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벽에 기댄 채 숨을 고른 서리스는 체력이 회복된 뒤, 우선 구급상자를 찾았다.
다행히 방에는 구비된 구급상자가 있다.
서리스는 회복 영약과 붕대를 이용해 응급 처치를 하였다.
애초에 장기까지 날이 들지도 않았다.
관리만 잘해 준다면 금방 아물리라.
식은땀을 손으로 훔치던 서리스는 우선 상황을 머릿속에서 간단히 정리했다.
‘나는 펜타니엄 서리스에 빙의했고, 가문별의 힘을 통해 금강잔월을 사용할 수 있어.’
서리스는 상처를 치료하느라 옷을 벗었던 상체를 거울 가까이 대었다.
확인하려는 것은 목 뒤에 새겨져 있을 가문의 별.
눈을 떴을 때 목 뒤에 강렬히 느껴졌던 통증은.
분명 소드란의 별이 새겨지느라 생겼던 통증일 것이다.
‘그렇담 두 개의 별이…….’
거울을 통해 목 뒤를 바라본 서리스의 얼굴이 갑자기 굳었다.
왜냐하면 그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광경이 거울에 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겨진 별은 두 개가 아닌 무려 세 개.
그리고 그중 하나의 별은 마치 칠흑같이 새까맣기 그지없었다.
“……세계 침식자의 별.”
서리스는 멍하니 자신의 목 뒤에 새겨진 검은별을 바라보았다.
세계 침식에서 새어 나와 세상을 돌아다니는 재앙.
세상은 그런 자들을 세계 침식자라 부른다.
그들은 세상의 혼란과 함께 새로운 세계 침식을 불러들이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가문에 그런 자가 있다면 발견 즉시 사살이며, 혹여나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무조건 도망쳐라.’
세계 침식자들은 최소 8성 수준의 괴물들이다.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천상사성(天上四星)
천하오장성(天下五長成)
이라 불리는 세계를 지키는 최강의 고수들뿐이다.
그런 그들을 구분하는 법이 바로 이 검은색 별인데.
문제는 그게 지금 서리스의 목 뒤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미친, 미친, 이게, 이게 뭔 개 같은 상황이야.”
당황한 서리스의 음색이 울려 퍼졌다.
서리스는 자신이 지금 세계 침식자라는 것과 함께.
검은별이 들키는 순간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직감했다.
죽는다.
무조건 죽는다.
이런 암살자 따위가 아니라 천상사성과 천하오장성이라는 괴물들이 자신을 죽이러 올 것이다.
‘X됐다.’
금강잔월과 청운귀명도로 천추의 한이나 풀어 볼까 했더니.
죽기 전보다 최악의 상황이 도래했다.
판단마저 흐려진 서리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을 때.
덜컹.
문이 열리는 소리에 서리스의 몸이 한순간 바짝 굳었다.
그러나 서리스는 위기 상황에 대처가 빠르다.
그는 자기 인생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상의를 낚아채어 입었다.
그러곤 눈치를 보듯 고개를 억지로 돌렸다.
‘어 이, 사람.’
서리스는 문을 연 남성을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왜냐하면 그 남성은 서리스가 알고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정귀(無靜鬼) 펜타니엄 천랑후.
본래는 가문 없는 방랑 검사였으나 실력을 높이 사 펜타니엄에서 직접 가문으로 들인 자다.
‘저 인간 유명한 인간인데.’
천랑후가 유명해진 이유는 세계 침식을 제힘으로 혼자 막아 낸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세간에서는 그가 펜타니엄에 소속되지 않았다면.
승천하여 새로운 별이 되었을 거란 말이 있었을 정도다.
그런 그가 여기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고 보니 이 시점에서 천랑후는 펜타니엄 삼남의 전용 집사 일을 하고 있었던가?’
천랑후 씩이나 되는 인물이 왜 이런 몰락한 삼남의 집사 일이나 하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서리스는 우선 이 상황부터 어떻게 해야 함을 느꼈다.
천랑후의 날카로운 눈이 서리스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꿀꺽.
서리스는 바싹 마른침을 삼켰다.
검은별은 천만다행이 다른 별보다 아래에 위치해 있기에 옷을 입으면 보기가 여간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혹시나 그가 옷을 입는 걸 도중에 봤다면.
‘암살자라면 몰라도 천랑후는.’
반응도 채 못하고 목이 날아가리라.
“서리스 님.”
성큼, 긴 다리를 뻗어 천랑후가 서리스의 바로 앞에 도착했다.
펜타니엄의 제복이 잘 어울리는 미남이었지만.
지금 서리스의 눈에는 저승사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새까만 그의 눈이 서리스에게 닿을 때마다 서리스는 긴장감으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서리스의 옷 위로 천랑후의 손이 닿은 순간.
서리스는 두 번째 생이여 안녕이라고 고했다.
“……역시 다치시지 않으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늦게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나 천랑후에게 돌아온 말은 검은별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천랑후가 옷을 들어 살핀 것은 서리스의 상처였지 그의 목 뒤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살았다. 살았어!’
서리스는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긴장감이 겨우 해소되는 것을 느끼며 몸에 들어간 힘을 풀었다.
암살자를 쓰러트렸을 때보다 더한 환희가 그의 내면에서 터져 나왔다.
“이 암살자는 서리스 님이 처리하신 겁니까?”
그러는 사이 천랑후가 암살자를 내려다보며 물어 왔다.
원래라면 혹시나 천랑후가 암살자를 보낸 자와 공범일 확률도 있겠지만.
‘천랑후는 그런 인물이 아니지.’
서리스도 울드렌 시절 소가문의 가주였다.
천랑후와는 몇 번 마주친 적 있으며 펜타니엄 내부에서 흘러가는 정치 정도는 대강 알고 있다.
그리고 암살자를 보낸 대상도 따로 의심 가는 인물이 있다.
그렇기에 서리스는 곧장 천랑후와 암살자와의 연관성을 제외했다.
“맞아. 내가 그랬어. 다짜고짜 공격해 오니까 어쩔 수 없었어.”
서리스의 대답을 듣고 천랑후는 잠시 동안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서리스를 돌아보며 도리어 물음을 던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냐니?”
“암살자를 보낸 자를 찾으시고자 한다면 제가 움직이겠습니다. 서리스 님의 목숨을 노린 자는 엄벌에 처해야 하니까요.”
서리스는 천랑후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암살자를 보내 왔단 걸 대대적으로 알리는 건 서리스에게서 최악의 수다.
지금 서리스는 검은별을 지니고 있다.
실력은 쥐뿔도 없는 마당에 주목이 쏠리는 것은 절대로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암살 위협을 받았다는 이유로.
주모자를 찾을 때까지 호위와 함께 방에 갇혀 버릴 가능성도 있다.
“아니, 알리지 않아. 암살 공격을 받았다는 것을 알려 봤자 얻을 득은 전혀 없어. 오히려 내 행동만 제약되겠지.”
망설임 없는 서리스의 대답을 듣고 천랑후는 잠시 동안 눈을 살짝 뜨더니 입을 열었다.
“서리스 님, 바뀌셨군요.”
바뀌었다는 말에 흠칫한 서리스가 천랑후를 돌아보았다.
서리스는 본래 몸 주인이 평소에 어떻게 행동하는지 아직 잘 모른다.
무슨 실수라도 있었을까?
서리스가 바짝 긴장했을 때 왜인지 천랑후의 얼굴에는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예전으로 조금 돌아오신 것 같습니다. 혹시 무슨 바람이라도 부셨습니까?”
예전이라는 말은 몸의 주인인 서리스를 가리키는 말이다.
서리스는 몰락하고 게으른 삼남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꼭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계기가 분명.’
서리스가 이렇게 된 것은 분명 여동생.
펜타니엄 샬롯.
이라는 천재의 등장 이후였다.
고작 한 살 차이 밖에 안 나지만.
이미 세간에서 검성(劍星)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천재 여동생.
그 때문에 서리스는 동생에게도 밀린다며 비난과 멸시를 받다가.
어린 나이에 정신적으로 망가져 버렸다.
‘힘들지. 그런 건.’
압도적인 격차. 즉, 재능의 차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는 건 어른도 견디기 힘든 법이다.
아무래도 천랑후는 서리스가 망가지기 전인 예전을 떠올리는 듯하였다.
다행이다.
그렇담 이참에 이용하자.
“암살까지 당하게 되니 좀 깨닫게 되는 게 있어서. 나도 당하고만 살고 싶지 않아. 바뀌고 싶어졌거든.”
그리고 이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서리스의 진심이었다.
평생을 무시 받고 살아온 서리스는 이제 무시 받지 않는 새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서리스와 울드렌은 닮은 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리스 님.”
천랑후의 두 눈이 처음으로 떨렸다.
그런 천랑후를 보고 서리스는 무안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 암살자를 처리한 뒤, 검을 다시 잡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예, 제가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천랑후는 암살자의 그림자 아래 손을 옮겼다.
그 순간 치솟은 그림자가 암살자와 그가 쏟아 낸 핏물까지 한 번에 집어삼켜 버렸다.
청운귀명도는 그림자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비술.
펜타니엄의 별을 인공적으로 새긴 천랑후이기에 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그런 천랑후를 보던 서리스는 문뜩 한 가지가 떠올랐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물어보고 싶었다.
“천랑후, 소드란이 최근 어떤지 알아?”
바로 소드란의 관한 것이었다.
자신이 서리스의 몸에 들어오고 난 후 원래 몸은 어떻게 되었을까.
혹시 지금도 소드란 가문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가 하는 궁금증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나, 돌아온 답은 뜻밖의 말이었다.
“……서리스 님, 죄송하지만 소드란이 무엇입니까?”
“어? 소드란을 몰라?”
아무리 자신의 가문이 무시당하고 살았다지만 모른다고?
하지만 천랑후의 표정은 난생처음 들어 보는 단어라는 느낌이었다.
“우리 아래 소가문들 말이야.”
“소가문들이라면 분명 하체펠, 오를레, 칸빌레 말고는 더 없습니다만.”
천랑후는 고개를 기울였다.
“혹시 제가 모르는 사이에 소가문 하나가 더 늘었습니까?”
돌아온 대답에 서리스의 두 눈이 흔들렸다.
지금 이게 무슨 소리야.
소드란이 없어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