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5화 〉 아이작의 상상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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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아델리아 및 밤시중 아델리아 일러스트 올렸습니다! 확인해주세요!
도망쳐(1) 부분에 아이작이 아델리아에게 제논이라는 전개도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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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은 두 번째까지 우연이고, 세 번부터는 필연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건 말이라도 있지 네 번, 다섯 번부터는 그냥 운명이다.
전생에서 접하게 된 다양한 문화들은 나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을 가지게 해주었고, 그 상상력을 통해 소설을 쓴다.
문제는 그것이 판타지 세상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이며, 나는 현재 판타지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
신간을 발매할 때마다 이왜진이 틈만 나면 터지는 이유도 바로 이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이 세상 기준의 현실 고증까지 철저히 지키고 있기에 그 정도가 대폭 상승했다.
무협을 집필했다면 그저 신기해할 뿐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테지. 애당초 내가 무협을 잘 몰라서 못 쓰기도 하고.
만약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무협을 낸다? 아마 신대륙이라니, 바다 건너에 또다른 대륙이 있다니 하지 않을까.
이렇다 보니 내가 나 스스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미 루미너스에게 보증을 받았다지만 매번 이러니 신이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물론 신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애매할지언정 신탁을 통해 진실만을 알려준다.
이건 신도와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 신과 직접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그 신도는 거의 추기경급에 해당하는 거물이다.
그런 거물이 자신의 거짓말로 인해 타락에 빠진다면 본인의 신성에도 큰 해를 끼칠 수도 있으니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무엇보다 신들은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거짓말을 해야하는 상황과 하지 말아야 하는 상황을 보다 더 정확하게 알고 있다.
[너 회귀자 아니야. 다른 차원에서 건너 온 영혼이 맞다니까? 계속 의심하고 그러네.]
'모라 님이라면 지금 이 상황 속에서 의심을 안 할 수가 있어요?'
[문화 차이라니까. 네가 지구에서 발발한 전쟁에 대해 썼다면 모를까, 네 기준으로 판타지 소설을 써서 그렇지. 아까도 말했지만 이게 거짓이라면 너에게 신격을 줄게.]
전혀 생각치도 못한 이왜진이 터지고 난 후. 나는 시간을 짜내어 모라의 신전에 방문했다.
모라는 나의 기습적인 방문에 기뻐했으나 내가 이것저것 따지자 툴툴거리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본인의 신격까지 걸고, 제논 일대기에 발생한 사건사고들은 현실 속에 나타난 건 전부 우연이다. 나는 결코 회귀자나 예언자가 아니다.
무엇보다 내 영혼이 차원까지 넘으며 이곳에 온 이유는 악마 숭배자의 실수이지, 신들의 개입이 있던 건 절대 아니다.
자그마치 신격까지 건 마당에 단호히 선을 그으니 나로서는 당장 할 말이 없었다. 그냥 작금에 연속적으로 터지는 일들이 답답했을 뿐.
[받아들이기도,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어.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지구는 우리의 세상을 기준으로 문명의 발전도 몇 세기는 앞서있는 상태야. 특히 과학과 문화의 발전이 까마득히 높은 수준이지. 불을 발견하지 못한 원시인에게 라이터를 던져봐. 얼마나 큰 문화적 충격이겠어?]
'너무 비약적인 설명이지 않나요?'
[좀 과장이긴 해도 그정도라는 거지. 특히 너는 제논 일대기에 현실 고증까지 넣었잖아? 이른바 현실성이 높다는 게 문제지. 세계수 뿌리의 오염이 기폭제가 된 셈이야. 그리고 원래 현실이 더 소설 같은 법이잖아?]
'그 말을 들으니 할 말이 없네요.'
모라의 말마따나 현실이 더 영화고, 소설이며, 사건사고 그 자체다. 이건 문화 매체가 쏟아져 나오는 지구에서도 통용되는 말.
그런데 내가 쓰는 글마다 온갖 괴사건들이 터진다는 게 문제지.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왜진이 터지는 건 사실상 반쯤 포기했으나 어딘가 하소연하고 싶어서 모라에게 토로하는 거나 다름없다.
내 사정을 제일 잘 이해해주는 존재들이 바로 신들이었으니까. 따지고 보면 현재 상황을 제일 골치아파 하지 않을까.
[아닌데? 엄청 좋은데?]
'저기요?'
[우리 입장에서 전화위복을 넘어 네 존재는 행운 그 자체야. 지구의 신들에게 욕은 좀 먹었지만 네 존재 하나만으로 우리 세상의 평화는 물론, 발전까지 앞당겼으니까. 너희 세상 언어로 가성비? 효율? 아무튼 그런 게 좋다고 할 수 있지!]
'··· ···'
늘 생각하는 거지만 모라는 루미너스와 다르게 언행이 다소 가벼운 편이다. 그 가벼운 언행 하나하나에 위엄이 묻어나와서 더 기분이 묘해진다.
가끔 가다가 철없는 소녀 같으면서도 아이들에게 한없이 자상한 누나 같달까. 점잖은 루미너스와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효율은 그렇다 쳐도 가성비라는 말은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거예요?'
[네가 이곳으로 넘어오면서 지구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됐거든. 거기서 얻은 단어야.]
'가성비라···'
자화자찬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 자체가 가성비 원탑이긴 하다.
일단 마족이나 엘프도 아닌 평범한 인간에다가 권력욕이 거의 없으니까. 게다가 신에게 위협이 될만한 사상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글 하나만으로 마족을 구원할 뿐더러 세상의 문화를 발전시키니 이만한 가성비를 찾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권력욕도 없고, 우리에게 위협할 만한 사상을 가지지 않은데다가 명예욕심도 없지. 그야말로 넝굴째 굴러 온 호박! 우리가 너를 예뻐하는 이유를 알겠어?]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나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듣고 곰곰히 되새겼다. 넝굴째 굴러 온 호박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긴 해도 정리가 필요했다.
'이 세상을 위협하던 악마 숭배자가 소환을 잘못하여 지구의 영혼이 죽었고, 그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그 영혼이 이곳으로 넘어 온 거죠?'
[그렇지?]
'그런데 그 영혼이 아까 말했듯이 권력, 사상, 명예에 아무런 관심이 없고 오직 순수한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 그런데 그 글이 이 세상에 평화와 발전을 앞당겼다?'
[그것도 그렇지?]
'죄송하지만 이 세상에 차원이 몇 개나 있어요? 정확히는 지구 같이 인류가 살아가는 행성이요.'
[인류가 셀 수 있는 단위를 넘어섰는데?]
'이러니까 제가 의심을 할 수밖에 없죠!'
하나 하나 세세히 따지고 보면 말이 안 되는 정도가 아니다. 거의 불가능의 영역이다.
확률이 800만분의 1이라는 로또조차 저 확률을 따지자면 새 발의 피일 터.
얼마나 운이 더럽게 없으면 위의 확률을 모조리 뚫고 이곳으로 올 수 있는 것일까.
차라리 회귀를 했으나 기억을 모조리 잃는 제약이 걸려 글을 썼다는 게 확률이 훨씬 높겠다.
[너무 흥분하지 마렴, 아이야. 악마 숭배자가 바보 같은 짓을 해서 그렇지, 네가 이곳으로 건너온 건 모두 우연이야. 그래도 믿지 못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우리는 너에게 한치의 거짓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만 알아주렴.]
'···제가 너무 흥분했네요. 죄송합니다.'
이왜진은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지지가 않는 상황이다. 이왜진이 터질 때마다 나를 향한 지인들의 시선이 점점 이상하게 바뀌니까.
의외로 단순한 성격의 마리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도 세실리가 문제다. 이번에 터진 상황으로 인해 나를 향한 시선이 애정 수준을 넘어섰다.
케이트 바로 아랫 단계라고 해야 될까. 특유의 요망한 성격은 유지되어도 여기서 숭배에 가까운 사랑이 합쳐지니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마족과 깊은 연관이 돼 있는 사건이다. 비록 폐기되었다지만 헬리움을 단번에 멸망시킬 수 있는, 악하다 못해 흉악한 계획이었으니.
당장 헬리움에서도 이 사실을 공표하여 난리가 난 상황이다. 우선 실종자를 수색하는데에 모든 국민이 합심하는 건 기본이다.
이밖에도 제논을 위한 선물을 해야 된다니, 그분을 위한 동상을 세워야 된다니 등등. 당장 밖으로 나가도 낯뜨거운 소리가 들리고 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즐기는 게 어때?]
'즐기고 싶어도 부담감 때문에 힘들어요.'
평범하게 유명하다면 모를까, 거의 성서 수준으로 유명해지다보니 그 부담감이 무시무시하다.
여기서 살짝 삐긋하기만 해도 되돌아오는 반작용은 무시무시할테니.
이 모든 것이 우연이라는 게 밝혀진다면 어떤 시선이 돌아올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너에게는 '환생자'라는 어마어마한 메리트가 존재하니까. 어쨌거나 우리가 너를 이곳으로 부른 건 맞잖아? 그걸 잘 이용하면 전부 납득할거야.]
'그럼 거짓말은 필수이지 않을까요? 제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우리가 너를 이곳으로 데려온 건 진실이지. 그러니까 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이대로 글만 써도 돼. 알았지?]
모라의 격려에 마음의 짐이 약간이나마 덜어지는 느낌이다. 자그마치 신들이 내 뒤를 든든하게 봐주고 있으니 안심이 된다.
이 모든 게 우연이라는 점은 여전히 믿기지 않지만, 모라가 무려 본인의 신격을 걸었으니 이제는 믿어야 할 것 같다.
'알겠어요. 제 하소연을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괜찮아. 사랑스러운 아이의 투정을 들어주는 것도 우리의 의무니까. 혹시 필요한 거 더 없니? 신성력이라도 줄까?]
'일단 신성력을 받을거고, 하나만 여쭈어 봐도 될까요?'
[뭐든지 물어보렴.]
현재 헬리움에서 21권을 집필하는 중이다. 그런데 갑작스레 이왜진이 날벼락처럼 터지는 바람에 곧장 중단하고 모라의 신전으로 찾아온 것이다.
하소연을 비롯한 투정을 부리기 위한 것도 있었으나 지난번 스포일러 사태처럼 미래를 알기 위함이다.
지금처럼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는 것보다 먹구름이 낀 채로 벼락을 맞는 게 훨씬 나을테니. 일종의 대비라 할 수 있다.
어차피 21권의 내용을 바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사실 제논 일대기 전개 자체가 짜임새 있게 갖춘 까닭에 수정이 힘들다.
'지금 작성하는 21권에 마족과 큰 연관이 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 내면의 악이 튀어나와 대신 싸운다는 설정인데···'
[응.]
'혹시 이것과 비슷한 일이 실제로 있었나 해서요.'
20권에 나온 판데움 전복 계획은 300년 전이지만 현실에서도 실행할 뻔했던 사건이다. 세계수 뿌리 오염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몇 연타인지 셀 수도 없다.
스포일러 사태, 그러니까 타락한 추기경 때도 루미너스에게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실제로 세이비어 내에 제논 일대기처럼 악마와 손을 잡은 추기경이 있냐고. 악마 숭배자와 손을 잡은 성직자가 존재하냐고.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Yes. 그때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모른다.
심지어 이 사실을 케이트에게 속담을 인용하여 알려주니 혼자서 처리했다. 듣자하니 샹들리에가 추기경 머리 위에 떨어지는, 이른바 '천벌' 형태로 해결됐다고.
독자 입장에서는 난데없이 현실에서 스포일러를 당한 셈이라 내가 직접 스포일러 사태라 이름을 지어줬다.
그러니 21권에 나올 진의 악마화도 비슷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 하에 질문한 것이다.
[아. 그거? 비슷한 일이 있긴 있지. 정확히는 목숨이 위험할 때 악마가 된다는 그런 식으로.]
'악마가 되어도 이성을 유지한 마족은 없어요? 들어보니 강경파 마족은 전부 악마화가 진행된 마족이라는데.'
[복수심과 분노에 미쳐 날뛰지만 생각을 하는 마족도 포함되는 거니? 만약 그런 거라면 포함된다고 대답할게.]
'음···'
나는 모라의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했다. 조금 애매한 구석이 많지만 강경파 마족은 헬리움과 대척하는 집단이다.
오래 전, 세이비어가 저지른 마족 대학살 속에서 간신히 벗어나 복수의 칼날을 품고 있는 존재들.
현재는 악마 숭배자와 결탁하고 있다는 정황도 몇몇 존재하여 리퍼가 끝까지 추적하고 있는 세력이다.
특히 숫자는 매우 적으나 악마의 힘을 받아들인 탓에 한 명 한 명의 무력이 매우 강하다고.
현재는 몸을 숨기고 있는 탓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 심지어 헬리움에서조차 단서를 찾기 힘들어 하는 중이라 애를 먹는 중이다.
'그러면 이런 경우는요? 내면의 악을 절제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굴복시켜 자기의 힘으로 만드는 식으로요.'
[그런 경우는 없지. 여태까지 내면의 악을 '절제'할 뿐, '제어'하려는 마족이 없는 걸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그러면 마음 편히 적어도 되겠구나. 진은 악마화가 되어도 릴리의 존재가 더욱 컸기에 간신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악마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반영하는 듯, 악마의 상징인 '뿔'을 스스로 부러뜨리는 연출까지 더해서.
현실에서도 마족에게 뿔이 자라는 이유가 검은 마나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문헌상에서도 악마는 대부분 뿔을 가졌으며 이것이 상징인 된 이유다.
'그렇다면 괜찮겠네요. 현실에서 그런 사람이 없으니까요. 강경파 마족도 악마 취급을 하고 있으니.'
[음··· 없긴 하지. 당장은.]
'···당장은?'
뭔가 이상한데. 나는 모라의 애매모호한 뒷말을 듣자마자 한 쪽 눈을 치켜떴다.
당장은 터지지 않아도 앞으로 터질 수도 있다는 말이지 않은가.
하지만 모라는 설명해 줄 생각이 없는 건지 화제를 돌려버렸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니? 머지않은 미래에 큰 위기가 닥쳐올텐데.]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화제를 돌리는데 그 주제가 심상치 않았다. 머지않은 미래에 큰 위기가 닥쳐온다니, 나로서는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다.
여태까지 위기라고 해봤자 사소한 것들이다. 허나 모라가 말하니 그 무게감이 남다르다.
이에 긴장하며 모라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그녀가 장난기가 다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는 정말 좋은 방법이 하나 있는데··· 네가 거절할까봐 무섭네.]
'···또 이상한 거죠?'
[이래서 눈치 빠른 애들이 싫다니까. 아무튼 벗어나고 싶으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사흘 후, 내 신전으로 찾아와. 알겠지?]
무언가 꺼림칙하지만 신의 말씀이니까 들어야겠지. 마음 같아서는 루미너스에게 무슨 미래인지 엿듣고 싶다.
'모라님?'
[응?]
'전 모라님을 믿습니다.'
[물론. 나만 믿어.]
더욱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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