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션으로 무한성장 (28)화 (28/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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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의 로망

“이너리움?”

“그래.”

카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페라츠 백작령 주변의 폐 광산. 거기서 나오는 금속이다.

“그게 뭔가요?”

“한때 금보다 가치있던 물건이지.”

이너리움. 처음 발견되었을 때 그 가치는 바닥이었다. 아름답지도 않고, 단단하지도, 유연하지도 않은 금속. 무기를 만들기도 애매했고, 공예 재료로 쓰기에는 너무 투박했다.

무엇보다 광석에서 이너리움을 뽑아내는 제련이 엄청나게 어려웠다. 만들기는 힘들고 가치는 없다. 하지만 그 금속의 가격이 치솟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한 연금술사의 발견. 그는 이너리움이 골렘 제작에 특화된 재료라는 것을 알아낸다. 골렘의 제작 시 이너리움을 같이 사용하면,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기동성을 얻을 수 있다.

골렘의 고질적인 문제점. 크고 단단하지만 너무 느리다. 이너리움은 그런 뻑뻑한 움직임에 윤활유가 될 물질이었다.

한 골렘의 장인은 이너리움을 섞어 아이언 골렘을 제작했다. 그 결과물은 기사 수십명과 맞먹는 무력을 자랑했다. 그야말로 혁명.

그 당시 이너리움의 가격은 하늘을 찔렀다. 골렘의 성능을 몇 배씩 강화시켜준다! 그 소문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사람들이 혹하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처음 들어봐요.”

“그야 지금은 녹슨 고철만도 못한 가격이 됐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깐의 환상이었다. 연금술사가 실수한 것은 없었다. 확실히 그 금속은 골렘을 미친 듯이 강화시켜 주었으니까, 문제는 그 다음. 정작 그 금속을 다룰 수 있는 자가 거의 없었다.

섬세하고 복잡한 공정. 무엇보다 이너리움을 사용하면 움직임이 섬세해 지는 대신, 그만큼 조작도 복잡해졌다.

가뜩이나 몇 명 없는 연금술사 중에서, 평생 골렘 하나만 연구한 학자들. 그 중에서도 마나가 풍부한 극 소수중의 소수만 이너리움 골렘을 조작할 수 있었다.

“세상에 이 금속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열 명도 안 되거든.”

원시인에게 슈퍼컴퓨터를 준 격이다. 아무리 유용하더라도 다룰 수가 없다. 결국 이너리움을 캐던 광산은 전부 문을 닫았고, 거기에 뛰어든 사업가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렇다면 그냥 사는 게 좋지 않나요.”

“시장에 남은 게 없어.”

극소수의 골렘 장인들만이 사용하는 금속. 제련 과정도 어려워서 아무도 만들지 않는다. 오직 장인들만이 필요할 때마다 따로 의뢰해서 이용할 뿐.

절대로 대량 생산할 가치가 없으니까. 그 결과. 가격은 바닥인데 어디에서도 팔지 않는 잊혀진 금속이 된 것이다.

“마침 이 근처 광산에서 좋은 이너리움이 나오거든. 그쪽을 개척하는데 도움을 주면 고맙겠어.”

“광산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마을하고 조금 떨어졌는데, 몬스터 서식지가 되어 버렸어.”

알페라츠 백작령 근처에 이너리움 광산. 그곳의 이너리움이 아주 훌륭하다. 그가 주운 골렘의 장인, 벨트리의 책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가 황금 고라니 사냥 때 얻은 연금술 서적. 무르짐의 제자 벨트리가 지은 책의 정보다. 그 당시 벨트리도 이너리움을 연구했는데, 질 좋은 이너리움을 얻을 수 있는 광산 리스트도 있었다. 거기에 포함된 것이 알페라츠 백작령 근처의 광산.

그가 백작령으로 돌아온 날, 용병길드에 물어보니 이미 광산은 몇 백 년 전 문을 닫았고, 지금은 오우거의 서식지라고 들었다.

“전 세계에 몇 없는 고급 이너리움을 구할 수 있는 곳이야. 나중에 그 광산을 다시 사용하려고. 오우거 놈들을 사냥할 때, 그때 좀 도와줘. 그리고 그거 말고.......”

쨍그랑-

순간 날카로운 소리가 귀를 때렸다. 귀를 찢는 소리. 무언가 산산이 조각나는 소리다. 방, 카라나리의 여동생 아르나의 방에서 들려온 소리. 카라나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르나!”

그녀는 황급히 방으로 달려갔다. 카르안도 그녀를 따라 달려갔다. 문을 열자 방 안에는 아르나가 쓰러져 있었다. 그녀 옆에는 거울 하나가 산산조각 나서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

“하아! 하으......”

아르나는 숨쉬기가 힘든지 숨을 몰아쉬었다. 하얀 얼굴을 더욱 창백했고, 식은땀이 계속 흐른다. 카라나리는 급하게 책상 위로 뛰어갔다. 거기에는 작은 주사기 몇 개가 놓여있었다.

입으로 먹는 약과 다르게, 증상이 심각할 정도로 위험할 때 주사하는 약. 요즘 점점 사용 빈도가 커지고 있다. 좋지 않은 징조.

“잠시만, 잠시만 참아.”

카라나리는 날렵하게 주사기의 뚜껑을 뽑고 아르나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정맥을 찾아 약을 주사했다. 효과가 있는지, 얼마 지나자 아르나의 호흡이 안정되었다.

“언니.......”

“괜찮아.”

카라나리는 여동생을 끌어안았다. 힘껏, 그러나 조심스럽게. 살짝 살짝 떨리던 아르나의 몸이 천천히 진정되었다. 카라나리는 그런 아르나의 등을 쓸어 주었다.

“전부 괜찮을 거야.”

카르안은 그녀를 가만히 내려 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힘이 많이 빠졌는지, 아르나는 그녀의 품 안에서 잠들었다.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흠.”

카르안은 애꿎은 머리만 긁었다.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다. 뭔가 봐서는 안 될 것은 본 느낌.

카라나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혹시라도 깰까, 조용히 아르나를 침대로 옮겼다.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힌 후, 이불까지 덮어 주었다.

“죄송합니다.”

카라나리는 아르나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돌렸다. 평소처럼 표정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가에는 흐릿한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2.

“내일 점심. 그때까지 치료제를 만들어볼게.”

카라나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은 뭘 할 수가 없다. 병의 진행을 완전히 늦출 수 있는 약.

고급 재료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맨땅에서 만들 수는 없었다. 야밤에 재료를 찾으러 갈 수도 없으니까.

“집까지 같이 가 드리겠습니다. 밤이 늦어서 위험할 수도 있어요.”

“됐어. 여동생 병간호부터 잘해.”

카르안은 고개를 저었다. 야밤에 미녀와 함께 걷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카라나리의 여동생. 아르나의 몸이 많이 안 좋았다. 카라나리도 자리를 비우기가 걱정될 것이다.

“그럼 내일, 정오. 흑룡회 사무실 앞으로 와.”

카르안은 카라나리의 집에서 나왔다. 어두운 밖이 보였다. 카르안은 뒤돌아 집을 향했다. 그때,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항상, 고마워요.”

카르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찝찝했다.

카라나리. 올곧고 선한 여자. 그런 선한 사람을 이용한다. 카르안 자신의 힘을 위해.

“그래도 이용하는 건 아니야. 이건 정당한 거래지.”

치료제를 주고 도움을 받는다. 당연한 것이었다. 그가 자선 사업가도 아닌데, 무조건 도움을 줄 수만은 없었다.

그렇다고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도 아니다. 아무리 나쁜 놈이라도, 눈앞에서 저런 모습을 본다면 가슴 한쪽은 쓰라리지 않을까.

“손해만 본 기분이야.”

원래는 광산 이외에도 약 값을 받으려했다. 아무리 카르안이 쉽게 약을 만들어도, 그것은 카르안만이 할 수 있다.

협상의 칼자루는 그가 완전히 쥐고 있었다. 광산에서 몬스터를 좀 잡아주는 것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 짭짤한 용돈 벌이의 기회.

하지만 그는 그냥 그것을 포기했다. 단순히 기분 때문에. 뭔가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위선적이었다. 그가 만든 마약이 수많은 사람들을 중독 시킬 것이다. 그런데 어린 소녀를 위해 재능을 낭비하다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위선도 악역이니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지.’

그는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밤공기가 기분 좋게 불어왔다. 더없이 맑은 하늘. 그는 복잡한 기분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3.

그가 집에 도착한 것은 새벽이 다 되어서였다. 문을 잠그고 몸을 씻자 피로가 몰려왔다. 그는 졸음을 밀어내며 책 한권을 펼쳤다.

표지 없는 책. 무르짐의 제자가 썼다는 책이다. 여기에는 골렘에 관한 귀중한 자료로 가득했다. 9골드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무엇보다 골렘은 몇 없는 연금술사의 전투 수단이다. 간단하게는 바위를 이용한 스톤 골렘부터, 강철을 이용한 아이언 골렘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배워두면 큰 도움이 된다.”

초보적인 연금술사는 골렘을 만들 때, 재료를 구해서 일일이 온갖 마법진을 새겨야 한다. 하지만 고수의 반열에 오르면, 미리 만들어 둔 골렘의 핵. 그것을 허공에 던지기만 하면 된다.

즉석에서 주변 물체를 빨아들여 골렘이 되는 것이다. 물론 아이언 골렘이나 이너리움 골렘같이 고급 골렘은 다르다. 직접 하나하나 새겨 넣어야 한다.

그래도 일반적인 전투용 골렘을 순식간에 만들 수 있다. 검사처럼 빠르게 전투를 펼칠 수 있다. 골렘이 형성될 때까지 몇 초. 그만큼만 기다리면, 골렘이란 괴물은 순식간에 자라나 적들을 짓밟을 것이다.

“내가 땀나게 싸울 필요는 없지.”

그는 벨트리의 책을 천천히 읽었다. 뮤프리드 교단에서 오는 길. 마차 안에서 한번 쓱 읽어보긴 했지만 자세히 읽지는 못했다. 분량이 너무나 많았다. 카르안은 내용 하나하나를 새겨가며 정독했다.

개인이 만든 책답게, 특이한 것이 하나 있었다. 연구 내용 뿐 아니라 중간 중간 낙서 같은 게 잔득 있었다.

거기에는 개인적인 신세한탄부터 저녁메뉴까지 쓸모없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 책을 만든 벨트리가 상당히 산만한 성격인 것 같았다.

대부분 짤막했기에 카르안도 부담 없이 읽었다. 별 도움은 되지 않지만.

그 낙서 중에는 스승 무르짐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의외로 귀중한 자료. 무르짐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은 거의 없다.

카르안은 간만에 집중해서 그 부분을 읽었다. 펜이 아닌 연필로 쓰여졌기 때문에, 중간 중간이 누락되어 있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스승님께서 또 화를 내신다. 포션을 만드....... 실패하신 ........

스승님의 재능은 ......과도 같다. 나도 언젠가 따라잡을 수 있을까.

........ 하지만 태양에도 흑점은 있다. 그......

........제조. 스승님은 포션 제조에 상당히 ......했다........

하지만 스승님의 ................은 정말 상상 이상이다.

이런 게 천재라는 것일까.

카르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흐릿한 글씨. 중간 중간이 비어 있지만, 대충 내용을 유추 할 수 있었다.

‘재능은’ 다음 단어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밑줄을 보면 그게 태양이라는 것을 추측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태양의 흑점. 아마도 빛이 약한 부분을 의미하겠지. 옥 의 티처럼, 빛나는 재능의 결점.

그리고 그 밑의 줄은 포션 제조에 취약했다는 내용 같았다. 즉,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다.

“무르짐의 주특기가 포션 제조인데.”

그것은 누구보다 카르안이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몇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무르짐이 그의 능력을 숨겼을 가능성. 배제할 수 없다. 고약한 스승은 제자에게마저 연금술을 숨긴다.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는 정말로 무르짐이 포션 제조에 취약했다........ 는 말이 안 되었다. 카르안의 포션 제작에 관한 지식은 그 누구보다 뛰어났다.

“그런데 왜 지식을 숨겼을까.”

그것도 딱히 이유가 없었다. 골렘에 대해 다 가르쳐 줬으면서, 포션 제조를 잘 한다는 것을 숨긴다. 조금 이상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자신이 무르짐의 모든 지식을 얻은 것은 아니라는 점.

그는 벨트리에게 골렘에 대해 지식을 전수했다. 그리고 한눈에 봐도 벨트리의 실력은 상당한 수준. 만약 무르짐이 골렘 제조에 지식이 없었다면, 이런 제자를 키울 수 없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젠장, 잠이나 자야겠어.”

카르안은 침대에 누워버렸다. 내일부터 바쁜 하루가 시작된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포션 재료들이 도착했고, 그는 또 다시 포션과 약을 만들어야 한다.

그 외에도 조직의 일에 대해 배울게 많았다. 잠을 충분히 자 두는 게 좋았다. 그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피로 때문에 잠이 살살 몰려왔다. 그는 눈을 감아버렸다.

하지만 스승님의 ............은 정말 상상 이상이다. 이런 게 천재라는 것일까.

기분 탓일까, 낙서의 마지막 줄은, 어쩐지 섬뜩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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