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520화 (521/763)

나치 독일은 가상 속의 집단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집단이자 악의 축이다.

다양한 매체 속에서 나치 독일을 모티브로 둔 집단은 대부분 악으로 묘사되며 선역으로 그려지는 경우는 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치 독일은 멋있다. 내가 나치 독일을 좋아하는 게 아니고 하나하나 살펴보면 '멋'이 철철 넘친다.

6호 전차 티거를 대표로 하는 막강한 기갑 군단. 디자인이란 디자인은 몰빵한 군복과 그 군복을 입고 행군하는 군대.

약소국이었던 나라를 강대국으로 도약시킨 아돌프 히틀러. 롬멜, 만슈타인, 구데리안, 모델 등등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명장들.

결정적으로 극단적인 전체주의 및 군국주의에서 보여준 광기까지. 악역으로서의 멋짐과 사악함이 동시에 폭발하는 집단.

변명조차 불가능한 '악'이면서도 그 악으로부터 표현되는 멋과 매력 덕분에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으음······"

동서고금 막론하고 젊은이들은 화려하고 멋진 것에 대한 동경심을 품는 법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제복도 그 일환이다. 히틀러가 디자이너에게 따로 부탁하여 제작한 검은색 제복.

가끔 나치 독일의 제복은 왜 멋있는가? 라는 질문이 종종 나오는데, 멋있으라고 만든 거다. 수많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게다가 모델부터가 기럭지가 우월하고 얼굴도 반반한 사람을 고용했다. 멋진 모델이 멋진 옷을 입는데 멋이 없다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

'저걸 입었다가 소련에서 죽은 사람이 많다는 게 문제지.'

물론 멋짐이 폭발하는 것과 별개로 실용성이 바닥이라 소련에서 얼어죽은 사람도 많다.

오죽하면 독일군도 중간중간 소련군의 동계복을 노획했을 정도. 이건 당시 독일의 보급이 개판이었던 것도 한몫하고 있다.

"왜 그런 표정인 게냐? 혹시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르웬은 내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제복을 바라보자 한층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나에게 물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위한 선물이라며 들떠있던 것과 대비된다. 내 얼굴을 보고 뭔가 잘못된 점을 직감한 듯했다.

"아냐. 그건 아니야. 단지······"

"단지?"

"음······"

나는 아르웬이 선물해준 검은색 제복을 면밀히 살펴봤다.

솔직히 멋지다. 원래 멋졌던 옷을 본따 제작한 거라 이상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세계수의 잎을 먹고 자란 누에의 실을 이용하고, 다양한 마법까지 부여했다.

원판과 달리 실용성까지 챙겨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옷. 값으로 매기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놀라운 선물이다.

'마음 같아서는 딱 한 번 눈 감고 입고 싶은데······'

나라고 해서 멋진 걸 안 좋아하는 게 아니다. 과도하게 화려한 걸 싫어하는 거지, 앞의 제복처럼 적당한 건 좋아한다.

하지만 저걸 입었다가는 큰일날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무려 나치 독일이 입었던 제복이지 않은가.

이에 고심에 고심을 더했다. 머리는 입으면 좆된다고 외치는데 가슴은 당장 입으라고 소리치고 있다.

'원래 제복도 천천히 발전하는 건데.'

나치 독일의 제복이 멋지긴 해도 디자인 자체는 천천히 발전되던 것이다.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건 절대 아니다.

허나 지금의 시대상은 중세에서 이제 막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 현대인인 내 눈에는 다소 모자란 점이 많았다.

그러니 내가 저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순간 뻑이 갈 사람이 셀 수도 없이 속출할 터.

특히 '군복'이라는 특징으로 인해 군사 가문이 가장 바빠지지 않을까.

나는 고민에 고민을 더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르웬."

"말하거라."

"알려줄 게 있어."

일단 리나에게 그랬듯이 아르웬에게도 사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녀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어쩌면 이 옷은 관상용으로만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비록 다른 세상이라 괜찮다지만 내가 이걸 입는 순간 나치를 옹호하는 것 같은 기분이니까.

"사실은······"

나는 조용히 입을 열며 주요 사실들을 하나둘씩 알려줬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지.

아르웬도 내 이야기를 가만히 경청했다. 은회색 눈동자에는 깊은 호기심이 자리잡혔다.

그로부터 약 10분이 흐르고······

"미, 미쳤느냐?! 그걸 알면서도 나에게 그딴 연설문을 줬어?!"

"내 말을 들어봐. 네가 그런 연설문을 썼다만 내가 막았······"

"장난이라고 해도 정도가 있지!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했어! 이래서 절대 안 준다고 한 거였네! 개 같은 놈! 악마! 색마!"

아르웬이 배신감과 부끄러움이 두루 섞인 표정으로 나를 책망했다.

평소 하지 않았던 욕설까지 날리는 걸 보아 많은 의미로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비록 홀로코스트는 쏙 빼놓았지만 그걸 배제하더라도 히틀러의 악행은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여왕이 히틀러를 모델로 삼으며 활동한다? 그건 나라를 팔아먹는 걸 한참 넘어서는 것이다.

게다가 엘프는 특유의 선민사상으로 인해 파시즘에 물들기 쉽다. 약간의 '뽕'만 채워준다면 너도 나도 할 것없이 파시즘에 휘말리겠지.

"후우······"

"······이제 좀 진정이 돼?"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아르웬이 눈을 날카롭게 뜨며 나를 노려본다. 나는 그 시선에 머쓱하게 웃었다.

그래도 악의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는지 퉁명스러울지언정 안정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는. 하지만 여전히 충격적이구나. 독일을 생각하던 히틀러가 사실은 사악한 인물이었다니."

패전국이었던 독일을 강대국으로 도약시킨 히틀러는 누가 봐도 주인공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히틀러가 독일'만' 생각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독일을 제외하고 다른 건 신경 쓰지 않았다.

말 그대로 삐뚤어진 애국심의 극단적 사례. 순수한 의미로 독일을 사랑했지만 그 순수함이 광기로 변질됐다.

아르웬은 한동안 입을 다물고 생각에 빠져있는 것 같더니, 뒤이어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뉘앙스로 입을 열었다.

"정말로 그런 자가 네 세상에서 존재했다는 말이냐?"

"응. 역사에 실려있는, 거짓 하나 없는 실존 인물이야. 나치 독일도 마찬가지고."

"흠. 충격적이긴 해도 신기하구나. 서사만 본다면 힘에 취해 타락한 자로 보여."

······그런가? 나는 색다른 해석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때까지 히틀러가 주인공으로 취급된 건 내가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위험한 사상이 직간적접적으로 드러나기는 하지만, 곧이어 펼쳐진 업적들이 그걸 전부 묻어버렸고.

이후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홀로코스트를 위시한 나치 독일의 악행이 속속 펼쳐지면서 악당으로 변모한다.

"그렇지 않느냐?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청년. 나라를 위해 군대까지 입대했지만 패배했지. 그 설욕을 되갚기 위해서 더러운 정치판을 뚫고 왕이 되었으며, 더 나아가 백성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지 않느냐."

"어······ 그렇지?"

"그러나 너무 승승장구한 나머지 힘에 취할대로 취해 타락해버렸다······ 제논 일대기로 따지자면 '교만'에 아주 잘 어울리지. 다소 충격적이긴 해도 타락 과정이 아주 잘 녹아들어 있구나. 그대의 세상 기준으로는 둘도 없는 악당이지만, 우리 세계로 따지자면 색다른 서사이니라."

'썩 씨딩 유, 파더'로 아주 유명해진 캐릭터와 흡사한 구조다.

처음에는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했으나 광기에 휘말린 나머지 스스로 타락해버린 군주.

긴 시간이 흘러 다른 의미의 왕이 된 그는 훗날 연합에게 토벌당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죽인 아버지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

"헌데 조금 아쉽구나. 악당이긴 해도 나라를 정말 사랑하던 애국자이지 않느냐. 능력 부족으로 패배하는 건 약간 아쉬우니라."

이렇게만 본다면 정말로 힘에 취해 타락한 주인공처럼 보이긴 할 것 같다. 아르웬도 아쉬워하는 중이고.

하지만 내가 꽁꽁 숨겨놓은 비장의 카드, 홀로코스트가 남아있다. 다른 건 몰라도 홀로코스트만큼은 아끼고 싶었다.

명작병에 걸렸다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고, 나치 독일이 진정한 의미의 악의 축으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전에 발생했던 T4 작전? 그건 서술 트릭을 넣어줄 예정이다. 장애인을 위한 곳이자 아리아인을 더 위대하게 만들어 줄 시설이라고.

"그건 걱정하지 마. 히틀러와 나치 독일이 절대 용서받지 못할 이유는 더 있거든."

"음? 더 있다고? 지금도 충분히 악당이지 않느냐?"

"결정적인 이유가 있어. 덕분에 우리 세상에서 나치 독일은 가히 악마 숭배자 아니, 그보다 더한 취급을 받고 있지."

아르웬은 내 설명을 듣고 눈매를 좁혔다.

악마 숭배자와 비슷한 취급이라고 하니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는 모양이다.

잠시 후, 그녀는 설마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썩 불안하다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혹시 나치 독일도 제물을 바쳤느냐? 인신매매를 이용해서?"

그 질문을 듣고 살짝 감탄했다. 설마하니 거기까지 도달할 줄은 몰랐는데 꽤 날카로웠다.

허나 홀로코스트는 악마 숭배자의 제물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다.

사람을 비누로 만들었다는 괴담 아닌 괴담이 버젓이 돌아다닐 정도니 말 다했지.

"비슷해. 더 이상 말하니 스포일러지만 왜 악의 축으로 설명되는지 알겠지?"

"······가끔 그대의 세상은 우리보다 발전돼 있는 것 같으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어떻게 하면 그런 광기가 나라 전체를 집어삼킬 수 있는 것이냐?"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투로 이야기하는 그녀. 나는 적절한 예시를 하나 말해줬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이 세상도 다를 바가 없어. 악마 전쟁 이후 세이비어가 마족을 악마라 규정하고 '사냥'을 한다거나, 종족 전쟁 당시 인간이 수인을 학살한다거나. 종족 전쟁 이전의 엘프들이 인간을 원숭이 취급했다던가. 사람은 어딜 가나 비슷해."

"비슷하다라······ 여러 의미가 담긴 말이로구나."

아르웬도 이해가 가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으며 완벽하지 않은만큼 다양각색하다.

이 세상에도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사람이 등장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불행하게도 이건 막는다고 막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럼 저 옷은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생각에 빠져있던 아르웬이 제복을 가리키며 나에게 질문했다. 나는 제복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마음 같아서는 저 옷 그대로 입고 싶었지만 양심에 찔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구에서 리치왕을 코스프레한다고 해서 욕을 먹진 않지만······'

여기는 진짜 욕을 먹을 수도 있다. 왜냐고?

피와 강철은 다른 사람도 아닌 제논 즉, 내가 쓴 이야기니까.

전에 가이스트가 나를 찾아와 공산주의 및 전차의 정수를 알려달라고 간청했다. 알려진 이후로 혁명이 터졌고.

리스크가 커도 너무 크다. 그렇다고 나를 위해 정성 들여 맞춤 제작한 복장인데 폐기를 하자니 너무 아까웠다.

"······일단 보류하도록 할게. 혹시 모르니 디자인은 살짝 바꾸는 게 좋겠다. 철십자 훈장은······ 그대로 두고."

"알았다. 그 정도는 괜찮지."

"아. 혹시나 하는 말인데 나치 독일 마크는 절대 붙이지 마. 알겠지?"

"물론이니라."

하지만 양심이 결코 저 옷을 거부했으며 무엇보다 무섭다.

안그래도 지구의 신들이 이곳을 예의주시하고 있는데 나치 독일 제복이 유행한다?

하느님께서 노발대발하셔서 이 세상을 침공하실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 기준으로 강력한 신성을 가지신 분인데 누가 말릴 수도 없다.

"······그대여?"

"음?"

제복에 대한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을 때쯤, 아르웬이 조용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 부름에 바라보니 왜인지 몰라도 쑥쓰러워하는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뒤이어 그녀는 나와 제복을 번갈아보더니 조심스레 부탁했다.

"그럼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저 옷을 입어줄 수 있느냐?"

"입어달라고?"

"그래. 옷 사이즈가 맞는지 확인도 해야 되는데다가······"

아르웬은 거기까지 말하고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얼굴은 물론 귀가 홍시처럼 빨갛게 익어간다.

깍지를 낀 손과 꼼지락거리는 몸. 두 허벅지가 야시시하게 비벼지기까지.

"그······ 그······"

"아르웬."

"으, 응?"

나는 부끄러워하는 그녀를 향해 빙긋 웃어주며 입을 열었다.

"네가 원하는대로 해줄게. 그러니까······"

뒤이어 날개짓을 하는 것마냥 파닥거리는 그녀의 귀에다가 작게 속삭였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속 시원하게 털어내."

"······그, 그럼!"

아르웬이 용기 있게 소리쳤지만 여기까지 말하겠다.

너무 상스러운 말들이 튀어나와서 차마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러웠거든.

*****

알븐하임에서 며칠 간 머물고 다시 돌아간 기숙사.

마리와 세실리에게 부탁했던 체리의 근황을 알기도 전, 나는 신문에 기재된 소식을 보며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디자이너 젤트. 나치 독일의 제복을 보며 영감을 받았다. 새로운 제복 제작에 착수.]

[대공황으로 힘든 상황이지만 장인의 손은 멈추지 않아······]

[점점 수면 위로 드러나는 트렌치 코트 및 제복의 열풍.]

안 돼. 이러지 마.

"와아. 젤트까지 제복을 제작한다고?"

"······이 사람 누구인지 알아?"

"물론이지. 패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걸? 그나저나 제복을 제작한다니 어지간히 멋졌나 봐."

"··· ···"

이제 죽는다면 하느님에게 멱살 잡혀 끌려갈 일만 남았다.

아마 누군가 여기서 이리 말하겠지. 유행하기 전에 네가 먼저 말하면 되지 않냐고.

나치 독일은 개썅놈의 자식들인데다가 정화조차 불가능한 악의 세력이라고. 그러니 입으면 여러 눈총을 받을 거라고.

'영감만 받았다면 또 할 말이 없어서······ 내 잘못이지.'

순순히 멱살이나 잡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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