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1화 〉 안전불감증(4)
* * *
나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큰 위협을 받은 적이 없다. 이건 전생과 현생 모두 포함하고 있다.
또한 전생에 뿌리 깊히 박혀있는 관념 때문인지 안전불감증도 갖고 있다. 한국인의 종특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정체를 밝히고 나서도 크게 바뀌지 않은 일상 덕분에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일도 똑같은 하루가 흘러가겠지. 이틀 후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시선들도 슬슬 익숙해져 가는데 질문을 받아볼까.
물론 내 인기는 절감하고 있다. 그 인기에 포함된 감정은 선망과 존경, 존중 등등 긍정적인 감정이다.
아주 가끔, 정말로 가끔 가다 질시를 비롯한 부정적인 감정도 있었으나 그렇다 해서 나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살의'는 다르다. 그건 긍정적인 감정도 아니고 부정적인 감정도 아니다. 감정이 아니라 '계산'에 의해서 충분히 발산할 수 있는 기운.
현재 악마 숭배자가 그런 살의를 품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제논 일대기로 인해 잘 숨어지내다가 무자비하게 토벌당하고 있었으니.
심지어 머리 중 하나였던 바크 추기경마저 케이트에게 당해버렸으니 암살 대상 0순위일 게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도 나는 안일하게 평소처럼 일상을 보냈다. 호위들을 믿는 것도 있지만 설마하는 마음이 더 컸다고 봐야겠지.
아델리아와 케이트뿐만 아니라 아카데미의 경비병도 나를 주시하고, 더 나아가 가르츠를 포함한 리퍼도 멀리서 지켜주고 있다.
이런데도 안전불감증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안일했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이 빠른 시일 내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은, 생각치도 못 했다.
피잉!
바람을 세차게 가르는 소리가 귓가를 강타한다. 심장마비로 쓰러진 사람에게 신경이 팔린 나머지 뒤늦게 인지했다.
설마 화살인 것일까. 하지만 반응을 할 시간도 없이 결과가 나타났다.
퍽!!
"끄악!!"
세차게 날아가던 암기가 박히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는 소리. 그 소리들이 내 귀에 파고들었다.
나는 물론, 내 곁에 있던 아델리아가 낸 소리가 아니다. 바닥에 쓰러진 환자의 상태를 살피던 케이트도 아니다.
정확히 우리의 뒷쪽, 그것도 그것도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난 소음이다.
'설마······.'
이에 다급히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머릿속이 순식간에 복잡해진다. 나를 노린 암기가 다른 사람을 해쳤을까봐.
허나 그것이 기우였다는 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동시에 암기가 나를 노린 게 아니라는 것 또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크으으윽······!"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들렸으니. 여기에 허공에 박혀있는 화살까지.
화살이 박혀있는 곳에는 붉은 피가 뚝 뚝 흘러 바닥을 적시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세히 살펴보니 공간이 굴절된 듯한 느낌이 든다. 공간 그 자체에 완전히 동화되어 굴절 자체가 없는 다크 엘프와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상위 마법 중 하나이자, 잠입 및 암살에 특화된 투명화. 습득 자체는 쉬워도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하는지가 관건이다.
그런 마법을 사용한 채 우리 뒤를 아무런 기척도 없이 밟았다.
"아이작!"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나와 달리 아델리아가 먼저 손을 쓰기 시작했다. 비록 무기는 없으나 그녀는 니콜과 함께 무학과 조교를 맡았던 인재.
하물며 아버지로부터 엄격한 훈련까지 받았으니, 기습에 실패한 암살자를 제압하는 건 일도 아니다.
설령 투명화로 인해 제대로 포착하지는 못 해도, 그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화살을 맞으면서 습격자의 투명화 또한 서서히 풀렸으니.
깨끗한 물에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린 것처럼, 습격자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퍼억!
그사이 아델리아가 시원하게 다리부터 걷어찼다. 암살자는 화살에 적중당한 후유증이 심한지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못 했다.
이윽고 균형을 잃은 습격자가 바닥에 나뒹굴고, 아델리아가 그의 뒤를 재빠르게 점령하여 목을 강하게 짓눌렀다.
손이 아니라 배운대로 무릎으로 강하게 눌렀으니 습격자는 바둥거리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
"아이작 님! 괜찮으십니까?!"
아델리아가 습격자를 막 제압했을 때, 환자를 살피던 케이트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다급함이 서린 표정만 본다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다. 혹여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나 싶어서.
다행히 그녀가 우려하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만, 그래도 심각한 건 똑같다.
나는 이쪽으로 달려오는 케이트를 보다가 어안이 벙벙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 저는 괜찮아요. 그런데······"
"모두 자리에서 떨어지세요!! 빨리!!"
내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아델리아가 크게 외쳤다. 보아하니 주위에 몰린 사람들에게 소리친 것 같다.
안 그래도 심장마비로 쓰러진 남자 때문에 사람들이 몰린 상황이다. 더군다나 습격자가 한 명이라 단정지을 수 없다.
그러니 어떻게든 사람들을 멀리 떨어뜨리는 게 우선이다. 사람들이 뭉치게 되면 숨어들어올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니.
"크으윽······! 이 새끼가······!"
한편 아델리아에게 제압당했던 습격자의 투명화가 모두 풀려 모습이 전부 드러났다. 나는 사납게 치켜뜬 습격자를 살펴봤다.
악마 숭배자로 추정되는 남자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평범한 진갈색 머리카락에다가 푸른색 눈동자, 그리고 거뭇거뭇한 수염 자국까지.
몸매 또한 우락부락하지 않고 날렵하다. 전반적으로 암살자에 어울리는 체형. 하지만 내가 가장 신경 쓴 건 다름아닌 종족이다.
'인간이라고?'
남자는 인간이었다. 엘프도 마족도 아닌 평범한 인간.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투명화 마법처럼 상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국가에게 대접을 해준다.
제아무리 발전을 했더라도 인간의 마법은 마족이나 엘프에 비해서 한참 뒤떨어졌으니.
헌데 이 남자는 마법을 사용했다. 그것도 마법이 금지된 아카데미 내에서.
마법을 발동시키는 순간 아카데미에서 감지할텐데 어찌하여 들키지 않은 것일까. 아니, 애초에 아카데미로는 어떻게 출입한 거지?
무엇 하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만약 화살이 날아와 이 남자를 적중시키지 않았다면, 입으로 말하는 것조차 어려운 참사가 발생했을 터.
내 잘못이다.
내 안일함으로 인해 끔찍한 비극을 만들 뻔했다.
새장 안과 달리, 새장 밖의 세상은 너무나도 위험했다.
"······더러운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실타래가 엉킨 것처럼 혼란스러운 와중에 케이트의 말이 귀를 비집고 들어왔다. 듣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그런 싸늘함이 묻어나왔다.
이에 황급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케이트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습격자를 내려다보고 있다. 분노와 경멸, 그리고 혐오까지.
당장 나조차도 섬뜩함이 느껴지는 눈빛인데 그걸 정면으로 받는 습격자는 오죽할까.
그러나 놀랍게도 남자는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그 반대로 케이트와 눈을 똑바로 마주한 채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신이시여. 이곳에 빛의 가호를."
케이트는 그 남자와 눈빛을 마주하면서 짧게 기도했다. 그러자 그녀를 기준으로 황금의 빛무리가 퍼져나가며, 우리 주위를 둘러싸았다.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황금빛의 보호막.
그녀의 허락 없이 이 공간 안에 침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특히 악마 숭배자는 접근조차 못할 것이다.
치이이익
"크아아아악!!"
그때 놀라운 현상이 발생했다. 보호막 안에 있던 남자에게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이 아닌가.
흡사 기름이 칠해진 후라이팬 위에 고기를 굽는 것처럼, 남자가 크게 바둥거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걸 보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싶었을 때, 케이트가 싸늘한 음성으로 비웃듯이 말했다.
"역시 더러운 악마 숭배자답군요. 루미너스 님께서 내려준 축복을 영혼이 거부한다니. 구제불능의 쓰레기 같은 놈."
악마 숭배자는 악마로부터 영혼을 팔거나 그걸 대가로 타락한 자들. 당연히 신성력에 격렬한 거부 반응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케이트는 추기경, 그것도 악마 숭배자 같은 자들의 천적이다.
신성력으로 만든 '성화'를 통해 영혼마저 소멸시킬 수 있으며, 지금처럼 간단한 보호막조차도 악마 숭배자에게 큰 고통이 뒤따른다.
나는 고통으로 인해 몸을 바둥거리는 악마 숭배자를 보다가, 케이트에게 조심히 물었다.
"케이트 씨. 정말로 저 사람이······"
"예. 아이작 님의 목숨을 노린 악마 숭배자입니다."
"그러면 아까 전 쓰러진 사람은요?"
"인위적으로 심장을 마비시킨 흔적이 있더군요. 아마 이 벌레가 그런 짓을 저질렀겠죠."
"그럴수가······"
충격 때문에 말문이 막힌다. 나 하나 노리자고 사람 한 명을 죽을 위기에 몰아넣다니. 도대체 저 사람이 무슨 죄를 저질렀다고.
내가 충격을 받아 입을 뻐끔거리는 동안에도 악마 숭배자는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아까보다 연기가 덜 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살이 타는 냄새가 코를 비집고 들어온다.
"끄으으윽······!"
이윽고 익숙해진 건지 남자가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린다. 맹렬한 불꽃처럼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의 푸른색 눈동자.
그 눈동자에는 맹렬한 분노가 담겨있다. 저것은 나를 향한 분노인 것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향한 분노인 것일까.
하지만 이거 하나는 명백하다. 저 남자는 아카데미에 몰래 숨어들었고, 내 목숨을 노렸다는 것을.
내 목숨을 노리지 못 했더라도, 언젠가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인을 위험에 빠뜨릴 뻔했다는 것을.
그리고······ 이 모든 게 나의 안일함 때문이라는 것을.
덕분에 깨닫게 되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죠?"
"이 쓰레기는 알고서도 아카데미에 침범한 놈. 살려둬봤자 얻을 정보는 없을 겁니다. 그러니······"
"즉결 처단."
"예. 그렇죠. 하지만 겁도 없이 아이작 님을 노린 놈이니, 쉽게 죽이진 않을 겁니다. 반드시 살려서 교단으로 데려간 후,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겪게 만들 겁니다."
나는 케이트의 무시무시한 대답에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씨앗을 갈취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나, 지금은 누가 보아도 대심문관에 어울린다.
그건 비단 악마 숭배자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케이트를 쳐다봤다.
그와 다시 한 번 눈을 마주친 케이트는 뭐 어쩌라는 표정만 지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언제라도 밟아죽일 수 있는 벌레를 쳐다보는 눈빛.
이에 악마 숭배자는 이를 악 깨물더니, 결연한 얼굴로 외쳤다.
"만물의 아버지를 위하여!!"
그 말과 동시에 혀라도 깨물 생각이었는지 입을 크게 벌렸지만.
빠각!!
"크악!!"
케이트가 발로 그의 입을 후려치면서 무산으로 돌아갔다. 피묻은 흰색 옥수수가 입에서부터 후두둑 떨어진다.
발차기 한 방으로 모든 치아가 부러졌다. 나는 그 장면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전생에서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잔인한 장면은 보았어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건 처음이다. 당연히 거부감이 들 수밖에.
"아쉽게 됐네요. 쉽게 목숨을 끊지 못 해서. 뭐, 혀를 씹는다고 해도 제가 다시 살릴 거였지만."
"으으으······ 으으······"
"이제 어떻게 하죠?"
여태껏 악마 숭배자를 제압하고 있던 아델리아가 케이트에게 물었다.
그녀는 혹여 악마 숭배자가 딴짓을 할 수 없도록 전력으로 짓누르고 있다.
"경비병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죠. 심장마비로 쓰러진 환자도 안정이 되었으니 문제는 없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이작 님."
"네?"
나는 케이트의 부름에 움찔하며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악마 숭배자를 대할 때와 달리 화사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화살을 쏜 분에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어요. 그분이 아니었다면 정말 위험했을 수도 있었거든요."
"······네."
"다친 곳은 없죠?"
"네. 없습니다."
"다행이네요. 다친 곳이 없어서."
그래. 나는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한 눈 팔았다지만 아델리아가 곧바로 눈치챘을테니.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녀가 다쳤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목숨까지 잃겠지.
'너무······'
한심하다. 고작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다는데 안심하다니.
악마 숭배자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태풍의 눈에 속해있어서 안전하다고?
태풍의 눈에 있어도 주변이 풍비박산나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심지어 태풍의 눈이라고 안전하지 않다.
나는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악마 숭배자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을 기점으로, 나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 반대로, 나는 걸어다니는 위험 요소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방금 전 뭐라고 했지? 만물의 아버지?'
악마 숭배자에게도 뭔가 있는 건가.
******
한편 비슷한 시간. 산책로에 높게 뻗어있는 벛꽃 나무의 정상.
"이걸로 두 놈째인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이작을 지켜보던 남자, 가르츠는 가지고 있던 석궁을 장전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진 남자에게 한 눈이 팔려 위험했으나, 다행히 자신이 먼저 조치를 취한 덕분에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쓰러진 남자가 자폭테러를 하는 건가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는 미끼였으며 더러운 악마 숭배자가 뒤를 살금살금 접근하고 있던 것이다.
'조심 좀 하시지.'
아이작은 전혀 모르고 있겠지만, 지금까지 그를 노린 악마 숭배자들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다.
한 명은 지금 포박되어 끌려가는 악마 숭배자고, 또 다른 한 명은 아카데미 관계자다.
그는 아이작을 직접적으로 노리는 게 아니라, 차에 독을 타서 독살시킬 예정이었다. 그러니까 전에 있던 총장과의 대담 도중에 말이다.
'그때는 진짜 위험했는데.'
천만다행히도 이쪽에서 먼저 알아차려 먼저 차단시킬 수 있었다. 보고를 듣자하니 총장이 아이작을 맞이하러 떠났을 때, 그때 독을 투입했다고.
이후로 관계자, 아니 악마 숭배자는 개인 사정으로 급히 사직서를 낸 것으로 처리되었지만 굳이 말 안 해도 어떻게 되었는지 알 것이다.
'오늘 일까지 말하면 싸인본을 돌려받으려나?'
아직도 싸인본을 못 받은 가르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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