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화. 개막
우리의 일정은 반복됐다.
솔랭을 돌리고, 피드백을 받고, 스크림을 하고, 스크림 피드백을 하고.
우리는 대부분의 스크림을 이겼고, 벌써부터 타 팀에서도 우리에 대한 주목도
가 올라가고 있다.
스크림도르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할 판이다.
감독님이 말한 부분들 중에 가장 잘 지켜지는 것은 반말하기.
가장 어려운 부분은 콜이었다.
그래도 반말하기 덕분에 팀원들은 좀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야, 이지호! 내가 커피 머신쓰고나서 캡슐 치우라고 했잖아!”
“응 나 아니야~”
“내가 봤는데?”
“응 형이 잘못봤어~ 미스 김! 커피 내리는 김에 내것도 한 잔 부탁해~”
창민이와 지호는 가장 급격히 가까워진 케이스다.
미드인 창민이는 서폿 지호가 자주 로밍을 와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 강력하게
주장하다가 결국 창민이의 실수로 둘 다 죽곤 했는데, 지호가 창민이에게 미
스 오더를 많이 한다고 미스 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도 한 잔 부탁해. 캡슐도 좀 치우고.”
낯을 많이 가리고 반말을 어려워했던 일도도 장난이 늘었고.
창민이 제법 퉁퉁한 코와 툭 튀어나온 배를 가졌는데, ‘미스’라기엔 실례가
아닐까.
모두 자기를 놀리자 창민이는 코까지 새빨개져서 툴툴거렸다.
“너네 진짜 짜증나!”
“도와줄까?”
원딜 일도가 미안했는지 몸을 일으킨다.
쟨 진짜 그냥 너무 착하다.
왕자님이 되기엔 글렀다.
“필요없어! 다 아메리카노나 쳐먹어!”
우리 미스-터 김은 성격이 별로고.
[ 아메리카노는 맛이 좋은가? ]
‘글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고.’
[ 왜 자꾸 반말하냐니까! ]
‘릴리야, 우리는 한 팀이잖아.’
[ 그런 핑계를! ]
우리 릴리도 성격이 썩 좋진 않다.
나는 감독님의 말을 잘 들을 뿐인데, 뭐.
#
[ LKL, FL 리그 개막 코 앞으로 ]
[ 대규모 리빌딩 감행한 FL - FWX, “기대해주세요.” ]
지난 시즌 LKL과 LKL FL를 모두 아쉬운 성적으로 마무리한 FWX가 새롭게 돌아
왔다.
특히 FL의 라인업은 3명이 바뀐 새로운 로스터가 화제다.
가능성 면에서 항상 높은 평가를 받았던 정글 권 건(GwonGun)을 성남 스톰에
서, AP 메이지에 강점을 지닌 미드 김창민(lilma)를 대구 유니버스에서, 그리
고 아카데미 소속의 서포터 이지호(MintCho)를 영입하면서 발돋움을 꾀했다.
양태진 감독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라며 “우리는 완전히 달라졌다” 고 덧붙
였다.
항상 풀이 모자랐던 FWX가 이번 리빌딩을 통해 유망주를 확보하고, 벽을 넘어
설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슬슬 시즌 시작이 코 앞으로 다가왔고 스크림 일정은 조금 더 바빠졌다.
프로필 사진도 찍었는데, 유찬이는 지나치게 괴상한 표정이나 포즈를 취해 모
두를 난처하게 했다.
창민이는 자신의 코는 저렇게 호박만하지 않다고 부정했고 지호는 사진을 부
모님께 보내고싶다며 따로 부탁을 드렸다.
그렇게 첫 경기 하루 전.
경험이 있는 선수들도, 없는 선수들도 모두 긴장한 기색이었다.
구내 식당인 카페테리아에는 부드러운 음식을 중심으로 준비되어있었다.
“나 두부 싫어하는데.”
“나도. 형, 우리 죽 시켜먹을래?”
“어. 난 그게 좋겠어.”
창민이와 지호는 죽을 시켜먹겠다며 사라졌고 카페테리아에는 유찬이와 일도,
그리고 내가 남았다.
“긴장된다.”
일도는 식사를 먹는둥 마는둥 하며 중얼거렸다.
“쫄았냐?”
“건이형은 괜찮아? 난 시즌 시작할 때마다 항상 속이 안좋아.”
일도가 유찬이의 말을 무시하고 나에게 물어왔다.
“난.. 뭐. 너보다는 좀 더 많이 해봤으니까.”
많이.
아주 많이, 아마도 세계에서 제일 많이.
“형이 잘해줘서 마음은 편하지만, 원딜 캐리 메타 진짜 부담돼..”
“편하게 해.”
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내가 왔으니까 우승할거다, 나에게 맡겨라 같은 말은 나오지 않는다.
나도 목표가 여기에 있는 건 아니니까.
이유찬이 해주지 않으려나?
“탑 메타되면 좋겠다. 내가 버프 다 받아먹고 캐리하면 개꿀.”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유찬이의 말에 일도도, 나도 피식 웃었다.
조용히 식사 시간이 흘렀다.
나는 후식으로 나온 귤을 주머니에 두둑하게 챙겼다.
릴리나 갖다 줘야지.
#
경기장으로 이동하는 차량에서 내내 일도가 불안해보였다.
결국 일도는 두통을 호소했고, 스태프가 챙겨준 약을 먹고 간신히 눈만 감고
있었다.
아직 경기까지는 시간이 남았지만 정신없이 바빴다.
우리는 다닥다닥 붙어서 오늘의 전략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기억하지? 오늘 컨셉은 포킹이다. 하지만 상대가 돌격 조합을 짠다 싶으면
유틸 조합으로 갈거야.”
정신을 못차리는 일도를 보며 감독님과 코치님도 초조한 기색이었다.
“첫 경기잖아. 편하게 해.”
그리고 이어진 입장.
“미래를 향한 도전, 리그오브서머너즈 퓨처스 리그 스프링 스플릿! 오늘의 세
번째 경기를 만나볼 차례입니다!”
“FWX와 서울 빅스의 경기죠! 두 팀은 지난 시즌을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으로
마무리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크게 달라진 부분들이..”
“오늘의 경기는 FWX가 홈, 블루진영이며 서울 빅스가 어웨이, 레드진영으로
갑니다!”
우리의 귓가에는 화이트 노이즈가 들렸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소란스러운 기
색이 있었다.
곧이어 스태프가 경기의 시작을 알린다.
그리고 시작된 밴픽.
시즌 초이기에 각 팀에서 판단하는 유용한 픽이나 밴은 불투명했다.
상대 역시 어떤 플레이를 준비해온 것인지 알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처
음의 계획대로 제이슨을 선픽했다.
탑에서 라인전 강점을 가져가면서도 컨셉인 포킹에서 빗나가지 않는 챔피언.
하지만 상대가 적극적으로 이즈와 칼마를 기용하면서 분위기가 묘해졌다.
[ 일도라는 녀석 컨디션이 많이 나빠보이는데, 괜찮으냐? ]
‘괜찮아. 원래 흔한 일이야.’
[ 너, 반말.. ]
‘바쁘니까 나중에.’
릴리에게는 더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투정을 부렸고 FWX에 들어온 것도 적당
히 하기 위함이지만, 막상 경기를 앞두니 승부욕이 올라온다.
릴리가 히히 웃으며 손을 흔들더니 사라진다.
밴픽이 이어지면서 우리 손에 남은 것은 초반의 탑-정글 주도권, 그리고 눕는
미드와 바텀이었다.
탑-정글의 주도권을 바탕으로 초반을 풀어나가다 유틸성 미드가 어느정도 아
이템을 갖추고 하체가 성장하면 그 때부터 전반적인 힘이 강해진다.
하지만 상대는 미드와 바텀에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컨디션이 안좋았던 정일도, 원딜에게 부담이 가는 상황.
분위기를 감지한 팀원들의 보이스는 다소 가라앉아있었다.
#
“게임, 시작합니다!”
“어? 시작하자마자, 일도 선수가.. 위험해 보이는데요!”
“아! 이런! 1분만에 퍼블이 나왔습니다! 가진 스펠을 모두 사용해봤지만 소용
이 없었죠!”
“이렇게 스펠이 모두 빠져버리면 아펠라이오스의 초반이 너무 힘든데요?”
약간 멍하게 보였던 일도가 시작하자마자 상대의 잠복에 당했다.
일도는 황망한 표정으로 주변의 눈치를 봤다.
“얘들아.. 미안해.”
첫 데뷔전이라 얼어있는 지호는 아직 입을 열지 못했고, 창민이는 불편한 기
색을 숨겨보려 했지만 잘 안되는 모양이었다.
세라핌을 픽해주면서 바텀을 받쳐주려고 했는데, 시작부터 실점이라니.
미드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괜찮아. 오히려 좋아. 인베 때 손해보면 게임 이겨. 역버프 동선타고 바텀
쪽 뒤 봐줄게.”
내가 말해줄 수 밖에.
일도는 짧게 고맙다고 말하고 집중했다.
이걸로 예방 주사를 맞은거면 좋겠는데.
“릴마 선수의 미드 세라핌이 솔로킬을 내주고 맙니다!”
“상대의 연기에 아주 깜빡 속았죠?”
“오리안느를 압박하는데에 너무 신을 낸 것 같네요!”
게임 초반, 창민이가 지나치게 상대를 압박하려다 상대 정글의 등장에 놀라
미스를 범하면서 솔로킬을 당했다.
“아! 왜 여기서 나오지?”
“아까 건이형이 말했는데. 2렙 갱 조심하라고.”
지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습관이었던 물음표 핑을 찍지 않은게 용하다.
“2렙 아니었는데. 3렙이었는데.”
그래도 창민이는 더 길게 말하지 않고 게임에 집중했다.
이것 역시 장족의 발전이다.
유찬이는 여느 때처럼 힘차게 라인전을 해주면서 상대 레넥튼을 밀어붙였고,
나 역시 바텀의 뒤를 봐주는 플레이를 했다.
이 과정 중에서 별 수 없이 손실이 조금 발생하긴 했지만 그래도 탑의 힘이
있으니 쭉 이어지는 팽팽한 대립.
그 때 괴로워하던 상대 탑이 레넥튼이 정글러를 불렀는지 상대 볼라베어가 탑
동선 시야에 보였다.
“빼. 상대 정글 탑 동선.”
“드리블 해볼게!”
자신감이 붙은 유찬이는 호언 장담을 했고.
“나 죽는다! 나 죽는다!”
유찬이는 호언장담한 만큼 우렁차게 소리지르며 데스를 기록했다.
그 사이 바텀 라인을 도운 뒤 드래곤을 차지한 나는 귀환하며 유찬이 쪽으로
눈짓했다.
“드리블한다며?”
“괜찮아. 용도 먹었고, 어차피 탑은 내가 이김.”
민망하니까 괜히 저러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글로벌 골드가 보이지는 않지만 많이 뒤쳐진 것은 아니고,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다르게 팀의 분위기는 약간 침체되어 있었다.
스코어 보드의 킬은 0:3.
무언가가 필요한 시간이다.
“지호야, 여기 와드 없네. 바텀 귀환 타이밍에 적 블루 쪽 잠깐 지원 부탁해.”
“오케이.”
몇 번의 시야 플레이 후 상대 진영의 블루 근처에서 기다린 나는 덫을 몇 개
깔았다.
니델리가 설계에 그리 좋은 챔피언은 아니지만 쓰리쉬와 함께라면 쓸만하다.
그리고 예측한 동선대로 나타난 적 정글 볼라베어가 순진하게 블루를 거의 다
처치할 때 쯤, 나는 강타로 블루를 뺏었다.
“잠복했던 니델리가! 블루를 빼앗아갑니다!”
“빅스 선수들은 볼라베어의 성장을 밀어줄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요? 오리안느
는 멉니다! 바텀 듀오는 귀환했어요!”
“쓰리쉬가 볼라베어를..! 아, 그랩이!”
“두꺼비에게 강타를 써보지만 이미 점화가 묻어있죠!”
“니델리의 창! 덫을 밟은 볼라베어를 깔끔하게 잡아냅니다!”
“나이스!”
팀원들의 보이스가 약간은 활기를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