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서리스가 레투앙의 정체를 알고 있던 건 언제부터였는가.
그건 다름 아닌 처음부터였다.
서리스의 몸으로 들어왔던 날, 자신을 노리던 암살자를 보낸 이를 서리스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서리스를 암살했던 이가 그의 사촌인 펜타니엄 칼릭스일 가능성이 유력했으니까.
‘펜타니엄 내에서 새로운 세력으로 등극하던 놈이지.’
전생에 칼릭스는 제 손으로 직계를 죽인 전적이 있는 놈이다.
후에 그가 한 모든 만행이 밝혀지며 그와 연관된 모두가 사형당한다.
그런 그의 수족 중에는 레투앙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때 서리스도 칼릭스가 죽이지 않았느냐로 재수사에 들어간다 했었는데.’
그건 정답인 모양이었다.
‘혹시나 나한테 암살자 보낼 놈이 더 있을까 생각해 봤지만.’
역시 칼릭스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오늘 레투앙의 시선을 보고 확신했다.
아주 짧고 미약한 시선이었지만, 서리스의 예민한 감각에 정확히 포착했다.
‘나를 암살하려던 것은 레투앙과 칼릭스다.’
그리고 오늘 레투앙은 결심했을 것이다.
암살을 다시 재시도해야 함을.
서리스는 누가 봐도 칼릭스에게 위험이 될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분명히 이번 기회에 나를 노릴 거다.’
그렇다면 확실하게 응수해 줘야지.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각인시켜 주마.
“오를레 쪽에서도 대처하려 하긴 했습니다만.”
그러는 사이 호베론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서리스는 레투앙은 제쳐두고 우선 호베론과 대화를 계속했다.
“작은 주인들끼리니까요.”
오를레는 애초에 전투계가 아니다.
만병약학주를 바탕으로 한 후방 지원이 특기인 그들이니, 청랑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당연하였다.
“일단 알겠습니다. 우선 가장 가까운 구사조부터 맡도록 하죠.”
“부탁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서리스와 함께 회의가 끝마쳤다.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밖으로 걸어 나가려던 서리스의 등 뒤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리스가 시선을 옮기자 거기에는 레투앙이 있었고, 그는 당찬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서리스 님, 혹시 이번 출전 때 저희 약품을 써 주시지 않겠습니까.”
“약품이라 하면.”
“저희 가게 약품 말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오를레의 직계들은 각자 제각기 다른 가게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하는 말들은 언뜻 보면 가게의 선전처럼 보였다.
직계에게 자신의 가게의 약품을 쓰게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니까.
하지만 그 속내는 달랐다.
‘어떻게든 약품을 쓰게 한 다음, 방심하는 틈에 독이 탄 걸 마시게 하면 끝이다.’
원래는 과거 서리스의 음식에 타서 암살하려 했던 독약이다.
무려 냄새도, 맛도 그리고 사후 검출도 되지 않는.
독왕 불터렉스 그리건의 독약.
그러나 암살자 놈이 실수해 버린 탓에 서리스에게 써 보지도 못했던 독이었다.
그때는 그냥 넘어갔지만.
‘이놈은 위험해.’
칼릭스에게 반드시 문제가 된다.
더 강하고 철옹성같이 되기 전에.
죽여야만 한다.
세계 침식 속에서 시체도 찾지 못하고 죽게 해 주마.
“이렇게 말하기 그렇지만 저희 가게 약품은 오를레 최고급이라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레투앙은 겉으로 선전에 열의를 다했다.
“생산 라인도 확실하게 구축되었으니, 후에 청랑단에도 지원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서리스가 자신의 속내를 전부 꿰뚫어 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로.
“네, 저야 환영이죠.”
서리스의 말을 듣자마자 레투앙은 활짝 웃었다.
중요한 거래를 성사하게 시켰다고 생각들만큼 수완가적인 미소였다.
‘분명 독왕의 독이었지.’
그때 당시에는 주의 깊게 보지 않았던 안건이지만.
칼릭스가 독왕의 독을 공수해 다른 직계를 살해한 건 유명했다.
분명히 약물로 수작질을 하려 할 거다.
“감사합니다! 그럼 출발하시기 전에 머무는 방 앞에 특제 약품으로 배달 마쳐 놓겠습니다!”
허리를 굽히며 넙죽 인사한 그가 신나서 가는 모습을 보던 서리스가 악의적인 웃음을 흘렸다.
‘서리스 또 뭔가 떠올랐네.’
‘직계님, 또 뭔 짓 하려고.’
그걸 본 아카펠과 도로시가 동시에 그의 미소의 불안을 느낀 것도 모른 채로 말이다.
* * *
그 이후 레투앙은 자신이 말한 대로 곧바로 방 앞에 약품을 준비해 두었다.
약품은 종류별로 다양했고 문외한인 이들이 보기에도 고급스러웠다.
“이거 엄청 비싼 건데.”
아카펠이 하나 알아보고 포션을 들어 올렸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게 딱 보아도 값이 나가 보였다.
“서리스 형이 쓸 거니까! 당연히 이런 걸 바쳐야지!”
제로는 신이 나서 외쳤지만, 서리스는 모두에게서 약품을 회수했다.
“이건 다른 곳에 넘길 거야.”
“팔려는 거야?”
서리스에게 영악하나를 빼앗긴 도로시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자 서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마 귀찮은 게 섞여 있을 확률이 높거든.”
당장 여기에 독이 섞여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괜히 먹어서 좋을 건 없다.
“그보다 더 좋은 가게가 있어. 끝없는 초롱을 가기 전에 거기에 들릴 거야.”
모두가 의아함을 가졌을 때 서리스는 제로에게 약품을 챙기도록 하곤 일어났다.
끝없는 초롱 건이 급한 만큼 빠르게 움직일 속셈이었다.
거리로 나온 네 사람은 서리스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하지만 왜인지 그의 발걸음은 외진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서리스, 여기에 정말로 더 좋은 가게가 정말로 있어?”
눈이 안 보이는 서발광조차도 질이 나쁜 악취 덕에 주변 환경이 썩 좋지 않음을 느낀 듯하였다.
이런 곳에 제로가 들고 있는 약품보다 더 좋은 게 있을 거란 생각은 안 들었다.
하나, 서리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주변 경치는 더더욱 안 좋아졌고.
하급 마약을 한 듯한 부랑자들도 몇 명 보였다.
“오를레에 이런 곳도 있었나.”
“어정쩡하게 배운 약품 제작 기술로 포션을 만드는 것보다 마약을 만드는 게 더 비싸게 팔리니까.”
오를레의 상황을 훤히 꿰고 있는 듯.
서리스는 아카펠의 혼잣말에 가볍게 대답했다.
그런 순간 서리스의 발이 우뚝 멈추어 섰다.
그의 앞에는 이름도 제대로 안 적힌 간판이 하나 걸려 있었다.
“정말 여기야?”
도로시가 물어왔다.
냄새를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듯 코를 틀어막은 그녀는 금방이라도 자리를 뜨고 싶어 보였다.
“그래, 들어가자.”
서리스가 문고리를 연 순간 내부에서 화악 하고 약 향기가 터져 나왔다.
폭발하듯 쏟아져 나온 약 향에 도로시와 제로가 동시에 한참 물러섰다.
“윽, 서리스 이건.”
서발광과 아카펠도 이건 안 되겠다는 듯 걸음을 멈췄다.
그런 네 사람을 보며 서리스는 제로에게 약품을 받았다.
“괜찮아.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도저히 못 들어가겠다는 넷을 두고 서리스는 혼자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는 매우 어두웠다.
약품과 재료는 여기저기 엉망으로 놓여 썩은 듯 악취를 풍기고 있었고.
서리스는 약품을 밟지 않도록 조심히 지나쳤다.
그러곤 카운터로 다가갔는데,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때는 진짜 엉망이었네.’
서리스는 카운터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에 조제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약품 냄새는 더 고약해졌다.
그 냄새의 중심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왜소한 체격, 굽은 등.
엉망진창인 머리카락 꼴로 무언가에 열중한 듯 열심히 만드는 남자였다.
그 얼굴은 서리스에게는 무척이나 반가운 얼굴이었다.
그 순간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누가 보아도 약품 제작을 실패한 듯한 모양새였다.
“아하하하, 재밌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고개를 젖히며 커다랗게 웃음소리를 토해 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방금 실패한 듯한 약품을 빙글빙글 돌려 보던 그는 문뜩 시선을 느낀 듯하였다.
그가 뒤로 획 하니 고개를 꺾은 그 순간.
그의 왼쪽 눈동자에 새겨진 별 문신이 반짝이었다.
“와, 당신 누구예요? 별이 이상하네요.”
비정상적으로 꺾인 고개.
한 눈으로 보아도 광인의 가까운 그의 입이 기괴하게 벌어졌다.
“보이는 게 있나 보지.”
그런 그를 서리스는 익숙한 듯 의자 하나를 빼 앉았다.
“특이하신 분이네요.”
“너한테 들을 이야기는 아니지.”
그의 이름은 오를레 셀리앙.
오를레 가문의 막내아들이자 후에 약성(藥星)이라는 거물이 될 진짜배기 천재였다.
문제는 지금은 그저 광인일 뿐이란 거지만.
“또 이상한 걸 만들고 있나?”
“이상한 거라뇨! 제가 만드는 건 언제나 작품입니다. 보세요. 화려하게 빛나지 않나요?”
조금 전 폭발한 약품을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
서리스로는 약품의 진가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셀리앙이 늘 버릇처럼 내뱉던 말이 있다.
“실패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소리냐.”
서리스의 말을 듣고 셀리앙이 멈칫하였다.
이건 그의 입버릇.
어느 실험에도 실패란 존재치 않다가 그의 좌우명이었다.
“오, 뭔가 좀 아시는 분이네요!”
처음 보는 서리스가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게 이상할 법도 한데.
셀리앙은 오히려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과거 소드란의 별을 해결하기 위해 약성을 찾아갔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아직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을 때를 말이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시다니 무슨 볼일이신가요?”
“약품을 주문하고 싶은데. 덤으로 약품의 해석도.”
“이상하네요. 펜타니엄의 자제분이 이런 곳에 있는 저한테 굳이 약품을 맡기시겠다니.”
싱글싱글 웃는 광인의 미소 너머.
셀리앙의 진가가 드러났다.
그는 언제나 웃는 광인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상황 해석이 빠르다.
눈에 새겨져 버린 별 문신.
저 눈을 통해 셀리앙은 어느 물건을 보던 물건이 거쳐 온 과정과 해석이 보인다.
오를레 가문의 막내인 그에게만 있는 독보적인 눈이었다.
‘내 옷만 보고도 그 너머가 보이는 거겠지.’
정확히 그의 눈에 어디까지 보이는지는 몰라도 서리스의 정체를 꿰뚫어 보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서리스는 그의 질문이 의심이 아닌 순수한 호기심이라는 걸 안다.
그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의심이란 자신의 호기심 충족을 방해하는 요소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광인에 가까운 사고였다.
“셀리앙, 거래를 하나 하지.”
광인은 어린애에 가깝다.
“끝없는 초롱에서 네가 구하지 못한 작은 주인급 재료들을 가져와 주마.”
그러니 원하는 것만 주어진다면.
“할게요!”
뭐든지 덥석 무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