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집필뿐만 아니라 육아도 해야되서 바쁘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레이스가 육체적으로 고생시킨다면, 릴리는 정신적으로 고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릴리는 날이 가면 갈수록 '마법'에 특출난 재능을 보여서 매사에 관심을 기울여야 된다."
방금 전에도 하늘을 둥둥 날아다니지 않았는가. 세실리의 말에 따르자면 꽤 고위급 마법이라고."
'어찌 된 게 다 비범하게 태어나는 거지?'"
이제는 점점 두렵다. 앞으로 애인들 아니, 아내들 사이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탄생할 텐데 어떤 아이가 탄생할지."
릴리가 탄생할 때는 그레이스처럼 빛무리에 휘감기지 않았지만, 주변의 마나가 요동쳤다."
마나가 요동쳤다는 건 마법이 발현됐다는 뜻. 태어나자마 마법을 사용한 셈이다."
나는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침실로 돌아갔다. 마리와 아델리아가 쉬고 있는 내 침실."
끼익-"
그러니까······ 아. 왔어? 릴리는?""
세실리 누나가 잠깐 데려갔어.""
침실로 들어오니 아델리아와 정답게 대화하고 있던 마리가 반갑게 맞이해줬다."
나는 그녀에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돌려 아델리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쉬고 있다."
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복장. 평소 그녀는 셔츠와 가죽 바지를 입는 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통이 큰 원피스를 입고 있어서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엘리스는 어때? 괜찮아 보여?""
응. 케이트 씨 말로는 아주 건강하대.""
아델리아가 배를 상냥히 쓰다듬으면서 대답했다. 통이 큰 원피스지만 남산처럼 부푼 배를 감출 수 없었다."
세실리가 릴리를 낳은 직후, 얼마 가지 않아 아델리아가 임신했다. 곧 있으면 산기가 느껴지겠지."
원래 꾸역꾸역 뒷일로 미루었던 그녀였지만, 마리와 세실리의 설득으로 내 아이를 가졌다."
더 나아가 정서적 교감이 주요한 아델리아에게 친자식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내가 정말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게 실감이 안 나. 정말 잘할 수 있을까?""
아델리아가 미소를 지으며 배를 쓰다듬었다. 미소와 다르게 확실치 않다는 어조다."
그도 그럴 것이 아델리아의 가정 환경은 매우 불안했으니까."
어머니가 매춘부였기에 제대로 된 생활을 하는 건 불가능했으며, 좀 더 자라서는 가정 폭력마저 당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꿋꿋이 올바르게 성장했으니 그것만으로도 기적이라 할 수 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보기에 언니는 엄격해도 훌륭한 엄마가 될 수 있을 걸?""
엄마가 엄격하면 안 좋지 않아?""
아이작이 무던하니 한 명은 엄격해야지.""
그레이스를 침대에 눕히는 동안 마리가 팩트를 찔렀다. 솔직히 할 말이 없다."
방금 전 그레이스를 다그쳤다지만 평소에는 안 그런다. 그냥 부드럽게 타이르고 말지."
게다가 딸들이 부탁하는 건 어지간해서 다 들어주는 편이다. 해맑게 웃으면서 부탁하면 어떻게 거절해."
이게 다 딸들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그런 거다. 나는 아무 잘못 없다."
아마도."
똑똑똑-"
그레이스가 조용히 눈을 감는 동안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이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덜컥-"
이윽고 문이 열리면서."
짜잔! 내가 돌아왔다!""
푸른색 머리카락의 소녀, 라라가 활기차게 등장했다."
1년 전, 왕실을 스스로 폐지시켰던 테르스 왕족 중 일원이었던 그녀."
오늘 내 조카는 어때? 잘 지내고 있어?""
너 때문에 애 떨어지겠어. 조용히 오면 안 될까?""
나도 언니랑 같이 있고 싶단 말이야.""
라라는 우리 저택에서 생활하기로 정했다."
라오스 왕태자의 흉계로 테르스 왕국은 1년의 유예 기간 끝에 왕실을 해산시켰다."
마리아 여왕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못해 분통이 터질 일이지만 책임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어서 어쩔 수 없다."
아니면 진짜로 나라가 멸망할 테니까. 목숨보다 귀중한 것이 명예라지만 그건 목숨이 붙어있을 때의 이야기다."
더 나아가 내가 잘 포장해줄 거라 설득하니 마리아 여왕도 한숨을 푹 내쉬며 수락했다. 다시 말하지만 눈물이 아니라 한숨이다."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네?'"
'테르스 왕국은 문화라는 힘으로 국가를 묶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번 일로 모든 힘을 잃어버릴 뻔했죠. 차라리 이게 더 나아요.'"
'··· ···'"
'겸사겸사 이 지옥 같은 업무에서도 벗어날 수 있겠네요.'"
긍정적이라 해야 될지, 아니면 해탈한 건지 몰라도 마리아 여왕은 무리없이 받아들였다."
더구나 왕실이 해산할 뿐인지 그들의 여생은 전과 다를 것 없이 풍족하다. 내가 입을 잘 털었기 때문이다."
[라오스는 사적인 감정으로 일을 그르쳤다. 테르스 왕실의 잘못은 없다.]"
[여기서 끊어야 된다. 만약 누군가 푸른 머리카락을 지닌 사람을 욕한다면, 그들이 또다른 악마를 만드는 것이다.]"
라오스만 천하의 쌍놈으로 만들었지, 그외의 사람들은 정말 억울하다는 이미지를 씌운 것이다."
여론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왕실을 해산시켰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는 식으로. 다행히 이 전략은 통했다."
테르스 왕국 아니, 공화국은 물론이요 다른 나라도 내 의견에 동의해줬으니.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는 비극을 막았다."
가족들은 잘 지내고 있어?""
응. 올리비아 언니랑 같이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던데?""
아델리아의 질문에 라라가 특유의 발랄한 어조로 대답했다."
라오스와 라라를 제외한 나머지 왕족들은 벨루아 공국에서 지내고 있다."
장녀, 올리비아가 벨루아 공왕의 부인이어서 몸을 의탁한 것이다."
굳이 라라만 내 저택에서 지내는 이유는 별거 없다. 일종의 보여주기다."
'연좌제가 적용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이라 하면 되니까.'"
시대가 시대인만큼 연좌제가 적용되는 세상이다. 입을 털었다고 한들 납득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터."
그래서 라라를 '인질'로 삼은 거다. 앞으로 그녀는 다양한 고초를 겪을 거라는 식으로 입을 털었다."
물론 말만 그랬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라라가 얼마나 해피 라이프를 보내고 있는지."
곧 있으면 아카데미에 입학까지 하는지라 연좌제 아닌 연좌제가 적용된 셈이다."
'아이들이랑 잘 놀아주고, 신박한 아이디어도 만들고, 진짜 재능이 넘치지.'"
그리고 라라의 영입(?)은 나에게 있어서 신의 한 수가 되어줬다."
우선 특유의 활기찬 성격으로 모난 부분이 없다. 여기서 가장 강력한 점은 친화력이다."
무슨 카피바라마냥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발을 넓히고 있더라. 영지민들도 라라를 편하게 여기고 있다."
게다가 테르스 왕실의 일원이다보니 문화, 정확히는 축제와 관련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부분은 바로 육아. 어마어마한 친화력으로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오죽하면 낯을 많이 가리는 릴리마저 라라의 품에 얌전히 안길 정도다."
빨리 엘리스랑 놀고 싶다. 누구를 닮았을까?""
네 형부의 색이 진하지 않을까? 나는 빨간머리를 닮았으면 좋겠어.""
이러다가 온 세상이 빨간머리로 가득 차는 거 아니야?""
무엇보다 라라를 인질(?)로 데려온 이유는 아델리아와의 관계다."
테르스 왕국의 마지막 양심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라라와 아델리아와의 관계는 평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렇기에 아델리아와 더욱 친해질 수 있었다. 지금도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저런 애가 축구만 보면 난리를 피우니······'"
그나마 단점이라고는 매주마다 자기가 응원하는 축구팀을 응원하러 간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적잖이 사고를 친다는 것이다. 왕녀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입이 험하더라."
뭐, 그래도 축구를 상업화시키는 아이디어를 꾸준히 내놓고 있으니 가만히 두고 있다."
라라.""
응? 형부 왜?""
불편한 건 없지?""
없는데?""
······그래.""
질문을 한 내가 바보처럼 느껴지는 대답이다. 거짓말이 아니라 그녀는 정말로 만족하며 살고 있다."
그만큼 본질 자체가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뜻이겠지. 왕궁 생활이 더 답답했을 것이다."
난 여기가 정말 좋아. 즐길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고, 종족도 다양하고.""
왕국은 안 그리워?""
딱히?""
어깨를 으쓱거리며 시원하게 대답하는 라라. 실제로 그녀는 왕실이 해체되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권력과 한참 멀었던 막내였을 뿐더러 풍족함으로만 따지자면 전혀 달라진 게 없다."
라오스로 인해 핍박받을 뻔한 운명도 내가 입을 잘 털었기에 문제가 없었다."
라라의 앞날에는 꽃길만 깔려있을 것이다. 이건 내가 장담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왕국······ 이 아니라 공화국이라 불러야겠지? 거기는 누가 통치하고 있어?""
네가 그 나라 왕녀였으면서 그것도 모르니?""
이제는 아니잖아?""
저것 봐라. 미련 같은 게 전혀 없는 모습이다."
나는 아델리아의 핍박에 명료히 대꾸한 라라를 보며 피식거렸다."
이처럼 테르스 왕족과 관련된 사안은 아무 문제가 없다. 도리어 마이샬 영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아무튼 나는 지금처럼 살고 싶어. 겸사겸사 소설도 쓸 거야.""
무슨 소설을 쓸 거니?""
그냥 소설이야. 자기밖에 모르던 사람과 희생밖에 모르던 사람과의 이야기? 결말에는 서로의 입장이 뒤바뀌는 거지.""
··· ···""
저거 어디선가 많이 본 이야기인데. 전생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던 사가의 스토리다."
물론 흐름만 비슷하지 내용은 다를 것이다. 제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난 라라라 해도 거기까지는 무리겠지."
동종업계의 선배로서 설정을 듣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에 나는 라라에게 질문했다."
대충 생각해 놓은 거라도 있니?""
네! 그 두 사람뿐만 아니라 내면의 악마와 싸우는 마족, 오만방자한 엘프 왕자까지. 생각하고 있는 건 많아요! 그걸 잘 이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거 혹시 헐크와 토르니. 순간적으로 그 말을 하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머스크도 그렇고 이따금씩 시대를 뛰어넘는 천재가 등장하는 것 같다. 어쩌면 내가 그걸 앞당긴 걸 수도 있고."
기본적인 작문법이나 문장 구조 같은 건 내가 알려줄게. 중간중간 도와주고.""
정말요? 감사합니다!""
대신 축구 볼 때 욕은 하지 마렴.""
앗.""
내 지적에 라라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베시시 웃었다. 머쓱함이 묻어나왔다."
나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아델리아를 바라봤다. 조금 있으면 그녀도 귀여운 딸을 볼 수 있겠지."
무리하지 마. 누나는 누구를 지켜야 할 게 아니라, 보호를 받아야 하니까.""
엘리스를 낳는다면 다시 지켜야 하는데?""
그러면 또 한번······""
어허.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나가. 그레이스도 자잖아.""
내가 농담 아닌 농담을 꺼내려고 하자 마리가 제지했다. 나는 그저 어깨만 으쓱거릴 뿐이었다."
확실히 그레이스도 자고 있으니 슬슬 밖으로 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아직 만나야 할 사람이 많이 있었으니."
난 이만 가볼게.""
형부. 올 때 아이스크림 하나만.""
네가 사먹어.""
힝.""
이제는 익숙한 라라의 인사 아닌 인사를 받으며 침실 밖으로 나섰다."
릴리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면 중간에 지쳐 잠든 모양이다."
'아니면 세실리가 방음 마법을 썼겠지.'"
다만 낮잠을 잘 시간이기도 하고 세실리가 아주 못 달래는 것도 아니라 잠들었을 확률이 높다."
이에 약속이 잡힌 응접실로 향했다. 아이들 낮잠 시간까지 고려했으니 슬슬 만나도 될 것 같다."
중간중간 저택 고용인 및 기사들에게 인사까지 나눈 뒤, 머지않아 응접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 오셨습니까, 제논 님.""
안녕하세요. 머스크 사장님.""
응접실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바로 머스크. 그도 성장한 라라처럼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2년 동안 온갖 일에 치이고 살다보니 살이 훅- 빠져버렸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전쟁의 신은 신들과 연관된 이야기다."
파급력으로만 따지자면 제논 일대기와 피와 강철 그 이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성직자들이 극성이었지."
하물며 머스크네 회사를 중심으로 영화 사업까지 말을 나누고 있다. 세실리와 아르웬도 그의 사업 수완을 알아본 것이다."
'원작을 기점으로 만화를 만들고, 그 만화로 영화를 만드는 식이랬던가?'"
전생의 영화 산업의 구조가 어땠는지 모른다. 난 영화를 보고 즐기는 일반인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