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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574)화 (575/763)

Chapter 573 - 구멍(4)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는 매우 뛰어나다. 교두보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이로 인해 틈만 나면 주변 국가에게 침략을 당했으며 한때 몽골과 일본의 직간접적인 지배를 받은 적도 있다.

현대에 들어서도 한반도의 가치는 커지면 커졌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세계의 화약고를 넘어선 원자로라 칭해질 정도.

중국 입장에서는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한반도가 필요하고,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을 막기에 효과적이다.

미국에게 일본이 있다지만 한반도에 비해 지정학적 가치가 떨어지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중국은 북한을 방패막이 삼고 있지만 내가 죽기 전에는 서로 껄끄러운 사이가 됐고.

위의 모든 요소를 종합했을 때, 대한민국의 외교 난이도는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을 내치자니 경제적 의존도가 심해 내칠 수도 없고, 미국을 내치다니 세계 최강 국가의 비위를 거스를 수가 없다.

따라서 대통령 및 지배 정당에 따라 노선이 극명하게 갈리는 편이다.

다만 최근에는 중국이 워낙 깡패짓을 한 탓에 슬금슬금 멀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단 2표 차이로 바뀐다? 좋든 싫든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화를 낼 게 아니라 당장 전쟁 선포를 해도 이상하지 않는데요?"

처음에는 단지 순리가 어긋났기에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러나 실상은 더 심각했다.

이건 화를 내는 게 아니라 닥치고 전쟁! 이라 외쳐도 할 말이 없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이 사고를 넘겼는지 궁금해진다.

[음······ 이건 단 둘이서 얘기해야 할 것 같네. 다른 아이들은 잠시 나가줄 수 있니? 어차피 이야기도 끝났으니까.]

민감한 주제여서 그런지 모라는 다른 사람들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신의 명령인만큼 가족들과 애인들은 군말없이 바깥으로 향했다.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나를 향해 걱정스러운 시선을 주는 건 잊지 않았다.

아마 모라의 대화가 끝나면 나를 어루고 달래주지 않을까. 실제로 그럴만한 진실이었으니 가능성이 높다.

이윽고 새하얀 공간에 나 홀로 남았을 때쯤, 모라가 입을 열었다.

[네 말대로 지구의 역사 자체가 뒤틀리다 못해 천지개변을 한 상황이야. 지구의 신들은 이걸 보고 극도로 분노했지. 평소 화를 잘 내지 않는 신조차 목에 핏대를 세웠지.]

설마 부처님인가. 유독 화를 내지 않는다고 언급한 걸 보면 반쯤 확실하다.

달리 말하자면 부처조차 화를 낼 정도로 지구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의미하고 있다.

그야말로 나비 효과 그 자체. 단 한 명의 영혼이 이곳으로 넘어왔지만 그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다.

[전에 말했을 거야. 너를 이 세상에 완전히 귀속시키되, 미래를 읽지 못하도록 만들었다고. 미래를 읽지 못하니 네가 특정 행동을 했을 때 대비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고 말이야.]

"그리고 저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셨죠."

[그래.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 건 알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구의 신들 입장에서는 역병이 아니라 천재지변이 발생한 것과 다름없다.

역병은 예방 혹은 치료라도 할 수 있지 이건 아무것도 못 한다. 조치를 해도 다른 곳에서 문제가 발생할 테니.

더군다나 하필이면 대한민국이다. 대통령과 지배 정당에 따라 노선이 극명하게 갈리며 외교 난이도가 지옥불 그 자체인 나라.

또한 2표 차이로 나라의 지도자가 바뀐다고 했으니 집권 초기에는 지지율이 애매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지닌 가치를 고려하면 그마저도 큰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 바뀌었으니 역사가 바뀐 건 알겠어요. 대신 얼마나 크게 바뀌는지 알고 싶은데······"

[그건 몰라. 지구의 신들조차 미래를 예측하지 못 하는 상황이거든.]

"많이 심각한 모양이네요. 그럼 제가 멀쩡했다면요?"

[네가 멀쩡했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좋은 쪽으로 바뀌어. 겨우 40대밖에 안 되는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선출되거든.]

나는 모라의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나비효과다.

게다가 좋은 쪽으로 바뀐다고 했으니 적어도 대한민국의 앞날은 밝았을 터.

내가 이곳으로 넘어오기 직전의 대한민국은 상당히 병들어 있었다.

6·25 전쟁 이후 선진국들의 지원을 받아 무시무시한 성장을 이룩했지만 현재에 이르러서 부작용만 남게 됐다.

성장 동력은 모두 잃어버렸지, 갈등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지, 노동력의 근원인 인구는 점차 떨어지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황이었지만 그 누구도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다소 독재자적인 행보를 보인다는 게 흠이지만 그걸 감안해도 나쁘지만은 않아. 그동안 곪아있던 갈등의 대부분을 해결하거든.]

"그때는 너무 늦지 않을까요?"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 사람이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전에 3차 세계 대전이 터지거든. 그 전쟁으로 갈등이 약간이나마 희석될 거야.]

"··· ···"

잠깐만. 내가 뭘 들은 거지. 세계 대전?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말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쯤, 모라가 뭘 놀라냐는 듯이 말했다.

[크게 놀랄 필요는 없잖니? 당장 네가 이곳으로 오기까지만 해도 큰 전쟁이 발발했는데. 그리고 원래 역사의 반은 전쟁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 네가 살던 시대가 이례적으로 평화로웠던 시기인 거야.]

"그래도 그건······ 설마 그 전쟁이 세계 대전으로 심화되는 건가요?"

[심화되지는 않지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지. 화약에 불을 붙인 건 다른 나라지만.]

혹시 중국인가. 평소에도 호시탐탐 대만을 노리고 있는데다가 독재자가 지배하는 나라다.

독재자가 지배하는 나라는 그 특징상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제아무리 통제력이 강력한 중국이라지만 한계는 명백할 터.

언젠가 불만이 쌓이고 쌓여 터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지금도 알음알음 불만이 쌓이는 걸로 안다.

그리고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단 하나다. 외부에 관심을 돌리는 것이다.

[너도 알다시피 전쟁은 국민들을 하나로 규합시키는 데에 적합해. 그걸 빌미로 갈등이 약간이나마 희석되고, 훗날 선출될 대통령이 완전히 해소시켰어.]

"대통령이 바뀌는 거 그 이상의 역사인 것 같은데요······?"

[맞아. 그리고 그 대통령이 네 자식의 친구라서······]

"··· ···"

전생의 나. 대체 어떤 운명을 갖고 있었을까.

나라를 직접적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하지만 간접적인 영향이 너무 거대하다.

괜히 지구의 신이 노발대발한 게 아니었다.

[지구의 신들도 원래라면 전쟁을 벌였을 거라고 윽박질렀지. 하지만 사태가 너무 심각하다보니 일단 정리부터 하자는 식이었어. 너의 영혼을 이곳으로 넘긴 건 덤이고.]

"정리할 수 있긴 한 거예요?"

[힘들긴 해도 가능하지······? '계시'를 내린다면.]

"계시라함은······"

[본인들의 철학을 깨고 역사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거야. 존재를 드러내는 거지.]

지구의 신들은 현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

그 덕분에 지구의 인류는 빠른 시일 내에 우주로 진출하는 게 가능했다. 동시에 신들의 행동 범위가 늘어났고.

하지만 그 철학을 모두 깨버리게 생겼다. 무려 신이 내세운 철학인만큼 자존심이 갈갈이 찢길 상황이다.

더 문제인 건, 신들이 직접적인 존재를 드러내지 않아도 종교의 영향력이 매우 막강하다는 것.

여기서 존재마저 드러낸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 지 안 봐도 비디오다.

"······정리를 다 하면 전쟁 선포를 하는 거 아니예요?"

[원래라면 그런 불안감을 갖고 있었는데······ 최근에 보니까 아닌 것 같더라고. 우리 상황을 보고 꼴 좋다는 듯이 비웃었거든.]

"비웃었다고요?"

[응. 여태까지 네가 행한 일들을 한 번 봐. 우리조차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역사가 전부 뒤틀렸지. 솔직히 말해 반쯤 내려놓은 상황이야.]

저 말을 들으니 지난번 그 말이 떠오른다. 나보고 영국 같은 놈이랬나.

세계사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을 때 나를 찍으면 대충 맞는다. 본래 영국과 관련된 밈이다.

적어도 영국은 자연스럽기라도 했지, 나는 아니다. 그냥 나라는 존재 자체가 비정상을 넘어선 무언가다.

신들 입장에서는 나를 건드릴 수도 없으니 허허 웃으며 해탈했겠지. 지구 신들의 복수를 대신 해준 셈이랄까.

[동시에 네가 우리를 살린 셈이기도 해. 여기에 우리 엄마가 설득까지 했지. 당신들이 우리 세상에 개입하면서 이리 된 거 아니냐고.]

"바다의 신과 관련된 이야기인가 보군요."

[맞아. 괜히 쓸데없는 사상을 주입시키는 바람에······ 지구 신들도 이 부분은 납득했어. 그래서 유야무야 넘어간 거야.]

사실상 서로가 서로에게 빅 엿을 먹인 것과 같다. 지구 신들이 스노우볼을 제대로 굴렸다.

어쨌거나 지구 신들이 이곳을 침략할 일이 없다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침략했다면 내 입장이 심히 곤란했을 테니까.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현재 인생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그러면 지구에서 3차 세계 대전 전쟁이 발발하는 건 예정된 운명이라는 거네요?"

[그렇지. 사상자도 2차 세계 대전보다 심해. 독소전쟁 그 이상이라 평가 받거든.]

이상하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기억하는 미국은 적어도 그만한 사상자를 내지 않는다. 2차 세계 대전에서도 그랬다.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중국을 밀어붙인다면 모를까, 적어도 소련이나 나치 독일처럼 사람을 갈아넣지는 않는다.

인구대국이라 평가받는 중국은 인구를 갈아넣을 수 있다지만 상황 자체가 불가능하다. 미국은 바다를 건너와야 하니까.

[인도가 있잖니?]

"아."

그런 거라면 이해가 된다. 둘 다 무려 10억이 넘는 인구수를 자랑하고 있다.

또한 인도와 중국은 서로 살벌한 관계다. 국경 지대에서 틈만 나면 백병전을 벌이니 말 다했지.

만약 그런 거라면 정말 독소전쟁 그 이상의 사상자를 내고도 남을 것이다. 둘 다 사람을 갈아넣는 게 가능한 국가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가 이내 흠칫거렸다. 세계 대전이라고 했으니 대한민국도 전쟁에 참여했을 터.

그리고 전쟁이 발발하면 일선 부대뿐만 아니라 예비군도 투입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럼 제 친구들은요? 제 친구들은 멀쩡한가요?"

[원래라면 예비군 소집만 하고 전쟁이 끝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어. 역사가 너무 심하게 바뀌었거든.]

"무사해야 할 텐데······"

걱정된다. 내가 죽은 것만 해도 친구들은 막중한 죄책감을 갖고 있을 것이다.

부디 전쟁통에도 멀쩡히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다른 거 다 필요없고 그거면 충분하다.

"아무튼 지구 신들이 이곳을 침략한다는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거죠?"

[응. 그러니 너는 너만의 인생을 즐기면 돼. 우리는 좀 고생하겠지만.]

푸념하는 듯한 그녀의 말에 나는 약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생 좀 하셔야죠. 특히 모라 님은 더."

[······할 말이 없다는 게 슬프네.]

할 말이 없을 수밖에 없지. 지금까지 트롤링을 한 게 몇 갠데.

그런 내 마음을 읽었을까. 모라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트롤링이 뭐야?]

"모르셔도 돼요."

모르는 게 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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