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작으로부터 조언을 받은 드워프 삼인방. 그들은 고향, 마키나로 돌아가 무작정 혁명 활동을 펼친 건 아니다.
아무런 지지도 없이 반란을 일으킨다면 미친놈에 불과할 테니까. 부르주 5세를 끌어내리는 것으로 혁명은 끝나지 않는다.
따라서 처음에는 새로운 집단을 구성할지언정 평화롭게 시위했다. 드워프 삼인방을 중심으로 드워프 공장들도 결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정해진 집단 즉, 정당의 명칭은 '공장당'. 드워프 공장들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지구의 정당과 다르게 상징이나 표어 같은 건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당의 이름을 빌렸을 뿐, 시위에 지나지 않았으니.
이른바 노동자조합에 가까운 형태였다. 드워프 공장들은 부르주 5세가 진압을 위해 화살을 발사해도 미련한 희망을 가졌으니.
언변이 뛰어난 기아스가 지금보다 강한 저항을 펼쳐야 된다고 호소했지만 드워프는 미련해도 너무 미련했다.
"적어도 배를 굶기진 않았잖아. 우리가 좀 더 목소리를 높이면 될 거야."
"아무렴. 난 돈은 필요 없어. 그냥 휴식 시간만 주면 돼."
"설마 그것도 안 주겠다고 하겠어?"
겉으로 보기에는 미련하기 짝이 없지만 드워프의 종족 특징이 발휘했다.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앞만 해결하면 된다는 마인드.
또한 마키나의 드워프는 왕을 확실한 '은사'로 대우하고 있었다. 만들 줄만 아는 자신들을 이끌어주는 은사이자 리더.
지난번 진압용 화살을 발사했을 때도 단지 소통의 부재로만 생각하고 있지, 결코 자신들을 무시하지 않는 거라 굳게 믿었다.
원래 스승이라는 존재가 그런 거니까. 제자가 획기적인 발상을 보여줘도 아니라고 다그치니까. 이번에도 그런 거겠지.
물론 왕이 답이 없음을 일찍감치 깨달은 공장들은 이미 공장당에 가입했지만, 아직까지 많은 시위대가 희망을 가졌다.
"여러분. 히르트 님이 우리에게 자연이란 위대한 선물해주셨지만 정작 그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왕에게 저항이 아닌, 사랑을 담아 부탁할 겁니다."
"우리에게 휴식을."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우리에게 따뜻함을."
한 드워프 신자가 따뜻한 목소리로 설교하자 드워프 공장들이 각각 기도했다.
드워프는 루미너스도, 모라도 아닌 히르트를 신봉하는 존재. 광산과 광물로부터 수많은 물품을 제작하는 드워프로서는 히르트의 입지가 매우 강하다.
그리고 히르트는 다른 신들과 달리 직접적으로 신성력을 주는 경우가 거의 없다. 주술이 있다지만 그것마저 기적에 가깝도록 표현되는 편이다.
따라서 드워프에게 종교는 지구와 정말 비슷한 형태다. 가끔씩 기적을 주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매번 돌아오지 않는, 아편과도 같은 존재.
"나아갑시다. 왕에게 우리의 목소리가 전달되도록. 우리의 진심이 전달할 수 있도록. 조금씩 나아갑시다."
드워프 사제의 신호를 시작으로 드워프 공장들, 시위대가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장간의 불은 땀이 되어 흐르고, 땀은 우리의 가치이자 증명이다.]
[힘찬 망치 소리는 노래가 되어 흥얼거리네.]
[내 손에서 새로움이 탄생한다네. 우리의 손으로 거대한 산을 쌓아올리고 있다네.]
[함께 만들자. 함께 노래하자. 함께 춤추자.]
본인들은 다른 시위대와 달리 진정한 평화를 원한다는 것처럼, 마키나의 국가를 부르면서.
원래 마키나의 국가는 드워프 특유의 유쾌함이 묻어 흥겨운 편이다. 대장간에서 일하는 드워프들을 위해 작곡된 노래다 보니 노동요에 가깝다.
하지만 시위대가 행렬하면서 부르는 노래는 엄숙하기 그지 없었다. 유쾌함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으며 희망을 붙드는 듯한 어조에 가까웠다.
항상 재치가 넘치고 활발한 드워프들이 얼마나 지쳐있는지 알 수 있는 상황. 그들은 짧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며 왕궁으로 향했다.
그 과정 속에서 시위대에 감화된 드워프 공장들이 조금씩 참여하기 시작했다. 비단 공장들뿐만 아니라 관련 드워프들도 참여했다.
지칠대로 지쳐버린 공장들에게는 혁명이 아니라 평화가 필요하다. 300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 이제 멈출 때다.
그렇게 인산인해를 이룬 드워프 공장들이 왕궁 앞에 도착했을 때쯤, 그들은 왕이 나올 때까지 앞에서 조용히 국가만 불렀다.
왕을 향한 자신들의 애국심과 충성심, 그리고 희망을 간절히 드러내는 모습.
하지만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고, 3시간이 지나도 왕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드워프 공장들은 정말 미련하게도 국가를 열창하며 왕이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렸다.
그리하여 4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끼이익-
"어? 무, 문이 열린다!"
"왕께서 이제서야······!"
"왕이시여! 부디 저희에게 희망을!"
좀처럼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던 왕의 대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드워프 공장들은 국가를 멈추며 왕이 등장하기를 기다렸다.
척- 척- 척- 척-
헌데 뭔가 이상하다. 왕은 등장하기는커녕 전혀 예상치 못한 집단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군대. 국가와 수호하는 군대가 질서정연하게 왕궁 안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맨 앞의 행렬에 서 있던 드워프 사제는 매우 당혹스러웠으나 이내 이해할 수 있었다.
왕이 혼자 나올 리가 없다. 당연히 왕을 수호하는 군대가 같이 나와야 정상이다.
[대장간의 불은 땀이 되어 흐르고, 땀은 우리의 가치이자 증명이다.]
[힘찬 망치 소리는 노래가 되어 흥얼거리네.]
[내 손에서 새로움이 탄생한다네. 우리의 손으로 거대한 산을 쌓아올리고 있다네.]
[함께 만들자. 함께 노래하자. 함께 춤추자.]
다른 드워프 공장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더욱 목소리를 높이며 국가를 불렀다. 광장을 포함한 왕궁 안까지 국가가 들릴 정도로.
이제 왕이 나와 미련한 공장들을 다독여준다면······
"전군-!!"
대화만 한다면······
"반란군을 향해 조준!"
되는데······
"발사!!"
어째서 왕께서는.
"아아아악!!"
"와, 왕이시여! 어, 어째서!"
이리 무자비하게도.
"대포 장전!"
"발포!"
콰앙!!
우리의 희망을 짓밟는단 말인가.
"왕이시여! 우리는 아무 힘도 없습니다! 어째서!!"
"사, 살려줘! 아아악!"
"아, 아니야. 이럴 리가 없어. 와, 왕께서 아무 힘도 없는 우리를 왜······ 제아무리 항의를 했다지만······"
머리 위로 쏟아지는 화살비와 포탄 세례에 시위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백성을 지켜야 할 군대의 활과 대포가 백성을 향하게 된 비극.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참극.
시위대를 이끌었던 드워프 사제는 혼란 그 자체나 다름없는 상황에 멍하니 주변을 둘러봤다.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등에 화살을 맞아 쓰러지는 드워프와, 포탄에 제대로 적중당해 산산조각이 나는 사람들.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도 있었으며 나이가 어린 드워프는 공포에 질려 울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갓난아이를 지키기 위해 몸을 웅크리며 버티는 어머니까지. 그녀의 등에는 이미 수 개의 화살이 꽂혀있었다.
이게 맞는 건가. 제자를 인도해야 할 은사가 어찌하여 제자의 발로 짓밟는단 말인가.
"아······"
아니지.
"아아아······"
착각한 거다. 왕은 백성을 결코 이끌어야 할 제자로 생각한 적이 없다.
움직이기 편한 장기말. 물건을 만들어 주는 노예. 돈을 갖다 바치는 노예들.
희망을 가진 자신들을 농락하기 바쁘며 자기 잇속만 챙기는 돼지 새끼.
드워프 사제는 주먹을 불끈 쥐며 부들부들 떨었다. 걷잡을 수 없는 분노의 화마가 가슴 속을 가득 채운다.
이에 그는 무차별 난사 중인 군대를 노려보며 외쳤다. 영혼이 찢어지는 것 같은 마음을 지닌 채.
"이제 왕은 없다!"
에인스와 삼인방의 말이 맞았다. 왕은 백성들을 사랑할 마음이 전혀 없다.
"히르트시여! 저들을 천벌하소서! 저들에게 가장 끔찍한 죽음을······!"
퍼억!
사제의 말은 끝맺지 못했다. 그의 입 안으로 화살 한 발이 깊숙히 꽂혀들어갔으니.
퍽! 퍼억! 퍽!
연달아 꽂히기 시작하는 화살들. 드워프 사제는 비틀비틀 뒤로 물러나다가 뒤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드워프 사제가 마지막으로 들은 건.
"폭도들을 처단해라!"
자신들을 폭도라 지정한 지휘관의 고함과.
쾅! 쾅!
"끄아아아악!"
"아악! 내 다리! 내 다리가!"
"사, 살려줘······! 아무나······"
포탄이 발포되는 소리, 그리고 절규어린 드워프 공장들의 비명이었다.
******
판타지판 피의 일요일 사건은 마키나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무려 자국의 군대의 창칼이 백성들에게 향한, 도저히 믿지 못할 사건.
종족전쟁 이후 크고 작은 전쟁이 발발하고 테르스 왕국에서는 혁명까지 일어났지만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충격이다.
심지어 테르스 왕국에서 발생한 제이로스 혁명조차 군대의 창칼이 백성에게 향하지 않았다.
오히려 군대가 창칼을 거두고 혁명에 참여했을 정도로 매우 깨끗하고, 아주 부드럽게 진행됐다.
비록 혁명 자체는 실패로 끝나고 주동자이자 희생자인 제이로스는 처형당했지만, 평민 의회 및 판타지판 권리장전이 등장했다.
말만 실패지 사실상 성공이라 할 수 있는 상황. 그러나 마키나는 그보다 더한, 어쩌면 더 끔찍한 대응을 초래했다.
[백성을 지켜야 할 군대의 창칼이 어째서 백성에게 향할 수 있는가?]
[마키나는 사실상 내전에 돌입했다. 이 이상의 침체는 막을 수 없다.]
[부르주 5세는 어째서 백성과의 소통을 거부하는가? 그의 속내는?]
아무리 막나가는 지도자라 해도 선을 넘어도 제대로 넘은 상황. 각국의 지도자들은 부르주 5세를 비난하기 바빴다.
워낙 스케일이 큰 사건인지라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었다. 특히 평소 깡패 외교로 악명이 자자한 부르주 5세였기에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비난했다.
여기서 부르주 5세는 자국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간단하게 입장을 표명했다.
[신경 꺼라. 우리는 우리 일을 할 뿐이다. 이 일을 빨리 끝내야 대침체도 멈출 수 있을 것 아니냐?]
공식 입장인 만큼 구구절절 말은 많았지만 축약해서 설명한 게 바로 저거다.
안 그래도 대침체로 인해 골골거리던 다른 나라들 입장에서는 뒷목을 잡을만한 대답.
그러나 실제로도 맞는 말인데다가 혁명 자체는 마키나 내에서 터진 거라 개입할 명분도 없었다. 부르주 5세의 말처럼 뭐가 됐든 빨리 끝내야 된다.
그리고 혁명의 불씨를 빠른 시일 내에 꺼뜨리는 방법은 한 가지.
"저기 있다! 저 놈 잡아라!"
"밖으로 나오는 공장들은 전부 체포감이야!"
탄압. 탄압. 탄압. 그리고 또 탄압.
공장들이 대장간 밖으로 나올 수 없도록, 더 심한 탄압을 가했다. 당근이 아닌 가혹한 채찍을 선택한 것이다.
반항조차 할 수 없도록, 반항할 마음조차 들지 않도록 매섭게 가해지는 채찍질.
보통 사람 같으면 분을 삭히며 대장간에 들어섰겠지만, 드워프 공장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가 있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혁명을 주도할만한 '중심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
그 강점이 지난번 사건 이후로 제대로 발휘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마모된 검은 수리할 수 있지만, 완전히 부서진 검은 수리할 수 없듯이! 우리가 새로운 마키나를 창작해야 됩니다!"
혁명에 본격적으로 참전하기로 마음 먹은 드워프 공장들이 집결된 은신처. 이 은신처는 본래 드워프 공장들이 하루를 끝낸 뒤 모이는 주점이었다.
허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주점은 '공장당'의 집결소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드워프 공장들이 푸념을 들어놓는 장소라 바뀌는 건 시간 문제.
드워프 공장들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마음을 위로받던 장소는 이제 없다. 이미 쌓일대로 쌓인 마음에 불을 지르는 성냥일 뿐.
"우리를 따라오십시오! 저희가 든든한 방패가 되어 여러분을 이끌겠습니다! 저희가 여러분의 대포가 되어 여러분을 돕겠습니다! 우리는 절대 꺾이지 않을 겁니다! 모든 권력과 힘을 우리 '가이스트'로 주십시오!"
"맞아! 맞아! 더이상은 못 참는다고!"
"저번에 내 사촌이 죽었어! 그딴 놈은 왕으로 인정 못해!"
"기아스를 왕으로! 공장당을 은사로! 모든 권력을 가이스트로!"
가이스트의 뜻은 공장들 즉, 드워프 공장들을 뜻하는 바다. 가이스트 자체가 드워프 공장들이 모인 정당이라 매우 적절하다.
기아스는 주점 내에 모여있는 공장들의 격한 호응을 얻으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주점마다 사상으로 감회시킨 연설가들이 공장들의 기운을 복돋아주고 있을 터.
진정한 혁명이 눈 앞에 다가왔다. 부르주 5세는 혁명의 불씨를 발로 짓밟았을지언정 완전히 꺼뜨리지 못했다.
원래 작디 작은 불씨가 거대한 화재로 변모해 모든 걸 집어삼키는 법. 그 화재는 부르주 5세의 모든 걸 불태울 것이다.
삐이이익!
그때 기아스를 포함한 공장들의 귀에 호루라기 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그에 화들짝 놀란 기아스가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 들이닥쳤는지 모르지만, 왕실의 군대가 주점 내에 진입했다. 분명 바깥에 보초를 세워놓았는데 무슨 일이 터진 모양이다.
아니면 그 보초가 스파이였다던가. 실제로 정당을 감시하기 위해 스파이를 보낸 적이 적지 않게 있었다.
"저 놈들을 모조리 붙잡아라! 저기 있는 저 놈은 무조건 생포해!"
지휘관의 명령을 시작으로 주점 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드워프 공장들이 저항하고, 군인들은 그들을 거칠게 제압한다.
왕을 향한 적의가 끓어오를 대로 끓어오른 상태라 드워프 공장들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여태까지 대장간에 지내면서 단련된 근력은 군인들이라 해도 쉽게 제압할 수 없던 수준.
퍼억! 퍽! 빠악!
"악! 아악!"
"이 새끼가! 감히 우리를 뭘로 보고!"
하지만 그들에게는 없는 것 한 가지, 바로 '무기'다. 맨손과 무기의 차이는 하늘과 땅에 가깝다.
저항은 길고 거셌으나 반전을 도모하기는 힘들다. 그저 기아스가 빠져나가는 시간만 벌 뿐.
"조금만 버티시오, 동지들! 내 곧 그대들을 도우러 오겠소!"
"저 놈은 반드시 붙잡아! 도망치게 놔두지 마!"
기아스는 쓰러지는 공장들을 보며 울분을 삼키다가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가 도망치는 모습에 지휘관이 서둘러 명령을 내렸다.
이에 수많은 군인들이 기아스의 뒤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기아스의 명성은 마키나 내에서도 퍼져있는 상황.
더구나 외국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는 혁명가였기에 놓치면 안 된다. 그야말로 진정한 불씨였으니까.
"어디로 갔지?"
"저쪽이다! 저 놈 빨리 잡아!"
"허억······ 허억······"
기아스는 짧은 다리로 열심히 도망쳤다. 지난번과 달리 자신을 잡기로 작정했는지 도망치는 곳마다 군인들이 깔려있었다.
하지만 절대 잡힐 수는 없다. 어떻게든 약속 장소에 도착해야 진정한 시작이 가능하다.
이에 기아스는 입에 단내가 나도록 다리를 멈추지 않았다. 연설을 하면서 지역의 지리를 파악한지 오래라 뿌리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단지 군대가 예상보다 집요했을 뿐. 기아스가 이곳 저곳 돌아다녀도 군인들은 끝까지 그를 추적했다.
"저곳으로 들어갔다!"
"놈의 대장간인가?"
"마지막으로 숨을 곳이 여기밖에 없나 보군."
그 끝에 기아스는 어느 한 대장간 안으로 들어섰다. 겉보기에도 규모가 상당히 큰 대장간이다.
보아하니 '기술자'를 위한 대장간인 모양. 군대를 이끄는 지휘관은 그 대장간 앞에 섰다.
그 순간이었다.
피잉!
대장간 위로 무언가가 세차게 솟구쳐 올라갔다. 지휘관을 포함한 드워프 군대는 전조도 없이 올라간 무언가를 바라봤다.
퍼버버벙!
하늘 위로 솟구쳐 올라가던 붉은 실이 이내 반짝이며 폭발한다. 사방팔방 흩뿌려지는 붉은 섬광들.
보아하니 화약으로 뭔가 장난이라 친 모양이다. 아니면 특정한 '신호'겠지.
'아무렴 상관없지.'
자신은 저 바퀴벌레 같은 놈을 잡으면 그만이다. 지휘관은 굳건히 닫혀있는 대장간의 입구를 바라보다가 옆을 힐긋거렸다.
그그그그극-
이럴 줄 알고 가져 온 대포가 한 정이 있다. 때마침 드워프들이 대포를 끌고 오는 중이다.
이에 지휘관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지체없이 명했다.
"경고는 필요없다. 발포해!"
"예!"
콰앙!
미리 장전했는지 포수가 지체없이 포탄을 발사했다. 포탄에 제대로 적중한 대장간의 입구가 굉음과 함께 사라졌다.
잔해가 흩뿌려지고, 뿌연 흙먼지가 흩날린다. 커다란 구멍 너머로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존재할 뿐.
입구도 마련되었겠다, 지휘관은 말없이 고개를 까닥거렸다. 안으로 진입하라는 뜻에 군인들이 발걸음을 떼었다.
드드드드드-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왜인지 몰라도 땅이 흔들리는 게 아닌가.
지휘관은 물론, 발을 움직이던 군인들도 난데없는 진동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뭐, 뭐지? 지진?"
"히르트 님께서 어디 아프신 건가?"
모두 알다시피 히르트는 자연의 여신이다. 이 같은 지진은 히르트가 아프거나 노했을 때나 발생하는 자연재해.
아무래도 본인들이 행했던 짓거리가 있다 보니 드워프 군대들도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혹여 본인들이 행한 일로 인해 정말로 천벌을 내리는 건가 싶어서.
그르르르르!
지진이 더 심해진다. 동시에 어둠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자세히 들어보면 마치······ 울음소리. 그래. 몬스터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우는 것 같다.
여기는 자신의 구역이라 선포하는 것처럼, 위협 가득한 울음소리.
더이상 가까이 온다면 그 즉시 행동에 나설 거라는 경고.
"이게······ 무슨 소리지?"
"저기에 몬스터라도 있나?"
"이정도 진동이면 오우거밖에 없는데······"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지휘관을 막론한 모두가 긴장 상태에 놓여있을 때,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등장한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길쭉한 원통형 입. 일반적인 대포보다 살짝 길어보이는 입이다.
이 다음으로는 딱 보아도 육중해 보이는 몸체와 독특한 형태의 바퀴. 길쭉한 원통형 입이 달려있는 부위는 거대한 몸체 위에 얹어져 있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온 몸을 뒤덮은 두꺼운 철.
지옥에나 나올 법한 강철의 괴물이 어둠 속에서 스멀스멀 등장했다.
"저게······ 뭐냐?"
"··· ···"
크그그그그!
생전 처음 보는 강철의 요새 앞에서 지휘관과 군대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만큼 충격적인 등장이요, 외관이다.
그도 당연한 것이 몸 전체를 강철로 감싼 저 괴물을 직면한다면 누구나 얼어붙을 것이리라.
도대체, 아니 그전에 어떻게 만든 건지 이해조차 불가능한 괴물의 등장.
흡사 일반인이 '오우거'와 맞닥뜨린 것처럼, 지휘관과 군대는 그저 황망한 얼굴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치익-!
거대한 강철 요새가 멈춤과 동시에 뒤에서 거친 증기가 발산된다. 저 모습 또한 오우거가 거친 호흡을 내뱉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위이이잉-
이윽고 길쭉한 입이 군대를 향해 조준되고.
[발포!]
위압감 넘치는 강철 괴물 안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지휘관의 귀를 파고들었다.
쾅!
천벌(혁명)이 시작되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