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화 〉 새로운 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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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라면 내가 지인들에게 체리를 소개시켜줄 계획이었지만, 리나와 함께 잠깐 강의실에 갔다 온 사이 이야기가 모두 끝난 모양이다.
다만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몰라도 각각 표정들이 달랐다. 마리는 조금 꺼림칙하다는 표정을, 세실리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체리는 어두침침하게 웃는 표정을.
그걸 보며 의아한 것도 잠시, 아직 리나에게 말을 해놓은 상태가 아니었기에 남은 이야기를 마저 꺼냈다. 리나는 내가 체리를 소개시켜주자 놀란 것도 잠시, 곰곰히 생각하다가 나에게 질문했다.
"그럼 로즈베리 영애의 책은 언제 발간되는 거야?"
"곧 있으면 발간될 걸? 지금쯤이면 계약까지 마쳤을테니까."
체리의 처녀작, 붉은 노을을 다시 한 번의 계약은 아버지가 대신 맡았다. 본래라면 체리가 직접 찾아가는 게 훨씬 낫겠지만 아무래도 사정이 사정이다보니 어쩔 수 없다.
출판사 사장도 제논 일대기의 첫 계약 건으로 아버지와 일면식이 있기 때문에 문제 없이 해결할 것이다. 사장이 훗날 계약 건으로 뭐라고 할 사람도 아니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만약 사장이 이상한 수를 쓴다면 내가 도로 압박하면 되니까. 제논 일대기가 미친듯이 떡상한 이상 갑의 위치는 언제나 내 차지다.
그러므로 체리의 작품은 내 이름 하에 철저히 보호될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싹이 쑥쑥 자라나 꽃이 만개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뿐.
"기대되네. 네가 재미있다고 했으니 작품의 질은 보장돼 있을테니까."
"무슨 이야기인지 알려줄 수 있어?"
흥미가 돋아난 건지 세실리가 체리의 작품에 대해서 질문했다. 참고로 리나는 체리의 곁에 앉았고, 나는 마리와 세실리 사이에 앉아있다.
나는 그녀의 질문을 듣고 어떻게 설명할지 잠시 고민했다가 입을 열었다. 회귀물이라는 설정은 말하지 않을 생각이다.
"일단 장르가 로맨스라 너희들이 정말 좋아할 거야. 대신 스토리가 어떤지는 직접 보는 편이 좋을 걸? 나도 처음에 보고 나서 감탄했으니까."
"제논 일대기의 작가님이 감탄한 책이라... 기대감이 더욱 상승하는 걸? 로즈베리 영애?"
"네, 네?!"
리나의 부름에 우물쭈물하던 체리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역시 황녀의 권위가 있는 건지 제아무리 체리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던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나와 생활하면서 감정이 좀 더 풍부해진 걸지도 모르지. 나와 만나기 전의 체리는 말 그대로 걸어다니는 시체처럼 생기가 하나도 없었으니.
"조만간 로즈베리 가문에 한 번 방문할게요. 로즈베리 가문은 철학으로 유명하니 한 번 대화를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아..."
리나가 가문에 대해 언급하자마자 체리의 분홍빛 눈동자가 심연처럼 깊게 가라앉았다. 나는 리나가 언급한 가문을 듣자마자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체리에게 있어서 '가문'은 언급조차 해서는 안 될 지뢰 중에 지뢰다. 하지만 리나는 그걸 전혀 모르고 있어서 저런 말을 한 듯했다.
리나도 체리의 눈빛이 급격히 어두워지자 뭔가 잘못된 점을 눈치챘는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라는 듯이 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결국 체리의 가정사에 대해 알려주고나서야 그녀도 본인의 실책을 깨달아 급히 사과했다.
"죄송해요. 그런 사정이 있는 줄은···"
"화, 황녀님이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은 괜찮으니까···"
괜찮기는 무슨. 트라우마가 가슴 속 깊이 박혀있는 탓에 목소리는 물론 손마저도 달달 떨리고 있다.
리나도 이를 알아차렸는지 더이상 관련된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대신이라 해야 할지 가문 대신 체리를 직접적으로 칭찬하는 주제로 넘어갔다.
"아무튼 간에 우리 미네르바 제국으로서는 호재 중에 호재구나. 제논 일대기 작가와 그가 칭찬하는 작가가 나오다니. 정말로 테르스 왕국을 이길 수도 있겠는 걸?"
"나 아직 미네르바 제국에 종속된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어차피 마리랑 결혼하면 미네르바 제국에 종속되는 거나 마찬가지지. 테르스 왕국으로 넘아갈 일도 없잖아?"
"넘어갈 일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어."
테르스 왕국은 예술과 문화의 나라. 겉으로만 본다면 수많은 예술가들이 혹할만한 칭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건 예술가들의 이야기지, 위쪽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다. 멀리 가지 않아도 아델리아의 불우한 가정사를 보면 답이 나온다.
차라리 리나의 말대로 미네르바 제국에 종속되어 그들의 보호 아래에 작품만 쓰면 내 인생은 탄탄대로나 마찬가지.
더군다나 말만 저렇지 리나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위치라는 것을. 그냥 장난 겸 친밀감의 표현이다.
"그리고 체리를 시작으로 다른 나라에도 많은 작가들이 나올 거야. 솔직히 내가 쓰는 문법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소재만 있다면 충분하거든."
"그렇긴 하지만 누가 감히 따라할까? 네 명예를 더럽힌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어. 체리는 네가 아끼는 아이니 그렇다 쳐도 다른 작가들은 아니잖아."
"그걸 대비해서 출판사에 미리 말해놓은 참이야. 나를 따라한다고 해서 무서워하지 말고 마음껏 표현하라고 했거든."
"흠... 그래? 조금 아깝긴 해도 네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물론 흔히 칭해지는 불쏘시개가 나올 수도 있다. 그때는 출판사가 알아서 거르기를 빌어야겠지.
또한 스토리가 거의 베낀 수준으로 똑같다면 엄중히 따질거라고 말까지 해놓은 상태다. 내가 불쾌하다는 말 한 마디만 한다면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주위에서 알아서 해결해줄 터.
그러니 나는 가만히 지켜보는 입장으로서 조용히 즐기기만 하면 된다. 살짝 욕심을 내도 되지만 제논 일대기의 문법은 조금만 연습해도 충분히 따라할 수 있을만큼 쉽다.
훗날 불만이 나올 수도 있기에 차라리 처음부터 풀어놓는 편이 이롭다.
'겸사겸사 나도 읽을 책도 만들고.'
무엇보다 재미있게 읽을만한 책이 늘어난다는 게 가장 만족스럽다. 애당초 제논 일대기를 집필한 이유도 읽을만한 책이 역사책과 탐험서를 제외하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전생에는 장르소설이 해일처럼 쏟아져 나오고, 그만큼 재미있는 소설들이 많았지만 이 세상은 아니다. 사람들이 제논 일대기에 열광하는 것도 여기에 기인하고 있다.
비록 처음에는 흔히 불쏘시개라 칭할만한 쓰레기들이 나올 수 있어도 세상에는 미처 재능을 드러내지 못 한 채 시들어가는 싹이 있는 법.
눈 앞의 체리처럼 그 싹이 꽃을 피워내고, 그 옆에 또다른 꽃들이 만개하면 '문화'라는 아름다운 꽃밭이 만들어질 것이다.
"아이작. 네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것 같아. 하지만 네 예상과 달리 시간이 오래 걸릴 걸?"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표정만으로도 알아차린 걸까. 옆에 있던 마리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의견을 내었다.
리나도 아니고 마리에게서 나온 말이라 약간 의아해졌다. 이에 그녀를 바라보자 마리는 본인의 생각을 꺼냈다.
"네가 그렇게 말했으니 분명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작품을 쓰게 될 거야.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있어. 당장 멀리 가지 않아도 제논 일대기가 나온 순간부터 발생하고 있지."
"기성 작가들을 말하는 거야?"
"응."
이 세상의 소설은 매우 난해한 문장들과 단어들의 줄지어져 있다.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백과사전을 동원해야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렵다.
심지어 몇몇 소설을 읽고나서 이걸 토대로 토론을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괜히 내 입에서 수능 영어 문제 같다는 말이 나온 게 아니다.
적어도 제논 일대기 전까지는 그런 방식이 유행이었다. 본인의 철학과 지적 면모를 자랑하듯이 집필하고, 만약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 한다면 그들이 우매하다고 정치질하면 그만이었으니.
하지만 제논 일대기 출범 이후로 판도와 여론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처럼 쉽고 간결한 문장에다가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가 있는데 굳이 읽을 필요가 있냐고. 더럽고 치사해서 안 읽는다고.
당연하게도 기성 작가들이 온갖 비난을 하면서 제논 일대기를 폄훼했으나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몇몇 작가들은 심도있게 다루며 칭찬했으나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시간이 차차 흘러 제논 일대기가 아닌 '책' 자체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늘어나 적지 않은 이득을 보긴 했다. 문학 신입생이 1년 사이에 3배로 증가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네가 너무 높은 위치에 있어서 그렇지, 기성 작가들의 입김은 생각보다 훨씬 강해. 제논 일대기를 계약한 출판사는 네가 있으니 싸그리 무시할 수 있겠지만 다른 나라의 출판사는 힘들거야. 네 생각처럼 급진적으로 해결될 상황은 아니지."
"흠. 그건 생각치 못 했네. 그래도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지?"
"응."
"그럼 됐어."
시간이 해결해 준다면야 언제든지 기다려줄 수 있다. 그때까지 제논 일대기와 더불어 차기작을 쓰면서 독자들의 반응을 기다리면 될 터.
이후에는 설렁설렁 쓰면서 다른 작품을 기다리면 끝이다. 중간중간 체리가 섭섭하지 않도록 그녀의 책도 읽어야지.
"글쎄. 난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데? 어쩌면 시간이 흘러도 안 될 수도 있어."
하지만 마리와 달리 세실리의 의견은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나는 세실리를 쳐다보며 의문을 담아 물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 질문에 세실리는 빙긋 웃었다.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매혹적인 미소다.
내가 그 미소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때, 세실리는 길게 뻗어있는 검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제논 일대기, 그리고 네가 너무 높은 위치에 있으니까."
"······?"
비슷하면서도 다른 어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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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은 매우 고된 작업이다. 창작 과정 자체만으로도 고난이 따르지만 그 창작물을 세상 밖으로 보여줄 때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창작품을 과정이 아니라 '결과'만 보고 판단하니까. 그 사람이 얼마나 고생을 했든,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든 간에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결과만 본다.
그 결과를 보고 호평을 내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혹평을 내리는 사람도 있는 법. 창작자는 그 결과를 통해 힘을 얻을 수 있고 또는 절망할 수도 있다.
이처럼 창작 그 자체인 예술은 고되고 힘든 작업이다. 하지만 이것조차 관심을 받았을 때의 이야기지 세상에는 관심조차 받지 못 하고 사그러간 예술품들이 널려있다.
이런 의미에서 체리의 처녀작, '붉은 노을을 다시 한 번'은 상당히 운이 좋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제논 일대기의 작가, 나와 우연히 만났을 뿐더러 재미있다고 칭찬까지 받았으니까.
그녀의 꿈을 전적으로 밀어주기 위해 제논의 명성을 이용하여 출판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내가 재미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까지 재미있는 건 아니다. 저마다 취향이 있을테니까.
"이제 한 번 볼까?"
"네, 네···!"
체리의 첫 작품이 출간되고 일주일 후. 나와 체리는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단 둘이 카페에 도착했다.
반응을 확인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그냥 오늘 신문에 어떤 소식이 실렸는지 확인하면 그만이었으니까.
출간되었을 당시의 신문을 보면 되지 않냐는 말이 나올 수 있는데, 그건 전생의 지구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여기는 인터넷은커녕 자동차조차 발달되지 않은 세계다.
출판사에서 판매를 시작한다고 한들 그 책들이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심지어 미네르바 제국에서 제일 먼 나라, 알븐하임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최소 한 달이 걸린다고.
다만 어디까지나 12권의 등장 이전의 이야기다. 12권 이후로 엘프들도 더이상 손가락만 빨기 힘들다며 아르웬에게 직접 요청했다고 들었다. 이에 아르웬도 흔쾌히 관세까지 줄이고 텔레포트 시설까지 마련했다고.
제논 일대기만 운송하기 위한 시설이라 설립하는데 며칠 걸리지 않았다. 마법의 대가인 엘프들이였기에 작업은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었다.
아무튼 간에 일주일이 지난 지금, 체리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폭발적으로 나올 시점이다. 이미 내가 아끼는 아이가 쓴 거라고 말해놓은 참이라 관심도 하나는 최대치에 도달한 상황.
남은 건 과연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었느냐다. 나는 기대와 긴장으로 인해 굳어있는 체리를 힐끔거렸다.
본인의 첫 작품이 나와서인지 어두컴컴했던 눈빛에 조금이나마 빛이 돌아왔다.
스윽
이윽고 내가 신문을 천천히 펼치고, 나와 체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대문짝만하게 기재된 소식부터 살펴봤다.
[또다른 대문호의 등장? 제논의 아이, 메리의 붉은 노을을 다시 한 번 절찬리에 판매 중!]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왔다는 스토리 하나만으로도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
[제논 일대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문체. 감성적이면서도 따뜻한 문장 하나 하나가 마음을 울리고 있다.]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몰고 있는 이 책은...]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첫 작품부터 어마어마한 호평을 받고 있었다. 회귀물은 그 특징상 반은 먹고 들어가는 소재이며 더 나아가 체리 특유의 필력까지 합쳐졌으니 인기를 못 끄는 게 이상하다.
더군다나 제논의 명성을 빌려 내가 직접 재미있다고 말했다. 내 이름값 때문에 비판을 함부로 못 한다?
웃기는 소리. 제논 일대기가 한창 인기를 끌었을 때도 비판할 사람은 비판하고 있다. 처음에는 기성 작가들이 질투심에 발로하여 욕한 게 대부분이었으나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정석적인 비판이 이어졌다.
[로맨스이다 보니 사건보다는 사람의 심리에 집중돼 있다. 몰입감은 충분하나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해가 약간 어렵다. 하지만 서서히 발전할 것.]
[미래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세세히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위와 같은 형식이다. 그래도 악플 수준의 비난이 아니라 나 또한 비슷한 생각을 했던지라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내가 이런 거고 가장 중요한 건 체리다. 과연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나는 신문을 읽어내리다가 힐끔 체리를 쳐다봤다. 그리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체리는 분명히 신문을 읽는 중이다. 하지만 분홍빛 눈동자에는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중이다.
그동안 가슴 속에 억눌러 있던 응어리가 모두 풀린 것일까. 본인도 자각하지 못 하고 있는지 소리조차 내지 않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고 있다.
미처 싹을 틔우기 전에 잔인하게 짓밟혔던 꿈이 활짝 만개하는 순간이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나는 딱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체리."
"네?"
"기분이 어때? 네 꿈이 이루어졌잖아."
그 질문에 체리를 한동안 나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신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본인의 작품에 칭찬일색인 소식들. 그리고 다음 권은 언제 나오냐는 아우성.
체리는 그 소식들을 멍한 눈초리로 응시하다가 이내 수평으로 그어졌던 입꼬리를 서서히 올렸다. 입꼬리 뿐만 아니라 눈물이 흐르는 눈 또한 서서히 접혀졌다.
이윽고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행복한 미소'를 본인의 작품처럼 활짝 만개하며 조용히 말했다.
"행복해요···"
"그래?"
"네. 너무··· 너무 행복해서···꿈인 것 같아요···"
아직도 자기가 울고 있다는 걸 모르는지 눈물이 뺨을 타고 뚝 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말없이 손수건을 꺼내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줬다.
그러자 체리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쳐다봤다. 또한 그제서야 본인이 울고 있다는 걸 인지했는지 허둥지둥거렸다.
"아, 저, 그게 저는···"
"다 울 때까지 이걸로 닦고 있어."
"···감사합니다."
수도꼭지가 고장난 것마냥 눈물을 멈출 수 없어 결국 내 손수건을 받아냈다. 나는 그녀가 눈물을 닦는 동안 다른 소식부터 살펴봤다.
신문 페이지를 넘기고 넘겨도 체리의 작품과 관련된 소식밖에 없었다. 그만큼 제논 일대기 못지 않게 대히트를 쳤다는 뜻.
로맨스라는 특징상 남자보다는 여자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대신 회귀물이라는 독특한 설정 때문에 남자도 많이 읽는 중이라고.
이게 거품일지 아닐지는 이제부터 체리의 손에 달려있다. 체리의 말로는 이미 결말까지 구성해놓았기에 글만 쓰면 된다고 했으니 천천히 기다리면 된다.
'근데 공모전 비슷한 소식은 없나?'
출판사에 말해놓은 게 있는데 이상하리만큼 보이지 않는다. 이에 의문을 지니며 페이지를 넘겼을 쯤, 이상한 글귀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제논은 본인의 문체를 따라해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그럴 수 없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는 유독 눈에 띄는 소식에 미간을 좁히며 얼굴을 가까이 대었다.
[만약 작품을 인정받고 싶다면 제논에게 먼저 인정받아야 된다. 그러지 않는다면 제논을 모욕하는 일.]
아. 맞다.
[제논의 명예를 더럽혀서는 안 된다! 감히 누가 제논의 명예를 더럽힐 것인가! 그는 상관없다고 했으나 우리가 용서치 않을 것이다!]
여기 시대상이 그렇고 그런 쪽이었지. 젠장할.
"흑··· 흐윽···"
"···체리."
"네에··· 흑···"
나는 착잡한 마음에 위로를 해줄 겸 체리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체념하듯이 말했다.
"···다음 권 좀 일찍 내줘."
"흐윽··· 목숨을 바쳐서라도 일찍 낼 게요···"
"그럴 필요는 없는데···"
읽을만한 책이 나오려면 오래 걸릴 듯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