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477화 (478/763)

"엇. 설마 저를 아십니까?"

내가 이름을 중얼거리자 칼라스 자작, 마셜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에게 물었다.

안 그래도 눈이 반짝반짝거려 부담스러웠는데 그마저 강해지니 더 강렬한 인상을 풍긴다.

"아,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단지 비슷한 이름을 알고 있어서요."

나는 황급히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마셜은 2차 세계 대전을 조금만 깊이 파고들면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이름이다.

100만에 달하는 군대에게 불가능한 보급을 가능케 한 걸 넘어서 아이스크림까지 친히 넣어준, 가히 병참의 신이라 할 수 있는 군인.

윈스턴 처칠에게 승리의 설계자라 칭송 받았을 정도로 마셜이 없었다면 미군은 미친듯한 물량을 뽑을 수 없었다.

문제는 유능해도 너무 유능했던 탓에 다른 장군들보다 명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는 것.

심지어 서독을 먹여 살렸던 마셜 플랜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정치인으로 착각하고 있다.

"아······ 그렇군요. 제가 잠시 헛된 기대를 한 모양입니다. 하하하!"

내 부정에 마셜은 실망하지도 않고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인상만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모양이다.

여기에 두꺼운 입술과 초롱초롱한 눈 때문에 결코 잊혀지지 않는 인상까지.

아무래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헌데 두 분께서는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는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마셜과의 인사는 여기서 끝내고, 나는 다시 마티우스 후작과 고츠 후작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원래라면 이들은 장인어른에게 가서 '예산 줘. 응애'라고 부탁해야 정상이다.

군인인지라 정치와 거리가 멀다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먼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예산에 한해서라면.

그런 사람들이 뜬금없이 케이를 거쳐 나와의 만남을 주선하기를 원하니 의아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우선 내 딸이 그대에게 저지른 무례부터 사과하겠소."

그때 마티우스 후작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정중하게 사과했다. 미사여구 따위는 필요없는 돌직구 사과.

자그마치 후작이나 되는 사람이 고개까지 숙이며 인사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이때문인지 주변 사람들이 흠칫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에 반면 나는 담담한 심정이었다.

"마티우스 영애와 관련된 그 사건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듣자하니 군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있던데 아닙니까?"

"그렇소. 제국법에 따라 군인을 모욕한 자는 신분에 상관없이 군에 들어가야 하오. 그리고 귀족은 최소 5년 간 의무적으로 복무해야 되지."

다시 말해 아이라는 지금도 열심히 뺑이 치고 있다는 소리다. 복학은커녕 눈물을 머금고 군대에 몸을 담아야 한다는 소리.

그때 그 여자가 왜 그 지랄을 했는지 모르겠다만 지금은 거의 잊어버린 기억이다.

내가 속이 좁은 것도 아니고 기억도 금방금방 잊어버리거든. 또한 마티우스 후작가도 처신을 잘한 편이라 별 불만은 없다.

"그렇군요. 부디 그 일로 마티우스 영애가 군인을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제 아버지부터 시작해서 형제들이 군인이라서요."

"명심하리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이샬 경의 아들에게 저지른 무례였으니 더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으니."

나는 마티우스 후작의 말을 듣고 한 쪽 눈을 치켜떴다. 그는 나를 제논이 아니라 마이샬 경의 아들, 즉 아버지의 아들로 대하는 중이다.

보통 같으면 제논의 명성이 관심을 기울일 텐데 그쪽에는 큰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어디까지나 추측성에 불과하나 조금만 대화를 진행시켜도 될 듯하다.

"저자세로 나오지 않아도 됩니다. 책임을 졌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귀감이 될 수 있으니까요."

"넓은 아량에 감사할 따름이오."

"때마침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저희 아버지께서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자연스레 넘어가는 주제. 옛날이라면 모를까, 이제는 나도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알고 있다.

굳이 이 얘기를 거낸 이유는 주제를 넘기기 위한 것도 있고, 마티우스 후작이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제논이 아니라 가문 대 가문으로서의 대화인 셈이다.

"훌륭하다는 말조차 부족할 정도였소. 마이샬 경이 없었더라면 북부 지역은 분쟁 지역이 아니라 전쟁터로 변했겠지."

마티우스 후작은 과거를 떠올리고 있는지 상념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아버지의 명성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지만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만든 초석이다.

"고츠 후작 님은 남부 바다를 맡는다고 하셨죠?"

마티우스 후작이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해군을 도맡는 고츠 후작에게 말을 걸었다. 병풍이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나저나 정말 해군이 맞나?'

탄 피부는 바다 사람이니 그렇다 쳐도 정돈되지 않은 수염 때문에 해적 같은 인상을 풍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고츠 후작은 껄껄 웃더니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소. 남부 바다를 위협하는 놈들을 전부 쓸어버리고 있지!"

"남부 바다는 북부처럼 힘든 일이 있나요?"

"바다는 언제나 위험하지. 출항할 때마다 매번 목숨을 걸어야 한다오."

진지한 그의 말에 동감하는 바다. 이 세상의 바다는 지구의 바다보다 훨씬 위험하다.

당장 거친 풍랑과 악천후만으로도 배가 뒤집어질 듯 말 듯한데 해양 몬스터까지 존재한다.

더군다나 인식이 인식인지라 바다에 접근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다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바다는 식량뿐만 아니라 무역 같은 부분에서 아주 중요하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직종이나 리턴값이 어마어마하다.

'장거리 항해 같은 건 꿈도 못 꾸겠지.'

당장은 연안항해밖에 못 하는 상황이다. 콜럼버스 같은 위인이 등장해도 힘들겠지.

전체적인 기술로 따지자면 17세기에 속해있으나 항해를 비롯한 조선 기술은 3세기 이상 뒤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전 바다와 인연이 멀어 잘 모르겠지만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뱃사람들은 이걸 알고도 배를 타는 건가요?"

"암! 바다만의 낭만이 있는 법이지!"

"그러면 바다를 이용한 세계 일주 같은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자부심 가득한 고츠 후작의 귀를 비집고 들어가는 질문. 개인적으로 뱃사람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이다.

바다는 악마가 탄생시킨 지형으로, 예로부터 이 세상 사람들이 접근하는 것조차 꺼리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모험심이 넘치다 못해 목숨까지 거는 종족. 하물며 주변 종족보다 나약해서 뭐라도 이용했다.

바다도 그 일환이다. 예로부터 항해는 꾸준히 이어졌지만 장거리 항해는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다.

한 번 그 이유를 알고 싶었기에 물어본 것이다.

"바다로 세계 일주? 하하. 그 제논조차 바다의 저주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나 보군."

내 질문에 고츠 후작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어서 그는 입꼬리를 올린 채 '바다의 저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라고 시도는 안 한 건 아니오. 하지만 거친 풍랑을 견딜 수 있는 배가 있어도 선원이 쓰러지면 아무 의미가 없다오. 바다의 저주는 우리 뱃사람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저주지."

"바다의 저주가 정확히 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말 그대로라오. 바다 위에 오래 있으면 저주의 영향도 강해져서 선원들이 픽픽 쓰러지지. 잇몸에서는 피가 흐르기 시작하고 치아는 전부 빠지는 등. 심해지면 죽음에 이른다오."

"··· ···?"

증상만 들으면 딱 괴혈병인데.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는 동안 고츠 후작은 바다의 저주가 얼마나 심각한 저주인지 설명을 이어나갔다.

"성직자가 있어도 의미가 없다오. 바다는 악마들이 만든 끔찍한 소굴. 지상이라면 모를까, 바다 위의 성직자는 무능력하지. 때문에 두 달에 한 번은 반드시 항구로 복귀해야 된다오."

"성직자가 능력을 쓸 수 없다는 겁니까?"

"신성력에 이끌려 해양 몬스터가 다가오기 때문이오."

하이고. 어쩐지 항해술이 유독 뒤떨어진다 하더니 이거 때문이었구나.

이곳 사람들은 바다를 3000년 전, 악마 전쟁 당시 악마들이 창조한 지형이라 생각하고 있다.

지구의 선원들도 대항해시대 당시 괴혈병으로 인해 몸살을 앓았으며, 제대로 된 치유법이 나오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러나 이 세상은 마인드 자체부터가 다르다.

지구는 '씨발. 좆같네. 대체 뭐야?'에 가깝다면 이 세상은 '저주라고? 씁. 어쩔 수 없지'에 가까운 마인드다.

해결 자체를 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악마가 만들어 낸 저주였으니까.

지구와 달리 신들의 존재가 명확하고, 신권이 지나치게 강한 탓에 발생한 폐해다.

"저주를 풀 방법은 없나요?"

"간단하오. 그냥 하선하고 며칠만 푹 쉬면 금방 낫는다오. 증상이 심하면 신전에 방문하면 되고."

"음······"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를 섭취하면 된다고 말할까. 다만 배 위에서 어떤 음식을 먹는지부터 알아야 된다.

증상만 듣는다면 괴혈병과 판박이지만 진짜로 '저주'일 수도 있었으니.

특히 '감자'를 재배하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감자에는 비타민C가 풍부하며 괴혈병의 특효약이었으니까.

이에 잠시 고민을 거치다가 넌지시 떡밥을 던졌다.

"그럼 식량 같은 부분은 문제가 없나요? 감자 같은 게 있으니 괜찮긴 하겠다만······"

"험한 뱃사람에게 감자 같은 걸 먹이라는 거요? 힘을 내기 위해서는 말린 고기가 최고라오."

"··· ···"

어떻게 뱃사람은 지구나 여기나 하나 같이 마초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거야. 바다가 원체 험해서 그런가.

내 이름이 이름이다 보니 믿기야 하겠다만 그걸 어디서, 어떻게 알아냈느냐가 문제지.

바다의 저주에는 감자가 특효약입니다! 라고 외치면 이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제논이어서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뭔 미친 개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헌데 굳이 감자를 콕 집은 걸 보면 뭔가 아는 것이오?"

속으로 허허 웃고 있는 동안이었다. 내 말에서 무언가 낌새를 느꼈는지 고츠 후작이 은근한 말투로 내게 물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뱃사람에게 감자가 웬말이라고 하더니 태도를 바꿨다.

이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어느새 상념에서 빠져나온 마티우스 후작은 물론, 칼라스 자작 또한 흥미로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케이도 마찬가지. 하나 같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델리아.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피식거렸다. 그녀는 내가 환생자라는 걸 알고 있으니 또 사고쳤구나 싶겠지.

일단 대답부터 해야겠다. 여러모로 꼬인 상황이지만 차근차근 풀어가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야, 마이샬 영식께서는 신들의 축복을 한 몸에 받고 있으니 그렇소. 그러니 뭔가 아는 게 많지 않을까 싶었소."

"전에 들으셨을지 모르겠지만 전 예언자가 아닙니다."

뱃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미신' 혹은 '종교'를 절대적으로 믿는 경향이 강하다.

어느 사람이 말하길, 모든 것을 집어삼킬 바다와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건 커다란 널빤지 하나뿐이라고.

더구나 이 세상은 바다의 인식이 시궁창이니 종교를 광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다.

"예언자는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지식을 갖고 있을 거 아니오? 만약 바다의 저주를 해결할 수 있다면 합당한 보상을 해주겠소."

"보상은 딱히 바라지 않습니다. 그냥 감자만 가득 챙기세요. 싹이 난 거는 버리고."

옛다. 지식 보따리 털어낼 테니 만족해라. 나는 상황이 더 복잡해지기 전 해결책을 대충 던져줬다.

비타민이고 나발이고 설명해봤자 알아듣지도 못할 테고, 여기서 더 지체했다간 무슨 말이 나올지 직감했기 때문이다.

'분명 딸을 준다느니 뭐니 했겠지.'

거의 99% 확률로 그랬을 것이다. 아니면 그에 준하는 보상을 내걸었겠지.

그런 경우는 최대한 피하고 싶어서 사전에 차단했다. 나는 그저 인맥을 다지고 싶을 뿐이지 그보다 더 깊은 관계는 사양이다.

마리에게 맞아죽을 수도 있거든. 빈말이 아니라 진짜로 죽는다.

"정말이오? 겨우 그 감자 하나가 바다의 저주를 해결하는 게 맞소?"

"해결까지는 아니어도 방지할 수 있을 겁니다. 감자를 보급하기 힘들다면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 같은 걸 챙겨주세요."

"그건 걱정 마시오. 칼라스 자작?"

고츠 후작은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마셜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믿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하지만 마셜은 마티우스 후작의 부관. 마티우스 후작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언짢다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칼라스 자작은 내 부관이다. 너네 부관한테 부탁해. 이정도는 쉽잖나."

"에잉. 알았네, 알았어. 아무튼 바다의 저주가 해결된다면······ 흐흐흐."

분명 후작이나 되는 사람인데 왜 자꾸 해적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뱃사람은 다 이런 건지 모르겠다.

나는 행복한 상상에 빠져있는 고츠 후작을 두고 마티우스 후작을 쳐다봤다.

마티우스 후작은 고츠 후작의 추태 아닌 추태에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어서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특유의 동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물······ 아니, 아니. 해군이 다 저렇지만은 않으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그래도 바다의 저주가 해결된다니 좋긴 하겠군."

"다시 말씀드리지만 전 예언자가 아닙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오. 나는 그런 거에 연연하지 않으니. 대신 물어볼 게 좀 있다만······"

끝말을 흐리며 주변 눈치를 보는 마티우스 후작. 나는 여기서 본격적인 질문이 나올 거라고 직감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주위를 둘러볼 일은 없을 테니. 옆에서 상상의 나래에 빠져있는 고츠 후작은 제외하도록 하자.

나는 남아있는 와인을 전부 마셨다. 도수가 생각보다 높은지 벌써부터 얼굴이 뜨거워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알딸딸하지는 않았다. 적당히 기분 좋은 정도랄까.

"무엇을 물어보고 싶으시죠?"

"제논 일대기, 그리고 피와 강철 속에 묘사될 전투에 대해 궁금한 게 있소. 아니, 정확히는 전쟁이라 해야겠군."

"흠?"

작품이 아니라 그 속에 묘사된 전쟁이 궁금하다는 마티우스 후작의 질문. 무엇을 의도하는 건지 알 수 없어 의아해졌다.

게다가 그는 제논 일대기뿐만 아니라 피와 강철까지 언급했다. 피와 강철은 아직까지 정치물에 가깝다.

전투 장면은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는데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제논 일대기는 몰라도 피와 강철은 그런 묘사가 없었습니다만?"

"없지만 앞으로 일어날 거라고 예상하고 있소. 아니오?"

확신에 선 말에 나는 그저 어깨만 으쓱거렸다. 어차피 생각이 조금이라도 깊은 사람들은 다 예상하고 있을 터.

마티우스 후작은 내 반응에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조용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궁금해졌소. 호크 경은 그대의 아버지인 반면 마이샬 영식은 글을 쓰는 작가. 따라서 군사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오."

"마티우스 후작님?"

직설적이다 못해 돌직구 수준의 질문이 날아오자 케이가 화들짝 놀라며 그를 불렀다.

상상의 나래에 빠져있던 고츠 후작조차 눈을 동그랗게 뜰 정도. 그만큼 도발적인 언행이다.

하지만 나는 담담한 반응만 보였다. 사실 저 질문은 군인이 된 입장에서 아주 당연하다.

예언자니 회귀자니 뭐니 떠들고 있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작가에 불과하니까. 전문가와 거리가 멀다.

괜히 엉터리 지식을 넣었다가 애꿎은 곳에서 피를 볼 수도 있다는 소리다.

"제논 일대기에 묘사된 전쟁은 감명 깊게 읽었소. 각 종족마다 강점을 보여줌과 동시에 조화롭게 어우러졌지. 처절하면서도 우아했다는 표현이 어울리겠군."

"그리 말씀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하지만 전쟁은 한 번의 전투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소."

마티우스 후작도 그 부분을 염려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미 피를 봤을 수도 있겠지.

실제로 '모험가' 직종이 비슷한 사건을 겪었다. 제논 일대기를 보며 꿈을 키운 모험가들이 현실에 좌절하거나 소리 없이 객사하는 등.

유입이 많아지긴 했지만 그만큼 좋지 못한 일들이 연달아 터졌다. 심지어 몇 달 전에 '사칭' 사건도 있었고.

"실제 전쟁은 제논 일대기와 달리 단발적인 전투로 끝나지 않는다오. 여러 전투 끝에 목표를 달성하는 경우가 태반이지."

"알고 있습니다."

"피와 강철에 펼쳐질 전쟁에서 그 부분을 잘 설명해주셨으면 좋겠소. 원한다면 군사 지식을 전수할 사람을 보내주겠소."

"사람이라면······"

나는 곧바로 마셜을 쳐다봤다. 그는 여전히 눈을 또랑또랑하게 뜬 채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아. 미안하지만 칼라스 자작은 아니라오. 이 친구는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렇군요. 말씀은 감사드리지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마티우스 후작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대충 알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엉터리 지식을 넣을까봐 걱정한 모양이다.

하지만 전쟁은 시대가 흘러도 근본은 똑같다. 이건 2차 세계 대전이라 해서 다를 게 없다.

마음 같아서는 '손자병법'을 던져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 안에 담긴 내용을 모른다.

그래도 이건 말할 수 있다. 나는 빙긋 웃으며 마티우스 후작에게 말했다.

"전쟁은 아예 안 하는 게 가장 좋으니까요. 상황이 그렇게 만들 뿐이지 전 절대 전쟁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헌데 그러면 왜 피와 강철에도 전쟁을 묘사한다는 것이오?"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려주기 위해서죠."

"··· ···"

명료한 내 대답에 마티우스 후작은 어안이 벙벙해졌다가 이내 홀가분한 미소를 지었다.

내 말을 듣고 가슴에 묵혀있던 불안감이 한꺼번에 해소된 것 같은 표정.

"고맙소.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는군."

이어서 그는 나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진심이 듬뿍 담겨있는 걸 보아 여간 불안했던 모양이다.

"고맙긴요. 마티우스 후작 님이 무엇을 걱정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럴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겠소. 헌데 그대는 어찌 하여 전쟁이 끔찍하다는 걸 알고 있는 거요? 그건 좀 궁금하군."

"음······"

이건 좀 말하기 곤란한데. 그러면 어쩔 수 없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전쟁은 안 하는 게 가장 좋은 거라고."

아버지를 팔 수밖에. 하지만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게, 마티우스 후작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납득하고 있다.

구국영웅임과 동시에 가장 큰 피해자 중 한 명이었으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겠지.

나는 마티우스 후작이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여전히 뒤에서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는 마셜을 쳐다봤다.

"칼라스 자작님께서는 묻고 싶은 게 없으십니까?"

"······엇. 자, 잠깐······"

내 질문을 듣자마자 마티우스 후작이 크게 당황한다. 마치 잘못 걸렸다는 것처럼.

그걸 본 내가 의아함을 품은 것도 잠시, 칼라스 자작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크게 말했다.

"마이샬 영식께서는 대포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

"하아······"

내가 흠칫하자 마티우스 후작이 얼굴에 손을 덮었다. 여러모로 골치 아프다는 그의 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거나 말거나 칼라스 자작은 다시 한 번 크게 외쳤다.

"대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대포요?"

"예! 대포를 발전시켜 마법과 비견되는 위력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도 한 발이 아니라 여러 발을 쏘는 겁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저도 모르게.

"······포격인가?"

라고 중얼거렸으며.

"!!!"

칼라스 자작의 눈이 더 강하게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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