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반갑다. 나는 악스달 학생 단장, 자룡서진이라고 한다.”
“로렐라이 학생 단장, 아세리나 벨로키입니다.”
학생 단장 두 명의 소개가 이어진 순간 반 아이들의 술렁거림이 더욱 커졌다.
학생들을 대표하는 이들 중 둘이 등장했으니 이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자룡서진, 정후(晶后)인가. 붙어 보고 싶군.”
따로 별호까지 가지고 있는 그녀에게 이바드라가 호승심을 보이는 것이 그 증거였다.
탁탁―
두 학생 단장의 등장으로 교실이 소란스러워지자 교관 밀리오레가 교탁을 몇 번 두드렸다.
그러자 학생들이 웅성대던 소리가 차츰 줄어들었고, 어느 정도 진정된 것을 확인한 밀리오레는 당찬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여기 있는 두 분은 여러분들이 목표해야 하는 정점에 있는 이들입니다. 그런 두 분이 이번 마굴 파견 임무에 따라와 주기로 했으니 다들 잘 보고 배우는 게 좋을 겁니다.”
확실히 가까운 나이대에 수준 높은 이의 전투를 지근거리에서 볼 기회는 흔하지 않았다.
대해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두 사람은 위험한 상황이 아닐 시에는 가급적 뒤에서 우리를 지켜만 볼 테지만.
상황에 따라 전투에 나서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A반에는 실력 좋고 눈썰미 있는 녀석들이 많다.
거기다가 다들 한가락 하는 이들이기에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도 강하다.
그 증거로 모두 다 학생 단장 둘을 향해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서리스만 제외하면 말이다.
‘눈이 따가워.’
서리스는 피부에 강렬하게 닿는 시선 때문에 난처할 뿐이었다.
그 이유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노려보고 있는 사람 때문이었는데.
그 시선의 주인은 다름 아닌 로렐라이 학생 단장 아세리가 벨리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엑스널이 경고했던 대로 그는 서리스에게 막대한 적의를 가지고 있는 듯하였다.
‘곤란한데.’
로렐라이는 애초에 가본 적도 없는 서리스였다.
저러는 이유를 알아야 적당히 대응할 텐데, 현재로는 집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자, 그럼 두 사람은 학생들과 이야기 나누시죠!”
서리스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사이 밀리오레는 학생 단장 둘에게 수업을 넘겼다.
“감사합니다. 교관 밀리오레.”
자룡서진은 그리 말하곤 앞으로 한 발짝 나왔다.
그러곤 늠름한 미소와 함께 모두를 둘러본 뒤, 말을 시작했다.
“앞에서 말했듯 나는 자룡서진이다. 아직 한참 모자란 몸이지만 정후라고도 불리고 있다. 다들 이번에 우리가 파견을 나온 것이 의아하겠지. 지금부터 천천히 설명해주마.”
자룡서진은 친절하게 그들이 이번에 파견된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세계 침식자로 인한 습격이 또다시 벌어질 것을 염두에 둔 예비대.
딱 발렌타인에게 들었던 대로였다.
“거기에 악스달 단장이신 불터렉스 윈터 님께서도 함께할 예정이시다. 지금 맡으신 일을 끝내시는 대로 곧장 합류해 주실 거야.”
윈터까지 온다는 말에 다들 눈이 커지며 잠깐 발렌타인에게 시선이 쏠렸다.
“이걸로 우리가 파견된 이유 설명은 끝. 이제는 대해와 관련된 것을 말하고자 하는데, 질문 있는 사람 있나?”
질문하는 사람은 없었다.
학생 단장으로서 대표를 할 일이 많아서인지 그녀가 물 흐르듯 전부 설명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리더쉽이란 게 저런 것일까.
그녀를 보는 몇몇 아이들 눈동자 속에 동경이 섞일 정도였다.
‘학생 단장이라는 자리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소리겠지.’
실력뿐만 아니라 사람을 이끄는 카리스마 또한 가져야 오를 수 있는 자리.
그것이 학생 단장 자리였다.
“대해는 벨리키가 자세히 설명해줄 거다.”
“흠흠.”
자룡서진이 뒤로 물러나자 그녀의 옆으로 벨리키가 걸어 나왔다.
아까부터 자신을 노려봤었던 그였기에 서리스에게 있어 그의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 사이 벨리키는 대해에 관한 설명을 시작했다.
“1학년분들이지만 10대 마굴 중 하나인 대해에 관해서는 다들 공부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대해는 앞에서 말했듯이 바닷속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규모의 세계 침식이다.
바다 밑바닥.
본래라면 마법 없이는 사람이 돌아다닐 수도 없는 곳일 테지만 대해는 달랐다.
어느 정도의 수심을 내려가면 바닷물이 없어지고 세계 침식 특유의 뒤틀린 공간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거기가 바로 대해의 시작점이었다.
“세계 침식은 바다 아래에서도 그 공간을 뒤틀어 자기들만의 세계로 침식합니다. 바다 생태계를 망치고 있는 주범이기도 하죠.”
대해는 골칫거리지만 위치상 파견을 보내는 게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해의 위치까지 내려가는데 반드시 전문 마법사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소수 인력으로 간간이 파견하여 정리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었다.
“대해에는 최흉 중 하나인 끝없는 초롱과 같이 여러 주인이 존재합니다. 저희가 할 일은 이런 대해가 더 증식하기 전에 거기 서식하는 주인 중 한 마리를 쓰러트리고 오는 것입니다.”
말로는 쉬워 보이지만, 강행군이 될 게 분명했다.
대규모 세계 침식인 만큼 내부를 수색하는 데만 적어도 일주일 이상 걸리리라.
끝없는 초롱을 담당하는 펜타니엄과 같이 전문적으로 대해만 상대하는 가문이 없으니 주인들 위치를 전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 그럼 제 쪽에서 대해와 관련된 질문을 하나 해보겠습니다. 1학년 A반 여러분이라면 대해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 지식이 있겠죠.”
그런 순간 뜬금없는 질문 타임이 시작되었다.
“대해에 서식하는 수많은 주인 중에서 여러분이 사냥하실 수 있는 급의 주인을 다섯 마리 정도 추려서 발표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 말한 벨리키는 마치 누군가를 찾듯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 행동은 서리스에게 있어서는 꽤 작위적으로 보였다.
“오, 요즘 가장 뛰어난 신성이라 불리는 후배분이 있으시네요. 무려 스타린 님께서 직접 폐관 수련을 도와주셨다죠?”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는 서리스를 콕 집어 지목했다.
“서리스 학생, 질문에 답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지목당한 서리스에게 시선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중 한 시선은 스타리즈였는데 그는 어쩐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마치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이 말이다.
‘벨리키가 나한테 왜 저러는지 알고 있는 모양이군.’
서리스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들보다 키가 큰 서리스여서인지 벨리키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아, 혹시 답하기 힘드시다면 말해주세요. 다섯 마리는 좀 많았죠?”
골려 주려는 기색이 다분한 벨리키였지만, 서리스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1학년 A반이라고 한들 대해에 서식하는 주인들을 전부 꿰고 있을 리 없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벨리키가 질문을 한 거였지만 그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아뇨,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요.”
누구보다 세계 침식의 위험을 알았기에 자세하게 파고들며 공부하고, 연구한 사람.
끝없는 초롱은 수없이 많고 다양한 마수들이 쏟아져 나오기에 이에 대항한 최흉들은 물론 마굴에서 조사된 마수마저 모조리 꿰뚫고 있는 사람.
그것이 바로 서리스였으니까.
서리스는 확신할 수 있다.
지금 여기 있는 이들 중 자신보다 세계 침식과 마수에 대해 자세히 아는 이는 없을 거라고.
그리고 그건 벨리키가 질문 선택을 무척이나 잘못했음을 뜻하기도 했다.
“첫 번째는 작열마인입니다.”
이윽고 서리스의 대답이 시작되었다.
“작열마인 말입니까? 1학년 A반 수준이라면 맞지 않을 거라 보는데요.”
그러자 벨리키가 모호한 표정과 함께 불쑥 말해왔다.
그러나 서리스는 그가 이렇게 말할 것임을 예상하고 있었다.
“아니요. 오히려 쉽습니다. 저희 쪽에는 바르크 직계인 이바드라가 있습니다. 바르크가 지닌 불꽃은 다른 불꽃을 흘려 내는 데 매우 유용합니다.”
서리스는 자연스럽게 A반 구성원들로 작열마인을 공략할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작열마인은 죽은 인간의 시체에 기생한 마수로 인해 만들어진 항상 불타는 시체입니다. 그 베이스가 인간인 이상 불꽃만 해결한다면 쓰러트리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서리스는 주의할 점을 말했다.
“하지만 불이란 특성상 저와 아이랑 님과 같이 암 계열에 가까운 분들의 화력이 줄어들 겁니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감안하여 전투를 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하지만 서리스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신에 약한 부분에 관한 경험을 쌓는 데는 유용하겠죠. 암 계열이 불과 빛 계열을 상대로 여러 가지를 시험할 기회도 될 겁니다.”
이번 마굴 파견 임무에서 가장 중요한 건 대규모 세계 침식을 상대로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에게 있어 가장 위협이 되는 최흉의 열화판이라 할 수 있는 마굴이다.
워너힐 아카데미에서 세계 침식자의 위험이 있어도 마굴 파견을 강행한 이유가 이런 거였다.
“아, 좋네요. 세계 침식 속에서 항상 유리한 상성으로만 싸울 순 없으니 기회가 있을 때 계속해서…… 아니, 이게 아니라.”
벨리키는 서리스의 말에 무심코 긍정하다가 말을 멈췄다.
서리스를 골려 줄 목적으로 질문을 했으면서 자신이 긍정하고 있으면 어쩐단 말인가.
‘세계 침식과 마수에 관해 꽤나 자세히 공부한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벨리키는 서리스의 지식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그는 세계 침식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서리스만큼은 아니어도 세계 침식을 상당히 오랫동안 연구해 왔고.
본 목적이 따로 있다곤 하나 세계 침식 전문인 로렐라이에 들어온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분명 그를 골려 줄 목적이었는데 어느샌가 입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대화하고 싶다.
세계 침식에 대한 지식을 나누고, 그 해결과 마수에 관한 것들을 그와 토론하고 싶어졌다.
‘참아. 참아야 한다.’
이래서는 서리스를 골려 주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위상만 올려 버리고 만다.
그는 최대한 근질거리는 입을 억제했다.
“오호.”
그러는 사이 자룡서진이 서리스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서리스의 소문은 무성했지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소문이 과장된 줄 알았건만 생각 이상으로 뛰어난 인재다.
단장님께서도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하던데, 과연 그럴만한 이로 보였다.
“그럼 계속하겠습니다.”
서리스는 첫 번째 작열마인을 시작하여 두 번째 암흑거인 세 번째 주야각시 네 번째 홍등귀 다섯 번째 뇌령제호까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다섯 마리의 주인이 가진 모든 특성과 약점, 거기에 A반 구성원만으로 놈들을 공략할 방법까지 전부 설명했고.
그때마다 벨리키는 하고 싶은 말들을 애써 참아야 했다.
보완해야 할 점까지 모두 덧붙인 서리스가 대답을 끝마쳤을 때 벨리키는 그제야 깨물었던 입술을 놓았다.
“……잘했어요. 훌륭한 대답이었어요. 정말로요.”
그런 그를 보고 서리스는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와, 니, 마굴까지 잘 아네.”
그때, 어느샌가 옆에 다가온 스타리즈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다들 얼추 이 정도는 할 거야.”
“이렇게 상향 평준화시키면 쓰나. 다들 자기 살던 데 근처 세계 침식 정도만 알고 있지. 마굴까지 아는 아들은 거의 없다 안카나.”
“그래서 벨리키 선배가 나한테 왜 저러는지나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스타리즈가 다가온 이유를 파악하고 있었기에 서리스가 묻자 그는 씨익하니 웃었다.
“벨리키 학생 단장은 우리 증조할아버지 극성 신봉자다.”
“스타린 님의?”
“그래, 증조할아버지 만나려고 죽어라 공부해서 워너힐 아카데미까지 들어왔다 아이가. 그런데 할아버님이 무려 일주일씩이나 니 폐관 수련을 돌봐줬으니.”
서리스는 금방 상황을 이해했다.
왜 그가 자신한테 계속 적의를 보이는 건가 했더니.
스타린이 일주일씩이나 자신에게 시간을 쏟았다는 것이 어지간히 부러웠던 모양이다.
‘거기다가 나를 만나고 나서 떠나셨지.’
그는 워너힐 아카데미에 스타린을 만나러 왔던 것인 만큼 이래서는 입학한 목적을 잃은 셈이었다.
즉, 서리스 때문에 스타린이 떠났다고 생각하기에도 딱 좋은 상황이었다.
“뭐, 좀 저런 사람이긴 한데. 공과 사는 구분하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그라.”
스타리즈의 말대로 아까 전을 보면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하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좀 허당이라 안카나. 마법사는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면 사정을 못 쓰는데 벨리키 학생 단장은 그게 세계 침식이다.”
그러면서 그는 재밌는 걸 봤다며 키득거렸다.
“좀이 쑤셔서 미칠 것 같은데 악착같이 참는 게 웃기다 아이가.”
서리스도 그 부분은 눈치챘었다.
그는 서리스와 의견을 나누고 싶다는 반응을 팍팍 티 내면서도 이를 악 깨물고 참고 있었던 것이다.
스타린으로 인해 박힌 미운털이 있는 마당에 자신과 같은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는 것도 우스울 테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친해질 수 있을 거 같은데.’
어째서일까, 서리스의 눈에는 벌써부터 미래가 훤히 보이는 듯했다.
얼마 뒤 자신 앞에서 세계 침식과 관련된 의견을 말하며 해맑게 웃고 있는 벨리키의 모습이 말이다.
허당이라는 스타리즈의 말이 딱 맞는 사람이었다.
미워하던 사람을 끝까지 미워할 줄도 모르는 허당 말이다.
“대해의 설명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지금부터는 마굴 파견 준비 쪽 얘기를 나눠보죠.”
그사이 수업을 이어받은 밀리오레 교관이 파견 준비 관련 내용을 언급했다.
내부에서 무려 일주일을 보내야 하는 일정이다.
사전 준비만 해도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게 많았다.
‘바쁘겠구만.’
그렇게 마굴 파견 첫날 준비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