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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45화 (44/275)

45화

레가놀과 서리스의 시선이 마주쳤다.

라파즐리는 이미 기절한 듯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조용한 침묵.

레가놀은 서리스를 잠시 동안 바라보다가 곧 검을 들었다.

“아, 끝낼 건 끝내세요.”

그런 순간 서리스의 말을 듣고 레가놀이 잠깐 눈을 치켜떴다.

“끝내라는 건.”

“시작한 싸움은 끝내셔야죠. 방해 안 합니다. 라파즐리 선배도 기절 안 한 거 알아요.”

서리스 입장에서 괜히 라파즐리가 회복할 시간을 줄 이유는 없었다.

그렇기에 얼마든지 기다려 주겠다는 듯 그가 씨익 하니 웃자 라파즐리가 움찔거렸다.

“서리스, 진짜 성격 나쁘다.”

“확실하게 하고 가는 성격이라서요.”

라파즐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몸만 빙글 돌렸다.

그러곤 하늘을 보는 자세에서 품을 뒤적거리더니 호패를 꺼냈다.

“레가놀 선배, 받아 가세요.”

후회는 없다는 듯 라파즐리는 순순히 호패를 건넸다.

이 상황이 조금 어이없는 듯 레가놀은 한 차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마.”

라파즐리에게서 호패를 받은 레가놀이 서리스를 돌아보았다.

이런 면에서 서리스와 레가놀은 비슷하지만 달랐다.

“후회하지 않나. 차라리 라파즐리와 협심해서 나를 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를 일인데.”

그 말을 듣고 서리스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럴 생각이긴 했는데. 깔끔하게 가는 게 더 좋을 거 같아서요.”

무엇보다 저런 상태로는 오히려 발목을 잡을 테니.

이런 부분에서는 칼 같은 서리스였다.

“좋다. 깔끔한 건 나쁘지 않지.”

그 말과 함께 레가놀은 서리스에게 검을 겨누었다.

“단판, 우리 둘 중 한 명이 청랑호법이 된다. 그만큼 깔끔한 건 없겠지.”

“그렇죠.”

청랑호법 후보였던 델리티드와 라파즐리의 탈락.

이제 남은 건 두 사람의 대결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꽤나 험난했다고 생각하며 서리스는 짧게 웃었다.

이번 청랑호법 시험은 서리스에게도 꽤나 의미 있었다.

아카펠과 서발광, 그리고 도로시까지.

동기와 할 수 있는 최고의 담소를 나눴으니까.

‘그러니 최고가 될 수 있도록.’

서리스는 청랑호법이 되기로 했다.

“그럼 깔끔한 승부, 잘 부탁드립니다.”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서리스가 발과 검을 동시에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몸 위로 그림자 망토가 흩날림과 함께 서리스의 별이 응축된 그 순간.

서리스는 포탄이 되었다.

금강귀명도(金强晷銘刀)

삼식(三式)

귀영분신(晷影奮汛)

처음부터 전심전력.

투쾅 하는 소음과 함께 서리스가 레가놀에게 돌진해 왔다.

대기가 찢길 정도로 강렬한 충격과 함께 레가놀과 서리스가 부딪쳤다.

서리스의 눈이 조금 크게 떠졌다.

전력을 다한 귀영분신이었다.

하지만 레가놀은 정면으로 서리스를 받았던 것이다.

물론 레가놀도 멀쩡하지는 못했다.

팔 근육이 거칠게 부풀고, 피부들이 찢겨 덜덜 떨렸다.

그러나 그의 비기 용호결수가 순식간에 육체를 복구시키기 시작했다.

‘회복력은 금강잔월의 상위 호환이라 이건가.’

레일로의 비기는 잘 알고 있다.

서리스는 레일로와 인접한 소드란의 가주였으니까.

‘까다로운 건 맞지만.’

별이란 무한대가 아니다.

계속해서 소모되고 깎이다 보면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몰아치는 수밖에 없었다.

서리스의 검이 검로를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그림자의 꼬리를 물기 시작했을 때 그 검에는 힘의 흐름을 되돌리는 반류가 깃들었다.

금강귀검로였다.

상대에게 지속적인 데미지를 주기에는 가장 좋은 비기.

비록 샬롯에게 한 번 파훼 당한 적이 있긴 하나.

‘그 뒤로 개량했거든.’

되돌아가는 힘의 흐름을 상대가 다른 곳으로 흘러 내지 못하도록.

서리스는 철저하고, 확실하게 흐름을 레가놀에게로 되돌렸다.

그렇기 때문인지 레가놀은 서리스와의 검을 맞부딪칠 때마다 눈살을 찌푸렸다.

돌아오는 힘이 상상 이상으로 강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보았을 때는 기술의 완성도가 이렇게 높지 않았던 것 같은데.’

서리스와 세계 침식을 함께한 적이 있는 레가놀이 보기에도 서리스의 성장 속도는 말이 안 됐다.

‘별이야 익히 알았지만.’

고작 1년 사이에 이렇게까지 성장할 줄이야.

‘이게 직계의 재능이라는 건가.’

서리스는 17살.

곧 서른을 앞에 둔 자신과 비교하면 얼마나 눈부신 재능인지 깨닫게 된다.

레가놀은 짧게 감탄하면서도 이 상황을 끊어 내야 함을 느꼈다.

이대로라면 서리스의 기세만 더더욱 올라가는 꼴이다.

‘그렇담.’

레가놀의 검로가 바뀌기 시작했다.

레가놀은 서리스와 같은 5성.

그것도 꽤 오래전에 올라 이미 스스로의 경지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그다.

‘갓 오른 5성과 완숙한 5성, 그 차이가 뭔지 보여 주마.’

상처를 회복하는 데만 쓰이던 용호결수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서리스의 눈빛이 바뀌었다.

레가놀에게서 오는 힘이 점점,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육체에는 본래 잠재된 힘이 있다.

그러나 그 힘들은 대부분 잠들어 있을 뿐 사용되지 못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근섬유와 뼈와 같은 것들이 한계를 넘어선 힘을 썼을 때,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평범한 사람은 잠재된 힘이 있더라도 그 이상의 힘을 낼 수 없다.

몸이 부서질 정도로 쓰는 힘은 오히려 독이었으니까.

그러나 레가놀은 다르다.

그에게는 용호결수라는 자가 회복이란 비기가 있으며.

그 뜻은 곧.

‘이 인간.’

서리스의 반류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반류로 튕겨 낼 수 없을 정도로 쏟아붓고 있잖아.’

힘의 흐름을 되돌리는 반류 사이로 빠져나온 힘의 충격이 서리스에게 돌아왔다.

‘내 생각 이상으로 또라이였어.’

레가놀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눈치챈 서리스가 짧게 경악했다.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힘에 의해 육체가 부서지더라도.

그것을 용호결수의 회복력을 이용해 복구하는 식으로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 것이었다.

덕분에 지금 레가놀의 힘은 서리스가 감탄할 정도로 강력했다.

반류가 뚫리는 시점에서 이 순간 레가놀의 힘은 서리스를 압도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레가놀이 새삼 청랑호법의 자리에 가장 어울린다고 여겨지는 이유를 알겠어.’

눈앞에 그는 마치 폭포수와 같았다.

아무리 견디고 견뎌도 언젠가 그 폭포수에 짓눌려 강 아래로 떠내려갈 것만 같은.

그러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짓눌린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서리스가 들뜬 웃음을 흘렸다.

힘으로 밀리고 있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쪽도.’

힘에는 힘으로 응수해 주는 게 도리.

‘단순 무식하게 가 주지.’

금강잔월의 별이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건 소드란과 레일로의 싸움.

펜타니엄은 접어 두고 서리스는 오로지 육체의 한계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콰앙!

검이 부딪치는 소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의 땀방울마저 증발될 법한 강렬한 열기 속.

서리스와 레가놀은 미친 듯이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뜨겁다.

피부가 타들어 간다.

호흡이 빠르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러는 사이 하나둘 이쪽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격해진 전투 속 두 사람의 집중력은 고조되어 있었고.

그들은 누군가 다가온다는 사실도 인지 못 했다.

다가온 자들은 다름 아닌 서리스 팀과 레가놀의 팀이었다.

라파즐리가 탈락한 이후, 두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식이 모두에게 퍼졌다.

그렇기에 의미 없는 싸움은 그만두고 둘의 전투를 보고자 모두들 모인 것이었다.

“레가놀 선배, 뭐 하는 겁니까. 빨리 쓰러트리고 오세요!”

그러는 순간 클로나에게 얻어맞은 듯 얼굴에 멍이 든 엔드롱이 커다랗게 외쳤다.

그의 외침에 레가놀 팀들이 하나둘 소리치기 시작했고, 그 응원은 하나의 열기가 되었다.

“서리스 형, 이겨! 이기라고!”

그런 순간 상대팀의 응원을 보다 못한 제로가 제일 먼저 외쳤다.

“서리스, 이겨라!”

“서리스 후배님, 이겨야지.”

“나까지 끌어들였으면 이기거라!”

제로의 외침을 따라 하나둘 다른 이들도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응원이 함성이 되어 숲 안을 가득 메웠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레가놀과 서리스에게는 그들의 목소리가 닿지 않았다.

극한으로 고조된 정신이.

다른 곳에 집중력을 빼앗기지 않고자 모든 걸 배제했던 탓이다.

둘의 육체는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었다.

마치 멈추지 못하는 폭주 기관차처럼.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고자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쩌적.

하나 검이란 무릇 소모품이다.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그림자 검인 서리스와 달리 레가놀은 일반 검.

그랬기 때문일까.

안타깝게도 승부를 가린 것은 그들의 힘이 아닌.

그 힘을 견디지 못한 무기에서였다.

부서진 레가놀의 검이 튕겨 올랐다.

그걸 본 레가놀의 눈이 희미하게 떠졌다.

검이 견디지 못할 만큼 강렬한 승부는 그의 인생에서도 처음이었다.

후회는 없었다.

아쉬운 건 끝까지 해보지 못했다는 것뿐.

하지만 왜인지 그에게 서리스의 검이 닿지 않았다.

레가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을 때.

서리스는 가쁜 숨을 내쉬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이 말했다.

승부를 봤다면 끝을 내야 한다고.

만약 이게 실전이었다면 서리스는 망설임 없이 레가놀의 목을 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청랑호법을 뽑기 위한 시험.

모두의 인정을 받아야만 통과할 수 있는 시험이다.

그렇다면 그 기대에 맞게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승리가 있었을 때.

비로소 서리스는 시험을 통과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 그의 말을 듣고 레가놀이 짧게 헛웃음을 지었다.

“후회하지 마라.”

“지금 여기서 끝내는 걸 더 후회했을 겁니다.”

좋은 녀석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영악한 녀석이라 봐야 할까.

“엔드롱, 검을!”

레가놀이 커다랗게 외친 순간 엔드롱이 그 즉시 검을 던졌다.

그 검을 받은 레가놀은 달아오른 육체와 함께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마지막 전력이다.”

“동감이네요.”

이쪽도 지칠 대로 지쳤거든.

그러니 끝내자.

서리스와 레가놀의 두 눈이 마주쳤을 때 서리스가 검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레가놀도 검을 들었다.

용호결수의 정수를 전부 담아.

세계 침식 속 상대의 숨통을 끊기 위해 휘둘렀던 최강의 일격이다.

용호결수(龍護結守)

용천섬(龍踐殲)

용의 거대한 발이 서리스를 압살하고자 짓쳐들어왔다.

레가놀의 진심이 담긴 일격을 앞에 두고.

서리스의 머릿속에는 그날에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흑마녀에 의해 폭주한 세계 침식 속.

검은별의 힘을 빌려 내질렀던 그 검.

조용하게 서리스의 입에서 숨결이 흘러나왔다.

세상 모든 게 사라지고 오로지 검만이 존재했다고 느꼈을 때.

서리스가 검을 조용히 내리그었다.

금강귀명도(金强晷銘刀)

오식(五式)

일도(一刀)

숲이 반으로 갈라지고.

길고 긴 청랑호법 후보 시험이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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