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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340화 (341/763)

〈 340화 〉 안전불감증(3)

* * *

좀비마냥 재생력이 미친듯이 높은 케이트이나 기본 체력만 따진다면 일반인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5분만 달려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헉헉거리고, 신성력으로 회복해도 금방 숨이 찬다. 여기서 신기한 점은 어떻게든 따라온다는 것.

유산소 운동이라 해서 쉬운 게 아니다. 어떻게 하냐에 따라 고강도로 바뀔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천천히 달리는 게 아니라 전력질주에서 80% 정도 되는 속도를 유지한다던가, 체내의 마나를 가속시키면서 간다던가 등등.

실력자들이 사흘밤낮 싸울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할 일도 없고, 적절한 체력 분배와 더불어 지구력이 말도 안 되게 높기 때문이다.

당장 나조차 새벽 내내 격렬한 운동을 해도 거뜬한데 무예를 단련하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신성력도 있으니 지구력 싸움에는 자신 있다.

지금도 체력 자체를 늘리기보다는 어떻게 분배하는지에 대한 역량을 키우고 있고 있다. 하드웨어만 키우기에는 슬슬 한계점이 찾아오고 있었으니.

신들이 신성력을 빵빵하게 지원하고 있어도 그걸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다르다. 그걸 잘 알고 있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이다.

"하아······ 하아······ 으윽······"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그탓인지 기초 체력이 전혀 없는 케이트가 빌빌거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을 배려할 필요가 없다고 완강하게 부탁했다.

기초 체력이 꽝인 대신에 재생력이 미쳐날뛰어서 그런지 어찌어찌 따라오고 있다.

하지만 영 불안하다 이러다가 갑자기 픽­ 하고 쓰러지는 건 아닐까 싶어서.

'성직자들은 기본적으로 인내심이 강하니까······'

정확히는 종교에 독실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인내심이 일반인보다 훨씬 강하다.

금욕과 더불어 신을 향한 굳건한 신앙을 가슴 속 깊히 품은 자들.

일반적인 기사들보다 교단의 성기사들의 대우가 훨씬 좋은 것도 인내심 때문이다. 신의 말씀이라면 고된 일어도 묵묵히 따른다.

또한 부상을 당해도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자힐까지 할 수 있으니 범용성부터 압도적이다.

케이트가 숨이 금방 넘어갈 듯해도 잘 따라오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원래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지만, 그녀는 완전히 정반대다.

체력이 저질스러워도 저런 정신이라면 금방 성장할 수 있겠지. 내가 직접 겪었는데 보증할 수 있다.

"하악······ 하악······"

그러나 신성력으로도 땀이 비오듯이 쏟아지는 건 막을 수 없는 모양이다. 머리카락은 물론 아델리아에게서 빌린 운동복마저 땀에 푹 절여졌으니.

건강한 정신이 있다면 건강한 몸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허나 자칫했다간 몸이 망가질 수도 있다.

체력이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지 않는 이상 정신력은 큰 의미가 없다. 무리하게 강행했다만 정신이고 나발이고 몸이 먼저 무너진다.

하물며 지금은 겨울도 아니고 뜨거운 햇볕이 내려쬐는 여름. 시간은 많으니 여기서 잠깐 휴식을 취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이에 나란히 달리고 있던 아델리아에게 눈짓하니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여기서 휴식할게요."

"하아······ 네. 알겠습니다."

꿀맛 같은 휴식 선언에 케이트가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아무리 정신력이 강해도 그녀에게는 고강도 단련이다.

쇠는 두드리면 두드릴 수록 강해지나 사람의 정신력은 그렇지 않다. 조금이라도 금이 간다면 후유증이 심하다.

이건 재생력이 남들보다 훨씬 강한 케이트에게도 통용되는 소리다. 재생력이 월등해도 고통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내 호위까지 해야되니······'

나는 케이트가 호흡을 갈무리하는 동안 주변을 살펴봤다. 아예 대놓고 운동을 해서 그럴까, 우리를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쉽사리 접근하지 못 한다는 걸까. 멀리서 숙덕거리거나 연예인을 보는 듯한 눈으로 볼 뿐, 내 근처에 다가올 생각조차 안 하고 있다.

아마 호위 때문이 아니라 주변을 경계 중인 경비병들 때문이겠지. 내가 외출을 한다면 아카데미 측에서도 자연스레 소식을 접하게 돼 있다.

그러니 내가 먼저 접근하지 않는 이상 저들이 미쳤다고 나에게 올 일은 없다.

'부담스러워도 이것도 익숙해지겠지.'

사람은 적응의 동물. 아직은 힘들어도 1~2주만 더 흐르면 저런 시선 또한 익숙해질 것이다.

"후아······ 이제야 살 것 같네요."

주위를 둘러보는 도중에 케이트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그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니 꽤 적나라한 장면에 눈에 들어왔다.

케이트는 조금이라도 땀을 식히기 위해 상의를 반쯤 탈의한 상태다. 안에 통풍이 잘 되는 티셔츠를 입었으나 그것마저 땀에 달라붙어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분명 야한 장면은 아닌데 몸매가 몸매다보니 시선이 절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이걸 죄악이 많은 몸이라고 표현해야 되나.

대신 케이트가 자체적으로 성스러운 기운을 풍기는 탓에 욕정은 거의 들지 않았다. 그냥 몸매가 좋구나~ 라는 식으로 넘어갈 수 있다.

"많이 힘들죠?"

"몸이 힘들어도 정신은 말끔합니다."

"케이트 님의 정신과 기력은 모두 우수해요. 너무 우수한 나머지 신체마저 커버할 수 있던 거죠. 이런 케이스는 저도 처음이라 잘 모르지만 지금처럼 하시면 될 거예요."

아델리아가 미리 준비해 두었던 물병을 케이트에게 건네면서 충고했다. 그녀는 더위 때문에 땀을 살짝 흘렸지, 전혀 힘들어 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에 케이트도 고개를 끄덕이며 물을 조심스레 마셨다. 지금 그녀에게는 생명수 같은 물일 것이리라.

아델리아의 말마따나 케이트는 특이 케이스다. 보통 신체를 먼저 단련하고 정신력을 키우는데 그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었으니.

"힘들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곧바로 휴식할테니까."

"아닙니다. 저 때문에 두 분이 피해를 입으시면······"

"저를 호위해야 하는 사람이 체력 때문에 빌빌거리면 안 되죠. 알겠죠?"

"······알겠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해야겠군요."

동기도 꽉꽉 채워줬다. 앞으로 케이트도 나와 아델리아처럼 주말마다 열심히 운동을 하겠지.

운동은 같이 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동기 부여가 되는 법이다. 당장 아델리아 없이 나 혼자 했다면 기숙사에서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후로 휴식 시간이 모두 흘러가고, 마지막으로 케이트가 물을 한 모금 더 마셨을 쯤이었다.

나는 빙긋 웃으며 케이트에게 상냥하게 말했다.

"그럼 다시 뛸까요?"

"······예."

표정은 그대로였으나 반박자 느리게 답한 걸 보면 힘들긴 힘든 모양이다. 이런 류의 고통은 익숙해지기 힘든 것이니.

나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그녀를 보며 빙긋 웃어주고는 두 다리를 움직였다.

뒤이어 아델리아가 내 곁에 서서 나란히 달리기 시작하고, 케이트도 땀을 뻘뻘 흘리며 뒤따라왔다.

'솔직히 큰 위험은 없어보이는데?'

달리면서 주위를 힐끔거린다. 잠깐 쉬는 타이밍은 몰라도 우리가 달리는 동안은 사람들 간의 거리가 전보다 가까워진다.

아카데미의 규모는 크지만, 그 규모만큼 나처럼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때문에 중간중간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사람이 보인다면 가볍게 피하는 편이다.

더군다나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번화가는 루틴에 포함돼 있지 않는다. 다시 말해 악마 숭배자가 습격을 가할 확률이 매우 낮다.

'사람 많은 곳만 조심하면 되긴 한데... 금방 갔다 오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아주 잠깐이다. 때마침 원고지도 슬슬 구매해야 되니 상점에 방문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아델리아에게 부탁하면 되지만 굳이 그런 수고까지 주고 싶진 않았다.

'일단 30분 정도 더 뛰고 나서...'

턱­

"억."

너무 딴 생각을 하고 갔던 탓일까. 아니면 중간에 돌부리가 있는 걸 미처 발견하지 못 했던 걸까.

발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들더니 순식간에 균형이 앞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라면 땅과 키스를 하게 될 터.

꽉!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균형이 앞으로 쏠리자마자 누군가 내 옷을 붙잡아 넘어지지 않도록 막았으니까.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손이 내 옷을 붙잡았다. 예상컨데, 아델리아와 케이트가 동시에 잡아준 거겠지.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깜짝 놀랐네."

역시 예상대로다. 아델리아는 그렇다 치고 빌빌거리던 케이트까지 반응하다니 살짝 놀라웠다.

이후로 그들의 도움으로 균형을 되찾은 뒤에 머쓱하게 웃었다. 이건 내가 딴 생각을 한 탓에 발생한 사소한 해프닝이다.

"미안. 잠깐 딴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무슨 생각?"

"그런 게 있어."

그 생각을 꺼냈다가 아델리아에게 혼날 수도 있었기에 대충 얼버무렸다.

아델리아는 내 대답에 의심스러운 표정은 지은 것도 잠시, 허리에 두 손을 얹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쯤되서 조금만 휴식하자. 때마침 휴식 시간도 되었으니까. 케이트 님도 동의하시죠?"

"적극 찬성하겠습니다."

"보아하니 케이트 님이 더 쉬고 싶어하시는 것 같은데요?"

"부끄럽지만 아직 제가 많이 부족한 탓에 그런 욕망이 들었습니다."

솔직하게 인정하는 케이트에 나와 아델리아가 약하게 웃음을 흘렸다.

때마침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와 우리의 열기를 조금이나마 식혀줬다.

나는 케이트가 아델리아로부터 물병을 받는 동안 재차 주위를 둘러봤다. 이곳은 사람들이 별로 없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루트다.

건물은 거의 없으며 커다란 나무들이 양옆에 쭉 뻗어있는 산책로. 벛꽃 나무라 봄이 되면 아름다운 절경으로 눈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곳이다.

이에 잠깐 그녀들로부터 거리를 벌리고는 나무를 향해 서서히 걸어갔다. 벛꽃하니 문득 체리가 떠오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벛꽃나무들이 체리네 가문에서 갖고 온 거랬나?'

아마 그럴 것이다. 이렇게 큰 벛꽃 나무는 체리네 가문, 로즈베리 가에서만 자란다고 했으니.

나는 다른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았다. 중간중간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나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란다.

그런 그들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니 어쩔 줄 몰라하더라. 꽤 재미있는 상황이라 조만간 즐길 것 같다.

그렇게 평화로운 휴식 시간이 흘러가고, 또다시 뜀걸음 하기 위해 준비했을 때...

"윽······!!"

"응?"

느닷없이 앞쪽에서부터 웬 신음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다시 언급하지만 이곳은 일종의 산책로.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사람들밖에 없어서 번화가보다 사람이 훨씬 적은 곳이다. 자연히 작은 소리도 상대적으로 크게 들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흔히 돌발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털썩!

웬 남자 한 명이 심장 부위를 움켜쥔 채 앞으로 쓰러졌다. 비틀거리는 증상조차 없었다. 그냥 힘없이 무너져버렸다.

"꺄아악!"

"사, 사람이······!"

"성직자! 성직자 없어요?!"

난데없이 사람이 쓰러지자 가지각색의 반응들이 터져나왔다. 다들 당황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

나는 남자가 쓰러진 광경을 확인하자마자 즉각 케이트를 쳐다봤다. 그녀도 응급 상황이 발생하자마자 진중한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남자에게 다가갔다.

보아하니 심장마비로 추측되지만, 지금은 CPR보다 확실한 성직자가 있으니 무리없이 회복시킬 수 있을 터. 하물며 케이트는 추기경이다.

대신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과연 이곳은 심장마비를 어떻게 대처할까. 이것도 신성력으로 회복시키는 것일까.

이에 한 발자국 앞으로 걸음을 떼었을 때 쯤.

피이이­

뭔가가 바람을 세차게 가르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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