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화 〉 새로운 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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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논 일대기가 출범한 이후로, 마이샬 가문과 계약을 맺은 출판사는 하루가 지날 때마다 매출이 상승하고 있다.
심지어 12권 전에는 주로 인간들과 마족들에게만 인기가 많았으나 이제는 종족을 불문하고 불티나게 판매되고 있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거대 상회는 어떻게든 출판사와 계약을 따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고, 출판사 사장은 중간중간 뇌물도 받아먹으면서 최대한 뜯어먹고 있다.
본래라면 아이작이 직접 출판사에 당도하여 계약을 맺어야 하지만, 정체가 발각될 위험이 있어서 계약 당시부터 전권을 위임한 상태. 판권은 엄연히 아이작에게 있으나 판매 관리 자체는 사장에게 있다.
그러므로 출판사 사장이 마음만 먹는다면 거짓말을 칠 수 있으나 의외로 그러지 않았다. 왜냐고?
그러지 않아도 너무 많이 팔려서 '굳이' 돈을 떼먹을 필요가 없으니까.
솔직히 말해 첫 판매 당시에는 조금 떼먹긴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출판사에 들어오는 수익만으로도 굴리기 벅찬 나머지 그 행위는 멈추었다.
출판사의 수익을 관리하는 회계사도 머리가 터질 것 같다며 사직서를 몇 번이나 낼 정도. 하루 일을 다 처리해도 그 다음에 또 한가득 쌓이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일일이 수작업을 거쳐야 할 뿐더러 출판사 사장의 뒷돈까지 관리해야 되는 탓에 회계사 입장에서는 각혈이 나올만큼 고된 작업이 이루어졌다.
물론 사장은 그런 그를 살살 구슬림과 동시에 현금 치료를 하며 달래줬다. 회계사의 작업을 위해 인력을 보충하는 건 잊지 않았다. 회계사는 아주 중요한 인력 중 하나였으니.
이렇듯 제논 일대기가 출범하면서 팔아들인 수익은 아닌 말로 백작급 귀족에 견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미네르바 제국에서 자금이 가장 많은 계급이 백작이었으니 그 양이 얼마나 많은지 대충 감이 잡힐 것이다.
숨만 쉬어도 돈이 굴러들어온다. 여러군데 지출이 많긴 해도 그걸 충당할만큼의 자금이 들어온다.
아닌 말로 마차를 사고 싶으면 몇 초 동안 가만히 있다가 방긋 웃으며 샀다! 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적도 있고.
하루하루 행복한 나날이 이어지는 건 좋지만, 출판사 사장은 마냥 행복할 수 없었다.
그토록 돈을 좋아하던 사람인데 어째서 행복하지 않냐는 말이 조금 의아해질 수도 있다. 이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사장이 지금까지 겪은 고초 때문이다.
제논 일대기 신간이 발간되면 최소한 대박 이상은 친다. 그러나 이 말을 반대로 말하자면 제논 일대기를 제외하고 다른 책은 지지부진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제논 일대기 발간 전의 책들은 평민은커녕 귀족들도 읽기 힘들만큼 난해하다. 가독성은 물론이요, 무슨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은지 이해하는 것부터가 어렵다.
그나마 쉬운 건 탐험가들이 직접 적은 수필. 탐험가들의 경험담은 눈으로 보고 느낀대로 알려줬기에 인기가 많은 편이다. 아이작이 평가하기를, 단순하지만 그만큼 재미있다고.
허나 이것조차 수요는 확실하지만 제논 일대기에 비해서는 한참 모자른 수준이다. 당분간은 제논 일대기가 먹여 살리겠지만 완결이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제논 일대기가 완결이 난다면 그 수익은 바닥이 아니라 지하로 뚫을 수도 있으니까. 현재 스토리가 중반 언저리쯤 되는 것 같으니 빨라도 1년 안에 완결은 힘들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슬슬 과도기에 접어들어야 된다. 돈 냄새를 지독하게 잘 맡는 출판사 사장이지만 그에 따라 위기 감지 능력도 뛰어났다.
빈번한 귀족들의 압박은 물론, 초고 도난으로 인한 휴재 사태에 최근에는 출판사에 찾아온 엘프들이 거하게 사고를 쳤다. 제아무리 멘탈이 단단한 사람이라도 며칠동안 앓아누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연유로 사장은 한 가지 결심했다. 제논 일대기가 아닌, 다른 책에도 관심을 기울이자고.
당장은 미미해도 언젠간 또다른 대문호가 탄생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제논 일대기 덕분에 책을 읽는 사람의 비율 자체가 증가했으니 언젠가는 배출해낼 것이다.
"하아···"
물론 좀처럼 쉽지는 않았다. 사장은 마른 세수를 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을 덮은 손 사이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두툼한 두께의 원고지가 눈에 들어왔다. 꽤 열심히 썼는지 정교한 필체가 눈에 띄었다.
이 원고지의 정체는 제논 일대기가 아니라 어느 한 작가 지망생의 원고다. 제논 일대기에 몰빵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출판사는 엄연히 출판사.
원고를 받고 팔릴만한 건 책으로 인쇄한다. 그게 출판사의 기본적인 일이다.
"기본부터 배우고 오지···"
사장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원고를 보며 한탄했다. 스스로도 자신없었는지 우편으로 보낸 원고였는데 그 결과는 역시였다.
가독성은 개나 줘버리고 문장력 또한 상당히 복잡하다. 아니, 문장이 아니라 문단이라 해야 할 정도로 문장 하나 하나가 길었다.
흔히 초보 작가들이 하는 실수다. 의식의 흐름대로 쓰다보니 문장 하나 하나를 길게 이어쓰는 실수.
출판사 사장으로 지내면서 이러한 실수를 범하는 작가들은 셀 수도 없이 지켜봤다. 이런 경우는 스토리가 좋아도 사람들이 잘 읽지 않는다.
그러니 이 원고는 어김없이 탈락이다. 정성을 보아서 끝까지 다 읽긴 했지만 고개가 저절로 절레절레 흔들렸다.
"어찌 된 게 비슷한 게 안 오냐···"
사장은 원고를 저 멀리 치우면서 머리를 감싸안았다. 근 1년 사이 스트레스가 폭발하여 머리가 빠질 것 같다. 다행히 전부 다 금융 치료로 해결되어 그런 일은 없었지만.
제논 일대기가 전세계적인 인기를 끈 이후로 너도 나도 작가가 되겠다고 열풍이 일었으나 눈에 걸리는 건 하나도 없다. 제아무리 가독성이 좋고 문장력이 좋다고 한들 그걸 따라하는 건 별개의 이야기다.
단, '필사'를 통해 본인의 필력을 끌어올리는 작가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더구나 제논 일대기는 따라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쓸 수 있는 문장력을 갖고 있으니 필사조차 쉽다.
그러나 정작 그 필사를 통해 끌어오린 필력은 상대와 비슷해지는 법. 특히 제논 일대기는 12권 이후로 거의 예언서 취급을 받을만큼 신성시 여기고 있다. 성자로 추대받고 있는 아이작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여기서 제논 일대기와 비슷한 필력을 지닌 책이 출간된다? 솔직히 필력 자체가 비슷한 건 문제가 없을 뿐더러 스토리가 다르면 큰 문제가 없다.
제일 큰 문제는 '감히' 따라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 사회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지구라면 모를까, 여기는 아직 사회 문화가 발달했다고 볼 수 없다.
나라를 통치하는 왕이 버젓이 존재하고, 왕의 명령을 받아 영지를 다스리는 귀족이 있으며, 그 영지 안에 살아가는 평민이 있다. 명확한 계급 사회다.
계급 사회에서는 '명예'라는 결코 더럽혀져서는 안 될 자존심이 존재한다. 특히 귀족 이상의 명예를 더럽힌다면 당사자에게 즉결 심판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그러니 제논 일대기의 문장과 비슷한 책을 낸다면, 그 스토리가 다르더라도 제논의 명예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들 수밖에 없다.
설령 신분을 숨긴 채 발간하더라도 욕을 무진장 얻어먹을 각오를 해야 될 것이다.
평민임과 동시에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문화(?)에 찌들어 있던 사장으로서는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 없는 부류였다.
'편지라도 써야 하나··· 아니지. 그래도 불안한데···"
그래도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서는 제논에게 편지를 부쳐서 이리 부탁하고 싶다.
출판사 입장에서 제논 일대기에만 치중하는 건 좋지 않으니 조금 말만 해줄 수 있냐고. 제논 일대기를 보며 꿈을 키운 작가가 있을텐데 그들을 위해서라도 너그럽게 허용해줄 수 있냐고.
이렇게 말은 하고 싶으나 사장은 제논의 정체를 알고 있다. 직접 계약을 했는데 모르는 게 이상하지.
만약 평민이었다면 모를까, 아이작이 귀족이어서 문제다. 남작이어도 평민인 자신이 빌빌 기어야 하는 입장인데 무언가를 요구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사실 지난번 2권 분량의 원고를 받았을 때 욕심이 난 나머지 넌지시 부탁한 적이 있다. 분량으로 너무 많으니 차라리 2권으로 쪼개서 발매하는 게 어떠냐고.
출판사에게 이득이 된다는 말은 쏙 빼놓고 단지 양이 많다는 부분에 치중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단호하디 단호한 거절.
그 한 번의 거절이 지금의 사장을 망설이게 만들었다. 딱 한 번 더 용기를 내고 싶으나 선을 넘는 행위인지 아니면 괜찮은지 헷갈리니 한숨만 푹푹 나왔다.
"후우···"
사장은 한숨을 내쉬며 옆으로 치웠던 원고를 힐긋거렸다. 일단 저것부터 반송하기 위해 편지부터 써야 할 듯했다.
이에 사장이 책상 서랍을 열며 편지지와 펜을 꺼냈을 때 쯤.
똑똑똑
[사장님? 저 매튜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오. 들어오게나."
최근들어 비서로 승진한 직원, 매튜였다. 사장은 노크를 한 사람이 매튜라는 걸 알자마자 곧바로 승낙했다.
이윽고 문을 열고 들어오니 전보다 더욱 깔끔해진 차림새의 매튜가 조심스레 문을 열며 들어왔다.
본래 매튜는 제논의 심부름꾼과 출판사를 이어주는 교두보 같은 역할이었지만, 일도 알차게 잘하는데다가 입도 무거워 비서로는 딱이었다.
때마침 매튜도 비서 일을 시작하면 바빠지더라도 그 지옥 같은 '당직 근무'가 없어진다는 걸 깨닫고 곧바로 승낙한 참이다.
"그래. 이번에는 무슨 일로 찾아왔나? 혹시···?"
사장이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매튜는 아주 중요한 소식이 아닌 이상에야 사장실에 찾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중요한 소식이라 함은 당연하게도 제논 일대기와 관련된 것. 이외에는 시덥잖은 이야기들밖에 없으니 기대할 수밖에 없다.
16권이 세상에 드러낸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최근 집필 속도에 가속이 붙었다는 것 정도는 눈치챈 사장이다.
"제논 일대기와 관련된... 건 아니고요. 제논과 관련이 있다면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음? 그게 무슨 소리인겐가? 그 우편에 든 게 제논 일대기가 아니라고?"
사장은 매튜의 겨드랑이에 끼워져 있는 우편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의문을 품었다. 저기에 든 것이 제논 일대기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매튜는 그의 의문이 본인도 난색을 표하더니 우편물이 아니라 편지부터 전달했다. 사장은 별 의심없이 편지를 받아들였다.
편지의 발신인은 역시나 예상했던대로 제논. 그런데도 저 우편 속에 든 것이 제논 일대기의 원고가 아니라니 살짝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편지는 확인해야겠지. 사장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편지를 열람했다.
[안녕하세요. 머스크 사장님. 제논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번에 보낸 원고는 제논 일대기가 아닌, 제가 아끼는 사람이 쓴 원고입니다.]
첫 문장부터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사장은 믿을 수 없는 글에 눈을 두어번 깜빡였다.
원래 제논은 편지를 보낼 때 자신이 아니라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고 있었다. 자신은 그저 제논의 뜻을 밝혀줄 대리인에 지나지 않는다.
헌데 이 편지는 분명히 자신에게 말하고 있다. 사장은 편지를 황망한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매튜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매튜의 겨드랑이 사이에 끼워져 있는 우편물을. 사장은 그 우편물을 응시하다가 홱 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돌려 편지를 읽어내렸다.
[아마 원고를 보게 된다면 제논 일대기와 비슷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제 글을 보면서 꿈을 키운 아이거든요. 그래도 따뜻함이 느껴지면서 아름다운 문장을 보신다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원래라면 세상에 좀 더 일찍 나올 수 있는 글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개인 사정 때문에 무산되었습니다. 재미는 제 명예를 걸고 확실히 보장할 수 있으니 부디 한 번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재미는 확실히 보장한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제논 일대기를 집필한 제논이 한 말이다. 심지어 명예까지 건단다.
이것만으로도 사장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만들기 충분하고도 남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판권 계약'.
제아무리 훌륭한 원고여도 계약을 하지 못 한다면 부질없는 짓이다. 탈세를 비롯한 비리를 저질러도 이런 부분만큼은 철두철미하게 관리하고 있다
그는 눈쌀을 살짝 찌푸리며 고민하다가 일단 편지부터 읽기로 정했다. 계약과 관련된 건 차차 해결해 나가면 그만이었으니.
[이 아이의 필명은 '메리'입니다. 사장님도 아시다시피 제논의 애인이지만 실제로 애인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세요. 그냥 제가 보호해주고 싶어서 그렇게 지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사장은 필명이고 나발이고 전부 집어치우고 마지막 문단에 집중했다.
[이 아이와 만나 글을 읽다보니 한 가지 생각난 게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새싹들이 존재하구나. 그런데 그 새싹들이 차마 꽃을 피워보지도 못 한 채 짓밟히거나 시들어가는구나. 세상은 저를 미래인이라니, 구원자라니 떠들고 있으나 저는 한낱 작가에 불과합니다. 문화는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허락해야 되는 아름다운 문물. 제 글과 비슷하다고 해서 용기를 내지 못 하는 새싹들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 머스크 씨께서 대신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허락할테니 한 번 도전해도 된다고. 무서워 할 필요가 없다고. 물론 스토리를 베낀 수준으로 똑같은 경우는 엄중히 혼내겠지만 그래도 꽃을 피워보자고.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추신. 계약 문제는 제논 일대기와 똑같이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조만간 저희 쪽에서 따로 찾아갈테니 그때까지만 기다려주세요.]
"하아···"
사장은 그 내용을 모두 읽어 참아왔던 숨을 내뱉었다. 간질간질거렸던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버리니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머리를 잠식했다.
안 그래도 고민이 되었던 건데 어쩜 이리 타이밍 좋게 편지를 주는 건지. 심지어 재미있다고 언급한 원고까지 줬으니 사장은 이토록 행복할 수가 없다.
"···매튜."
"네. 사장님."
"일단 그 원고 좀 주게나."
새로운 별이 떠오르고 있다.
*****
그사이 아이작은...
"...그래서 이번에는 몇 번째 부인?"
"아니. 이번에는 그런 거 아니야. 진짜라니까?"
"아, 안녕하세요오..."
지인들과 체리와의 만남을 주선하는 중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