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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253화 (253/275)

253화

긴 백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스타리즈가 나이를 먹는다면 이런 느낌에 가까울까.

오뚝 선 콧날과 기다랗고 하얀 속눈썹이 유달리 눈에 띄는 그는 서리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야기 좀 하지.”

전쟁이 끝을 맞이하자 스타로드도 시간이 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도 대충 이해가 갔다.

“그러죠.”

그렇기에 서리스는 순순히 그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스타로드와 함께 걸어 나온 서리스는 숲 쪽으로 들어왔다.

그는 주변이 조용한 것을 확인하더니 손짓하였다.

그러자 주위 모든 소리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서리스와 스타로드는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일단 소개가 늦었다. 나는 올스타드 스타로드라고 한다.”

구태여 한 번 더 자신을 소개한 그였다.

거기에 스타로즈와 달리 스타로드는 특유의 억양을 쓰지 않았다.

아무래도 스타리즈는 그녀 어머니의 손에서 자랐기 때문인 듯하였다.

“펜타니엄 서리스라고 합니다.”

그런 스타로드를 따라 서리스가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본론부터 들어가지.”

스타로드가 그렇게 말하며 손짓하자 돌의자가 아래에서 솟아 나왔다.

거기에 앉으라는 듯해서 서리스는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너는 아마 용제가 남긴 씨앗이겠지?”

그가 거기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에 살짝 놀라긴 했지만, 서리스는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스타로드는 성위와도 함께 세계를 지키려는 인물 중 하나였다.

“아르마는?”

“그림자에 넣어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스타로드는 자기 턱을 손으로 눌렀다.

그러면서 그림자를 쭉 응시하던 그는 고개를 들어 서리스를 바라보았다.

“성위가 직접 아르마를 주었다 했지?”

“예.”

“그렇다면 네가 별들이 점친 구원자라는 건가.”

“별들이 점친 구원자 말입니까?”

서리스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보자 스타로드는 다시 그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해 온 것에 비해 아는 게 많이 없는 모양이군.”

그는 이마를 한차례 쓸어 올렸다.

그 행동에서 그가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를 많이 알고 있음을 눈치챈 서리스는 자세를 바로 했다.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서리스가 그리 묻자 스타로드는 다리를 천천히 꼬았다.

“별에는 제각기 정해진 운명이 있다.”

별의 운명.

서리스도 언젠가 들은 적 있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런 별의 운명을 바꿀 방법이 딱 하나 있다.”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서리스는 고개를 들었다.

“혹시 그게.”

“그래, 아르마다.”

서리스는 자신의 그림자 내부에 들어 있는 아르마가 그런 힘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세계의 알이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런 힘이 있을 줄이야.

“그리고 나는 모든 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자에게 아르마를 주고자 하였다.”

성위가 그런 걸 자신에게 주었음을 깨닫고, 서리스는 몸을 굳혔다.

“그런 걸 저에게 줘도 괜찮은 겁니까?”

“성위가 선택했으니까. 네가 모든 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판단한 거겠지.”

모든 별.

그 말을 들으니 서리스는 아르마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깨닫게 되었다.

“내가 널 찾아온 이유는 그 아르마를 사용하는 법을 익히게 해주기 위함이다.”

스타로드는 의자에서 일어나 서리스의 그림자 앞에 다가갔다.

“아르마는 세계를 복원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말한 스타로드는 대뜸 그림자 안으로 손을 넣었다.

마치 자기 몸 내부로 그의 손이 들어오는 듯한 기분에 서리스가 몸서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스타로드는 그대로 손을 내뻗어 아르마를 검지로 툭 건드리곤 그림자에서 손을 퐁하니 빼었다.

“그렇기에 최흉으로 망가져 버린 땅도 복구가 가능하지.”

또 한 번 기상천외한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아르마로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건가.

원래도 마굴에 이은 다음 목표로 최흉을 잡았던 서리스였다.

그런 최흉을 복구시킬 수 있다면.

대가문과 소가문이 최흉을 상대로 쌓아온 피의 굴레를 끝낼 수도 있을 것이었다.

소가문의 가주였기에 서리스는 최흉의 무서움을 무척이나 잘 알았다.

그렇기에 그에게도 최흉만큼은 반드시 해결하고픈 문제였다.

“형태가 제대로 유지되고 있군. 원래였다면 그대로 사라져 버렸을 텐데. 네 그림자는 특이한 성질을 지닌 모양이야.”

“제 그림자가 말입니까?”

“그래, 세계 침식의 힘을 잔뜩 흡수했더군. 그것 때문에 아르마를 중심으로 몰려든 것 같다.”

검은별로 흡수한 힘이 아르마에도 영향을 준 건가.

그 말을 듣고 서리스는 그림자 속 아르마를 굴려 보았다.

내부에 뭔가 깃들어 있다는 느낌 말고는 별다른 건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부터 바로 알려줄 테니. 해봐라.”

“예.”

무려 스타로드의 강의다.

서리스가 바로 대답하자 스타로드는 그의 주위를 터벅터벅 걸었다.

“우선 첫 번째로 할 것은 아르마 내부에 세계 침식의 힘을 흘려 넣는 거다.”

스타로드는 이런 강의가 익숙한 듯 발걸음을 떼며 그리 말했다.

“세계 침식의 힘을 쓰는 법은 네가 제일 잘 알겠지.”

알다마다 서리스는 바로 그림자 속에 깃든 검은별의 힘을 아르마 주변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나 검은별은 아르마에 닿지 못하고 계속 미끄러질 뿐이었다.

마치 겉에 무언가 미끄러지는 약이라도 발라놓은 듯한 기분이었다.

서리스가 쉽지 않아 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스타로드가 입을 열었다.

“아르마는 자체적으로 세계 침식의 힘을 거부하고 있다. 내부로 그 힘을 흘러 넣으려면, 일점돌파한다 생각하고 기운을 움직여 봐라. 그게 효율적일 거다.”

일점돌파.

서리스는 그 말을 듣자마자 그 즉시 검은별의 힘을 가시와 같은 형태로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서리스는 그동안 용인화를 통해 검은별을 다루는 능력만큼은 누구보다 많이 갈고닦았기 때문이었다.

검은별의 힘은 서서히 뾰족한 모양의 가시가 되어 가기 시작했고.

그 끝이 하나의 점이 되었을 때 서리스는 아르마를 향해 기운을 내질렀다.

투웅!

마치 동그란 모양의 젤리를 건드리듯 아르마와 부딪친 가시가 튕겨 나왔다.

‘그렇다면.’

서리스는 아르마의 앞에 가시를 닿게 하곤 그대로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아르마는 잘게 출렁거릴 뿐 세계 침식의 힘이 들어갈 작은 틈도 생기지 않았다.

서리스의 이마에 식은땀이 한차례 흘렀다.

지금 하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많은 집중력이 필요했던 탓이었다.

“넌 용제가 남긴 씨앗이다. 세계 침식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다.”

그러자 옆에서 스타로드의 조언이 또 한 번 이어졌다.

그 말대로 서리스는 용제의 씨앗이었다.

그렇기에 서리스는 그대로 검은별의 힘 위에 신룡월단을 덧씌우기 시작했다.

어떠한 흐름이든 끊어 버리는 신룡월단이다.

그 힘이 더해진 순간,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아르마의 겉을 뚫고 내부로 검은별의 힘이 파고 들어갔다.

서리스는 그 즉시 신룡월단의 기운을 지웠다.

그러자 검은별의 힘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아르마와 뒤섞이기 시작했다.

“윽?!”

그 순간 서리스는 옅은 신음을 흘렸다.

검은별의 힘으로 만들어진 가시를 타고 아르마의 힘이 들어오며 강한 충격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환골탈태 때보다 더한 고통이었기에 서리스가 급히 숨을 삼키자 스타로드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르마의 기운은 검은색인 세계 침식과 달리 백색이다. 당연히 흡수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부딪치며 반발이 있을 거다.”

“그, 럼, 어떻, 게 해야, 합니까.”

그 반발력이 상당했기 때문에 서리스는 침음성을 삼키며 겨우겨우 물었다.

“그 해답 또한 너에게 있을 거다.”

스타로드의 말을 듣고 서리스가 무언가를 깨달았다.

해답은 처음부터 자신에게 있다는 말.

그렇다면 그 해답은 무척이나 간단한 것일 거다.

‘금강잔월.’

신룡월단이 모든 흐름을 절단하는 힘이라면 금강잔월은 모든 흐름을 잇는 힘.

조화.

그것이 금강잔월의 기본 모토다.

서리스는 가부좌를 틀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내면의 별을 다스리는 일은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해 왔었다.

그렇기에 서리스는 왼쪽에서 검은별의 힘을 인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른쪽에서는 아르마의 힘을 인도하기 시작했다.

검은별과 아르마는 마치 물과 기름 마냥 섞이지 못했다.

그러나 서리스는 이를 신경 쓰지 않고, 두 개의 힘을 서서히 합쳐가기 시작했다.

마치 음양의 조화를 이루듯.

9성이라는 경지에 도달한 서리스의 인도를 따라 두 개의 힘이 만나는 지점이 생겼다.

소용돌이를 그리듯 뒤섞여 나가는 두 개의 힘 속에서 서리스의 몸이 거칠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떨림도 잠시였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스타로드가 천칭을 기울이며 손을 들 때마다.

서리스의 몸도 안정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스타로드가 온 이유가 바로 이것임을 깨달은 서리스는 오로지 내부에 자리한 두 가지 힘에만 집중했다.

외부적 영향은 전부 스타로드에게 맡긴 것이다.

무아지경(無我之境).

정신이 한곳에 몰려 모든 것을 잊은 그 순간, 서리스에게 세상이 두 개로 갈라져 보였다.

하나는 새까만 어둠.

또 하나는 백색의 빛.

양립할 수 없지만, 그 중심점에 있는 것이 바로 자신임을 서리스는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모든 별의 운명이 무엇인지 또한 서리스에게 보이기 시작했다.

양립할 수 없기에 세계 침식은 별을 침범하려 한다.

별 또한 그에 대응하듯 세계 침식과 맞선다.

이 끊임없는 전쟁의 끝을 장식한 것은 입을 벌린 거대한 용이었다.

‘용신.’

수많은 세계를 잡아먹고, 별을 떨어트린 멸망을 부르는 재해.

그 용신을 보고 서리스는 양손을 뻗었다.

만약 놈이 세계를 잡아먹고자 하다면.

그 세계를 제 것으로 만들리라.

그 일념과 함께 서리스의 양손으로 당겨진 검은별과 아르마가 융화하듯 뒤섞인 그 순간.

서리스의 머리 위로 별빛이 쏟아져 내렸다.

마치 모든 별의 운명을 바꿀 씨앗으로 세상에 각인되듯.

서리스는 모든 별의 따스함과 포용 속에서 서서히 그 눈을 띠었다.

그런 그의 눈동자 속에서 금색의 기운이 감돌았다.

서리스의 내부에 자리 잡은 또 하나의 힘 아르마가 그의 몸에 강렬한 활기를 부러 넣었다.

세계 침식을 정화할 수 있는 딱 하나의 힘.

그것을 서리스가 얻는 순간이었다.

“성공했군.”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 보고 있던 스타로드가 입을 열자 서리스가 한차례 쓰게 웃었다.

“아르마를 전부 다루는 건 아직 멀었지만요.”

그 말대로 서리스의 그림자에는 아직 아르마의 힘이 상당수 남아 있었다.

이것을 흡수하려면 오랜 노력이 필요할듯싶었다.

“걱정 마라. 그건 네 노력과 시간이 해결해줄 테니까.”

지금이라면 스타로드의 뜻이 무엇인지 서리스도 잘 알 수 있었기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목표는 최흉이겠지?”

“예.”

서리스의 확고한 대답을 듣고 스타로드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의 운명은 언제나 딱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스타로드는 말문을 멈추고 서리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날을 기점으로 새로운 운명의 줄기가 나타날 거다.”

그것이 자신을 가리키고 있음을 서리스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험한 길이다.”

“저는 험한 길 말고는 걸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거참 다행이로군.”

그리 말한 스타로드는 처음으로 미소를 그리곤 발걸음을 옮겼다.

“최흉으로 가라. 그곳에 네 다음 길이 있을 거다.”

떠나가는 스타로드의 뒷모습을 향해 서리스는 경의를 담아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 그의 노고는 칭송받아 마땅한 것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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