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리나가 언급한대로 아카데미 측에서 신입생 모임이 예정돼 있다고 공지를 기재해줬다. 복도 게시판에 대자보마냥 공지를 붙여놓았으니 모르는 학생들은 아무도 없을거라고 확신한다. 나도 게시판에 붙여진 공지문을 하나하나 읽으며 자세한 일정 및 개최 위치를 재빠르게 확인했다.
모임이 개최되는 시기는 다음 주 토요일이며 위치는 입학식이 진행되었던 대강당이다. 참석 여부는 개인 자유지만 나는 리나의 압박 때문에 참석하는 편이 이롭다.
"뭐? 신입생 모임에 참석할 것 같다고?"
"응."
시간이 흘러 다가온 주말.
나는 간단한 운동과 집필을 모두 끝낸 뒤, 연무장으로 향하여 니콜과 만남을 가졌다. 그녀도 방금 막 모든 대련이 끝났는지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니콜은 내 말에 수건으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다가 살짝 이해가 안 된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갑자기? 난 네가 그런 거 싫어할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 참석하게 됐어."
"...어쩌다 보니?"
순간적으로 니콜의 음성이 약간 차가워졌다. 그와 동시에 얼굴을 뒤덮은 수건 사이로 드러난 금색 눈동자가 사나워졌다. 아무래도 막내 사랑이 지극한 누나이다보니 내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간파한 모양이다.
나는 섬뜩하게도 느껴질법한 니콜의 눈빛을 보자마자 다급히 입을 열었다. 친누나에게도 말 하나하나 조심해야 한다니 새삼 내 처지가 기구하게 느껴졌다.
"누, 누나가 걱정할만한 일은 없어. 나도 호기심에 참석하는 거야."
내 거짓말에 니콜은 썩 믿지 못 하겠지만 넘어간다는 뉘앙스로 답했다.
"...그럼 됐고. 날 찾아온 이유도 모임 때문이야? 물어보려고?"
"응."
"흐음... 모임이라..."
니콜은 얼굴의 땀을 대충 닦으면서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입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줬다.
"어이~"
"응?"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허스키하면서도 보이시한 톤이다.
그에 고개를 돌리니 멀리서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니콜의 친구, 아델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도 이제 막 모든 대련이 끝났는지 땀이 비오듯이 흘러내리는 중이다.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 나도 좀 껴주라."
"엑."
이윽고 가까이 다가온 아델리아가 내 목을 한 팔로 감싸며 친근하게 대했다. 나는 갑작스럽게 행해진 스킨십에 당황을 넘어 당혹스러웠다.
그 이유에는 스킨십도 있으나 아델리아의 복장이 문제였다. 현재 아델리아는 소위 민소매라 불리는 옷을 입고 있다.
부드러운 맨살의 감촉이 고스란히 느껴질 뿐 더러 땀과 섞여 은은하게 풍기는 체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가족을 제외하고 이성과의 접촉이 전무했던 나로서는 실로 자극적이었다.
전생에서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충격 때문에 교류를 하지 않아 더더욱 곤혹스러웠다.
"야! 뭐 하는 짓이야? 내 동생한테서 당장 떨어져!"
니콜도 아델리아의 스킨십은 예상치 못 했는지 버럭 소리치며 황급히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덕분에 내 목은 아델리아의 팔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얼굴이 화끈거리는 건 막을 수 없었다.
허나 아델리아는 니콜의 거센 행동에도 실실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내가 네 동생한테 허튼 짓을 할까 봐 그러는 거야? 걱정 마. 네 동생이 귀엽긴 해도 내 스타일은 아니라서."
"시끄러. 내 눈에 너는 그냥 위험분자야. 설마 아이작한테 공을 던졌던 기억을 머릿속에서 지운 건 아니겠지?"
"...그건 진짜 실수였어. 진짜 미안."
니콜이 2주 전에 발생했던 사건을 입에 담자 아델리아도 딱히 할 말이 없었는지 곧바로 사과했다.
그리고 아델리아는 그 뒤로도 니콜이 표독스러운 시선으로 쏘아보자 약간 무안했는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무슨 얘기하고 있던 거야? 궁금해서 왔긴 했는데."
"...별거 없어. 아이작이 신입생 모임에 참석하기로 했거든."
"신입생 모임?"
아델리아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며 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하늘색 눈동자에는 진한 흥미로움이 담겨있었다.
"신입생 모임이라... 옛날 생각나네. 그때는 정말 재미있었는데."
"너는 몰라도 난 최악이었어."
니콜과 아델리아도 신입생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던 모양이다.
또한 아델리아는 꽤 재미있었는지 미소를 짓고 있는 반면, 니콜은 진저리가 난다는 표정이었다. 정말로 극과 극의 반응이다.
"아무튼 신입생 모임은 사교회와 비슷한 점이 많지만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니야. 신입생들이랑 선배들이 한데 모여서 웃고 떠들고 놀면 돼. 아이작이 생각하는 것보다 꽤 재미있을걸?"
"그거밖에 없어? 사교회나 무도회처럼 정치적인 이야기가 왔다 갔다 하진 않아?"
"너 같은 애들이 무슨 정치를 알겠니? 단어 그대로 친분을 다지기 위한 모임이야."
"음..."
니콜은 과연 알고 있을까. 다른 누구도 아니고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제국의 황녀, 리나가 나를 꼬드겼다는 걸. 하지만 괜한 걱정을 줄 것 같으니 입 밖으로 꺼내진 않을 것이다.
나는 니콜의 설명을 잠자코 듣다가 이것저것 궁금한 점들을 묻기 시작했다.
"참석자는 신입생밖에 없어?"
"선배 몇 명이랑 조교를 제외하면 신입생밖에 없을거야."
"옷은 뭘 입고 가야해? 공지에도 없어서."
"교복을 입고 가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말끔히 차려입는 게 더 낫지.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잖아?"
"우리 귀족은 그렇다 쳐도 평민들은?"
"여기 옷 가격이 꽤 싼 편이야. 그리고 헤일로 아카데미에서도 평민에게는 장학금을 지급해줘."
니콜은 내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해주다가 손뼉을 치며 마침 잘 됐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이 기회에 아이작 옷을 사면 되겠다. 때마침 대련도 끝났으니 타이밍도 좋네."
"나 집에서 갖고 온 거 있어."
"그걸 입으려고? 절대 안 되지. 이 누나가 모처럼 꾸며줄테니까 잠자코 따라와."
갑자기 전개가 쇼핑으로 바뀌는 기분이다. 그래도 썩 나쁘지 않은 것이, 나는 여지껏 집에서 틀어박혀 지냈던지라 패션은 니콜이 더 잘 알고 있을 거다.
니콜은 쇼핑을 가기로 마음먹었는지 기대된다는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누나 씻고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빨리 갔다 올 게."
"응."
"아델. 너도 같이 갈래?"
"나는 패스. 지금은 자고 싶어."
그리하여 니콜과 아델리아는 씻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두 사람이 어두운 통로를 따라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땅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서늘한 돌바닥의 감각이 엉덩이를 타고 전해졌다.
기다리는 와중에 머릿속으로 모임이 어떻게 진행될지 곰곰이 생각했다.
'신입생 환영회 같은 건가?'
신입생 환영회라도 전생의 대학교처럼 장기자랑을 하거나 그러진 않을 것이다. 여기는 놀이 문화가 그닥 발달되지 않은데다 어쩌면 천박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맨 처음 사회자가 진행을 하고 그 후부터는 자유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까. 분위기를 돋구기 위해 음악가들을 초정하여 악기를 연주할 수도 있다.
리나 때문에 반강제적으로 참석하게 된 모임이지만, 은근히 기대가 된다. 어쩌면 협소하디 협소한 내 대인 관계를 약간이나마 완화해주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지인이라 할만한 사람들이 죄다 여자네?'
세실리, 마리, 리나, 신디, 아델리아.
이 다섯 명은 내가 아카데미에 입학하고나서 인연이 닿아 현재까지 완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내가 먼저 다가간 것도 아니고 그들이 먼저 다가온 것이다.
전생에서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나서 주변과 거의 단절되다시피 살았고, 환생하고도 그 점은 변하지 않았다. 현재의 부모님도 그런 내 성격을 걱정하셨으나 무리없이 잘 살고 있다.
'이렇게 보면 내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난 다수의 친구를 사귀기 보다는, 소수의 친구와 깊게 연을 맺는 편이다. 또한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고 상대방 쪽에서 먼저 다가오기를 바란다.
낯선 사람에게 먼저 다가갈 용기도 없고, 만난지 고작 몇 초만에 친구가 될 정도로 뛰어난 친화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솔직히 내게 선뜻 다가와준 이들이 고마웠다.
가끔 나를 곤란하게 만들긴 해도 그 정도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다. 제논 일대기와 관련이 된 것만 아니라면 말이지.
"아이작?"
"응?"
"왜 그리 멍 때리고 있어? 이제 출발하자."
상념에 잠겨있는 와중에 니콜이 환복까지 마치고 돌아왔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델 누나는 먼저 갔어?"
"응. 마음 같아서는 따라가고 싶은데 오늘은 피곤하다고 먼저 들어갔어. 그런데 언제부터 아델을 누나라 부르기 시작한 거야?"
"아델 누나가 그렇게 부르라고 해서. 누나가 잠깐 대련하러 나갔을 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거든."
"흠... 그래?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던?"
"딱히? 내 볼을 꼬집거나 이상형이 뭔지 묻는 것빼고는?"
"이 쌍년이..."
괜히 말했나. 나는 악귀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한 니콜의 표정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후우... 아니다. 이건 나중에 생각하고, 아이작은 생각해놓은 옷이라도 있어?"
"예복 정도?"
"예복이라..."
니콜은 예복이라는 대답에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충 감을 잡았다는 듯이 말했다.
"확실히 아이작은 말랐으니까 예복이 안성맞춤이겠다. 전체적으로 화려하지 않고 수수한 스타일?"
"응."
"흠... 그래도 스카프에는 문양이 박혀있는 게 좋겠네. 양복 색깔은 네 머리색이랑 비슷한 걸로 고르고."
"빨간색? 그럼 너무 눈에 띄지 않아?"
안 그래도 머리카락부터가 빨간색, 자세히 구분하자면 선홍색이라 멀리서도 눈에 띄는 편이다. 하물며 눈동자도 맹수처럼 빛나는 금안이라 한 번 만났다하면 결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다.
하지만 거부가 담긴 내 질문에도 니콜은 검지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이작이 착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네. 너는 옷이 아니더라도 빨간머리 하나만으로 어디서나 눈에 띈다는 점이야."
"... ..."
"당장 데이브도 실력으로 유명해지기 전에 빨간머리로 알려졌는걸? 데이브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빨간머리는 알고 있을 정도였어."
그렇다면야, 할 말이 없어졌다. 전에도 생각한 거지만 이 세상에는 빨간머리가 드물다 못해 거의 없는 수준인 것같다.
"그러고 보니 형은 지금 뭐 하고 있는지 알아?"
"글쎄? 편지를 보내긴 했는데 지금도 훈련 중일걸? 자세한 건 나도 잘 몰라."
"누나도 네이비 기사단에 입단할 생각이야?"
"가능하면 그러고 싶지만 네이비 기사단이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쉽게 입단할 수는 없어. 경쟁률이 무려 1대 100인데다 너무 힘든 나머지 다른 곳으로 전출가는 사람들도 많아."
이렇게 들으니 아버지가 얼마나 강하신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평범한 기사단원이 아니라 무려 기사단장까지 꿰찬 몸이셨으니 미네르바 제국에서 전술병기급으로 다뤘을 것이다.
하물며 네이비 기사단은 인간보다는 이 종족과 싸우는 일이 더 많다. 최근에는 잠잠하다지만 과거에는 시도때도 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수인과 충돌을 빚었으며, 더 나아가 엘프와도 싸운 적이 있다.
나는 아버지야 말로 판타지 속 은둔 고수이지 않을까, 라는 시답잖은 생각하다가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누나도 신입생 모임에 참석했지?"
"응."
"혹시 드레스 입고 간 거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드레스를 입고 갔지."
"그때 무슨 일 없었어?"
친동생인 내가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친누나, 니콜은 어머니를 닮아 매우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다. 더군다나 옛날부터 아버지 밑에서 꾸준히 해온 단련 덕분에 건강미 넘치는 몸매를 갖고 있다.
이런 미녀가 드레스를 입고 모임에 참석했다? 온갖 시선을 받는 건 기본이고 특히 남자들에게 무수한 대쉬를 받았을 확률이 크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그닥 좋은 기억은 없어. 남자들이 하도 들러붙어서 제대로 즐기지도 못 했거든. 다음부터는 모임에 일절 나서지도 않았고."
니콜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 목소리에는 귀찮음과 후회가 한가득 담겨있다.
"음. 역시. 그것 말고는 더 없어?"
"말해줄 생각없으니까 너나 신경 쓰세요."
"알았어."
더이상 깊게 파고들었다가 니콜의 심기를 건드리면 곤란하니 바로 관두었다. 게다가 니콜 같은 미녀의 고충은 남자인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니콜은 내가 질문하기를 그만두자 장난기어린 미소를 짓더니 은근하게 물었다.
"왜? 아이작은 누나가 드레스 입은 모습 보고 싶어?"
"아니. 전혀. 눈만 버릴 것 같아."
"하하하. 우리 아이작은 농담도 잘하네?"
"악!"
결국 볼이 꼬집혔다. 그녀 딴에는 약하게 꼬집은 거겠지만 기본적인 악력이 무시무시한지라 엄청 아프게 느껴졌다.
아무튼 간에 남매의 다정한 이야기를 뒤로 하고, 우리 둘은 머지않아 옷가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헤일로 아카데미 번화가에 위치한 옷가게라 그런지 규모가 상당히 큰 편에 속했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옷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안내원이 영업용 미소를 지어주며 우리를 환대해줬다. 나는 옷가게에 처음 온지라 살짝 주춤거린 반면 니콜은 능숙하게 받아쳤다.
"남성용 예복을 하나 맞추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면 되나요?"
"네. 남성용 예복 코너는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가자."
"응."
그렇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걷다보니 남성용 예복 코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남성용 예복 코너라는 말에 어울리는 듯, 다양각색의 예복들이 나열돼 있었다.
약간 백화점 같은 느낌에 떨떠름해졌으나 판타지니까라며 넘어갔다. 전생의 상식을 대입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도 없다.
"하아... 이것도 별로야. 이거 말고 다른 건 없어?"
"저... 손님. 죄송하지만 이 옷이 마지막입니다."
"뭐? 지금 장난하자는 거야? 겨우 이거밖에 없다고?"
코너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선객이 있던 모양이다. 그런데 상황이 조금 이상했다.
"우리 저택에는 이것보다 더 많은 옷이 있다고! 그런데 이것밖에 없다는 게 말이 돼?"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 가게에서는 이 옷들이 전부입니다."
"죄송하면 다야? 어떻게든 더 갖고 와야 할 거 아냐?!"
손님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잔뜩 진상을 부리고, 그에 여자가 어쩔 줄 몰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와 니콜은 무슨 상황인지 보러 가기 위해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향했다. 어차피 정장을 맞추기 위해서는 종업원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윽고 소란의 근원지로 도착하자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저 녀석은...'
전신 거울 앞에 총 3명의 남녀가 서 있었다. 고함을 지른 남자와 그 옆의 어쩔 줄 몰라하는 여종업원, 마지막으로 멀찍히 떨어진 남자가 팔에 옷을 걸친 채 기립해있다.
또한 고함을 친 남자는 엄청나게 화려한 예복을 입었다. 이 세상 패션에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엄청난 가격을 자랑할 듯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남자의 외모가 더 눈길을 끌었다. 나름 잘생긴 축에 속하지만, 그걸 전부 깎아먹을 정도로 표정이 험악해진 상태라 좋게 봐줄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저택에 있는 거나 갖고 올 걸 그랬나? 헤일로 아카데미라 해서 괜찮은 줄만 알았더니 전혀 아니었어."
"... ..."
"...응?"
난처하다는 듯이 중얼거리던 남자가 나와 니콜의 시선을 느꼈는지 이쪽을 쳐다봤다.
그리고 나와 시선을 마주하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살짝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놈은..."
"... ..."
화려한 예복을 입은 남자의 이름은 잭슨. 첫 날부터 세실리와 리나에게 작업을 걸었다가 대차게 깨졌던 백작가 영식이다.
또한 내가 세실리와 리나의 관심을 받는다는 이유로 나에게 앙심을 품은 사람이기도하다. 같은 수업을 들을 때마다 사나운 눈빛으로 노려보니 그정도는 알 수 있다.
정작 나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지만. 저 한 명에 신경을 쓰기에는 내가 너무 바쁘다.
아무튼 각설하고- 나는 순식간에 고요해진 상황 속에서 무슨 말을 꺼낼지 고민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안녕."
"... ..."
내 무덤덤한 인사에 잭슨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