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화 〉 대족장(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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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불에 콩 볶아 먹듯이 진행되었으나 대족장의 자리는 함부로 정할 수 없는 자리.
지나이가 반쯤 대족장이 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으나 100% 확실해진 건 아니다. 발칸이 언급했듯이 왕족과 백성들의 의견을 들어 잘 조율해야 되니 시간이 꽤 소요될 것이다.
허나 원래의 목표였던 레오나의 대족장 문제는 원만하게 해결되었으니 안심이 된다. 레오나도 지나이가 대족장이 될 수도 있는 부분에 염려를 두고 있었지만 후련하다는 표정이다.
"내가 진짜로 대족장이 된다면 두고 보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제일 안 무섭던데."
어쩌다 보니 대족장이 될 위기에 처한 지나이가 나에게 위협 아닌 위협을 하는 건 덤. 그래도 귀찮은 일에 휘말렸다는 반응이지 화가 난 건 아니다.
지나이가 정말로 내가 생각하는대로의 능력을 갖추었다면, 빈말이 아니라 애니머즈를 보다 더 현명하게 통치할 수 있을 것이다.
평소 전통에 불만이 많은데다가 정치 능력도 탁월하고, 장기적인 안목도 있으니 성군은 힘들더라도 현군 정도는 가능하다.
나는 마음이 한결 편해진 느낌이 든 것도 잠시, 문득 수인의 풍습이 떠올랐다. 전에 레오나가 대족장이 된다면 그녀가 내 아이를 낳아야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다면 지나이도 마찬가지인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자 안색이 핼쓱해짐을 느낌과 동시에 살짝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죄송한데 제가 전에 레오나에게 들은 적이 있어요. 레오나가 대족장이 된다면 그 보상으로 제 아이를 낳아야 된다는 전통이 있다는데 아닌가요? 그럼 지나이 씨가 대족장이 된다면..."
"왜. 나도 네 아이를 낳아줄까?"
이미 빈정 상했는지 지나이가 톡 쏘는 듯한 말투로 묻는다. 나는 그 질문에 곧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씨앗 취급하기 싫어서 레오나를 대족장의 자리에서 벗어나게 도와준 건데 한사코 사양이다. 무엇보다 동물 얼굴을 달고 있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건 내 취향에서 한참 벗어났다.
지나이는 내 반응을 보고 피식거리더니 어깨를 으쓱거리며 내 불안을 잠재워줬다.
"미안하지만 난 그딴 전통을 잘 안 따르거든. 인간은 그런 것보다 재물을 좋아한다며? 비싼 장신구 같은 건 선물해줄 수 있지."
"그거 다행이네요."
"다행? 왠지 기분 나쁘게 들린다? 이래 보여도 애니머즈 내에서는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그게 아니라 애인이 있어서 그런 거예요."
일리있는 내 변명이 통했는지 지나이는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뒤가 꽉 막힌 전통을 싫어하는 그녀였으니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듯했다.
그나저나 저 동물 얼굴이 애니머즈 내에서 미녀 축에 속한다니, 역시 문화의 차이는 언제 봐도 신기하다.
전생에도 각 문화마다, 그리고 시대마다 미녀의 기준이 달랐으니 이와 비슷한 거겠지. 설마 레오나도 애니머즈에서는 못 생긴 축에 속한 건 아니겠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지나이가 입을 열었다.
"애인이 있으면 어쩔 수 없지. 나도 남편이 5명이나 있어서 짝짓기를 하자고 하면 곤란해."
"5명이나 있어요?"
"응. 난 능력도 좋고 무력도 강하니까. 수컷이 꼬이는 건 당연한 일이지."
본래 하이에나는 모계 사회를 이루며 암컷이 수컷보다 덩치도 크고 훨씬 강하다. 그건 이 세상에도 통용되는 사실인 것 같다.
게다가 하이에나는 문란하다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의 짝짓기 문화를 갖고 있다. 하지만 남편이 있다고 하는 걸 보면 이건 아닌 모양이다.
지나이는 내가 신기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보자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우쭐거리며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었다.
"왜? 설마 반했니? 네가 원한다면 한 번은 해줄 수 있는데."
"죄송하지만 얼굴이 제 취향에서 한참 벗어났어요."
그래도 동물 얼굴은 아니다. 이건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변하지 않을 취향이다.
레오나처럼 인간의 얼굴에 동물귀와 꼬리만 달려있으면 모를까, 적어도 지나이처럼 주둥이가 툭 튀어나오고 동물에 가까운 얼굴은 아니다.
"거 참 희한하네. 설마 레오나 아가씨 같은 얼굴이 취향이야?"
"네."
"내, 내가?"
짧은 단답형에 레오나가 당황스럽다는 목소리로 반문한다. 네가 당황해서 어쩌자는 거야.
오히려 내가 더 의문이 든다. 레오나는 헤일로 아카데미에서 지냈으니 인간의 문화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수인의 미적 감각과 인간의 미적 감각이 전혀 다르다는 것 또한 알고 있을텐데 저리 놀라는 건 조금 의아한 부분이었다.
적어도 내 눈에 레오나의 미모는 훌륭한 편이었으니까. 마리나 세실리와 달리 화려함과 거리가 멀고 야성적이지만 그건 그것대로 매력이 있다.
"네가 왜 놀라? 너도 인간의 기준으로 미녀인 건 맞는데?"
"그, 그래? 몰랐네. 난 내 얼굴이 인간들 기준으로 평균 내지 그 이하인 줄 알았거든."
"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헤일로 아카데미는 귀족의 비율이 평민보다 더 많다. 그리고 귀족은 대부분 미모가 평균을 한참 상회하는 편이다.
레오나가 그렇게 생각할만한 이유가 있다. 아카데미에 내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레오나는 평소 공부에 매진하느라 밖에 잘 돌아다니지 않는다.
'그런 애가 애정 표시로 나한테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고 부탁했다라...'
의외로 얼굴에 대한 칭찬이 약한 건지 레오나의 얼굴이 미미하게 붉어졌다. 귀 또한 아래로 추욱 처진 걸 보면 확실하다.
언제는 당당하게 내 부인이 되겠다니, 내 아이를 낳겠다니 했을 때와 달리 그녀가 쑥스러워하고 있다. 진귀한 장면이지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녀를 말없이 응시하다가 앞으로 시선을 옮기며 이와 관련된 질문을 꺼냈다.
"수인은 지나이 씨나 발칸 씨 같은 얼굴형이 인기 있나 보네요?"
"그렇다네. 이런 말 하기에는 미안하지만 레오나는... 적어도 우리 기준에서는 미형과 한참 떨어진 얼굴이지. 물론 사람마다 취향이 있으니 이것 또한 문화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네."
"그럼 혹시 레오나의 어머니도요?"
"...우리 아버지는 이것 저것 가리지 않는 편이었지. 셋째 어머니도 레오나처럼 인간에 가까운 얼굴이라네."
잡식성이야 뭐야. 역시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그만큼 다양한 취향이 있다.
그래도 덕분에 헤일로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되었으니 나름 좋은 결과라고 볼 수 있겠지. 동물형 얼굴이었다면 그런 시도조차 하지 못 했을 것이다.
"아무튼 오늘 대화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역시 현자답게 좋은 이야기를 해주는군."
"난 전혀 아닌데?"
"자네는 입 다물고 있게. 아직 완전히 확정된 것도 아닌데 투덜거리지 않았으면 좋겠군."
"좋게 받아들였다면 저야 고맙습니다."
여차저차 하여 대족장 관련 문제는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채 종료되었다. 지나이는 다소 불만이 가득한 듯했으나 발칸이 가뿐하게 묵살시켰다.
그리고 레오나는...
"내가... 예쁘다고..."
아까 내가 했던 말이 뇌리에 남아도는지 여전히 정신이 다른데에 팔려있다. 달아오르는 얼굴을 추스리기 위해 손으로 뺨을 감싸는 중이지만 큰 의미는 없다.
나는 그걸 보며 가만히 입을 다물어야겠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발칸은 조금 달랐는지 진중한 목소리로 레오나의 이름을 불렀다.
"레오나."
"으, 응? 불렀어?"
"네 생각은 잘 알겠다. 너를 대족장으로 추대하는 건 철폐하도록 하마."
"고, 고마워."
"하지만 현자에게 보상은 해야겠지. 현자."
현자라 부르지 말래도. 하지만 그 말을 꺼낼 수 있으니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어차피 내가 부르지 말라고 해도 마땅히 부를 칭호가 없을테니 현자라 칭하는 게 훨씬 편할테니.
발칸은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옆의 레오나를 다시 한 번 힐끔거렸다. 뒤이어 혼자 무슨 생각을 한 건지 고개를 묵직하게 끄덕이며 조용히 말했다.
"레오나에게 들었겠지만 우리 수인은 큰 은혜를 입었다면 가족 중 한 명으로 부인으로 삼게 한다네. 그리고 우리 가족 중에 여자는 레오나밖에 없지."
"그건 들었어요. 또한 거부하면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알고 있죠."
"잘 알고 있군."
혹시나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바꿨다거나 그런 쪽으로 예상했다. 그렇게 되면 레오나와의 관계를 좀 더 신중히 고려할 수 있게 된다.
"앞으로 우리 레오나를 잘 부탁하겠네. 대신 새끼는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에 낳았으면 좋겠군. 그정도 배려는 해줄 수 있겠나?"
"...알겠습니다."
물론 전통에 죽고 살던 애니머즈의 사자들에게는 그딴 거 없다. 잠깐의 이야기로 생각이 바뀔 거라 생각하던 내가 바보고 멍청이지.
그동안 발칸은 내가 선듯 받아들이자 흡족한 미소를 짓더니 레오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제는 빼도박도 못 하게 기정사실이 된 탓인지 레오나가 바짝 긴장했다.
"레오나. 너도 네 어머니와 같이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 비록 셋째 부인이라지만 아버지에게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
"응. 당연히 그래야지."
"그래. 조만간 네 어머니를 아카데미로 보내도록 하마. 적어도 남편이 될 남자의 얼굴은 봐야할테니."
구렁이 담 넘듯이 상견례가 진행되는 중이다. 아무래도 이제는 마음을 모두 내려놓고 편하게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레오나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녀에게 내가 제논이라는 사실을 알려줘야 된다. 이건 차차 말해줄테니 문제는 없지만 더 큰 난관이 남아있다.
'아델 누나한테는 어떻게 말해야 하지...'
그건 바로 아델리아. 아델리아는 지난번 히리야와의 대련 이후로 나에게 마음을 고백했다.
반드시 나를 지켜주겠다고, 설령 자기 마음을 받지 않아도 곁에 있겠다고.
이랬는데 내가 레오나를 완전히 받아준다면, 아델리아의 마음에 큰 상처가 생길 것이다. 겉으로는 괜찮다고 웃어넘겨도 마음이 약한 그녀의 성격상 남몰래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발칸과 지나이가 떠난다면 레오나에게 이 사실을 알려줄 생각이다. 완전히 내 부인이 되는 건 천천히 생각하자고.
"우린 이제 가보도록 하겠네. 둘이서 오붓하게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나."
"잘 있어라. 내가 진짜 대족장이 되면 장신구 정도는 가져다줄게."
그러는 동안 발칸과 지나이는 더이상 할 얘기가 없었는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와 레오나 또한 그들을 배웅해주기 위하여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허나 발칸은 배웅할 필요가 없다며 앉으라고 손짓했다. 아무리 그래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일어서려고 했으나 발칸의 말을 듣고 잠자코 엉덩이를 붙일 수밖에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다네. 수인은 대화의 주제가 끝나면 다른 대화거리가 생기지 않는 이상 바로 떠나는 게 예의거든. 인간들은 이걸 짧고 굵게라고 하던가?"
"대충 알 것 같네요."
"역시 현자답게 머리가 비상하군. 이만 가보도록 하지."
이후로 발칸과 지나이가 돌아가며 나와 레오나만이 방에 남게 되었다. 전과 달리 묘한 어색함이 방 내부에 감돌았다.
원래 전까지는 평범한 친구 사이라 할 수 있는 관계였으나 곧 있으면 빼도박도 못 하는 부부가 되어버린다. 레오나도 그걸 알고 있는지 입을 여는 걸 망설이는 중이고.
나는 미묘한 분위기에 눈치를 보다가 헛기침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니.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야."
"레오... 응?"
"나 진짜로 예뻐?"
뜬금없이 자기가 예쁘냐고 질문한 레오나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레오나는 나름 진지했는지 나와 똑바로 마주하고 있다.
어느새 꼿꼿하게 선 귀와 더불어 특유의 앙칼진 눈매가 서로 대립되어 독특한 매력을 선사했다. 홍조가 인 뺨도 그렇고 특유의 반전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까닥거리는 귀를 바라보다가 레오나를 조용히 응시했다. 화려함과 거리가 멀지만, 그만큼 또다른 아름다움이 깃든 미모다.
특히 머리 위에 쫑긋 솟아난 귀가 매력 포인트다. 사나움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귀여움의 결정체. 누가 이 모습을 보고 못생겼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이지. 적어도 내 눈에는 예뻐."
"네 애인들보다?"
"그렇게 비교하는 건 잘못된 거야.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아름다움이 있고, 너에게는 너만의 아름다움이 있으니까. 너 또한 그들 못지 않게 충분히 예뻐."
"... ..."
한치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다. 마리에게도 마리만의 특색이 있고, 세실리에게도 세실리만이 가지고 있는 특색이 있다. 이건 레오나도 마찬가지.
레오나는 내 말에 거짓이 없다는 걸 깨닫았는지 귀가 까닥거리는 빈도가 늘어났다. 여기에 더해서 얼굴이 더욱 붉어지기까지.
한동안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녀는 이내 시선을 다른데로 돌렸다. 이따금식 떨리는 금색 눈동자와 물결처럼 흐물거리는 입매를 보아 창피한 모양이다.
"고, 고마워. 너한테 들으니 기분이 이상하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에게도 들을 수 있어. 그전에 레오나."
"응. 말해."
"사실... 너에게 알려줘야 할 얘기가 있어."
나는 기회가 되자마자 곧바로 아델리아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마리와 세실리가 아닌, 다른 여자의 이야기가 나오자 레오나도 호기심을 드러냈다.
물론 아델리아가 테르스 왕국의 사생아라는 진실을 쏙 빼놓고 그녀의 사정에 대해서만 간략히 설명했다. 참고로 마리와 세실리에게도 하지 않았다.
본래는 아델리아를 완전히 받아들일 때 털어놓으려고 했으나 레오나라는 변수가 생겼으니 어쩔 수 없다.
"...해서 당장 받아들이긴 힘들거야. 나에게 고백도 했고 아델 누나도 기다리는 입장이거든."
"그냥 받아들이면 되지 왜 그러는 거야?"
"여기에도 사정이 있어. 이건 차차 설명해줄 거야. 그래서, 기다려줄 수 있어?'
내 부탁에 레오나는 금안을 몇 번 깜빡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답했다.
"상관없는데? 난 네 부인이 되면 그만이거든."
"...기다려줄 수 있다는 거야?"
"왜 못 기다려? 네가 그리 생각하면 그렇게 따라야지. 수컷에게 순종한다. 이게 수인의 기본 가족 체계야."
아, 맞다. 얘 수인이었지. 괜히 고민한 것 같아 내가 다 바보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배려를 해준 것에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솔직히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텐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줬다.
나는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손을 천천히 뻗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지난번에는 그녀가 먼저 제안했지만, 이번에는 내가 먼저 손길을 내어줬다.
이 말은 즉, 나 또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의미. 레오나도 의미를 알아차렸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베시시 웃으며 머리를 갖다 대었다.
"그릉. 그르릉."
내가 머리를 보듬어주자 레오나가 고양이처럼 골골거리며 기분 좋아한다. 언제 봐도 사자가 아니라 고양이 같단 말이지.
그 뒤에는 끝이 붓처럼 생긴 꼬리가 살랑살랑거리며 만지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꼬리를 만지는 건 완전히 부부가 된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라고 했으니 꾸욱 참을 생각이다.
그렇게 한동안 서로의 애정을 표시하고 있을 때 쯤, 골골거리며 좋아하던 레오나가 고개를 위로 올렸다. 정말로 귀여운 고양이가 나를 올려다 보는 느낌이다.
"아이작."
"응."
"그럼 짝짓기도 그 암컷이랑 하고 나서 할 계획이야?"
짝짓기라는 소리에 쓰다듬던 손길이 우뚝 멈추었다. 남자 여자를 지칭할 때도 수컷, 암컷이라 하더니 성관계마저 짝짓기라 칭하는 듯했다.
나는 직설적인 질문을 듣고 퍽 당황스러웠으나 침착을 되찾았다. 레오나가 뒤가 없는 성격이라는 건 미리 파악하고 있어서 더듬거리진 않았다.
"아마 그렇겠지? 조금 오래 걸릴지도 몰라."
"알았어. 그건 좀 아쉽네. 가능하면 사흘 후부터 하고 싶었는데."
"사흘 후부터? 왜?"
"그때부터 발정기가 시작되거든."
"...발정기?"
발정기라는 말에 또다시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듣기만 해도 어떤 건지 단번에 알 수 있었으나 조금 더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에 레오나는 내 품에 안긴 채로 얼굴을 비비더니 발정기에 대해 설명해줬다.
"우리 수인은 특정 주기마다 발정기가 찾아와. 인간으로 치자면 생리라고 할 수 있겠네. 나는 사자 수인에다가 어머니를 닮아 한 달에 한 번 꼴로 찾아와. 인간의 생리 주기랑 비슷한 편이지."
"...그럼 그때 성욕이 막 끓어오르거나 그래?"
"아주 정확해. 수인이 본능을 참지 못 하는 이유가 발정기 때문이거든. 이왕 부부가 되는 김에 한 번 너랑 해보고 싶었어. 어차피 피임도 가능하잖아?"
"그, 그렇지. 그래도 안 돼."
레오나는 내 떨떠름하면서도 단호한 대답에 알겠다며 무던히 넘어갔다. 보아하니 그냥 한 번 찔러본 모양이다.
나는 그녀의 허락에 안심한 것도 잠시, 훗날 다가올 수도 있는 최악의 사태가 떠올랐다.
'잠깐만. 그럼 세실리의 악주기랑 레오나의 발정기가 겹치면...'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준비를 단단이 해둬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는다면 내 허리는 물론이고 생기마저 완전히 빨려나갈테니.
신성력을 보다 더 원활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집필에 박차를 가해야 되는 건 물론이다. 원래는 쉬엄쉬엄 할 작정이었으나 살기 위해서 집필을 해야 된다.
'...이제는 살기 위해서 글을 써야 되겠네.'
독자들은 좋아하겠지만, 정작 나는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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