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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57화 (157/275)

157화

락스카로부터 일정을 듣고 단장실을 나온 서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이들은 괜찮지만, 락스카를 마주하면 유달리 소드란 시절의 자신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그가 락로드와 무척이나 많이 닮았기 때문에 그렇겠지.

알게 모르게 자신도 락스카라는 천재에게 눌려 있었던 걸까.

‘아니, 그때의 내게는 그런 고민 자체가 사치였지.’

같은 시대를 풍미하던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는커녕 그 발밑에도 못 미치던 시절.

그게 바로 소드란의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도 개념이긴 하나 그 락스카와 대련할 기회를 얻었으니까.

‘이길 수 있을까.’

샬롯 때도 그리 큰 고민을 하지 않았던 서리스다.

하지만 방금 락스카를 보고 나니 이런 고민이 들 수밖에 없었다.

락스카의 경지는 지금의 서리스 수준으로는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서리스에게 있어서 가장 강했던 적 중 한 명이었던 광견보다도 그는 강하다.

‘7성은 물론이고.’

어쩌면 그 위까지도.

어떻게 25살이라는 나이로 졸업하자마자 테르넬 단장 자리에 올랐나 했더니.

저 말도 안 되는 실력은 그를 단장 자리로 올려놓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였다.

2년, 아니, 1년만 지나도 그는 월하십인 중 한자리를 꿰차지 않을까.

그렇기에 서리스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로서는 솔직히 그를 이길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 꼬마, 오늘 하루는 어땠어?”

그때 누군가 그를 불렀다.

서리스는 반대편 복도에서 걸어오는 소년을 보곤 반사적으로 멈칫하였다.

그 소년이 다름 아닌 스타린이었기 때문이었다.

“스타린 님? 어째서 테르넬에…….”

“검치 꼬마에게 이야기할 게 좀 있어서 말이야.”

서리스를 보고 키득거리던 그는 곧 턱을 슥슥 매만지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자리는 제대로 잡은 모양이고, 오늘 체감해봤겠지?”

“……예, 확실히 많이 달라졌더군요.”

두 배나 강해진 출력이 처음에는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그리고 그걸 조정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성취를 이룰 줄이야.

서리스에게 빅토르는 또 다른 의미로 은인이었던 것이다.

“잘됐네. 원래 그게 평범한 거니까.”

평범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심하긴 하지만.

서리스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검치 꼬마를 만난 소감은?”

그리고 이어진 질문은 서리스를 멈칫하게 했다.

“네가 아무리 덤덤한 표정으로 얼굴을 가려도, 내가 살아온 삶이 얼만데 거기에 속을까. 어때? 직접 보니까 더 답이 없는 꼬마지?”

이 세상에서 락스카를 꼬마라 부를 수 있는 인물이 몇 명이나 있을까 싶긴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를 자신의 경쟁자로 생각조차 하지 않는 그에게는 오만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별 출력이 돌아오니 신경 쓰이는 건 알겠지만, 너무 막 혼자 불타오르지는 마. 그러다 탈 나는 놈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야.”

저 말은 마음에 새겨 두기로 했다.

서리스는 자신을 지나쳐 단장실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문뜩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떠올랐다.

“스타린 님, 뭐 하나만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일주일이나 같이 있어 놓고 또 물을 게 있어?”

“좀 망설였었거든요.”

영혼과 육체가 합쳐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기에 묻기를 망설였던 것.

그러나 합쳐진 지금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충분히 해당할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한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날 저를 보고 떠올린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게 누구였죠?”

질문을 듣고 스타린은 걸어가던 자세에서 서리스에게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러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했다.

“삼무제 중 나와 검제 녀석을 제외한 다른 한 명.”

“그건.”

나는 그 순간 삼무제 남은 한 명을 떠올렸다.

삼무제(三武帝)

용제(龍帝)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도 본 적 없고, 이름조차 알 수 없었던 한 사람.

그런 사람이 나와 같다라.

“혹시 그분은…….”

“응, 죽었어. 그러니 딱히 신경 쓰지 마. 질문은 끝?”

“예, 감사합니다.”

고개 숙여 인사한 서리스가 걸어가기 시작하자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스타린이 단장실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락스카가 자리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

서리스가 나갔을 때와 같이 서류를 훑어보던 그가 입구에 선 스타린을 보곤 말했다.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검치 꼬마, 나 워너힐 아카데미를 떠날 거야.”

스타린의 말을 듣고 락스카는 잠깐 멍하니 눈을 깜빡이었다.

그러곤 이내 생각할 게 있는지 미간 주름을 손으로 살짝 누르다 곧 입을 열었다.

“찾으신 겁니까.”

“그래, 얼마 전에 무장공주를 쫓다가 약간의 실마리를 발견했지.”

서리스를 볼 때 드러냈던 친절함이 담긴 그의 눈동자가 어느샌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너무도 냉담한 그의 눈 속에는 짙은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용제 녀석의 시체를 뒤집어쓴 놈을.”

스타린의 분노가 담긴 음성만으로 주위가 옅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의 감정을 따라 별들이 술렁거린 탓이었다.

진동을 따라 바닥에 떨어지려는 책을 자연스럽게 잡은 락스카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를 얼마나 비우실 예정이십니까.”

“좀 걸릴 거야. 못해도 3년이려나?”

“지금 1학년이 4학년이 될 때쯤이겠군요.”

상당한 시간이라고 락스카가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스타린은 겉으로 드러냈던 자신의 감정을 다시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러곤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때쯤이면 너랑 비슷하게 또 한 명의 최연소 단장 후보가 나올지도 모를 텐데, 괜찮겠어?”

“증손자인 스타리즈를 말씀하십니까.”

“내 증손자도 그럴지 모르기는 하는데.”

스타린은 더 머리를 굴려보라는 듯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서리스 말입니까?”

“동생이 범상치 않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구나.”

그야 모르지는 않았다.

그가 테르넬에서 훈련하고 있는 이상 꾸준하게 올라오는 보고를 안 볼 수는 없는 게 자신의 위치니까.

알렉산도르 교관의 평가 속 서리스는 뛰어난 유망주였다.

단지, 그 이상으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서리스는 그냥 동생일 뿐.

실력이 좋아 자신과 같은 단장 자리를 차지한다면 펜타니엄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겠지.

무려 워너힐 아카데미에 존재하는 단 중 두 개를 펜타니엄이 선점한 셈이니까.

“그렇게 발아래를 신경도 안 쓰다가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거다.”

“어떤 의미입니까?”

“한 번쯤은 아래쪽도 보는 게 좋을 거라는 대선배님의 조언이다. 적당히 새겨둬.”

그 뒤로 스타린은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단장실 문고리를 잡았다.

“성위한테는 좀 잘 전해줘. 그 녀석, 옛날에는 귀여웠는데 요즘은 노망이 났는지 자꾸 귀찮게 해서 말이야.”

“다른 단장분들께는.”

“다 전해놨어.”

그 정도야 이미 다 해놨다는 듯, 손을 흔든 스타린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저럴 거면 문고리는 왜 잡았을까.

스타린이 떠나간 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락스카는 그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너무 위만 보지 말고, 한 번쯤은 아래쪽을 보는 게 좋을 거라는 말.

서리스가 잠깐 떠올랐지만, 그는 다시 펜을 잡을 뿐이었다.

세계 침식에 며칠 연속으로 다녀오느라 밀렸던 서류를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 * *

락스카와의 지도 대련이 있기로 한 그 당일.

서리스는 방 안에서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몸 주위를 타고 흐르는 대량의 별 무리.

서리스는 별의 흐름 속에서 마치 은하수에 누워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 순간, 먹물 같은 어둠이 별의 흐름 사이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건 다름 아닌 검은 별의 기운이었다.

서리스는 그 기운을 쫓고 쫓아 어느 한 곳에 도달했다.

눈앞을 가득 메우고 있는 어둠.

닿기만 해도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그 어둠을 보고, 서리스는 손을 뻗어 보았다.

티잉!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의 손은 어둠 속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자신을 거부하는 듯한 어둠을 보고 서리스는 이내 한숨과 함께 물러나 현실로 돌아왔다.

‘기억을 엿볼 수가 없어.’

무장공주와의 전투 당시 검은별의 폭발로 보았던 기억.

그 기억 속에서 보았던 남자를 확인하기 위해 서리스는 이렇게 시간이 날 때마다 검은별에 접촉해보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때와 달리 어둠은 자신을 밀어내고만 있었다.

혹시 그때처럼 검은별을 폭파하기라도 해야 하는 걸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그때 한 짓을 또 되풀이하는 건 너무 위험한 짓이었다.

실제로 스타린이나 윈터가 없었더라면 서리스는 어둠 속에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건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미뤄야 하는 비장의 수단.

그 기억을 엿본다 해도 지금 당장 뭔가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에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망아꾼은 분명 서리스가 가진 힘의 출저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세계 침식자.

절대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나 원, 정보를 얻기 위해 세계 침식자를 건드려야 할 줄이야.”

어서 빨리 검은별에 대한 답을 확실하게 내고 싶건만.

마음만큼 현실이 따라주지 않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결국, 그 존재의 얼굴을 보는 것을 포기한 서리스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락스카와의 지도 대련은 점심시간 이후였다.

‘그 무관심한 얼굴에 적어도 한방은 먹이고 싶단 말이지.’

그러니 그 전에 답을 얻어야 할 텐데.

서리스는 자신이 가진 패를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우선, 악스판시온.

이건 락스카를 상대로도 밀리지 않을 거다.

별을 차단해 버리면 제아무리 락스카라 할지라도 약간의 틈은 보일 테니까.

하지만 서리스는 뭔지 모를 찝찝함에 검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이 녀석 때문에 위기를 넘긴 적도 있지만 반대로 위기였던 적도 없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민에 빠졌던 서리스는 문뜩 다른 것을 생각해냈다.

빅토르를 상대로 사용했던 흑월영도.

그건 악스판시온에 제왕월영도 열화판을 두름으로서 기능한 것이었다.

악스판시온을 내려다보던 서리스의 얼굴에 묘함 감정이 깃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교차하듯 희열이 떠올랐다.

떠올랐다.

우리 큰형님께 한 방 먹일 방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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