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9화 (10/763)

< 9화 >

"...그건 왜 물으시죠?"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온 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 이러할까.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차마 감추지 못하며 리나에게 되물었다. 그러면서 오른손을 슬며시 감싸는 건 잊지 않았다.

리나는 내가 당황하자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윽고 질문에 대한 대답을 꺼냈다.

"황궁에서 일하는 사관들 대부분 그쪽에 굳은살이 박혀있거든. 아이작도 같은 이유인가 싶어서."

그녀의 말마따나 여기는 아직 타자기도 발명되지 않아 오로지 수기로만 문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러니 서류를 작성하는 사람, 특히 황궁에서 일하는 사관들의 손에는 굳은살이 자연스레 배길 수밖에 없다.

나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재빨리 두뇌를 회전시켰다. 그나마 다행인 건 리나는 내가 책을 쓰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른다. 이에 납득이 갈 수 있겠끔 대답하면 상황을 슬기롭게 넘길 수 있다.

그리하여 고민에 고민을 거친 결과, 간신히 알맞는 대답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었다.

"...공부하다가 생긴 겁니다. 공부하면서 노트에 필기하는 습관이 있거든요. 조금 더 쉽게 기억하려고요."

"흐음... 그래? 하긴 지식을 온전히 습득하려면 그런 습관이 생기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네. 나도 한때 황궁에서 가정 교육을 받으면서 그랬으니까."

다행히 어느정도 통한 모양이다. 비록 내 반응 때문인지 몰라도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지만 들킨 것보다야 훨씬 낫다.

이후로 내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쯤, 리나가 아닌 마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너 손 엄청 예쁘다. 한 번 봐도 돼?"

"으응? 내 손?"

"응. 나랑 한 번 비교해보자."

마리가 쫙 편 손을 나에게 보여주면서 권유했다. 나는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해졌지만 딱히 상관없는 문제였기에 곧바로 받아들였다.

"우와. 너 손 진짜 예쁘다. 나보다 더 예쁜 거 같은데?"

자기 손과 내 손을 비교한 마리가 진심을 담아 감탄했다. 그도 그럴게 펜혹 때문에 그렇지, 손 자체는 매우 예쁜 편이었다.

손가락이 길고 가느다란 건 물론이고, 피부마저 하얗고 맨들맨들해 '섬섬옥수(纖纖玉手)'라는 사자성어가 잘 어울렸다.

나는 마리의 감탄에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머니에게도 칭찬받았던 부분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들으니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졌다.

"혹시 따로 관리라도 하는거야?"

"아니. 그냥 원래부터 이랬어."

"완전 부럽다. 난 걸핏하면 피부가 갈라져서 짜증나는데."

마리가 투덜거렸지만 그녀의 손도 매우 예쁜 편이다. 공작가 영애이니 외모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분에 신경을 쏟아부었겠지.

분위기가 바뀐 덕분일까, 긴장으로 두근거렸던 심장이 차차 진정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자기 손을 보며 투덜거리는 마리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아, 맞다. 세실리도 한 번 손 보여줄래?"

"네? 저요?"

"응. 마족의 손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세실리는 마리의 기습적인 질문에 붉은 눈을 깜빡거렸다. 그녀가 편하게 반말을 사용했다는 부분은 신경 쓰지 않은 듯했다.

이윽고 세실리는 잠깐 망설였다가 조심스레 손을 보여줬다. 그런데 일국의 공주의 손이라기에는 굳은살이 너무 많았다. 특히 손바닥은 거북이 등껍질마냥 거칠고 갈라져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그녀의 손 상태에 모두가 함부로 입을 열지 못하고 있을 때, 나는 그녀의 손바닥이 어디서 본 듯한 기분이 들어 자세히 들여다봤다. 가만 보니 아버지, 그리고 형과 누나의 손 상태와 똑같다.

이건 무수한 단련의 흔적이다.

"혹시 검을 쓰세요?"

"아."

내 질문에 리나도 뒤늦게 깨달았다는 탄성을 내질렀다. 세실리는 쑥쓰럽다는 듯이 손을 감싸며 대답했다.

"네. 어릴 때부터 검술을 배웠거든요."

"마족은 마법에 특화돼 있지 않나요?"

내가 마족과 관련된 정보를 모을 당시에는 그렇게 들었다.

마족은 엘프와 더불어 태생적으로 마법에 관해서는 다른 종족보다 월등하다. 인간이 온갖 복잡한 연산을 계산하여 마법을 발현한다면, 마족은 그냥 숨 쉬듯이 마법을 펼친다.

더군다나 마족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검은 마나'는 일반적인 마나보다 출력이 몇 배는 강하다. 그래서 일반적인 마법사가 불덩이를 하나 던지면 마족은 아예 메테오를 떨어뜨린다.

"그것도 맞지만 저는 헬리움의 공주다보니 여러가지 무술을 배운 상태에요. 알다시피 '절제'는 우리 마족에게 필수적인 소양이거든요."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이 말이죠?"

전생에서도 운동선수나 소방관, 특수부대 군인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몸도 그렇고 정신력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좋아하는 걸 못 하고 해야 하는 것만 해야하며 가끔씩 극한의 상황에 몰리니 정신력이 단련될 수밖에 없다.

내가 그 생각을 하며 말을 건내자 세실리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아니, 제가 무슨 말을 했다고 그런 표정을 지으세요.

뒤이어 세실리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정말 좋은 말이네요. 늘 새겨들어야겠어요."

"...도움이 됐다면 저야 영광입니다."

슬쩍 리나의 눈치를 보니 그녀의 눈빛이 미묘해진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애써 무시했다.

그로부터 잠시 후, 리나의 입술이 열리기 직전이었다.

짜악!

강의실 내부에 난데없이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단순한 박수였다면 주변 소리에 묻혔겠지만 메아리가 치는 것처럼 울려 퍼져서 모두의 집중을 이끌었다.

이에 나는 물론, 세 사람도 고개를 앞쪽으로 돌렸다. 언제 강의실에 왔는지 모를 노년의 남자가 칠판 앞에 당당히 서 있었다.

인문학 교수였던 비루스가 전체적으로 깐깐한 이미지였다면, 이번에 들어온 교수는 인자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거기다 풍성한 수염하며, 길게 기른 백색 머리카락을 보면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간달프처럼 생겼다.

"흠. 이제 말할 준비가 되었군. 이제 쉬는 시간은 끝났으니 모두 집중해주게."

새로 들어온 교수는 학생들이 자기한테 집중하자 고개를 묵직하게 끄덕이며 지시했다. 나는 간달프처럼 생긴 교수를 쳐다보다가 시간표부터 체크했다.

시간표에는 '리프 메그너'라고 적혀있었는데, 마법학 교수이자 제논 일대기를 비난하던 평론가 중 한 명이다.

"내 이름은 리프 메그너, 자네들에게 마법학에 관한 지식을 전수해줄 교수라네. 만나서 반갑네."

메그너 교수가 고저없는 목소리로 자기 이름을 밝히자마자 박수 소리가 일제히 터져 나왔다. 나는 박수를 치다가 미리 가져왔던 노트와 마법필을 책상 위로 꺼냈다.

인문학 교수였던 비루스 교수는 딱히 메모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꺼내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를 것 같았다. 애시당초 스타일부터 다를 뿐더러 무려 마법학이다.

판타지하면 자연스레 떠올리는 힘, 마법.

전에도 말했다시피 마법은 고위층만 사용할 수 있는 특권에 가깝다. 하물며 마법과 관련된 지식을 책으로 내도 온통 이해하지 못할 단어들 천지다. 마법사끼리만 알아볼 수 있도록 기록해 놓아서 너무 불친절했다.

"마법에 관심이 많나 봐? 아까는 지금처럼 안 하더니."

"응. 관심 많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옆에서 마리가 의외라는 목소리로 물어도 단칼에 대답했다. 마법! 이 얼마나 멋진 울림인가!

비록 무학처럼 마법을 직접적으로 발현하지는 않겠지만 이론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구인이었던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값진 지식이다.

머지않아 강의실을 가득 채웠던 박수 소리가 잦아들고, 메그너 교수가 늙수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내 귀에 조금 거슬리는 말이 있더군. 제논 일대기라고 했나?"

"...음?"

왜 시작하자마자 제논 일대기가 언급되는 거야. 그리 생각할 때였다.

메그너 교수는 불쾌감을 감추지 않은 표정을 짓더니 내 눈 밑을 꿈틀거리게 만들만한 발언을 꺼냈다.

"그딴 저급한 소설은 가능하면 내 강의 시간에 언급하지 않도록 조심하게. 난 그런 걸 소설로 인정하기 싫으니까 말이야."

"... ..."

신개념 악플인건가. 아니지. 악플은 신문에서 봤던 거고 저건 그냥 악담이다. 그것도 당사자 앞에서 퍼붓는 악담.

정작 본인은 악담의 주인공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걸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좋지 않음을 넘어서 기분이 매우 더러웠다.

그래도 뭐 어쩔 수 있겠나. 그냥 꼰대라고 생각해야지. 나는 답답함에 콧숨을 길게 내쉬었다가 양옆을 번갈아봤다.

아니나 다를까, 하나같이 죄다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특히 그중 세실리가 가장 심했는데 당장이라도 싸울 것처럼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사나운 기운을 내뿜는 중이다.

어찌어찌 인내심을 발휘해 갈무리하고 있는 걸로 추정된다만 일반인인 나로서는 조금 무서웠다.

"...세실리?"

"...응?"

"조금 추워지려고 하는데..."

"아...! 미, 미안..."

다행히 리나가 조용히 지적하자 세실리가 다급히 기운을 갈무리하며 곧장 사과했다. 나는 소름이 돋은 팔을 살살 문지르면서 정면을 쳐다봤다.

갑분싸라고 해야 하나. 메그너 교수가 제논 일대기를 대놓고 까내리자 강의실은 쥐 죽은듯이 고요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메그너 교수는 쯧쯧 혀를 차며 안타까워했다.

"쯧쯧쯧... 그 놈의 불쏘시개가 눈을 낮추게 만들었구만. 안타까워. 정말 안타까워."

그러면 본인이 처음부터 어려운 단어를 쓰지 말던가. 귀족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을 집어넣었으면서 남탓하는 꼴이라니. 어이가 저 멀리 손을 흔들며 가출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메그너 교수는 순식간에 싸늘해진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의를 시작했다. 비루스 교수 때와는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였으나 일단은 수업을 듣는 것이 좋을 듯했다.

"우선 미리 알아둬야 할 점이, 마법학을 배운다고 해서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건 아니라네. 그럼 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간단해. 마법학은 마법과 관련된 지식을 배우는 거고, 마법은 말 그대로 마법을 배우는거지."

전생과 비교하자면 마법학은 기계의 역사를 배우고, 마법은 그 기계를 제작하는거다. 마법이 고위층에게만 허락된 힘이어도 이미 생활 속에 녹아들어 있으니 그 역사도 매우 방대할 것이다.

'처음에 쓸데없는 말만 안 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마법학에는 관심이 많다. 그런데 교수가 참 좆같다.

메그너 교수에 대한 비호감은 이미 바닥을 뚫고 맨틀까지 나아간지 오래다. 어떤 사람이라도 자기가 공들여 창작한 작품이 바로 앞에서 비난당하면 빡이 칠테지.

사각- 사각-

나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진정시키면서 마법필로 노트에 기록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은 노트와 펜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끄적이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렀다.

"그렇다면 질문하기 전에... 거기 빨간머리 학생."

"...네?"

왜 또 나야. 이 놈의 빨간머리 때문인가.

내가 크게 당황하는 동안 메그너 교수가 나를 부른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

"아까부터 무언가 기록하는 거 같은데, 마법과 관련된 거라면 기록하지 말게나."

"...어째서죠?"

"마법은 본디 예로부터 선택받은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힘. 결코 함부로 퍼져나가서는 안 되는 것이네. 설령 그것이 단편적인 지식이라고 해도 말이야."

"아니, 그게 뭔..."

꼰대같은 발상이지? 그럼 이 마법필이랑 숙소에 배치돼 있는 온도 조절 기능은? 냉장고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위의 말들이 목구멍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저 발언은 비루스 교수의 신념과 정면으로 맞서는 말이다.

어쩐지 마법과 관련된 책이 드물더라니 마법사는 저런 꼰대들밖에 없는 듯했다. 저런 생각을 당연히 여기는 걸 보면 알만하다.

"그럼 교수님은 지식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걸 부정하시는 건가요?"

결국 보다 못한 한 학생이 질문을 날렸다. 나 또한 저 말을 하고 싶었기에 메그너 교수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메그너 교수는 질문을 듣고 풍성한 수염을 쓰다듬더니 예상 밖의 대답을 꺼냈다.

"그건 아닐세. 마법에만 국한된 이야기지, 다른 지식은 상관없다네. 마법은 실로 위험한 힘이니까 말이야. 그런 힘을 숨 쉬듯이 쓰는 종족, 그러니까 마족과 엘프를 보면 알 수 있어. 거기다 마족처럼 가끔 가다가 제어까지 못 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재앙 수준이라네."

"... ..."

"그 불쏘시개에서는 비극적인 숙명을 지닌 존재로 묘사되지만 마족은 결국 마족일 뿐이야. 아무리 인간인 척 해도 결국 본질은 바뀌지 않는 법이지."

저거 대놓고 종족차별을 하는 거잖아. 당연하지만 메그너 교수가 저 발언을 꺼내자마자 많은 시선들이 세실리 쪽으로 몰려들었다.

나는 혹여 세실리가 분노하지 않을까 걱정됐지만 그녀는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이정도는 대충 예상했다는 표정이다.

하기야 아무리 제논 일대기가 마족을 향한 시선을 바꾸었다고한들, 마족을 여전히 불안 요소로 취급하는 사람도 많다. 거기다 메그너 교수는 꼰대에다가 제논 일대기를 부정하는 사람이니 더더욱.

"괜찮아. 세실리. 저 교수가 하는 말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알았지?"

"...응."

리나가 소근거리며 달래줘도 세실리의 얼굴은 도통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의기소침하게 떨어뜨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나서 최대한 궁리했다. 강의실에서 쫒겨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메그너 교수에게 엿을 먹이자고. 그가 결코 잊을 수 없는 빅엿을 먹이자고 말이다.

때마침 운 좋게도 메그너 교수가 나를 재차 지목했다.

"그럼 쓰잘데기 없는 말은 뒤로 미루고, 거기 빨간머리 학생."

"...네. 교수님."

"학생은 마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뭐긴 뭐야. 존나 신기한 힘이지.

그걸 곧이곧대로 말했다간 엿도 못 먹이고 당장 쫒겨나가기만 할테니 대충 대답했다.

"...사람의 수고를 덜어줄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해보겠나?"

"음..."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비루스 교수 때도 그렇고 내가 다시 한 번 일어서자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뒤이어 나는 방금 전, 메그너 교수가 했던 발언을 그대로 되돌려줬다.

"마법은 분명히 위험한 힘은 맞지만, 잘 사용한다면 사람의 목숨을 구하거나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해줄 수도 있는 힘입니다."

"뭐?"

"...아이작 씨?"

메그너 교수는 내 발표에 인상을 찌푸렸고, 세실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법은 선택받은 자만이 사용할 수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생활 속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지금 강의실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것도 마법이고, 헤일로 아카데미에 입학하면서 발급받은 신분증도 마법이 깃들어있습니다. 이처럼 마법은 양날의 검이나 다름없는 힘입니다. 어떤 때에는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기도 하지만, 어떤 때에는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뿐더러 생활에 편의를 더해주죠."

"... ..."

"설령 그 힘을 사용하는 주체가 마족이어도 상관없습니다. 당장 우리 인간도 마법을 대량살상무기로 사용하는 마당에 마족이라고 차별하는 건 어불성설이죠. 그러니 교수님이 언급하신 재앙은 마족이 아니라, 마법사 그 자체라고 봐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말을 이으면 이을 수록 메그너 교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솔직히 나 같아도 심기가 불편할 것이다. 본인이 옳다고 생각한 것들을 어느 한 풋내기가 모조리 부정한 꼴이니까.

메그너 교수는 화를 가라앉히는 것처럼 한숨을 푹 내쉬더니 착 가라앉은 톤으로 입을 열었다.

"...개소리를 아름답게 꾸미는 것도 능력이겠지. 하지만 내가 한 질문은 마법의 정의지, 그딴 변론이 아니라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마법의 정의를 말하라는 걸세. 마법의 정의."

그 질문에 나는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대답했다.

"어려운 단어들로 설명해봤자 더 못 알아들을텐데요? 교수님도 아시다시피 여기 학생들은 눈이 낮아서요."

하하하하!

내 말에 강의실에는 미약한 웃음꽃이 폈다. 마리는 푸핫! 하며 웃음을 터뜨렸고 리나도 통쾌했는지 조숙하게 웃음을 흘렸다.

다만 세실리만큼은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녀와 눈을 마주친 나는 빙긋 웃어줬다.

내가 웃어주자 아까 전까지 침울해있던 그녀도 작게나마 웃음을 흘렸다.

"후우... 이보게. 학생."

그순간 메그너 교수가 나를 불렀다. 교수가 부름과 동시에 웃음꽃이 폈던 강의실 내부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네. 교수님."

"난 자네같이 불성실한 학생은 필요없어."

이어서 메그너 교수는 화가 단단히 난 얼굴로 내게 선고했다.

"꺼지게."

"...네?"

"원하는 대로 내 친히 눈을 낮춰서 말해주겠네. 나가."

메그너 교수는 강의실 밖을 가리키며 단호하게 말했다. 강의실의 분위기가 방금 전보다 더욱 나락으로 떨어졌다.

나는 메그너 교수와 한동안 눈싸움을 하다가 양옆을 둘러봤다. 마리는 눈치를 보고 있었고, 리나는 놀랐다는 표정을, 세실리는 걱정으로 가득 찬 눈빛을 보내는 중이다.

그에 나는 피식 웃으며 안심하라는 듯이 입을 열었다.

"어차피 다음 시간에 다시 들어올 거예요."

"뭘 그리 중얼거려? 빨리 나가지 못 해!"

결국 메그너 교수가 화를 참지 못해 고함을 질렀다. 화가 제대로 났는지 메아리가 울려 퍼질 정도로 엄청난 성량이다.

나는 그가 버럭 소리치자마자 다급히 문쪽으로 내려갔다. 문쪽으로 내려가면서 메그너 교수가 나를 보며 집씹듯이 중얼거렸다.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 요즘 애들이란..."

네네. 꼰대 말 잘 들었고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빅엿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거.

나는 문 쪽으로 가는 척 하다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다시 되돌아갔다. 메그너 교수는 되돌아가는 나를 보자마자 짜증난다는 투로 내게 물었다.

"왜 다시 들어오나?"

"뭘 놓고 가서요."

"그게 뭐지?"

메그너 교수가 묻자마자 그와 똑바로 마주했다. 책상에 앉아있는 학생들이 이쪽을 보고 있는 게 생생히 느껴졌다.

그럼 이제 마지막 빅엿을 먹을 차례다. 이 꼰대 악플러야.

나는 단 한 번도 더듬지 않고 방대한 양의 말들을 줄줄이 입 밖으로 꺼냈다.

"다량의 백지로 구성돼 있으며 거기에 기록을 할 수도 있고 배운 지식을 요약하거나 정리할 수도 있으며, 어떤 때에는 정보를 분석하기 위해 필요하고, 어떤 때에는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제작하기 위해서는 인쇄소의 도움이 필요하며 과거에는 비싼 값을 자랑했지만 지금은 시중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요."

"... ..."

어우. 숨 차다. 역시 영화는 영화인 모양이다. 그래도 말을 더듬지 않고 끝까지 해냈으니 만족스러웠다.

나는 겉으로 최대한 담담한 척 하면서 메그너 교수의 반응을 확인했다. 그는 입을 살짝 벌린 채 자기가 무엇을 들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게 대체 뭔데?"

뭐긴 뭐야.

"노트요."

일부로 놔두고 갔던 내 노트지.

하하하!

장황한 설명과 달리 너무나 간단했던 물건의 정체에 강의실에는 다시 한 번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러나 메그너 교수는 굴욕감에 얼굴이 살짝 붉어진 상태였다.

이윽고 메그너 교수는 학생들을 한 번 노려본 뒤에 분노보다는 황당에 가까운 목소리로 나를 질책했다.

"그냥 노트라고 하면 되지 왜 그렇게 설명했나? 나를 시험하는건가?"

아뇨. 엿 먹이려고 하는건데요.

위의 말을 그대로 말할 수 없었지만 비슷한 요지의 대답은 할 수 있었다.

"눈이 높으신 교수님이라면 알아들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요."

하하하하!

결국 웃음밭이 된 강의실 내부와 달리, 메그너 교수의 표정은 썩 볼만했다. 나는 망연자실한 메그너 교수를 놔두고 제자리로 돌아가 노트와 펜을 가져갔다.

"너무 무모하지 않아? 그러다 정학을 넘어서 퇴학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노트와 펜을 가져가던 중, 리나가 내 안위를 염려해줬다. 말은 그렇게 해도 그녀도 내심 통쾌했는지 미소짓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한 음성으로 대답해줬다.

"그러면 저 교수의 평가가 더 안 좋아질 걸요? 뭐, 지금도 평가가 나락이긴 하겠지만."

이정도 정치질 쯤은 간단하다. 정말로 내가 과도한 징계를 먹게 된다면 메그너 교수의 신상은 보장할 수 없게 된다.

메그너 교수는 많은 학생들이 듣는 앞에서 파란을 몰고 온 제논 일대기를 저급한 소설이라고 폄훼했으며 더 나아가 마족까지 차별했다. 이것만으로도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가능성이 약간이나마 존재한다.

'부모님한테 한 소리 듣겠지만...'

그순간이었다.

"...역시 재미있네."

"네?"

"아냐. 아무것도."

내가 다시 물어도 리나는 빙긋 웃어줄 뿐이었다.

*****

다음 날이 되었다. 내가 강의실 자리에 앉자 백색 머리카락의 미녀, 마리가 내 옆자리에 앉으며 엄청난 소식을 알려줬다.

"야. 그거 들었어?"

"뭐가?"

"메그너 교수 있잖아. 교수직 박탈당한 거."

"뭐? 진짜?"

"응. 제논 일대기를 불쏘시개라고 욕한 것부터가 아웃이었다는데?"

"... ..."

난 새삼 내 작품의 위력을 실감하게 됐다.

'이러다 배드엔딩으로 내면 화형 당하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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