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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50화 (150/275)

150화

갑작스럽게 생겨난 일주일 폐관 수련이 어느새 다 끝났다.

서리스는 피로한 몸으로 바닥에서 일어났다.

지난 일주일간 운성조식만 극도로 단련하며 명상에 몰두했던 서리스는 당분간 명상과 관련된 것은 쳐다도 보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음, 잘됐네. 다 자리 잡았어.”

일주일이나 씻지도 못하고 이러고 있었던 통에.

서리스가 자신의 냄새에 윽 소리를 내뱉을 동안 스타린은 만족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작 저는 크게 달라진 걸 못 느끼겠는데요.”

“별을 써보면 알 거야. 불러들이는 느낌이 달라졌을 테니까.”

스타린의 조언을 들은 서리스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아쉽게도 당장 별을 써볼 수는 없었기에 그건 나중에 확인해 보기로 했다.

우선 샤워다.

그리고 제대로 된 밥이다.

“지금 몇 시죠?”

“아침 6시.”

“딱 좋네요.”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식사하고 워너힐 아카데미로 가면 될듯싶었다.

오랜만에 가는 아카데미다.

그동안 빠진 기간이 있으니 당분간은 열심히 출석일을 채워 나가야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서리스는 저택에 갖춰진 큰 욕탕에서 목욕을 마치고 수건을 두른 채 돌아오던 길이었다.

그때, 그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문 앞에서 누군가 서성거리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발렌타인 님?”

익숙한 얼굴이었기에 별생각 없이 이름을 불렀고, 제복 차림이던 그녀는 잠시 흠칫 몸을 떨더니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곤 곧 가뜩이나 큰 눈망울을 커다랗게 뜨더니 입을 열었다.

“서리스 님, 드디어 나오셨군요!”

그녀는 눈에 띌 만큼 기뻐하고 있었다.

세계 침식자의 습격 이후 바로 스타린과 방에 틀어박힌 서리스였다.

친구인 그녀 입장으로서는 걱정될 만했으니, 이렇게 일부러 찾아와준 모양이었다.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발렌타인은 고개를 열심히 끄덕여 보였다.

“깨달음은 잘 정리하셨나요?”

“아하하, 아마도요?”

형식상 폐관 수련하고 나온 것이기에 서리스는 그리 대답했다.

정작 일주일 동안 명상만 하느라 곤욕만 치렀는데, 남들은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줄 알고 있으니.

서리스는 좀 무안했다.

‘일주일 동안 시간을 보낸 보람이 있어야 할 텐데.’

일주일씩이나 몸을 안 움직여서일까.

이리저리 몸이 쑤시는 기분이 들었다.

“아, 발렌타인 님.”

“네?”

그러다가 문뜩 서리스는 발렌타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혹시 윈터 님께서 좋아하시는 음식이라던가, 간식이 따로 있나요? 제가 폐를 좀 끼쳐서.”

스타린과 무장공주의 싸움을 끝까지 지켜 보고 싶다고 고집을 부린 자신이었으니.

이런 건 확실히 보답하는 게 맞다.

겸사겸사 스타린 님도 기회 될 때 챙겨 드려야겠지.

“아, 그런 거라면…….”

대답하려던 발렌타인은 곧 입을 다물었다.

마치 무언가를 떠올린 듯하였다.

그러곤 한차례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뭔가 결심한 듯 서리스의 옷깃을 슬쩍 잡았다.

“제가 작은 할머님께 물어봐 드릴 테니, 같이 사러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같이요?”

“네! 친구로서.”

당차게 대답하는 발렌타인은 어쩐지 귀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서리스는 떨떠름 해하면서도 미소 지으며 그러자고 말해주었다.

그것이 뭐가 그리 기쁜 건지 환하게 웃은 발렌타인을 보고 서리스는 뒷머리를 긁적이었다.

‘아직은 상관없으려나.’

그 뒤 서리스는 아침을 챙겨 먹고.

일주일 동안 말도 없이 폐관 수련에 들어갔던 걸 서운해하는 서발광을 달래준 뒤, 오랜만에 제복으로 갈아입었다.

이제야 겨우 일상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살짝 몰려드는 기대감과 함께 1층에 도착한 서리스는 한 인물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어쩐 일로 여기 있데?”

“기다렸어.”

이 녀석이 기다렸다는 말도 할 줄 알았던가?

평소와 똑같이 나른한 표정의 크라페가 서리스 주위를 돌며 코를 킁킁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똑같네.”

“나 냄새나냐?”

“아니, 전혀.”

영혼과 육체가 합쳐져도 크게 드러나는 변화가 없는 걸까.

서리스는 크라페가 자신의 냄새를 못 맡는 게 그런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어쨌든 테르넬이나 가자. 이제 훈련이 한 이틀 정도 남았나?”

한 달간 진행된 테르넬에서의 훈련도 어느새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마지막 일주일은 스타린과 보내긴 했지만, 어느새 워너힐 아카데미에 온 지 두 달이 다 되어 가는 것이었다.

‘시간 참 빨라.’

워낙 큼직한 사건들이 많이 터진 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두 달 동안 세계 침식자와의 조우만 세 번이었다.

이래서는 목숨이 남아나지를 않을 것 같았다.

인생 참 살아가기 힘들다고 생각하며 서리스는 크라페와 함께 테르넬 훈련장에 도착했다.

“오, 서리스! 올스타드 스타린 님과의 폐관 수련은 다 끝났나!”

“예,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관님.”

“하핫! 학생이 성장할 수 있는 순간인데 당연한 일이지. 워너힐 아카데미는 너희들의 성장이 가장 중요하다.”

오랜만에 본 열혈 교관 알렉산도르는 여전했다.

너무 청춘을 부르짖긴 해도 그는 역시 좋은 사람이라고 서리스는 생각했다.

그러던 중 서리스는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언제나처럼 면사포를 쓰고, 오늘따라 조금 축 처져 보이는 아이랑이 있었다.

“아이랑 님, 오랜만이네요.”

서리스가 인사하자 그녀는 갑자기 몸을 쭈뼛 세우더니 이내 풀어진 모습으로 대답했다.

“네, 서리스 님.”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듯한 그녀였다.

훈련을 통해 나름의 성취를 이룬 거겠지 라고 서리스는 생각했다.

그 뒤로 아침 훈련을 끝낸 서리스는 일주일만의 움직인 몸이 이제야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음, 아침 훈련을 여기까지 하고, 오늘은 테르넬 내에서 학생 단원끼리 주최하는 대회가 있다.”

이 소식은 처음 듣는 것이었기에 서리스는 의아함을 품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알렉산도르는 마저 설명을 시작하였다.

“그리 큰 대회는 아니고, 정기적으로 있는 테르넬 소속 학생들 간의 대련 대회다. 상품은 단장님께서 직접 지도를 해주는 것이지.”

테르넬 단장이라면.

‘락스카다.’

서리스는 락스카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자신을 보고 한참 후에야 알아본 뒤, 무관심하게 돌아서던 그 모습.

‘내가 과거로 돌아오기 전과 똑같았지.’

락스카는 늘 그런 사람이었다.

알리즈와 엑스널이 그를 경쟁자로 대하며 날을 세워도 락스카는 그들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펜타니엄 내에서 벌어지는 형제간의 경쟁조차도 그는 늘 관심 없는 태도를 보일 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언제나 가장 위에 있었고, 그것은 앞으로도 변함없는 사실이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엑스널과 알리즈를 더 미치게 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던 락스카는 그들에게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으니까.

참,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실력 하나만큼은 펜타니엄이라는 이름에 가장 걸맞은 남자이기도 했다.

‘가주에 가장 가까운 인물.’

서리스가 펜타니엄 가주를 목표로 둔 것은 아니긴 하나 그가 보기에도 가주에 가장 가까운 것은 락스카였다.

그나마 약간의 여지를 둔다면 여기에 샬롯 정도일까?

샬롯은 검성을 넘어서 펜타니엄의 별이라 불릴 만큼 천재다.

분명 순수한 재능만 따진다면 샬롯이 미세하게 우위일지도 모르나 문제는 락스카도 천재라는 것이다.

나이에서 오는 경험과 연륜.

그것만큼은 재능으로 메꿀 수 없는 영역이었고, 락스카는 언제나 샬롯보다 앞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평가는 과거를 기준으로 내린 것일 뿐이다.

지금 세상에는 저 결말을 뒤엎을 만한 큰 변수가 존재했다.

그건 바로 서리스.

큰 사건을 몰고 다니지만, 그걸 뛰어난 실력으로 극복하며 워너힐 아카데미 1학년 중 가장 주목받는 신인.

당연하지만 펜타니엄 본가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상황은 점차 미묘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거, 나중에 집으로 돌아갈 때쯤에는 후계 세력 싸움이 심화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서리스가 보기에도 자신은 갑자기 튀어나온 변수 그 자체였으니 가문 중진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것이다.

정작 가주인 락로드는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끝없는 초롱을 돌아다니고 있겠지만 말이다.

“신입생들도 참가할 수 있다만, 너희는 어떻게 할래? 원한다면 오후 훈련을 대회 참가로 바꿔줄 수 있다만.”

“할래요.”

“저야 당연히 참가할 겁니다만, 서리스 님은 어떻게 하실래요?”

이미 사전에 공지 받은 게 있어서인지 크라페와 아이랑은 쉽게 대답했다.

그런 둘을 보고 서리스도 잠깐 생각하다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이쯤 왔으면 락스카와 만나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참가하겠습니다.”

“알았다! 다들 열정적이라 교관은 기쁘군! 신청 같은 건 내가 알아서 처리해 줄 테니, 점심 먹고 쉬고 있거라.”

신난 듯 외친 알렉산도르는 뒤돌아서더니 이내 힘찬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아이랑 님, 대회에는 몇 학년까지 나오는지 아시나요?”

“3학년까지라고 하네요.”

혹시 아이랑이 알고 있는 게 있을까 싶어 서리스가 그녀에게 묻자 아니나 다를까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3학년 A반 출신은 아마 거의 없을 거예요.”

“어? 왜요?”

“A반은 대규모 크기의 세계 침식 마굴로 한 달간 합숙 훈련하러 나갔다네요.”

과연 A반답게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르네…….

문제는 그게 얼마 안 있으면 자신에게 닥쳐올 미래라는 것에 서리스는 쓰게 웃었다.

‘테르넬 쪽인 3학년 A반은 없다 이건가.’

엑스널보다 한 학년 높은 그들이니 맞붙어 본다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기대했건만,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뜩 가면 갈수록 자신이 전투광이 되어 가는 것 같은 기분에 서리스는 일단 머리를 비우고 점심부터 먹기로 했다.

* * *

둘과 함께 점심을 해결하고 몇 분 뒤, 알렉산도르가 돌아왔다.

그는 접수를 끝냈다며 곧장 따라오라고 말해주었다.

‘천옥지회 이후로 다른 학년을 만나는 건 처음인가.’

무엇보다 천옥지회에서는 알리즈를 띄워 주려고 일부러 한걸음 물러나 있었던 서리스다.

오늘은 사교회가 아니라 대회이니 다른 학년의 실력을 보다 잘 알 수 있으리라.

“서리스 님, 눈이 너무 반짝거리시는데요.”

“티 났습니까?”

“많이요.”

크라페까지 고개를 끄덕인 터라 서리스는 자기 얼굴을 매만졌다.

그러는 사이 일행은 어느새 테르넬 대련장에 도착해 있었다.

고위 마법이 사용된 듯한 충격 방지벽이나 바닥을 보던 서리스의 눈에 다른 이들이 들어왔다.

테르넬의 단원이라는 증거인 주작의 문양이 선명한 제복.

그리고 그들과 눈이 마주친 그 순간 서리스는 자기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몸을 떨었다.

본래 다른 이의 시선 같은 것에 무덤덤한 편이던 서리스였으나 자신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뜨겁다고 느낄 정도로 강렬했기 때문이다.

‘뭐야…… 이 사람들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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