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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262화 (262/275)

262화

만악의 질병이 자리 잡은 불터렉스.

만악의 질병에서 쏟아져 나오는 독기를 피해 볼터렉스 가문 사람들이 열심히 도망치고 있었다.

그런 그들 사이로 불터렉스 소속의 독룡대가 열심히 뛰어다니며 독기를 어떻게든 정화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독기는 계속해서 퍼져 나갔다.

“그윽, 윽.”

“구륵.”

강렬한 독기 앞에 독룡대의 사람들도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모두 후퇴해라!”

그 순간, 한 사람이 뛰어 내려왔다.

목 뒤에서 딱 끊기는 잿빛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그녀는 다름 아닌 불터렉스의 가주이자 천하오장성인 독후 불터렉스 윈터였다.

몸에 딱 달라붙는 전투복을 입은 그녀는 두 개의 검을 꺼내 들었다.

그 순간, 그녀의 검 위로 새까만 사마독주의 독기가 맺혔다.

그러곤 그 즉시 독기를 향해 기운을 쏟아 내었다.

사마독주는 독을 독으로 정화하는 비기다.

그렇기에 윈터는 이를 이용해 만악의 질병의 독기를 정화해 나갔다.

하지만 그런 독후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만악의 질병의 독기는 조금씩 성벽을 침식해왔다.

‘이래서는 본녀도 당하겠다만.’

하지만 그녀는 물러날 수가 없었다.

여기서 자신이 뒤로 빠지는 순간, 성벽 뒤에 있는 이들이 순식간에 독기에 잡아먹힐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윈터는 식은땀을 흘리며 악착같이 독기를 막아내려 했지만, 그녀 역시 천천히 중독되고 있었다.

‘오라버니가 있었더라면.’

그릭슨을 떠올린 윈터가 입술을 깨문 그 순간이었다.

검은색의 섬광이 성벽 아래로 이어졌다.

마치 유성이 떨어지듯 누군가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었다.

“뭣?”

이에 깜짝 놀란 윈터가 급히 그 방향을 바라본 순간, 인근의 독기가 순식간에 그쪽으로 몰려들었다.

그것을 본 윈터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순간, 그녀는 그곳에 누가 있는지 깨달았다.

“서리스?”

설마하니 그가 나타날 줄은 몰랐던 윈터가 당황한 음색을 내었다.

그러다가 곧 그가 독기를 막아내고 있다는 것을 안 그녀는 이마에 흥건하게 맺힌 땀을 닦으며 미소를 지었다.

“기막힌 타이밍에 잘 와줬구나!”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잠시 호흡을 고른 뒤, 다시 사마독주의 독기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서리스의 가세 덕분에 독기도 점차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근처의 독기가 어느 정도 잡힌 것을 본 윈터는 성벽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서리스! 다른 곳의 지원도 좀 부탁한다!”

“예,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서리스는 대답과 함께 그녀를 따라 달렸다.

이 와중에도 그의 검은별로는 독기가 흡수되고 있었다.

만악의 질병의 독기라 할지라도 결국 세계 침식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서리스에게 있어 만악의 질병의 독기는 오히려 흡수하기 좋은 양분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게 지금의 상황을 타파할 해결책은 아니었다.

‘독기의 근원을 해결해야 해.’

지금의 독기는 아무리 흡수해도 끊임없이 계속해서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답이 없었다.

“윈터 님.”

서리스는 그녀를 부르고는 몸을 돌렸다.

“제가 만악의 질병 안쪽으로 진입해 보겠습니다.”

“혼자서 말이더냐?”

“예, 밖으로 나오는 독기를 부탁드립니다.”

서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독기 안쪽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이 일 자체가 누군가 의도한 거 같고.’

그자와 끝을 봐야 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서리스는 다시금 몰려오는 독기를 보곤 그 즉시 바닥을 박찼다.

투쾅!

서리스는 마치 유성처럼 날아간 독무를 가르며 사라졌다.

독기는 그 즉시 서리스의 몸을 침투하고자 몰려들었지만, 서리스의 육체는 금강잔월로 보호되고 있었다.

독기 따위로는 침투조차 할 수 없는 강철 같은 육체였기에 서리스는 독기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다.

그렇게 달리기를 한참.

서리스의 눈앞에 검은색의 진득한 무언가를 겹쳐 놓은듯한 덩어리가 보였다.

‘이건.’

확실하다.

저건 용독의 늪의 파편이다.

그걸 발견한 즉시 서리스는 그걸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쏟아져 나오던 독기가 서리스에게로 집중되었다.

보랏빛 독기와 함께 용독의 늪의 파편이 전부 서리스에게 빨려 들어간 순간.

그 덩어리는 잿가루가 되며 사라졌다.

그것을 본 서리스는 주위 독기가 서서히 흩어지는 것을 보며 고개를 들었다.

만악의 질병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용독의 늪을 파편화하여 이곳까지 옮길 수 있는 자가 누가 있을까.

답은 딱 하나뿐이었다.

“제파림.”

분명히 그가 여기에 있다.

그가 만악의 질병 속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이미 알고 있던 서리스는 두 눈에 힘을 주며 호흡을 정리했다.

그와 동시에 서리스의 감지 능력이 주변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제파림을 찾아낼 생각이었다.

그러는 순간 하늘 위에서 날갯짓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리스의 고개가 천천히 하늘 쪽으로 향했고, 거기에는 검은색 까마귀 날개를 펼친 한 남자가 있었다.

공중을 유유히 날고 있는 그를 보고, 서리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검은별의 기운이 이 거리에서도 느껴질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본체냐.”

“내가 거짓을 말한다 해도, 그 아둔한 눈으로 알아볼 수나 있겠나?”

제파림은 코웃음 치곤 땅으로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대화라도 해볼 속셈인가.

서리스가 어느샌가 꺼낸 악스판시온을 쥔 채 그를 경계하는 사이, 제파림은 바닥에 착지했다.

마치 검은별로 물들여지기라도 한 듯.

날개 색깔만큼이나 머리색과 눈마저도 새까맣게 물들어 있는 제파림이 한차례 웃음 지었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이군. 내 분신으로 볼 때는 더 어렸던 것 같은데. 시간이 참 빠르긴 빠른 모양이야.”

“잡담이나 나누려고 나를 부른 거냐?”

“잡담,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렇게 말한 제파림의 날개가 한차례 펄럭이다가 접혔다.

“그 잡담이 나에게 유용하기만 하다면 말이지.”

“널 상대할 시간이 나한테는 없는데.”

“걱정 마라. 네 시간도 무한해지게 해줄 테니까.”

서리스와 제파림은 어찌 되었든 부딪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자신의 형인 용제를 죽인 제파림.

그리고 그런 용제의 비기를 이어받은 서리스.

그렇기에 둘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열쇠라는 역할에 다시 충실히 임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지?”

능글거리는 웃음과 함께 제파림이 질문을 던지자 서리스는 악스판시온을 틀어쥐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용신은 만나 줄 거니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제파림은 헛웃음을 흘리다 곧 두 눈을 날카롭게 치떴다.

“그래, 역시 그렇겠지. 형님의 의지를 이었을 때부터 이럴 줄 알았으니까.”

그 순간, 제파림을 중심으로 대기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그 기운에 맞서 서리스도 용인화를 사용했고, 이를 본 제파림의 날개가 좌우로 활짝 펼쳐졌다.

“끝없는 초롱과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을 흡수한 모양이더군.”

제파림은 서리스가 뭘 했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웃음 지었다.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기운을 보면 분명 그가 만악의 질병을 대부분 흡수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단순하게 따지자면 마굴들과 최흉 두 개를 흡수한 서리스와 제파림은 확실하게 격차가 나야만 했다.

그러나 서리스는 제파림을 바라보며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제파림, 그동안 뭘 한 거냐.”

서리스의 질문을 들은 그의 눈 전체가 새까맣게 물들었다.

“직접 알아내 봐.”

그 말을 한순간, 제파림과 서리스의 신영이 동시에 흐려졌다.

채엥!

제파림이 손에 쥔 날개 검과 서리스의 검이 어느샌가 맞부딪쳤다.

서리스는 제파림이 움직이는 순간에 맞춰 별들을 끌어 올렸었지만, 튕겨 나간 것은 다름 아닌 그의 검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서리스의 두 눈이 한차례 커다랗게 변했다.

설마하니 힘에서 밀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왜 너를 아둔하다고 한 건지 넌 영원히 모르겠지.”

그 순간 제파림의 날개가 펼쳐지며 많은 깃털들이 서리스를 향해 쏟아졌다.

서리스는 그 즉시 검을 세워서 방어했고, 이에 튕겨 나간 깃털들은 그대로 땅에 떨어지며 주변을 녹여버렸다.

제파림의 깃털에는 용독의 늪의 독기가 그대로 묻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파림, 이 녀석.’

아까도 대충 알았지만, 서리스는 제파림이 무얼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세계 침식의 힘을 다룰 수 있단 거냐.’

검은별에 세계 침식을 흡수하는 서리스와 달리 제파림은 자신이 흡수한 세계 침식의 힘을 그대로 쓸 수 있는 거 같았다.

그 사실을 안 순간 서리스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위험하다.

만약 제파림이 만악의 질병 이후 또 다른 최흉들을 흡수해 나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가 눈에 훤했다.

“뭔가 눈치챈 모양인데.”

그 순간 제파림의 손아귀에서 검은색 번개와 불꽃이 동시에 생겨났다.

제파림은 표정이 굳은 서리스를 보며 웃다가 그대로 손을 휘저었다.

“눈치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긴 하나?”

그 순간, 검은 번개와 화염이 소용돌이가 되어 휘몰아쳤다.

서리스는 그 즉시 악스판시온을 앞으로 뻗었다.

후욱!

공간이 일그러지듯 악스판시온을 중심으로 번개와 불꽃이 집어삼켜졌다.

회오리가 얼추 정리되자마자 서리스는 바닥을 박차며 전신에 신룡월단의 기운을 둘렀다.

지금 당장 제파림을 여기서 죽여야만 하기에 마음이 급했다.

그러나 그런 서리스의 돌진을 보고도 제파림은 무척이나 여유롭게 웃었다.

그의 양손은 어느샌가 귀 뒤로 향했다.

“힌트 하나를 주지.”

서리스의 검이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제파림은 그리 말했다.

“세계 침식을 흡수하는 게 아니라, 내가 복속시켜 주인이 되면 어떻게 될 거 같나.”

그 순간, 제파림의 등 뒤로 새까만 공간들이 나타났다.

거기에서 불쑥 튀어나온 거대한 회색빛 손이 서리스의 검을 막았다.

신룡월단의 힘은 그러한 손도 갈라 버렸지만, 다른 회색 손이 제파림을 낚아채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봐도 머리를 볼 수 없는 거대한 회색빛 거인이 공간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만악의 질병에서 가장 위험한 마수로 손꼽히는 병마거인(病魔鉅人)이었다.

그런 거인의 손 위에 유유히 선 제파림이 서리스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최흉을 흡수하는 것만이 답이라 생각했나?”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제파림의 등 뒤에는 또 다른 공간이 여럿 열리며 거기에서 다른 마수들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이를 본 서리스의 눈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놈들의 정체가 바로, 각 최흉에서 악명을 떨치는 마수들이었기 때문이다.

서리스는 제파림이 그동안 무슨 짓을 해왔는지 깨달았다.

‘만악의 질병만이 아니었어.’

제파림은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모든 최흉에 영혼을 갈라 심어두고, 그 영혼 파편이 주인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숨죽이고 기다려 왔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제파림은 기어코 갈라졌던 모든 영혼을 합쳐 최흉들의 주인이 되고 말았다.

“저 미친놈이.”

서리스는 깨달았다.

제파림이 저 스스로 재앙이 되고 말았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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