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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395화 (396/763)

〈 395화 〉 클라크(3)

* * *

케이트는 루미너스가 오래만에 내린 신탁을 떠올렸다. 가장 어둡고 추악했던 곳에서 가서 귀빈을 맞이하라고.

역시 신이 내리는 신탁답게 아리송한 말밖에 없었으나, 그녀는 그보다 어째서 이런 애매한 신탁을 내리는지 의아했다.

타락한 추기경을 퇴치한 이후로 신성력이 나날이 증폭되는 바, 이제는 신탁이 아니라 아이작처럼 미래를 직접적으로 알 수 있었으니.

그렇기에 원래라면 저런 추상적인 신탁이 아니라 대놓고 어디 어디를 가라고 부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케이트는 이 모든 게 신의 뜻이니 겸허히 받아들였다. 애초에 저 말의 의미를 모르는 것도 아니라 별 생각 없이 걸음을 옮겼다.

아이작과 꽤 오랫동안 떨어져 된다는 점이 그녀를 아쉽게 만들었지만, 귀빈만 데려오면 그만이니 쉬운 여정이라 생각했다.

지하 사원에서 발생한 사건이 귀에 들어오지만 않았더라면.

"스켈레톤이 출몰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예, 예! 그리고 말을 할 정도로 지성이 높은 개체입니다."

지하 사원에서 스켈레톤 한 개체가 전조도 없이 부활했다. 케이트는 그 말을 듣자마자 미간을 좁힐 수밖에 없었다.

스켈레톤이 누구인가. 사악한 사령술로 순리를 거슬러 되살아난 존재이지 않은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순리를 거스르기에 자신이 모시는 루미너스를 비롯한 신들에게 매우 골치 아픈 존재다.

하물며 말까지 하다니. 스켈레톤은 지성이 없어서 사령술사의 명령을 따르는 게 대부분이다.

물론 사령술로 지성이 존재하는 스켈레톤 혹은 망자를 소환시킬 수 있다. 이 같은 경우는 사령술사 본인조차 매우 강한 편이다.

케이트도 대심문관으로서 활동한 만큼 그런 자들을 만난 적이 있다. 거의 다 영웅의 영혼을 부여했었지.

가끔씩 '듀라한'과 같이 자연발생하는 몬스터가 있으나 인류에게 큰 해악을 끼치지 않는다.

그런 부류는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현세를 떠도는 영혼을 인도한다. 저승사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면 보면 편하다.

"피해자는 얼마나 되죠?"

"피해자는······ 약간의 부상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습니다."

"부상자를 제외하고 없다고요?"

"네. 네."

케이트는 조사단원의 설명을 듣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성이 있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희생자가 없다니.

조사단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스켈레톤의 실력이 조사단 전체보다 강하다는 뜻이다.

미네르바 제국이 바보도 아니고 만일에 대비하여 정예병들을 투입시킨 상황. 게다가 망자의 천적인 성직자도 존재한다.

"그 자가 뭐라고 하던가요?"

"그, 그게······"

조사단원은 약간 망설이다가 침을 꿀꺽 삼키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논 님의 위치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예?"

그 말에 케이트가 잘못 들었다는 듯이 고운 미간을 찌푸렸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만 알았다.

"제논 님의 위치와, 그의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도 물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설명을 듣자마자 이성의 끈이 끊어져버렸다. 케이트는 입매를 1자로 그으며 무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시골 처녀처럼 부드럽고 풋풋한 미소를 짓는 그녀지만, 이처럼 이성이 끊기면 정색하는 버릇을 갖고 있다.

지금이 바로 그렇다. 그녀는 미리 준비해둔 메이스를 허리춤에서 꺼냈다.

마음 같아서는 갑주까지 착용하고 싶었으나 그럴 시간이 없다. 한시라도 빨리 불순한 존재를 처리해야 됐으니.

순식간에 변화한 태도에 조사단원은 당황도 잠시, 서둘러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다급히 말렸다.

"자, 잠깐만요! 제 말을 들어주세요! 비록 스켈레톤이지만 말이 통하는 상대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봤자 망자입니다. 신이 정해주신 순리를 거스르는 존재죠."

"그, 그런 존재가 신성력조차 통하지 않았어요! 성직자들이 온갖 신성 주문을 펼쳤는데 그 어떤 효과도 없었습니다!"

"응?"

조사단원의 다급한 말이 통했던 걸까. 케이트는 그의 설명을 듣고 발걸음을 멈췄다.

방금 전의 설명도 충분히 의아했으나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더 이상하다.

"신성력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까?"

"예, 예! 그렇습니다."

"연기도 나지 않았나요?"

"네!"

"흠······"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다. 케이트는 잠시 생각하더니 멈췄던 걸음을 다시 움직였다.

악마 숭배자와 같이 사악한 자들에게 신성력이 천적인 건 맞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헌데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조금 이상하다. 광신으로 가득 채워진 케이트조차 의문을 가질만큼 말이 안 된다는 뜻이다.

'상관없지.'

그래봤자 스켈레톤이며 망자다. 수상쩍은 부분들이 한 둘이 아니었으나 눈으로 직접 보지 않는 이상 함부로 믿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아이작과 호크를 직접 만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어디서 굴러먹은 뼈다귀인지 몰라도 그건 절대 안 된다.

'그러면 귀빈은 도대체 누구지?'

여러모로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었으나 케이트는 두 다리를 멈추지 않았다. 일단 확인이 급선무였으니.

그녀의 뒤를 따라가는 조사단원은 어떻게든 말렸다. 현재 사태를 상부에 보고했으나 그에 따른 대책이 지시되지 않은 상황.

만약 여기서 사고가 터진다면 여러모로 골치 아파진다. 그런 조사단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케이트는 묵묵히 나아갔다.

이윽고 지하 사원의 길을 거쳐서 석상이 있는 곳까지 도착했을 때쯤.

"저 놈입니까?"

"예, 예. 그렇습니다만······"

케이트는 사원 중앙에서 당당히 일어서는 스켈레톤을 바라봤다. 중간에 허둥지둥 도망치는 기사가 있었으나 신경 쓸 건 아니다.

그리하여 신의 사도와, 스쳐간 영웅이 서로 마주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는지 조사단이 슬금슬금 물러섰다.

'······크다.'

케이트는 한 쪽 날이 부러진 도끼를 어깨에 짊어진 스켈레톤을 유심히 관찰했다. 분명 뼈밖에 없는 몸인데 신장이 크다.

생전에 착용한 낡디 낡은 갑옷을 입은 덕에 그 풍채가 더욱 돋보였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눈구멍에 형형하게 빛나는 황금의 빛.

진짜 눈이 아니지만 누군가와 닮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색상이다. 황금의 눈동자는 그리 흔한 편이 아니었으니까.

다소 독특한 점은 입에 시가를 물고 있다는 점. 폐가 없을 텐데 날숨을 내뱉으니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신의 은총을 받은 여자로군.'

한편 스켈레톤, 클라크도 케이트를 낱낱이 관찰했다. 겉보기에는 여리여리해 보이는 미녀였으나, 품고 있는 기운이 남다르다.

바다처럼 방대한 신성력도 신성력이지만 가장 인상 깊은 건 투지다. 저런 투지는 동나이대에서 전혀 볼 수 없다.

예측하는 건데 분명 셀 수도 없는 전투를 치렀을 것이리라. 그게 아니라면 저런 기백을 가질 수 없다.

여태까지 상대했던 어중이떠중이들과는 전혀 다른 상대. 클라크는 그녀가 먼저 행동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괜스레 먼저 나섰다간 성가진 일이 발생할 수도 있었으니까. 저쪽도 당장 공격하지 않는 걸 보면 생각에 빠진 모양이다.

'엘리가 떠오르는군. 닮았기도 하고.'

클라크가 옛 기억을 회상하는 동안 케이트는 조사단원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저 스켈레톤에게는 신성력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 말이 과연 진실일까. 악마 숭배자가 성직자에 대비하기 위해 저항력을 높인 건 아닐까.

사망자가 단 한 명도 없고, 중상자조차 없다는 말을 들으면 악한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저 스켈레톤은 순리를 거스른 사특한 망자.

이에 그녀는 '시험'을 위해 메이스가 쥔 오른손이 아닌, 비어있는 왼손을 가슴 중앙에 갖다 대었다.

수녀복 너머에는 항상 끼고 다니는 목걸이가 걸려있다. 당연하게도 루미너스를 의미하는 문양의 목걸이다.

"루미너스시여. 앞의 망자에게······"

"··· ···"

"천벌을 내려주소서."

번쩍!

케이트가 신성 주문을 작게 읆조리자마자 클라크 위로 황금의 빛기둥이 내리꽂혔다.

전의 성직자들이 펼쳤던 신성 주문보다 훨씬 크고, 찬란하게 빛나는 기둥.

아군에게는 이로운 효과를 부여하나 악마 숭배자와 같이 악한 존재들은 손쉽게 소멸시킬 수 있다.

더군다나 케이트는 대심문관. 간단한 주문만으로도 악마 숭배자따위는 말끔히 불태운다.

[후우.]

허나 예상과 다르게 클라크는 멀쩡했다. 입에 문 시가도 여전했으며 영 답답했는지 연기까지 내뿜었다.

게다가 두개골이 전보다 반질반질한 것이, 본인이 축복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어, 어떻게······"

"대체 저 놈은 뭐야?"

"추기경의 신성력마저 통하지 않는다니······"

케이트의 신성 주문마저 통하지 않자 그 광경을 지켜보던 조사단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이곳으로 왔다는 것부터가 놀라운 일이지만, 그것보다는 클라크의 존재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어떻게 스켈레톤이 대심문관의 축복에 버틸 수 있는 것인가. 상식을 한참 벗어나는 상황이다.

[이봐. 이 정도 됐으면 슬슬 나가도 되지 않아?]

클라크는 입에 문 시가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부활하자마자 이게 뭔 고생인지 당최 모르겠다.

느닷없이 전투를 하지를 않나, 신성 주문을 연타로 맞지 않나, 이제는 추기경이 찾아오지를 않나.

이럴 거면 부활하지 않고 영혼만 갈 걸 그랬다. 호크가 원하는 대로 시신까지 갖고 갈 생각이었지만 너무 안일했던 것 같다.

케이트는 여유롭기 짝이 없는 클라크의 언행에 눈 밑을 꿈틀거렸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상한 존재로군. 분명 스켈레톤과 같은 망자는 순리를 거스른 존재. 그런데도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다니."

[신들이 잠시나마 허락해줬으니까.]

"함부로 신을 언급하지 마라. 망자."

케이트는 싸늘한 목소리로 받아쳤다. 그녀와 같은 광신도에게 있어서 신은 삶 그 자체.

당연히 망자 따위가 입에 거론할 대상이 안 된다.

[허?]

그런 광신적인 면모를 곧바로 눈치 챈 클라크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러는 동안에도 케이트의 기운이 실시간으로 사나워지고 있다.

이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맨들맨들한 두개골만 느껴져서 느낌이 퍽 이상하다.

[예나 지금이나 광신도들은······ 아무튼 나를 여기서 보내줄 수 있나?]

클라크의 물음에 케이트는 고민했다. 저 자는 분명 순리를 거스른 존재가 맞지만, 신성 주문에 직격으로 맞아도 멀쩡한 걸 보면 무언가 이상하다.

그렇다 해서 바깥으로 보내줄 수도 없다. 그의 목표는 아이작과 호크를 찾아가는 일이었으니.

만약 내보냈다가 돌변하여 그들을 해친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다. 심지어 지난번에는 영혼을 스스로 바꿀 수 있는 악마 숭배자가 있었지 않은가.

저기 있는 스켈레톤도 비슷한 경우일 수도 있다. 신뢰를 얻은 후 본모습을 드러내는 케이스.

게다가 자신은 이곳에 볼 일이 있다. 귀빈을 찾아서 데려오라는, 루미너스가 친히 내려준 신탁.

그것을 이루기 전까지는 지하 사원에서 나갈 생각이 없다.

"아니."

이에 케이트는 단호한 목소리로 답하며 메이스를 쥐었다. 동시에 황금의 빛무리가 그녀를 감싸기 시작했다.

신성력을 이용해 신체를 강화시키는 주문. 본래라면 기도를 외워야 하나 그녀에게는 필요 없다.

[그럴 줄 알았다.]

부웅­

클라크도 예상된 결과에 코웃음치며 어깨에 짊어진 도끼를 천천히 내려 두 손으로 쥐었다.

워낙 육중한 크기라 단순한 행동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자랑했다.

두 사람이 금방이라도 싸울 기세를 풍기면서, 조사단은 서둘러 대피했다.

"격렬하게 싸우지 마세요! 제발! 현장만 남겨주세요!"

"아직 연구할 게 산더미란 말입니다!"

"내 책! 내 책이 저기 있······!"

"닥치고 빨리 와!"

아무래도 고고학자들은 지하 사원을 연구할 기회를 눈 앞에서 놓쳐버리는 게 더 아쉬웠던 모양이다.

특히 그중 한 명은 기껏 모았던 책들, 그러니까 클라크에게 전달했던 제논 일대기까지 잃어버리게 생겼다.

그렇게 두 사람을 제외한 인원들이 모두 밖으로 대피했을 때, 케이트가 진중한 어조로 클라크에게 말했다.

"증명해라."

[뭐를?]

"네가 사악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그렇지 않으면······"

파앙!

말 끝을 흐리던 케이트가 부지불식간 쏜살같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속도.

"네 머리를 박살내겠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케이트는 이미 클라크의 앞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두 손으로 굳게 쥔 메이스는 턱을 부수기 위해 밑에서 위로 올려치고 있다.

이윽고 메이스의 끝부분이 클라크의 턱에 닿기 직전.

부웅!

클라크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섬으로서 가뿐하게 회피했다. 막지도 않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만 피한 것이다.

[하여튼. 정말이지······]

케이트의 선공을 여유로이 피한 클라크는 혀를 끌끌 차며 중얼거렸다. 그러는 사이 케이트는 당황하지 않고 연격을 준비하고 있다.

[광신도는 이래서 곤란하다니까.]

퉷­

클라크는 입에 문 시가를 바닥에 뱉었다. 시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동안 그가 두 손으로 쥔 도끼가 서서히 위로 올라간다.

뒤이어 시가가 딱딱한 땅바닥에 부딪혀 담뱃재를 튕길 때쯤, 케이트도 마찬가지로 메이스를 위로 들어올렸다.

메이스에는 황금빛의 기운이 불꽃처럼 휘감겨 있다. 본래 그녀에게 붙은 칭호는 푸른 불꽃이라는 뜻에서의 '청염'.

허나 나날이 증가하는 신성력으로 인해 불꽃이 서서히 황금색으로 바뀐 것이다. 당연히 그 위력도 전보다 배는 증가했을 터.

반면 클라크의 낡고 이가 다 빠진 도끼에는 그 어떤 흔적조차 없었다. 전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한 도끼로 보일 뿐.

겉보기에는 케이트가 좀 더 유리할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미숙하구나.]

클라크에게는 자기 힘조차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하는 풋내기로만 보였다.

콰앙!!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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