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점심시간이 지나고 서리스는 시간에 맞춰 락스카가 오라고 한 곳으로 이동 중이었다.
장소는 테르넬 단장 개인 훈련실.
그런 만큼 단장실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서리스는 어렵지 않게 훈련실을 찾을 수 있었다.
락스카가 열어 놓은 모양인지 다행히 문은 열려 있었다.
서리스가 안으로 들어선 그 순간 무언가 자신을 안쪽으로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그림자 검을 쥐고 휘두른 락스카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이었다.
고작 기운의 움직임일 뿐이었지만, 거기서 인 바람에 서리스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그 또한 펜타니엄 가문별에 축복받았음을 증명하듯.
그에게서 흘러넘쳐 나오는 별이 얼마나 강한지 체감되었다.
그에게 다가가려면 별을 써야 한다.
그것을 눈치챈 서리스가 별을 두르며 락스카가 내뿜은 기운 속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 온몸에 소름이 바싹바싹 돋으며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그와의 격차가 얼마나 나는지 서리스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과연 테르넬 단장 자리에 최연소로 오른 그답다.
엑스널과 알리즈가 이런 벽을 눈앞에 뒀으니 속에서부터 무너졌겠지.
아무리 천재라 칭송받아도 진짜 천재가 그들 앞에 항상 서 있었으니 말이다.
서리스가 그의 기운을 겨우 뚫고 지나왔을 때, 그제야 감겨있던 락스카의 눈이 떠졌다.
그는 서리스를 잠시 바라보곤 이내 기운을 한 번에 지웠다.
그제야 서리스는 겨우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왔군.”
서리스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 섰다.
“시간은 한 시간 정도 있다. 어쩌겠나.”
“단판 승으로 하겠습니다.”
어차피 락스카를 상대로 어쭙잖게 수를 숨기며 시간을 끌어 봤자 답이 없다.
서리스는 지금의 자신보다 락스카가 훨씬 강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자신 있는 체력 부분 승부는 완전히 배제했다.
노려야 하는 건 한방.
딱 한 번의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이 오늘의 목표였다.
“바로 시작하겠나.”
“예.”
대답과 함께 서리스가 발로 바닥을 가볍게 두드린 순간 그림자가 그의 손아귀에 쥐어졌다.
그 후 자연스럽게 그림자가 떨어져 나가자 어느새 그의 손에는 악스판시온이 쥐어져 있었다.
오늘 서리스가 도박을 걸어야 하는 주역인 셈이었다.
우웅.
서리스가 작게 공명하는 악스판시온을 쥐고 락스카를 응시했다.
“시작하지.”
여유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당연히 선수는 양보하겠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망설일 생각 없다는 듯 서리스는 두 다리에 금강잔월을 둘렀다.
그는 이내 폭발적인 도약과 함께 락스카를 향해 날아들었다.
채엥!
금속음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단 한 번의 부딪침만으로 서리스는 락스카의 그림자 검이 얼마나 뛰어난 성능을 지니고 있는지 눈치챘다.
그의 그림자 질은 무척이나 뛰어났다.
“지도 대련이니 발견된 문제점은 그때그때 말해주도록 하마.”
그러면서 그는 서리스의 검을 비껴치더니 자신의 검을 뒤로 당겼다.
그 순간 뭔가 찔러오는 듯한 감각에 서리스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었지만, 그는 언제 당했는지 모를 공격에 옆구리를 쥐고 바닥을 뒹굴어야 했다.
“크윽…….”
분명 머리를 노리고 공격이 날아드는 것을 봤는데 어떻게?
“서리스, 너는 감각이 뛰어난 모양이다. 그렇기에 위험한 공격이라 생각 들면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이고 말지.”
그러면서 락스카는 벌떡 일어난 서리스를 향해 다시금 검을 겨누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허초에 약하다. 검술이 일정 경지에 다다른 이들은 허초 속에 살기를 자유자재로 담는다. 너무 감에만 의존했다간 언젠가 당할 수 있을 테니 바꾸도록.”
말 그대로 정말로 지도 대련이었다.
덤덤하게 서리스의 문제점을 읊어준 락스카는 이번에는 자신이 먼저 도약했다.
서리스가 그의 움직임을 알고, 재빠르게 방어 자세를 취하려 했지만.
락스카는 어떻게 하였는지 몰라도 허공에서 한 번 더 가속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서리스는 급히 자세를 바꿨다.
분명 올려치기였는데 검이 중간쯤에서 한 번 더 가속해 버리며 최종 공격 지점이 바뀐 것이었다.
채엥!
울려 퍼진 검 소리와 함께 서리스는 어정쩡한 자세로 공격을 받은 충격에 비틀거렸다.
그 틈을 노리고 락스카는 맹공을 펼쳤고, 그사이 섞인 허초와 살초를 가까스로 판단하며 서리스 또한 검술 식을 펼쳤다.
그런 서리스를 보며 락스카는 조금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배우는 게 생각보다 더 빠르군.”
“누가 잘 지도해, 주는 모양이라서요!”
락스카의 검을 받아 쳐낸 서리스는 한 번의 도약으로 뒤로 물러나곤 숨을 골랐다.
강하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더 강하다.
락스카의 검술은 그야말로 완성의 경지에 올라 있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싸워온 이들은.’
기술보다는 화력 중심이 많았다.
그렇기에 서리스도 힘 대 힘으로 부딪쳐 꺾은 적이 많았던 거기도 했다.
실제로 세계 침식의 마수들은 힘으로 찍어누르는 게 더 유용하기에 서리스 또한 출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요치아 님께 검술을 배우긴 했었지만.’
이론과 실전은 다른 법이다.
아무리 요치아에게 배웠다 한들 배운 것을 써먹기 위한 상황이 없으면 무의미한 법.
그런 만큼 서리스는 기술적 싸움에서의 경험이 상당히 부족했다.
그리고 그건 기술만 따지고 본다면 대인전이 약하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세계 침식자는 저마다 고유의 힘과 기술을 쓴다. 서리스, 너는 벌써 두 번이나 세계 침식자와 엮였다고 했지? 그렇다면 다음에 그들과 다시 조우하는 걸 대비해서 실전 경험을 좀 더 쌓아두는 게 좋을 거다.”
그리고 락스카 또한 그 점을 콕 짚어서 경고했다.
“그러네요. 이번 걸 경험으로 삼으면 되겠습니다.”
물론 이런 걸 극복하고 승리한 경험으로 말이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서리스가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상대를 보고 락스카가 대응하듯 자세를 잡은 순간 서리스가 검을 쥔 자세 그대로 몸을 빙글 돌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발아래로 그림자가 깔렸다.
마찰력이 사라지고 오로지 회전력만 남은 서리스가 검과 함께 회전하며 그대로 락스카와 충돌했다.
당황스러운 공격 법이었기에 락스카조차 검을 맞댄 자세로 한 발짝 물러섰다.
생각보다 그 충격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 서리스는 악스판시온을 그 자세에서 놓아버렸다.
언뜻 무기를 포기한 듯 보였지만 그의 양 주먹은 이미 다음 공격을 위한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금강잔월(金强虥狘)
호권(虎拳)
두 개의 권격이 텅 빈 락스카의 배를 향해 내질러졌다.
쾅, 쾅!
그러나 내질러진 주먹은 어느새 그 자리를 메꾼 락스카의 검 앞에 연이어 막혔다.
일부러 앞에서 큰 동작을 하여 판단을 흐리게 하고, 틈을 만들어 공격한 것이었는데.
그는 그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막아낸 것이다.
강도 높은 그림자 검과 부딪친 주먹에서 올라오는 아릿한 충격을 털어내며 서리스는 서둘러 허공을 나는 악스판시온을 쥐었다.
동시에 펜타니엄의 별과 금강잔월의 별이 강렬하게 빛나며 그의 검 위로 그림자가 서렸다.
금강귀명도(金强晷銘刀)
오식(五式)
일도양단(一刀兩斷)
공간을 두 쪽으로 갈라내듯.
일직선으로 내리쳐진 서리스의 검에서 그림자가 내뿜어졌다.
영혼과 육체가 합쳐진 뒤 더욱 강해진 서리스의 별 기운이었다.
단장 전용 훈련실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울릴 정도로 강렬한 공격이었지만.
락스카의 검은 정확하게 서리스의 검을 막아서고 있었다.
정확하게 맥을 짚어낸 방어에 그 반탄력으로 저릿한 충격이 서리스에게도 돌아왔다.
조금 전 자신의 공격이 얼마나 강했는지 보여주는 증거였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락스카의 얼굴은 너무나도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별 출력이 남들보다 뛰어나군.”
“칭찬 감사합니다.”
“하지만 청운귀명이란 출력을 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정제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건 배워두는 게 좋을 거다.”
정제.
그 말을 하자마자 찌르기 자세로 바뀐 락스카의 검에서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락스카와 이어진 펜타니엄의 별이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별을 압축시켜 버리기라도 한 듯 그의 검은 보고 있는 서리스조차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리스가 왠지 모르게 한 개의 검은 점이 보인다고 생각했을 때.
“보여주마. 직접 체감해 봐라.”
그 점은 순식간에 모든 시야를 가리는 장막이 되어 있었다.
콰앙!
서리스가 뒤로 튕겨 나가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 충격으로 한순간 숨이 턱 하니 막히며 답답함이 폐부를 두드려 왔지만, 서리스는 이를 아득 갈며 충격을 버텼다.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점이 보였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그 공격에 당한 뒤였으니까.
방금 건 대체라는 생각과 함께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락스카는 이미 조금 전과 같은 자세를 잡고 있었다.
“계속 간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서리스는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좀 전에 있던 자리에서 무언가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락스카가 퍼붓는 연격은 한 방, 한 방이 심장이 떨어질 만큼 강렬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샬롯은 이미 배웠을 거다. 그리고 너도 알고는 있었겠지.”
“……그림자 세계.”
서리스는 간접적으로 그곳에 발을 들인 적이 있을 뿐, 주인이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샬롯과 같이 락스카는 이미 그곳에 통달한 듯싶었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공격.
락로드가 창안해낸 백귀명을 락스카 또한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비슷해.’
어째서인지 청랑단원 모집 당시, 샬롯과 싸웠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대로는 더더욱 안된다.
샬롯보다도 더 강한 락스카의 백귀명은 그 차원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훈련실을 내달리던 서리스는 기습적으로 몸을 틀어 락스카를 향해 돌진했다.
동시에 그림자 망토가 생겨나 그의 몸 위로 휘감기기 시작했다.
별들은 서리스에게 따라붙으며 그의 가속력을 더 높여주었고, 이미 발동되어 있던 금강잔월은 그의 신체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줬다.
락스카는 그런 서리스를 보고도 방금과 같은 찌르기 자세를 다시 취했다.
어디 정면으로 부딪쳐 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후회하게 해주겠다.
그 생각과 함께 서리스의 신체가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두 배 이상 강해진 그의 별 출력이 한순간 가속에 모두 집중된 것이었다.
‘간다.’
다시 한번 바닥을 박차는 것과 동시에 서리스의 인영이 흩어졌다.
금강귀명도(金强晷銘刀)
삼식(三式)
귀영분신(晷影奮汛)
콰앙!
너무 빠른 속도 덕에 남은 잔상과 뒤늦게 들려오는 소리가 그의 현재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말해주고 있었다.
동시에 락스카의 검도 움직였다.
한 개의 검은 점이 서리스의 눈에 보였을 때.
서리스는 그대로 자세를 낮췄다.
파앙!
뒤늦게 따라온 소리가 그의 머리 옆을 스쳐 지나갔다.
락스카의 그 기묘한 검술의 충격이었다.
하지만 피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기에 서리스는 내달리는 자세 그대로 검을 휘둘러 나갔다.
그는 잠깐이지만 이게 통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의 눈에 보인 검은 점이 수백 개로 늘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썩을.’
서리스는 온몸을 두드리는 강렬한 충격 속에서 이를 아득 깨물었다.
절로 욕이 나오는 상황에 정신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그의 돌진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 이게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드란의 별을 강제로 끌어오며 그의 육체가 한층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펜타니엄의 별에 의해 흘러나온 그림자가 악스판시온의 위를 감쌌다.
또 하나.
검은별의 어둠이 그의 검 위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락스카와 같이 진짜배기 강자들 앞에서 악스판시온의 능력은 무의미했다.
악스판시온이 먹는 것은 별의 힘.
별로 만들어진 마법이나 검격과 같은 무형의 공격은 막을 수 있지만.
검대 검으로 싸우는 근거리 전투 중에는 그 힘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악스판시온이 중간에 별을 끊어 먹어도 상대가 내부에 담아둔 별로 그 자리를 금방 메꾸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악스판시온이 상대가 내부에 담아둔 별에 직접 닿는다면 어떻게 될까.
답은 간단하다.
‘내부에 담아둔 별 또한 먹어 치운다.’
그 해답에 도달한 순간 서리스의 검은 빅토르 때와 비슷한 형태가 되어 있었다.
그 공격 세례를 뚫고 여기까지 왔다.
서리스는 자신의 눈앞에 마주친 락스카를 향해 미소 지었다.
받아라. 이게 내 전력이다.
‘어디 한 번 별 없이 텅 빈 채로 살아가는 일반인 기분 좀 느껴봐라.’
그런 집념과 함께 서리스의 새까만 대검이 대기를 갈랐다.
흑월귀명도(黑月鬼銘刀)
오식(五式)
흑월영도(黑月影刀)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며 상대에게 들이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