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
어느덧 몇 해가 지나 아카데미 졸업식을 앞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워너힐 아카데미 역사상에서도 황금 세대로 불리는 기수였다.
워너힐 아카데미의 본관.
이제야 학교에 적응을 마친 듯한 1학년 학생들이 본관 교문 쪽에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4학년 선배들이다.”
“분명 아크 단원이지? 나 실물은 처음이야.”
“분명, 4학년 선배들은 보기 힘들다고 했는데. 웬일로 본관에 와계신 거지?”
“혹시 새로운 아크 단원을 뽑으려는 거 아니야?”
왜냐하면, 황금 세대에서도 톱급의 인원들이 교문 앞에 모여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역시 그분은 안 보이네.”
“그분이라면, 검룡?”
그러는 순간 아이들 사이에서 또 다른 화제의 인물이 언급됐다.
불과 몇 년 전에 발발했던 세계 침식자와의 대전쟁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던 인물이자.
최연소 월하십인이라 불리는 펜타니엄의 셋째, 검룡 서리스.
최근에는 워너힐 아카데미는커녕 세계 전역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그에 관해 세간에서는 여러 소문이 돌고 있었다.
세계 침식자와의 대전쟁 당시 큰 부상을 입어 지금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던가.
혹은 전쟁 중 깨달음을 얻어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든가 하며 말이다.
하지만 그런 소문이 아무리 무성해도 그 당사자가 도통 모습을 드러내지를 않으니.
사람들 사이에서 서리스는 계속 의문점으로 남아 있었다.
“소문만 무성하지 본 적이 없으니. 사실 거짓말 같기도 해. 솔직히 사실상 우리 나이에 월하십인에 오른 거잖아.”
한 1학년생이 그리 말하자 나머지도 살짝 공감하는 눈치였다.
한창 꿈에 부푼 어린 시절이라면 모를까, 그들도 워너힐 아카데미에 입학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은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어느 정도 냉혹한 현실을 볼 줄 알았다.
월하십인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높고, 자신들과 비슷한 나이에 그만한 성취를 이루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도 지도 말이다.
사람은 자기가 직접 본 것만을 믿고 사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다가 자신들이 직접 겪은 게 있다 보니 더 믿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야, 1학년 꼬맹이들.”
그러는 순간 성난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1학년생들은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고, 거기에는 검은 머리카락의 3학년생이 서 있었다.
그는 눈썹을 와락 일그러트린 채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 깨달은 1학년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했다.
왜냐하면, 그가 바로 그 검룡의 동생이자 성격이 불같기로 유명한 펜타니엄 제로였기 때문이었다.
“알지도 못하면서 멋대로 지껄이면 나한테 뒤…….”
빠악!
제로가 그들을 훈계하려던 순간, 누군가 달려와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썩을, 누가!?”
화난 표정의 제로를 맞이한 이는 그에게도 익숙한 사람이 있었다.
“괜히 1학년생들 괴롭히지 말고, 어서 가기나 해.”
“뮤리널, 이게 진짜.”
“왜? 한판 붙게?”
그녀까지 나타나자 1학년 아이들의 얼굴이 더 새파랗게 질렸다.
얼음공주라고 별명이 붙어 있는 그녀는 아카데미 내에서도 안하무인 성격으로 유명했다.
특히 저 날카로운 눈매는 사람을 얼어붙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제로가 바보긴 하지만, 너희들도 함부로 말하지 마.”
그녀가 째릿 노려보자 1학년생들은 고개를 숙인 채 쩔쩔매었다.
“재밌게 노네.”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듯한 이가 나타났다.
그녀는 다름 아닌 검성 펜타니엄 샬롯이었다.
“둘이 잘 어울린다. 어디 가서 데이트라도 하지 그래.”
샬롯이 그리 말하며 그대로 둘을 지나쳐 가자 뮤리널과 제로가 황당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곤 질색했다.
그러는 사이 샬롯은 모여있던 사람들 앞에 도착했다.
“샬롯, 왔나.”
“응, 아직 안 온 모양이네.”
스타리즈가 미소 지으며 묻자 샬롯은 주변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분명, 졸업식에는 온다 했는데.”
그러자 옆에 있던 서발광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닌지 모르겠어. 마중 나가봐야 하나.”
“쯧, 기껏 이 몸이 기다려 주고 있건만.”
이바드라도 한소리 보태고는 교문 쪽을 힐끗 보았다.
크라페마저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 연신 교문 쪽을 힐긋거렸다.
“직계님이잖아. 곧 올 거야!”
“네, 서리스 님이 안 오실 리가 없으니까요.”
도로시와 발렌타인도 그리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오셨어요.”
그러는 순간 아이랑이 고개를 들며 그리 말했다.
모두의 고개가 교문 쪽으로 돌아갔고, 그와 동시에 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언덕 너머로 검은 머리칼의 사내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머리를 꽤 오랫동안 깎지 않아서인지, 상당히 길어진 머리카락과 함께.
그 아래로 조금 피로 섞인 표정의 표정으로 하품을 내뱉는 얼굴이 드러났다.
오랜만에 입어본 제복이 조금 불편한 듯, 옷깃을 매만지던 그는 이내 앞을 보곤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다들 교문에서 뭐 하고 있어?”
자기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고 있음에도 그가 뻔뻔스럽게 굴자 앞으로 누군가 튀어나왔다.
“직계님!”
그대로 박치기를 시전한 도로시를 서리스가 급히 받자 나머지 인원들도 다가왔다.
“하아, 친구란 게 얼굴 보기 이렇게 힘들어서 쓰겠나?”
스타리즈가 조금 퉁명스럽게 말하자 서리스가 멋쩍게 웃었다.
“미안, 그동안 좀 바빴거든.”
실제로 여러 일이 있었던 서리스는 졸업식도 꽤나 아슬아슬하게 참석할 수 있었다.
“니, 그런데 대체 얼마나 강해진 거고? 이제는 가늠도 안 되는데.”
“좀 티 나지?”
스타리즈는 역시 눈치 빠르게 서리스의 강함을 읽었다.
그런 질문에도 능청스럽게 대답한 서리스는 곧 이리로 몰린 주변의 시선을 느끼곤 고개를 들었다.
왜냐하면, 방금까지 바쁘게 본관으로 들어가던 학생들이 전부 멈춰 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째 시간이라도 멈춘 것 같다.”
“그야 서리스 오빠 때문이잖아.”
샬롯이 핀잔주듯 말하자 서리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이름을 날리며 이런 시선에 나름대로 적응했다고 생각했지만.
워너힐 아카데미만큼 서리스의 소문이 크게 난 곳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사라도 한번 해주지 그래?”
그러면서 샬롯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서리스는 여러 무리 중 한쪽을 골라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안녕.”
“와아아아아아!”
그러자 거기 있던 학생들이 환호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격한 반응에 서리스마저도 조금 당황하자, 샬롯이 못 말리겠다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걸 하란다고 진짜로 해?”
“하라니까. 했지.”
“쪽팔려.”
샬롯은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몸을 돌려 먼저 걸어가 버렸다.
여전히 까칠한 여동생이라고 생각하며 서리스는 모두에게 말했다.
“그래서, 늦었지만 다들 졸업 축하한다.”
“마치 자기는 졸업 안 하는 것처럼 말하네.”
서발광의 말대로 서리스도 이번에 졸업하는 졸업생이긴 했다.
“나야 학교를 똑바로 다니지도 않았었으니까 그렇지.”
솔직하게 말해서 제적당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게 서리스의 출석률이었다.
대전쟁 이후부터는 워너힐 아카데미 내에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서발광이 보낸 편지가 아니었다면, 졸업식도 참석 못 했을 것이다.
“무슨 소리예요. 서리스 님, 서리스 님이 제적당했다면, 다른 워너힐 아카데미 학생들은 전원 유급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서리스의 생각을 발렌타인이 똑 부러지게 정정하자 그는 쓰게 웃었다.
명성과 능력만 따진다면야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언제까지 여기서 떠들고 있을 거냐? 반가운 건 반가운 거고, 슬슬 들어가지 그래?”
그 말대로 슬슬 졸업식 본 행사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모두 행사장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워너힐 아카데미의 본관은 전쟁의 흔적을 깔끔하게 지우며 잘 복원되어 있었다.
그래도 2년 동안 열심히 다녔던 아카데미라서인지 서리스는 살짝 추억에 잠겼다.
“다른 선배님들은?”
“4학년들 졸업식이니까요. 굳이 오시지는 않으셨죠.”
아이랑이 대답해주자 서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선배들 처지에서는 본인 졸업식은 진작 끝났고.
단원 일하거나 고향으로 돌아갔을 테니 구태여 오늘 올 이유는 없었다.
졸업식을 위해 만들어진 강당에 들어서자 놓인 의자와 함께 4학년 학생들이 보였다.
그중에는 얼굴이 익숙한 이들도 있었고, 아예 처음 보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서리스다.”
“검룡? 졸업식에 왔구나.”
“와, 별이 어떻게 된 거야. 너무 커서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서리스와 달리 다른 4학년생은 전원 서리스에 관해 알고 있었다.
사실상 워너힐 아카데미 재학생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으니 당연한 거였다.
이런 시선에도 이제는 익숙해질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 만큼 서리스는 신경 쓰지 않고, 자리를 찾아 적당히 앉았다.
그러는 사이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최근에 교장직을 내려둔 성위 대신 교감이 연설하는 걸 듣고 있으려니 아이랑이 슬쩍 옆으로 다가왔다.
“서리스 님,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에 해가 떴다고 들었어요.”
서리스는 아이랑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용히 앞을 바라보았다.
“끝없는 초롱 쪽도 서리스 님이 하신 거겠죠.”
이 부분은 상황을 아는 아이랑이라면 당연히 해볼 법한 유추였다.
“다음은 어디로 가실 건가요.”
더 자세한 내용은 서리스가 일이 다 끝난 후, 직접 이야기해 주기로 한 만큼 일부러 묻지 않았지만.
적어도 다음 목적지 만큼은 알고 싶다는 듯 그녀가 말하자 서리스는 고개를 들었다.
“마키나로 갈 겁니다.”
“마키나라면?”
“예, 최흉 혹한의 겨울입니다.”
마키나를 그런 극한의 땅으로 만든 게 다름 아닌 혹한의 겨울이니 말이다.
“그래서 미리 엑스널 선배와도 이야기해뒀죠.”
졸업식이 끝나는 대로 서리스는 바로 그쪽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런 서리스를 보고, 아이랑은 아쉬운 듯이 웃었다.
“다음에는 또 언제 뵐 수 있으려나요.”
“그리 길지 않을 겁니다.”
끝없는 초롱과 달리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을 몇 개월 사이에 끝내버린 서리스다.
최흉을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더 강해지고 있는 자신이다.
분명 다음은 더 빠를 거라고 서리스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거참 다행인 이야기네요. 소녀가 마키나로 직접 가서 기다릴까 했는데 말이죠.”
아이랑의 마음을 눈치챈 서리스는 작게 웃곤 이야기했다.
“도시락은 잘 먹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아이랑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그 사이 발렌타인이 서리스 쪽을 보다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졸업식이 끝마치고, 서리스는 밖으로 걸어 나왔다.
모두가 아쉬운 듯 그를 따라 나왔지만.
서리스는 미안해하며 빨리 이동하려 했다.
“서, 서리스 님.”
그런데 잠깐 자리를 비웠던, 발렌타인이 다급하게 뛰어오며 서리스를 불렀다.
서리스가 의문을 보인 순간 그녀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만악의 질병이 폭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