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인류의 본성이 본성인지라 허구한 날 전쟁하고 다녔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루미너스도 여기에 끼었고."
이후로 만물의 아버지, 히르트가 과격한 사상에 빠져들게 되고 서로 피터지게 싸우면서 세상이 멸망한다."
이것이 1부의 이야기이며 2부부터는 신학에서도 나온 설화다. 루미너스가 잔존한 인류를 번성시키는 이야기."
인류가 해결하기 어려운 몬스터들을 직접 처치하고, 그들이 기반을 세울 수 있을 때까지 세상을 수호한다."
하지만 히르트가 다시 부활을 꾀하면서 진실이 퍼져나가고, 그 진실을 묵묵히 감내하며 다시 세상을 지키는 것."
그것이 2부이며 부제도 '수호신'이다. 사실 부제 자체가 일종의 스포일러라 보면 된다."
[전쟁의 신 완결. 제논의 예언은 무려 루미너스 님의 구원이었다.]"
[더이상 패륜과 학살을 저지르던 전쟁의 신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수호신으로 변한 루미너스.]"
[아직은 아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루미너스는 히르트의 뒤를 이을 '주신'으로 격상할 것이다.]"
루미너스가 이 세상의 진정한 수호신이 되어 만인에게 숭배를 받는다는 결말."
전에 루미너스가 나에게 했던 마지막 예언처럼, 나 또한 루미너스가 주신이 될 수 있게끔 엿을 던져버렸다."
루미너스 입장에서는 진퇴양난이나 다름없다. 아니라고 부정하자니 내 말이 거짓으로 바뀌는 거고, 수락하자니 그건 또 싫고."
하지만 그가 주신으로 승격해야만 히르트가 활개칠 구멍마저 완벽하게 막아버릴 수 있다."
더 나아가 현재 히르트는 하계에 간섭할 수 없고, 의식조차 사라진지라 관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래서 내 친히 직접 올려줬다. 안 그러면 나를 또 강제로 주신 자리에 앉힐 것 같았으니까."
그 말도 안 되는 걸 예언이랍시고 나를 신으로 승격할 때부터 조짐을 느꼈다."
이대로 가다가는 뒷통수 맞을 거라고. 그러니 서둘러 일을 벌이자고."
하하하하. 어쩐지 나를 숭배하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했더니 역시 너였구나?""
하하하하. 저도 귀찮은 건 질색이라서요. 어차피 주신이 될 거면 확실하게 합시다.""
하하하하. 이제는 자기 소설을 예언으로 취급하는구나?""
하하하하.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능력이죠.""
저 화목한 대화의 주체들은 당연하게도 나와 루미너스다."
루미너스는 내 어깨에 손을 턱- 얹은 채 웃음을 터뜨렸고, 나 또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이마에 혈관이 돋아난 건 착각이겠지. 저 근육근육한 몸에 힘이 들어간 것도 착각일 테고."
서로서로 사이좋게 나란히 엿을 먹이는 모습이 참 좋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후우······ 얘야.""
네. 말씀하세요.""
말은 그렇게 했다만 얼추 예상하고 있었단다.""
그렇겠죠.""
나를 강제로 신격화시킨 걸 보면 루미너스도 천천히 준비하고 있던 게 확실하다."
그사이 내가 빅엿을 던져버린 거고. 이 인간 아니, 신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을지 알아야지."
루미너스는 내 명료한 대답에 한숨을 푹 내쉬더니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쩔 수 없구나. 빠른 시일 내로 일을 진행시키는 수밖에. 덕분에 여러 의미로 혼란스러워지겠어.""
만물의 아버지가 세상을 멸망시키는 것보다 낫겠죠.""
글쎄. 너희 세상으로 비유하자면 로마에 기독교가 들어온 것보다 몇 배는 심할 거란다.""
그정도인가? 라고 생각하기에는 여러모로 비슷한 구석이 많다."
종교라는 건 원래 그런 거니까. 더 나아가 루미너스가 주신으로 승격하면 자연스레 세이비어의 힘도 강해지겠지."
아마 루미너스는 이를 경계하는 듯했다. 먼 과거라지만 세이비어 교국은 루미너스의 빛을 등에 업고 광기를 피웠으니."
그런 일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절대 없다. 예로부터 역사는 반복하는 법이니까."
알아서 잘하세요.""
너······""
저에게 그런 엿을 던지셨잖아요. 저도 한번쯤은 그래야죠.""
후우.""
루미너스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런데 손 모양이 조금 이상하다."
검지손가락만 쭉 편 것이 무언가 겨냥하는 듯한 모양새. 이에 다급히 외쳤다."
잠깐. 잠깐. 잠깐! 진짜로 쏘시려고요?!""
그냥 고민한 거란다. 하지만 깨달은 자가 말하길, 참을 인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하더구나.""
장난이라도 그런 건 하지 마세요. 진짜 무서워요.""
빈말이 아니라 물리력 하나로만 따지면 루미너스를 이길 수 없다. 당장 저 근육덩어리를 보아라."
심지어 손에서 나가는 레이저는 핵폭탄급으로 강하다. 출력을 최대로 줄인 것조차 나를 소멸시키겠지."
루미너스는 이후로도 여러 번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가 해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래나저래나 주사위는 던져진 셈이다."
······이건 천천히 해결하는 게 좋겠구나. 당장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주신이 되는 것 자체는 불만이 없으시죠?""
없지. 언젠가 올라서야 될 상황이었으니까. 단지 그 시기가 급작스레 앞당겨졌을 뿐이지.""
루미너스가 머리를 헤집으며 끙끙 앓는다. 확실히 난감하긴 난감한 모양이다."
······아니지. 방법이 따로 있네.""
네?""
아무것도 아니란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끝이니?""
방금 뭔가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나 루미너스는 그저 부드럽게 웃어줄 뿐이다. 저러니까 더욱 수상하다."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상황이어서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 이에 살살 눈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네. 뭐······ 궁금한 게 있긴 있어요.""
뭐가 궁금하니?""
만약 제가 정말로 신이 된다면, 지구의 근황도 알 수 있는 건가요?""
사실 이게 제일 궁금하다. 훗날 승천하게 되면 지구의 근황도 살펴볼 수 있는지."
내 친구들의 근황도 궁금하고, 더 나아가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가 제일 궁금하다."
나 때문에 미래의 대통령이 바뀐다는데 지금쯤 지구의 신들이 엄청난 고생을 하고 있을 터."
루미너스는 내 질문을 듣고 살짝 고민하는 듯하더니 애매한 대답을 내놓았다."
네가 지구를 직접 방문하지 않는 이상에야 근황을 아는 건 힘들 거란다. 다만 이 세상과 지구는 이미 연결돼 있기에 시간 차를 두고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시간 차를 두고 정보를 얻는다고요?""
그래. 최대 2년 전의 정보를 알 수 있단다. 이참에 말이 나와서 그런데 궁금한 거라도 있니?""
궁금한 거야 많죠.""
내가 이 세상으로 넘어왔을 때가 러-우 전쟁이 한창이었던 시절이다."
대통령 선거는커녕 2021년이 거의 다 끝났을 때쯤. 그래서 궁금헌 건 꽤 많다."
새로운 대통령은 누가 됐어요?""
너희 나라 기준으로 보수 정당이 됐단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전 모르겠네요.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 ···""
그리 말하니 루미너스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미래의 내가 대통령마저 바꾸는 거물이 된다고 했던가."
하지만 당시에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부모님을 여의고 독방에서 미친듯이 글만 썼을 때다."
아무튼 이건 넘어가고, 나는 다른 질문을 꺼냈다."
2022 월드컵은 어떻게 됐어요? 대한민국이랑 우승자만 알려주세요.""
대한민국은 극적으로 16강에 진출 후 브라질과 만나 탈락했단다. 그리고 우승은 아르헨티나가 했지.""
엇! 메시가 월드컵 우승을 한 거예요?""
메시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만 아마 그렇지 않을까? '역사'에 실릴 정도면 대단한 인물이었겠지.""
와······""
개 같은 악마 숭배자 새끼들. 조금 더 늦게 데려오지. 그걸 눈으로 직접 봤어야 했는데."
게다가 대한민국이 16강에 진출한 것도 어마어마한 성과다. 탈락조차 브라질을 만난 거라 수긍했을 테고."
여러모로 재미있을 것 같았던 월드컵이다. 그걸 못 봤다니 정말 억울하다."
그럼 전쟁은요? 전쟁은 끝났나요?""
아니. 아직까지 진행 중에 있단다.""
아이고.""
나는 진심으로 탄식했다. 길어질 거라는 건 대충 예상했다만 너무 길어졌다."
그 전쟁 한 방으로 세계경제가 박살이 났는데 지금은 얼마나 더 힘들까. 심지어 코로나까지 있을 텐데."
불행 중 다행이도 전염병은 어느 정도 물러갔단다.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사람이 줄어들었지.""
아. 그건 다행이네요. 그럼 제 친구들은······""
미안하지만 들어오는 정보는 대부분 '역사'란다. 개개인까지 확인하려면 네가 직접 그 세상을 살펴볼 수밖에 없단다.""
쩝······""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친구들의 근황을 알려면 조금 오래 걸릴 듯했다."
부디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고등학생 때부터 붙어다니던 놈들이라 더욱 신경 쓰인다."
뭐······ 궁금한 건 대충 여기까지네요. 전쟁은 누가 유리하죠?""
글쎄. 지금 러시아 쪽에서 쿠데타가 일어나서 잘 모르겠구나.""
엥?""
갑자기 웬 쿠데타.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루미너스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설명했다."
그쪽 동네는 정말 신기하더구나. 예측을 전혀 못하겠어.""
······전쟁의 신이 할 말은 아니지 않나요?""
그러니까.""
··· ···""
지구 작가 놈이 무슨 흉계를 꾸미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서로 화목(?)한 대화가 끝나면서 나는 다시 저택으로 돌아왔다."
전쟁의 신도 완결되었으니 남은 건 탱자탱자 노는 것밖에 없다. 아이들 육아에 집중해야지."
[세이비어 교국의 교황. 루미너스 님의 신탁에 따라 순례길에 오를 것.]"
근데 이 신이 또 무슨 짓을 저지르려 하는 걸까."
아이작이 전쟁의 완결분에 넣었던 예언. 그 예언으로 가장 난리가 난 건 당연하게도 세이비어 교국이다."
루미너스가 제아무리 훌륭한 신이라 해도 히르트의 쌍둥이 자식 중 하나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이때까지는 그리 생각했다."
문제는 전쟁의 신이다. 전쟁의 신에서 모라의 새로운 진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현재의 모라가 세상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존재한 게 아닌, 대전쟁 이후 새로이 태어난 여신이라는 것."
1대는 히르트의 자식이 맞지만 2대 모라는 루미너스의 자식이라는 진실에 모두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루미너스 교단 밑에 모라 교단을 끼워넣는 경우가 조금씩 보였다."
또한 이번에 아이작이 퍼뜨린 예언으로 조금씩 불온한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평범한 신이 아닌, 무려 세상을 관장하는 주신으로 승격한다는 예언."
이 예언대로라면 세이비어 교국이 더 큰 위세를 얻는 건 자명한 일이다."
그럼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평소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래도 무려 주신으로 승격하시는 건데······""
신성력이 더욱 강해질 수도 있겠지.""
본인들이 모시는 신이 주신으로 승격한다는 소리에 세이비어는 여러 의미로 시끄러웠다."
들뜬 사람도 있고, 벌써부터 어깨에 힘이 들어간 사람도 있었으며, 상상의 나래에 빠져든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빛이 있다면 언제나 그림자도 지는 법. 먼 과거에 광신에 휘말려 사건을 일으켰음에도 그런 기류를 풍기고 있다."
물론 그것이 너무 오래 된 과거라는 점과 루미너스가 주신이 된다는 점. 이 두 가지가 합쳐 과거를 까맣게 잊었다."
이러다가는 큰일난다. 상층부는 들뜬 마음도 잠시 이러한 분위기를 읽고 서둘러 대책에 나섰다."
어찌하면 좋겠소?""
그렇게 말씀하셔도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여전히 교황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브리크의 물음에 헤라가 대답했다."
헤라의 대답에 동의한다는 듯, 나머지 추기경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추기경이라 해봤자 데이모스와 새로 승격한 한 명밖에 없었지만."
케이트는 현재 루미너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어 당장은 그들끼리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더구나 정말 루미너스 님께서 히르트와 동등한 위치에까지 오르신다면, 저희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시는 게 힘드실 수도 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오? 데이모스 추기경.""
데이모스 추기경의 대답에 브리크가 물었다."
회색 사막 원정은 최근에 모두 종료되었다. 이제 거기는 원정이 아닌 고고학의 성지로 변모했으니."
히르트가 진정한 의미의 자연으로 돌아감과 동시에 모건 왕도 성불했다."
그가 성불함과 동시에 그 안의 원령들 또한 순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따라서 그 어떤 위협조차 없었다. 게리오스 왕국은 이제 고대 유적에 지나지 않았다."
히르트 님 또한 저희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주신이라는 위치는 필멸자가 아닌 세상 그 자체를 관조해야 되는 존재. 그러니 루미너스 님께서도 도움을 주시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일리있는 소리로군. 그리 된다면 우리 세이비어 교국은······""
권위는 유지될 겁니다. 하지만 힘은 떨어지겠죠.""
으음······""
성직자는 본인의 시간을 바쳐 신에게 신앙심을 품고, 신은 그 신자에게 신성력으로 힘을 빌려준다."
이것은 세상이 새로 탄생했을 때부터 쭈욱 이어져 오던 상식. 그 상식이 부서진다는 건 힘의 약화를 의미한다."
이 세상은 몬스터를 비롯하여 여전히 인류에 위협이 되는 것들이 많다. 당장 바다만 하더라도 온갖 위협이 넘쳐나지 않는가."
그러니 루미너스가 주신이 된다면 세이비어 교국의 국력이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다행히 권위는 유지되겠지만 말이다."
우선 케이트 추기경이 루미너스 님에게 어떤 말씀을 듣고 올지 기다리는 게 좋겠군.""
그러고 보니 케이트 추기경은 언제쯤 교단을 옮기는 거죠?""
헤라의 질문이었다. 본래 케이트가 마음에 들지 않던 그녀였지만, 바크 추기경 이후 쭈욱 신뢰했다."
하지만 최근 돌아다니는 소문에 따르자면 케이트가 루미너스 곁을 떠난다는 말이 있다."
케이트는 교황과 맞먹는 권위를 가진 인사. 그런 인물을 교단을 떠나면 큰 손실이다."
그건 아직 확정된 게 아닙니다. 반쯤 마음을 굳힌 것 같지만요.""
혹시 제논교의 교황이 되는 건······""
아주 불가능한 소리는 아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