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2화 (2/275)

2화

【그…… 별이…… 선택……】

【……】

귓가에 노이즈 섞인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사후 세계는 이런 법인가.

짧은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을 때, 그는 갑자기 목 뒤가 타는 듯 뜨거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죽은 주제에 고통까지 느끼는 건가.

하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눈이 감겨 있는 듯한 감각이 일었다.

‘이거 뜨려면 뜰 수 있겠는데?’

그런 건 둘째치고, 뭔지는 몰라도 목 뒤가 뜨거워도 너무 뜨거웠다.

“아악!”

견디지 못한 울드렌은 결국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급히 고급스러운 탁자 위에 놓인 물병을 들어 목 뒤로 쏟아부었다.

옷이 젖긴 했지만, 차가운 물이 닿자 그는 한결 편해진 표정이 되었다.

대체 뭐기에 목이 이렇게 뜨거운지 나 원.

“어, 어?”

그렇게 통증이 사라진 순간 울드렌의 입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죽었을 거라 여겼던 그의 시야에 주위 경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화려한 방, 벽에 걸린 검, 그리고.

“……펜타니엄.”

검 한 자루가 용의 목을 관통한 펜타니엄의 상징 문양.

혹시 죽어 가던 자신을 펜타니엄 직계가 구해 준 걸까.

약간의 두통을 느낀 울드렌은 우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도 몸이 무거웠다.

육체가 약할지언정 운동은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오랫동안 누워 있었는지 근육이 흐물흐물했다.

‘키도 좀 작아진 거 같은데.’

다리가 녹아 다시 붙이기라도 한 걸까.

비틀거리며 걷던 그의 눈에 방구석에 놓인 거울이 보였다.

하지만 왜인지 거울에는 울드렌의 모습은 비치고 있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낀 그가 급히 거울 앞으로 다가갔을 때.

거기에는 못 보던 얼굴의 남자가 있었다.

‘누구야 이거?’

오랫동안 관리를 안 했는지 눈을 가릴 정도로 내려온 흑발의 머리카락.

더불어 겨우 십대 중반쯤 되는지 상당히 어려 보이는 인상에.

본래라면 잘생긴 얼굴일 테지만, 진한 다크서클과 살 오른 볼이 망쳐 버린 얼굴이었다.

처음 보는 남자의 모습.

울드렌의 얼굴 위로 당혹감이 번졌다.

자신의 푸른색 머리카락과 그럭저럭 썩 괜찮은 얼굴은 어디 가고.

듣도 보도 못한 남자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낯이 좀 익은데?”

볼을 손으로 살짝 누르며 이게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을 확인하던 순간.

멈칫.

울드렌의 육체가 굳었다.

비록 직접 싸우지는 않았을지라도 세계 침식으로부터 수많은 사선을 넘어온 그다.

그에게 있어서 감이란 곧 위험을 알리는 신호.

야생 동물과도 같은 그의 감이 지금 이 방에 퍼졌다.

후욱!

그 순간 아무도 없던 곳에서 칼날이 머리로 직행해 날아왔다.

육체적 능력이 아닌, 오직 감만으로 알아채 미리 움직인 그의 머리가 아슬하게 칼날을 피했다.

몸이 이상할 정도로 가볍다.

본래라면 반응이 늦어 얼굴이 찢어질 각오 정도는 했어야 했을 텐데.

육체가 상당히 재빠르기 그지없었다.

“칫!”

혀를 차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울드렌은 몸이 이상함을 알아차렸지만, 지금 상황을 타개하는 게 먼저였다.

그는 급히 벽에 걸린 검을 호신용으로 쥐었다.

그러나 왜인지 쥐고 있는 검이 낯설지가 않았다.

방금까지 자신보다도 단련되지 못한 육체라 느껴졌던 몸이.

어느샌가 잘 버려진 한 자루의 검 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뭔가 다르다.

뭔가 명백히 달랐다.

하지만 지금은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눈앞에 저자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네놈 정체는 뭐냐. 나를 왜 노리는 거지?”

“알 거 없다. 삼남 씨.”

까칠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울드렌은 삼남이라는 말에 의아해했다.

자신은 분명 소드란의 장남이다.

그렇담 암살자가 노리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는 소리인데.

‘아까 보았던 그 얼굴.’

왜 그 얼굴은 낯이 익었는가.

울드렌의 시야가 아주 짧은 틈에 자신과 암살자를 비춘 거울에 닿았다.

암살자와 대치한 흑발의 남성을 본 순간 울드렌의 눈이 서서히 커져 가기 시작했다.

‘그거야. 당연히 낯이 익지.’

그 얼굴은 낯이 익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살이 찌고 많이 망가진 얼굴이었지만.

그 얼굴은 다름 아닌 대가문 펜타니엄의 가주.

천상사성(天上四星) 중 한 명이자.

‘검황(檢皇) 펜타니엄 락로드’와 닮아 있으니까!

그리고 암살자가 말한 삼남이라는 말을 추측건대.

‘삼남 펜타니엄 서리스.’

그 락로드의 아들 중 한 명이자 막냇동생에게까지 검의 경지를 따라 잡힌.

몰락한 게으른 삼남.

지금 이 육체는 다름 아닌 펜타니엄 서리스였던 것이다.

당혹스럽다.

어째서 죽었다고 생각한 자신이 갑자기 펜타니엄 서리스에게 빙의 되어 있단 말인가.

그리고 서리스는 분명 울드렌과 동갑이었다.

그렇담 그는 현재 본래 34살이기에 이 정도 동안일 리도 없을뿐더러.

‘애초에 펜타니엄 서리스는.’

19년 전에 사망한 인물이었다.

사인은 전날 술을 너무 마시고 자던 도중 토사물이 기도를 막으며 숨을 못 쉬어 사망.

15살의 어린 나이에 술까지 마시며 놀기만을 하던 그의 걸맞은 최후였다.

그럼 지금 자신은 죽은 사람 몸에 들어와 있는 건가?

그럴 리가.

‘정보가 부족하다.’

정보를 얻어 사태 파악을 하려면 우선 이 자리부터 빠져나가야 했다.

울드렌은 검을 쥔 손에 맺힌 땀방울을 무시하며 숨을 천천히 골랐다.

몰락한 삼남이라고 하더라도 이 몸은 세계 최고의 검술 대가문 펜타니엄 직계의 육체다.

선천적으로 평생을 약한 육체로 살아온 그다.

약한 육체를 보완하고자 했던 수많은 노력들을 그는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근육의 가장 효율적인 사용법을 알기에 울드렌이 긴장 상태를 유지했다.

그 순간 자연스럽게 육체가 가장 많이 해 온 검술 자세로 돌입하기 시작했다.

“……청운귀명도(淸雲晷銘刀).”

암살자 쪽에서 신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의도한 것은 아니나 이 자세는 분명.

검술 명가 펜타니엄이 자랑하는 청운귀명도의 검술식 기초 자세였다.

청운귀명도의 명성은 대륙 전체에 퍼져 있다.

당연히 암살자도 그 사실을 알기에 섣불리 접근해 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거라면 견제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하지만 암살자를 쓰러트리지는 못한다.

서리스가 이도 저도 못 하고 있을 때 암살자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신형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그 순간 비장이 위치한 곳을 향해 칼날이 날아들었다.

몸을 틀어 피하자 핏핏 소리와 함께 심장, 목을 향해 칼날이 집요하게 따라왔다.

위험하다.

방금도 아슬아슬하게 피했을 뿐.

살짝만 반응이 늦어도 분명 칼날에 목숨이 날아갈 게 분명했다.

그사이 암살자는 또다시 어둠 사이로 인영을 흩뜨렸다.

아무래도 그가 지닌 비기인 듯싶었다.

상대가 더 빠른 데다가 시야조차 넉넉지 않다.

또 한 번의 칼날을 한 바퀴 굴러 피한 서리스는 차오른 숨을 몰아쉬었다.

암살자 쪽이 기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대로면 분명히 당한다.

‘내게 있는 수는.’

청운귀명도 자세와 남의 몸을 강화시켜 주는 금강호기뿐.

‘……잠깐만.’

있는 수가 정말로 그것밖에 없는가?

그 순간 서리스의 두 눈이 뜨였다.

‘나는 지금 울드렌이 아니야.’

이 몸은 분명 펜타니엄 서리스다.

그렇다면 가문의 별에 내렸던 저주도 더 이상 없다는 소리이며.

‘금강잔월로 죽을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서리스는 결정을 내렸다.

서리스의 육체이기에 소드란의 가문별이 응답해 줄지는 미지수지만.

지금은 이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별이여.’

그 순간 그의 목 뒤에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아주 작은 별빛이 깃들었다.

별은 빠른 속도로 그의 내부에 자리 잡을 곳을 찾았다.

‘된다!’

서리스의 눈가가 암살자가 눈치 못 챈 사이 파르르 떨렸다.

그에게 있어 소드란 가문의 비기는 평생의 한이었다.

삼켜서는 안 되는 선악과였으며 울분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몇십 년 만에.

금강잔월 1성 입문에 도달하였다.

전율이 흘렀다.

그러나 서리스는 곧바로 정신을 되잡았다.

천추의 한을 풀었다고 해도 지금은 이 상황이 먼저다.

지금 각성한 금강잔월은 기껏해야 1성.

육체의 강인함을 조금 올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저 녀석의 움직임을 나는 따라가지 못해. 그렇다면.’

서리스의 두 눈의 이채가 돌았다.

마치 승부사가 승부를 끝낼 기회를 잡은 듯이.

그리고 같은 상황.

어둠 속에 스며든 암살자는 서리스의 기세가 조금 달라졌음을 눈치챘다.

무슨 비장의 수라도 떠오른 건가.

암살자는 칼을 역수로 고쳐 잡았다.

그래 봤자 상대는 몰락한 게으른 삼남이다.

삼남은 검을 놓은 지도 2년이 넘었다.

암살 교단에서 쭉 활동해 온 자신이 암살을 실패할 리가 없었다.

‘다음 걸로 죽인다.’

암살자에게서 스산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암살자가 급습했다.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한 마리의 뱀처럼.

암살자는 서리스의 왼쪽 목을 노리고 자신의 송곳니를 휘둘렀다.

암살자의 움직임을 알아차린 서리스가 급히 목을 꺾었다.

‘피했다!’

간신히 한 회피.

연이어 암살자를 향해 서리스가 검을 겨눈 순간.

화아아아악!

암살자의 목 뒤 문신이 힘을 토해 내었다.

그 순간 일대의 빛이 후욱 암살자에게 빨려 들어가고.

암살자의 인영이 사라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다름 아닌 서리스가 검을 겨눈 반대편이었다.

서리스의 텅 빈 오른쪽 옆구리가 암살자의 눈에 들어왔다.

정말로 뱀과 같이 서리스를 휘감듯 나타난 암살자의 눈이 번뜩였다.

‘끝이야.’

죽이기 위한 살기를 가득 담은 칼이 달빛을 받아 번뜩였다.

텅 빈 서리스의 옆구리를 향해 칼날을 전력으로 휘둘렀다.

‘이대로 옆구리와 함께 심장까지 전부 관통한다!’

푸욱!

그리고 선홍빛 피와 함께 칼날이 서리스의 몸을 관통했을 때.

암살자의 두 눈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이게, 뭔?!’

분명 몸을 꿰뚫을 속셈으로 온 힘을 다 쏟아 박아 넣었던 칼이었다.

그런데 칼날이 왜 반도 채 진입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뿐만이 아니다.

칼날은 마치 거대한 거인의 손가락에 붙잡힌 마냥 뽑힐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육참골단(肉斬骨斷).

살을 내주고 상대의 뼈를 자른다.

서리스는 일부러 자신의 옆구리를 내주었다.

그 대신 암살자의 칼을 배 근육으로 붙잡는 기행을 벌인 것이다.

오직 금강잔월의 위력을 믿었기에 할 수 있는 터무니없는 행동.

그리고 그 기행은 암살자를 확실하게 당황하게 했다.

사실상 암살자의 당황은 아주 짧은 틈에 불과했다.

암살자 입장으로서는 칼을 놓고 빠지면 그만인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사람이란 의존하고 있는 무기를 잃었을 때.

그 무기를 포기 하는 방향으로는 사고가 빨리 돌아가지 못한다.

그것도 생사가 오가는 급박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암살자의 칼이 박혔을 때부터.

서리스의 검은 이미 하늘 높이 들어 올려져 있었다.

“내가 이겼어. 개자식아.”

그리고 광풍이 불었다.

강인한 육체는 곧 최고의 방어이자 무기일지니.

금강잔월(金强虥狘)

박살(撲殺)

세상 무식한 일격이 암살자의 목에 닿은 그 순간.

으지직, 서걱!

뜯기듯 잘려 나간 암살자의 목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화려한 검술이나 기교는 전혀 없는 단순무식한 일격.

그러나 암살자의 목은 그 일격을 견디기에는 너무도 연약했다.

서리스가 바닥 털썩 주저앉았다.

“아파라.”

그러나 통증과 흐르는 땀에도 서리스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각성과 승리의 고양감이 그의 감정을 고조시켰던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때 알지 못했다.

그날 하늘 위 새로운 별이 떠오르며 가문들의 천체 관측사들이 소란을 일으켰다는 것과.

새로운 세계 침식의 검은별 하나가 같이 떠올랐다는 사실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