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상가상으로 내 본업이자 작가를 상징하는 펜까지. 내가 건네준 조언이 국가 단위로 몸집을 불린 상태다."
에인스 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마키나는 사유 재산은 인정하되, 지식만큼은 공유해야 된다고 말이죠. 최근에는 스타비르크에서 발명한 총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총이요?""
예. 총만 있다면 약한 개인조차 강력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현재 미네르바 제국과 협상하고 있죠.""
리나에게 들었다. 스타비르크가 사고를 터뜨린 후에 총의 설계도를 입수했다고."
그 설계도를 일반 병사에게 쥐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으나 기술적 결함이 많아 아직 준비 단계다."
여기서 마키나와 협업을 하게 된다면 머지않아 총의 시대가 도래하겠지."
내가 직접 지켜본 마키나의 기술력을 보았을 때 10년 이내에 가능할 거라 예상하고 있다."
또한 헬리움와의 관계도 신경 쓰고 있습니다. 헬리움 쪽에서 석유를 지원해주면, 저희는 그 석유를 이용한 엔진을 발명하고 있죠.""
··· ···""
이 모든 것들이 착착 맞물리게 된 이유가 바로 제논 님입니다. 제논 님 덕분에 마키나를 포함한 세상은 좀 더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
아부가 아닌 진심이 가득한 드워프의 말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고작해야 산업 혁명 수준이라고 생각했건만 마키나와 드워프의 잠재력을 저평가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10년 안에 거대한 중장비를 발명하는 게 아닐까 싶다. 에인스가 엔진을 발명한다면 말이다."
최근에는 안전모의 등장으로 인부들의 부상율이 대폭 낮아졌죠. 공사가 많아진만큼 다치는 드워프도 증가했는데 안전모 덕을 많이 보았습니다.""
······혹시 몰라서 말씀드리지만 불편하다고 쓰지 않는 분들은 없나요?""
걸리적거린다고 안 쓰는 경우가 있긴 해도 괜찮습니다. 광산에서 며칠 일하다보면 실려나오거든요. 그 다음부터 무조건 쓰게 돼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안전모만큼은 쓰라고 강조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전차는 내가 앞으로 팬사인회를 진행할 건물까지 나아갔다. 그런데 그 건물마저 참······ 뭐랄까."
붉은색이네.""
붉은색입니다.""
붉은색이야.""
각각 아델리아, 케이트, 세실리의 말이었다. 나는 전차에서 내리고 한참이나 건물을 멍하니 바라봤다."
뒤에서 드워프 안내인이 무어라 말하긴 했다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게······ 뭔······?""
드워프의 건물은 목재 건물이 대부분이다. 산업 혁명이 진행 중인 것과 달리 양식은 크게 안 바뀌었다."
하지만 앞의 건물을 보아라. 대부분이 강철로 제작돼 있다."
특히 가장 눈에 띄는 건 톱니바퀴다. 스팀펑크 형식 건물이라 상상하면 편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황당을 금치 못하겠는데 전부 붉은색으로 깔끔하게 덫칠해 있었다. 중간중간 황금색도 있었으나 붉은색이 대부분이다."
보아하니 물감으로 전부 칠한 듯했는데, 이 시대의 염료가 얼마나 비싼지 고려하면 돈지랄이나 다름없다."
신기하게 생겼네. 왕궁 같은 느낌이야.""
그러게. 급조했을 텐데 전혀 급조한 티가 나지 않아.""
드워프는 드워프라는 걸까?""
나와 달리 애인들은 이 건물이 스팀펑크풍 건물이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다. 그냥 신기하게 생긴 건물이라 생각하겠지."
그러나 나에게는 미래의 마키나가 어떤 형태를 취할지 보여주는 거나 다름없었다. 스팀펑크로 한층 한층 발전할 모양이다."
아니지. 마나와 마법까지 있으니 아케인펑크라고 해야 되나.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의자를 보며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우와. 저거 설마 의자야?""
거의 왕좌 수준인데?""
드워프들이 제작한 모양이군요.""
기계의 특징을 전부 담은 것 같은 의자다."
중간중간 톱니바퀴가 굴러가고 있었으며, 그 위의 파이프에서 증기가 가끔씩 뿜어져나왔다."
기계의 멋을 제대로 드러내고 있달까. 나는 분명 팬사인회를 하러 왔는데 드워프는 왕을 모시러 온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저 의자를 치워버리고 평범한 의자로 교체하고 싶다."
그러나 드워프들이 심혈을 기울였을 테니 그러기도 힘들었다."
우리도 질 수 없지. 나 잠깐 헬리움으로 돌아가도 될까?""
아니. 그러지 마.""
드워프가 제작한 기계옥좌(...)에 감명이라도 받았는지 세실리가 나에게 저런 부탁을 건넸다."
그녀가 헬리움으로 돌아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대충 예상이 갔기에 간신히 뜯어말렸다."
안 그래도 헬리움은 당장 나를 신에 준할 정도로 숭배할 것이다. 부담감이 장난 아니다."
후우······""
일단 앉고 생각해야겠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기계옥좌에 엉덩이를 붙였다."
스팀펑크 같은 디자인은 그렇다 쳐도 엉덩이는 푹신푹신하다. 다행히 디자인에만 신경 쓴 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좀······'"
멋지긴 하네. 부담스러울 뿐이지,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것들이 담겨있어서 마음에 든다."
나중에 가져가도 되냐고 부탁이라도 해볼까. 나는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팬사인회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기계의 신이시여. 이 기계가 작동이 되지 않는데 조언을 주실 수 있습니까?""
··· ···""
다른 의미로 밑천이 털릴 위기에 처했다."
난 문과라고 이 난쟁이들아."
마키나의 팬사인회는 팬사인회가 아니라 흡사 '국부'를 접견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한치의 과장도 없이 나를 국부로 대우하는 드워프들이 대부분이었다. 들어오자마자 정중히 인사하는 게 기본 디폴트였으니."
그저 한 명의 팬으로서 만나고 싶었지만 내가 마키나에 어떠한 영향을 줬는지 고려하면 이상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헬리움은 이것보다 더 심할 것이다. 그곳은 진작부터 나를 성자로 추종하고 있으니 벌써부터 아찔하다."
제논이시여. 철갑선과 비행선 중 무엇이 더 빨리 제작될 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일단 배부터 제대로 만들 생각을 하세요.""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최근 비행선 vs 철갑선으로 싸우는 형제에게 조언 아닌 조언을 한다던지."
제 아들이 훗날 저보다 뛰어난 장인이 될 수 있도록 손을 만져주실 수 있습니까?""
네. 뭐······""
나를 성자로 생각하면서 저런 부탁을 하거나."
마키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국가의 미래는 제가 아니라 여러분이 이끄는 겁니다.""
진짜로 예언을 부탁하거나 등등."
과도한 팬심에 돌발행동을 취하던 미네르바 제국과 다른 의미로 피곤한 팬사인회였다."
게다가 너무 열정적인 나머지 10분을 초과하려다가 아델리아에게 질질 끌려가기도 했다."
그때문인지 앞의 두 나라에 비해 팬사인회가 조금씩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히 팬사인회를 일찍 시작한 덕분에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는 것이다."
왕궁으로 갈 때도 전차에 탑승해야 된다고요?""
예! 안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습니다!""
··· ···""
왕궁 아니, 이제는 정부청사로 용도가 바뀐 건물로 향할 때도 전차에 탑승했다."
아무래도 전차가 워낙 눈에 띄는 기물이다보니 내가 이동하고 있다는 걸 전부 알더라."
며칠동안 팬사인회를 거치면서 정신이 피로해졌지만 그래도 나를 보러 온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반겨줬다."
그러고 보니 대부분 안전모를 착용하고 있네요?""
처음에는 성대한 환영식에 눈치채지 못했지만, 지나가는 드워프마다 안전모를 착용하고 있다."
안전모는 그 특징상 패션 아이템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안내인도 그렇고 대부분 안전모를 착용했다."
네. 마키나는 현재 전국이 공사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아이들은 안전상의 이유로, 어른은 언제 어디서든 채용할 수 있도록 안전모를 쓰고 있는 거죠.""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인력으로 쓴다고요? 아무런 계약도 없이?""
계약은 필요없습니다. 왕궁의 재산을 푼 탓에 돈은 넘쳐나는 반면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거든요.""
음······""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마키나판 뉴딜 정책이라 해야 되는 건가."
철도를 까는 거라면 이해가 간다. 마키나는 곳곳에 광산이 존재하는만큼 철도는 필수적이니."
더구나 마력 기관까지 발명했으니 공사의 규모는 더 커졌을 것이다. 솔직히 저런 문화가 생기는 게 조금 신기하다."
'안전모만 잘 쓰면 됐지.'"
안전모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패션마냥 쓰고 다니는 게 조금 이상해도 문화상 어쩔 수 없겠지."
나는 중간중간 공사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인부들을 구경하다가 청사로 이동했다."
본래 왕궁이었던 청사는 언덕 위에 존재했다. 안내인의 말을 듣자하니 부르주아 왕조가 일부러 여기에 건설했단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본래는 왕이 백성을 좀 더 편히 보살필 수 있도록 건설했습니다. 하지만 혁명 전까지는 단지 내려다보는 용도밖에 없었죠.""
··· ···""
참고로 이 왕궁도 시간이 된다면 철거될 예정입니다. 지금은 임시 청사로 사용할 뿐, 진짜 청사는 밑에 건설될 계획이죠.""
나는 안내인의 설명을 들으며 왕궁을 올려다봤다."
미네르바 제국의 궁전은 전반적으로 황금빛을 띄는, 매우 아름다운 궁궐이다."
그리고 마키나의 왕궁도 비슷하다. 하지만 이유는 몰라도 미네르바 제국의 황궁과 달리 탐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철거보다는 그냥 가만히 두는 게 어떨까요?""
네?""
상징으로서 나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합니다. 후대에 아주 훌륭한 문화유산으로 남길 수도 있고요. 박물관으로도 사용될 여지도 있죠.""
러시아도 혁명 이후 수도를 모스크바로 옮겼다. 옛 수도에 남은 황궁은 박물관으로 사용됐으며 지금까지 이어져 있다."
저만한 왕궁을 그대로 철거한다는 건 상징적이긴 하지만, 동시에 정말 아까운 일이다."
그들의 분노는 이해한다만 저 왕궁이 지니는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먼 훗날 강력한 관광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을 터."
이 부분은 가이스트와 따로 상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이거든요.""
으음······ 알겠습니다.""
물론 이 문제는 안내인이 아니라 가이스트와 얘기를 나눠야 될 부분이다."
그리하여 전차에 탑승한 채 왕궁으로 향하고, 머지않아 왕궁의 대문 앞에 당당히 도착했다."
······대문이 없네요?""
전차포로 파괴시켰습니다.""
··· ···""
정정하겠다. 대문이 완전히 작살나서 그냥 쭈욱 통과했다."
아무래도 곧 철거할 예정이라 굳이 보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모양이다."
심지어 왕궁의 정문도 다를 바가 없다. 중앙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유추할 수 있었다."
설마 이대로 안까지 들어가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제논 님에게 보여드릴 혁명의 길을 위해서라도 걸어가셔야 합니다.""
혁명의 길?""
그건 또 뭘까. 나는 전차에서 하차한 후 안내인의 뒤를 따라갔다."
이윽고 구멍이 뚫린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니 혁명의 길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저 흔적이 보이십니까? 저것이 혁명의 길입니다. 인민들이 직접 왕궁에 발을 디딘 영광스러운 흔적이죠.""
······전차가 여기까지 들어왔나요?""
네.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
안내인은 가이스트가 있는 방에 도착할 때까지 여러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전차 한 대만으로 뇌창 부대에 대항한 가이스트의 이야기. 위기의 순간 드워프 공장들이 지원을 온 이야기."
마지막으로 왕의 처형식 당시 용광로를 이용했으며, 탐욕에 이기지 못해 스스로 용광에 빠져버린 이야기."
다른 건 몰라도 왕이 탐욕에 미쳐 스스로 용광로에 빠졌다는 건 상징적이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탐욕의 화신으로 만든 건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탐욕을 버리지 못했다."
그정도라면 악마 숭배자와 연관이 있는 게 아닌가요?""
오죽하면 잠자코 듣고 있던 케이트가 저런 질문을 할 정도다."
다른 사람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안내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건 아닙니다. 단지······ 그냥 그런 놈이었던 거죠. 국가를 국가로 운영하지 않고, 단지 하나의 공장으로 운영하는 공장주였습니다.""
··· ···""
안내인의 말이 정확하다. 부르주 왕조가 몰락한 가장 큰 원인은 국가를 기업 즉, 공장처럼 운영했기 때문이다."
극한의 효율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기업이다. 그리고 현재 이 세상은 시대에 비해 인권이 발달했다지만 그뿐이다."
당장 시골만 가더라도 어린이를 농부 또는 일손으로 이용하는 상황이다. 다른 건 몰라도 '아동'이라는 개념이 매우 희박하다."
'애당초 산업 혁명 이후에 아동이라는 개념이 등장했으니.'"
마키나는 배울 점이 많은 국가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세실리가 안내인의 말을 듣고 몹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만약 머스크 씨가 부르주 왕조를 대신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네.""
약간 심란해진 상황에서 아델리아가 재치있는 농담을 던졌다. 그 농담에 나는 물론 애인들도 피식 웃음을 흘렸다."
머스크는 상인으로서 편법은 사용해도 도리는 지키는 인물이다. 문제는 그 편법이 탈세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지."
현재 그는 미네르바 제국과 물밑에서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어떻게든 세금을 뜯기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다."
이미 전에 탈세 혐의가 발각됐던만큼 미네르바 제국도 어떻게든 뜯으려고 시도하고 있다. 나는 멀리서 지켜보는 입장이고."
저건 어떻게 쉴드를 쳐줄 수 없더라. 덕분에 미네르바 제국의 규정이 조금 빡빡해졌다."
똑똑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