아.”

“건방진거 인정.”

바짝 올라온 분위기에 김 코치와 최 코치는 눈을 마주치며 피식 웃었다.

얼마만의 의기투합인지.

꼭 패배를 잊은 선수들 같다.

“다시 나갈 준비하자.”

박 감독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그 옆으로 권건이 다가왔다.

“감독님.”

“응?”

“셧아웃 가죠.”

권건이 씩 웃어보였다.

#

“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요?”

“블루 진영에서 헤크림을 뺏어간 피닉스를 상대로! 레드 진영의 FWX가 릴리야

와 녹턴을 골랐습니다!”

“세상에! 이게 뭐죠! 설마 또 다시 미드 녹턴인가요?”

“글쎄요, 그..으..? 녹턴 자체가 전 판에서 꽤 괜찮은 푸시력을 보여주기는

했습니다만 전체적으로는 완전히 틀어졌었죠!”

“여러가지로 대단한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FWX!”

- 시이발 이게 뭐지?

- 소문 듣고 왔습니다ㅋㅋㅋㅋㅋㅋ

- 아니 왜 저걸 가져가???

- 방금 보고도 또 픽하는거? 제정신인가?

- 생각해보니 FWX 감독도 비정상이긴 했음ㅋㅋㅋㅋ

- 아직도 안잘린게 용함

“이건 상당히 위험한 선택인데요? 반대로 피닉스에서는 전 판 FWX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아자르와 레오니를 가져갑니다!”

“아, FWX가 이번에는 진까지!”

피닉스의 김필립 감독은 평정심을 잃을 것 같았다.

“쟤네 지금 뭐하는 거냐?”

“우리 픽 흉내내는 것 같은데요?”

“와. 진짜 미친 사람들이네? 한번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밴이 이어집니다! FWX는 전 판에 했던 챔피언들을 밴 할 생각이 없는 것 같

아요! 꼭 해보라는 것처럼. 해봐! 해봐! 너희의 픽은 틀리지 않았다! 이제 우

리가 보여줄게!”

“픽 그대로 이어집니다! 피닉스에서도 맞대응합니다. 니네 픽 쩔더라? 졔리를

가져갑니다!”

“설마 FWX, 그대로 가나요?”

“아! 람블 자리에 요른이 들어가고 세츠는 루루로 대신합니다. 역할을 바꿨어

요.”

“그럼 피닉스, 어떻게 대응하나요! 아, 냐르로. 피닉스가 FWX를 승리로 이끈

챔프를 모두 차지합니다! 니픽쩔과 너틀않!”

- 신경전 오졌다 ㅋㅋㅋ

- 감독들 들어갈 때 잘 봐라 서로 주먹질 하나 안하나ㅋㅋㅋㅋ

- 저게 픽 두개 바꾼다고 될 일임?

- 그래도 전보다는 좀 나은듯

- 원딜 캐리 메타에 유사원딜 진이 왠말

- 한판 이겼다고 바로 던지지말라고ㅠㅠㅜ개에바야ㅜㅠ 여유부릴 때가 아니라고!

- 억장 와르르맨션

- FWX의 광기ㅋㅋ

“FWX가 릴리야 정글과 미드 녹턴 전략을 그대로 가져갑니다! 경기 준비됐습니

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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