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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떼 -2
조직원들이 그의 외침에 몸을 떨었다.
“숲의 심장! 나는 그게 필요하거든.”
카르안이 이를 악 물었다. 하필 저놈이랑 목표가 똑같다니.
숲의 심장은 원래부터 고급 강화포션의 재료로 쓰였다. 그게 숲의 심장의 가격이 높은 이유이기도 했다.
아마 저 놈이 노리는 이유도 비슷하리라. 연금술 길드에 맡겨 강화 포션을 만들거나, 아니면 팔아서 돈을 얻거나.
“젠장, 금덩이나 찾을 것이지.”
“카르안씨도 숲의 심장을 찾으십니까?”
카라나리는 카르안의 불치병 치료제에 대해 알지 못했다. 불치병에 대해 말해야 하나, 잠시 망설이던 카르안이 말했다.
“꼭 필요한 물건이다.”
카라나리는 더 묻지 않았다. 카르안이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카르안은 잠시 망설였지만, 굳이 약점을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그가 말했다.
“나는 하나만 있으면 돼. 근데 저 녀석은 아닐 것 같군.”
아마 숲의 심장을 있는 대로 긁어갈 것이다. 카르안은 메이론의 주변을 살폈다. 각 지역에서 온 흑룡회 사람들이 그 앞에 서 있다. 수는 약 10명 정도.
이곳에 왔으니 흑룡회 조직원 중에서도 나름 정예이리라. 그런 그들도 메이론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단지 지부장이라는 지휘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에게는 사람들의 휘어잡는 힘이 있었다. 카리스마가 아니다. 공포를 부르는 광기였다. 그가 번쩍이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동지들이 나를 도와주니 든든하군. 그러면 다들 모험 준비를 하자고!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면 분명 꿈과 희망의 보물 상자가........ 기다릴 것 같기는 한데. 우리와 함께하기 싫은 녀석도 있는것 같다.”
그는 붉게 빛나는 눈을 한곳으로 돌렸다. 싸움을 구경 온 군중들 사이에서, 정확히 카르안을 보고 있었다.
“윽.”
카르안은 카라나리가 해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때 많은 정보를 얻었다. 사이프카르가 흑룡회 보스의 딸이라는 것, 보스가 예상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저 메이론이라는 간부가 그녀의 스승과 싸우다 눈을 잃었다는 것까지.
‘그런 것 치고는 앞이 잘 보이는 것 같은데.’
카르안은 메이론을 처음 본다. 서로 초면인데 얼굴을 보고 흑룡회인지 알 수는 없다. 카르안이 흑룡회의 코트를 벗기 전, 메이론이 그를 확인한 것이다.
메이론은 카르안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멀리서 보다가 가까이 오니까, 생각보다 그가 더 거대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마치 산이 걸어 다니는 것만 같다.
‘피해야하나.’
잠시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게 더 이상해 보인다.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피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곧 카르안 앞에서 멈춰 섰다.
“너도 흑룡회에서 온 것 같다만.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말이지.”
그가 카르안이 들고 있는 코트를 슬쩍 봤다. 메이론은 키가 3미터를 훌쩍 넘는 것 같고, 온 몸은 크고 작은 흉터로 가득했다.
잘 발달된 몸은 무슨 쇳덩이처럼 단단해 보였다. 칼도 튕겨낼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튕겨내었다.)
러슬라이를 열 단계쯤 업그레이드 시키면 이런 괴물이 튀어나올까. 게다가 눈에서는 붉은 빛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의안인가.’
저게 멀리서부터 보였던 빨간빛의 정체였다. 그는 눈에 루비 같은 붉은색 보석을 박아놓았다. 실제로도 시야 확보에 문제가 없는지, 그는 카르안을 정확히 찾아내었다.
“귀가 안 좋아서 내 말을 못 들었나본데, 흑룡회는 전부 모이라고 했다.”
메이론이 카르안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그때, 카라나리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너도 같은........음?”
메이론은 카라나리를 잠시 노려봤다. 그러다가 놀란 표정으로, 눈을 찌푸렸다.
“음.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인데.”
메이론이 그녀를 무섭게 노려봤다. 마치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려 하는 듯. 그러다가 아, 하고 작게 말했다.
“그래. 그때로군. 그때 그 여자였어. 벌써 몇 년 전인가.”
“뒤로 물러나세요.”
카라나리가 대답했으나, 메이론은 무시했다. 그는 자기 할 말만 계속 했다.
“그때 그 꼬마가, 예쁘게 자랐군.”
“저는 당신 같은 사람........”
“아니, 기억나겠지. 넌 기억하고 있어.”
메이론이 카라나리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얼굴을 코앞까지 들이밀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그는 숨을 거칠게 쉬며 외쳤다.
“네 스승에게 눈을 잃었지만, 보스께서 나를 구원해 주셨지. 이게 네 스승이 빼앗아간 눈이고, 위대한 흑룡회의 지배자께서 하사하신 보물이다.”
“한마디만 더 하면 검을 뽑겠습니다.”
“그 덕에 전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되었지! 공포가 보이는군. 심장을 쫙 조이는 공포가 보인다. 바로 네 얼굴에서.”
“그만.......”
“그런 표정으로 숨기려 하지 마. 다른 머저리들은 모르겠지만, 내 눈을 속일 수 없어. 잔득 겁먹은 초식동물 같은 모양이군.”
검 앞의 카라나리의 손끝이, 조금 떨렸다.
“조금 더 공포의 냄새를 맡고 싶다. 너 같은 걸작이 만들어내는........”
탁.
“그만 좀 하지.”
카르안이었다. 그는 메이론의 돌덩이 같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렇게 여자 냄새가 맡고 싶으면 유곽이라도 들리는 게 어떨까.”
2.
“볼일은 나한테 있는 게 아니었나.”
메이론의 흥분으로 가득 찼던 표정이 사라졌다. 마치 흥이 깨진 것처럼. 그러다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감정 조절에 조금 문제가 있어 보였다. 그는 껄껄거리다 카르안에게 말했다.
“하하하하. 이거 미안하네. 내가 워낙 집중력이 좋아서 말이야. 한번 뭐에 꽂히면 다른 곳을 못 보거든.”
그는 시원하게 사과했다. 한바탕 싸움이 일어날 줄 알았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좋아. 나는 쉘리악 후작령의 지부장 메이론이라고 하네. 자네는?”
“알페라츠 백작령의 부 지부장, 카르안이다.”
“오오, 그래도 부 지부장이군....... 잠깐. 알페라츠 백작령?”
메이론이 반갑게 웃어대었다.
“아! 자네가 그 소문의 연금술사로군. 조직에 기똥차게 약을 잘 만드는 연금술사가 왔다고 들었다.”
“다른 곳까지?”
“당연하지. 네가 만든 마약을 알페라츠 백작령 밖에도 돌고 있거든. 캬~ 참 많이도 만들었나보지. 그 영지가 전부 소화하지 못할 정도라면.”
처음 카르안이 온갖 약을 다 만든 날. 그는 자기 물건이 팔리는 것을 구경도 못했다. 뮤프리드 대신전으로 여행을 떠났기 때문.
그 양이 조금 많았었다. 영지 내에서 전부 소모할 수 없을 만큼. 그래서 사이프카르는 영지 밖 다른 곳까지 손을 뻗었다.
쉘리악 후작령, 저 메이론이 있는 영지까지 말이다. 그는 기쁜 듯 말했다.
“나도 그때 잔득 사놨지. 우리영지 연금술사 놈들의 죄다 멍청한 놈들이거든! 제대로 된 물건하나 못 만들고 말이야. 근데 네가 만든 것은 제법 마음에 들었다.”
“그거 참 고맙군.”
마니아에게 칭찬받는 장인. 그때만큼 보람찬 순간도 없을 것이다. 그게 마약만 아니라면.
“좋아. 그나저나 말이야. 우리 흑룡회가 힘을 합쳐야 하지 않겠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괴 생명체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고?”
“나는 신경 안 써도 괜찮은데.......”
“아아. 이런 오만한 놈. 그렇게 방심하다가 괴물의 간식이 되는 거야. 자네는 뭘 모르는 것 같아.”
“네가 찾으려는 숲의 심장. 나도 그것을 찾고 있다.”
카르안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메이론도 웃음을 지웠다.
“만약 처음 찾는 물건을 나한테 준다면, 협력 못할 것도 없지.”
주변이 싸늘해졌다. 같은 먹잇감을 쫒는다. 지금 르네키르다를 약탈하러 온 상황에서 그것만큼 불편한 것은 없으리라. 메이론이 머리를 긁적였다.
“음. 그것은 조금 힘들 것 같은데, 나도 숲의 심장이 필요하거든. 한 열 개쯤 말이야.”
“아무리 르네키르다에도 그게 열 개씩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맞아. 그게 문제지.”
그는 진지하게 턱을 쓰다듬었다. 카르안은 메이론 대신 흑룡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들은 벙찐 얼굴로 카르안을 보고 있었다. 좋게 말하면 용기에 감탄한 표정이고, 나쁘게 말하면 겁 없는 미친놈을 보는듯한 얼굴.
‘저놈도 함부로 주먹질은 못하겠지.’
비록 용병들을 토막 냈지만, 그들과 카르안은 다르다. 다른 지부에서 온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그냥 조직원도 아니고 부 지부장을 공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도 그는 카르안을 나름대로 정중하게 대하고 있다. 그가 입을 열었다. 방금 전 웃어대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우울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우리끼리 타협할 수는 없는 것 같군.”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됐다. 그러면 나는 이만.”
“하아.”
카르안이 돌아가려는 찰나, 메이론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단순한 숨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울음기가 섞여있었다.
“후웁, 크으응!”
그는 콧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카르안은 멍한 눈으로 쳐다봤다. 믿기지 않게도, 그는 울고 있었다.
주변의 반응도 못 볼걸 봤다는 분위기였다. 대담한 용병들 중에서는 그를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카르안이 당황해서 말했다.
“왜, 왜 갑자기 그래........”
“젠장. 슬프잖아. 동료끼리 힘을 합치지 못한다니....... 그리고 나 네가 만든 약도 얼마 안 남았고.”
붉은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는 팔로 얼굴을 훔쳐 눈물을 닦았다.
“근데 앞으로 그 약을 못 먹는다니, 젠장. 내가 무슨 낙으로 살겠어.”
“.......!”
그 말을 이해한 순간. 카르안의 눈앞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카라나리의 검과 메이론의 주먹이 부딪혔다.
“위험합니다! 뒤로!”
“크흐흥. 너부터 죽여주지.”
그는 코를 삼켰다. 울음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순식간에 울보에서 맹수로 변한 메이론. 잔인한 폭력성에 찬 그가 카라나리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정권 찌르기. 카라나리는 검을 세워 막았지만, 주르륵 뒤로 밀려버렸다.
“미친놈.”
오러를 세운 검이다. 그것을 맨 주먹으로 쳐서 튕겨낸다. 주먹에서는 피가 흘렀지만, 그는 웃고 있었다.
“좀 더 힘내보라고!”
메이론이 주먹을 찔러 넣었다. 그 순간 그는 뒤통수에 강렬한 충격을 느꼈다.
퍼억!
“크아악!”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긴 팔을 가진 골렘이 서 있었다.
“골렘이다!”
주변 사람들도 골렘의 등장에 숨을 들이켰다. 몇몇 성급한 사람들은 검을 꺼내기도 했다. 2미터 크기의 골렘. 보기 드물고 위협적인 것이었다. 메이론도 신기한 듯 골렘을 쳐다봤다.
“오호, 약만 잘 만드는 게 아니었나.”
‘길어봐야 30초.’
카르안은 속이 탔다. 마나량이 확 늘고, 또 골렘에 대한 공부를 해서 이해도가 깊어졌다. 덕분에 2미터짜리 골렘을 소환할 수 있었지만, 전투 지속시간은 30초 정도.
처음 10초 정도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늘었다고 할 수 있다. 원래 골렘이라는 게 처음 소환시 마나가 확 줄어드는 것. 지속할 때 드는 마나량은 소환 할 때에 비해 많지 않다.
처음에는 소환하는데 대부분의 마나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골렘 소환 후에도 제법 마나가 남아있다. 그래봐야 길게 유지할 수는 없지만.
메이론은 골렘을 신기한 장난감처럼 쳐다봤다. 2미터의 크기는 거대했지만, 저 괴물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보였다.
타앗-
카라나리가 땅을 차고 날아올랐다. 그리고 비어있는 메이론의 목을 노렸다. 동시에 카르안의 골렘도 주먹을 뻗었다.
“크으으!”
그는 양 팔을 올려 공격을 막았다. 한손은 검을, 한손은 주먹을. 놀랍게도 카라나리의 검을 정면으로 막은 팔은 잘리지 않았다.
“투명한 갑옷이라도 입었나.”
“갑옷 같은 답답한 것을 어떻게 입나.”
“저 자는 마나를 몸에 둘렀습니다.”
카라나리가 답했다. 검이 닿는 순간, 그녀는 무형의 저항을 느꼈다.
그래도 카라나리의 검격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어서, 메이론은 팔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가 골렘의 주먹을 비틀며 말했다.
“한방 먹었군.”
메이론이 잔인하게 웃었다. 카라나리의 표정이 굳었다. 팔에 박힌 검이 뽑히지 않는다.
“이제 나도 한방 먹여주지.”
그는 순식간에 골렘의 팔을 뽑아버렸다. 그리고 카라나리에게 주먹을 날렸다. 그녀는 검을 버리고 날렵하게 주먹을 피했다. 주먹이 스친 그녀의 뺨에서 피가 흘렀다.
풍압만으로도 피가 흐른다. 굉장한 힘과 속도. 그는 두 번째 주먹을 휘두르려 했다. 그런데 무언가 그의 몸을 꽉 조였다.
“이런 젠장.”
“나는 아직 한방도 못 쳤거든.”
카르안이 손짓했다. 순식간에 그물 형태로 변한 골렘이 메이론의 몸을 조여 왔다. 그는 마치 쇠사슬에 묶인 것처럼 끙끙거렸다.
“카라나리!”
카르안의 외침에 그녀가 다시 뛰어올랐다. 그녀의 무릎이 메이론의 턱을 후려쳤다. 그는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커어억.”
“더 해볼 거냐.”
카르안의 골렘이 모래로 돌아갔다. 카라나리는 얼른 메이론의 팔에서 검을 뽑았다. 그리고 쓰러진 그의 목을 찌르려했다.
하지만 메이론은 몸을 굴려 피했다. 무슨 바윗덩어리 같은데, 속도도 엄청나게 빨랐다.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팔을 꾹 눌렀다.
“크아. 이렇게 얻어맞는 것도 오랜만이군.”
그가 웃었다. 마치 맹수의 것처럼, 잔인한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