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
신문을 보게 된 나의 감상평은 딱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고.
나는 그저 킬링 타임용으로 쓴 책이었는데 뜬금없이 세상이 어수선해졌다. 이 세계는 과학이 발달되지 않아 스마트폰은커녕 라디오조차 없어서 오직 신문으로만 세상의 소식을 알려준다.
헌데 이 신문에는 내가 쓴 책을 주제로 대서특필 돼있다. 황당할 수밖에 없다.
"하하하하! 역시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었어! 장하다! 우리 막내아들!"
내가 멍청한 표정으로 신문을 읽는 도중에 앞쪽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멍해진 얼굴 그대로 신문에서 시선을 떼어 고개를 들어올렸다.
화염처럼 활활 타오르는 듯한 사지갈기처럼 기른 적색 머리카락과 멋있게 관리한 턱수염. 맹금류처럼 빛나는 금색 눈동자.
역전의 용사처럼 남자다움을 물씬 풍기는 이 중년인의 이름은 호크 듀커르 마이샬.
내 아버지 되는 사람이다.
"당신도 참. 제가 이때까지 말했잖아요. 아이작은 기사가 되는 것보다 학자가 되는 게 좋다고."
그 옆에 아리따운 여자가 두터운 호크의 팔을 축 치며 아양을 떨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남색 머리카락과 인형처럼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특이하게도 눈동자 색이 보라색이었다.
이쯤되면 모두 다 눈치챘겠지만 많아봤자 겨우 30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여자가 내 어머니, 안나 듀커르 마이샬이다.
"우리 아이작도 대단하네. 모두가 널 찾고 싶다고 하더라."
어머니는 우아하게 웃으시더니 행복한 표정으로 내게 축하의 말을 전했다.
'죄송하지만 어머니. 그 말은 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위의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간신히 억눌렀다. 이 화목한 분위기를 괜히 망가뜨리기 싫었으니까.
그저 바보처럼 어색하게 웃을 뿐이다.
"...되도록 익명을 쭉 유지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나 최후의 방패막이는 있어야하지 않겠나. 나는 소심한 목소리로 부모님에게 부탁했다.
내 소설을 익명으로 발간할 수 있던 것도 부모님이 도와준 것이었으니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지금 와서 말하지만 나는 괜히 시끄러운 곳에 얽히기 싫다. 당장 신문에서조차 난리인데 바깥은 어떨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글쎄다. 네가 원한다면 해주겠지만 얼마 안 가서 정체가 들통날텐데?"
"왜죠?"
"이 애비가 귀족이어도 일개 남작에 불과해. 멀리 가지 않아도 황실에서 널 찾고 있다만?"
"아."
나는 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아버지가 아무리 귀족이라지만 오등작 중 최하위인 '남작'이다.
더구나 아버지는 본래 평민 기사 출신으로, 무시무시한 업적을 쌓아 귀족이 된 케이스라 제대로 된 귀족이라 하기에도 애매하다.
그러니 위에서 작정하고 나를 찾는다면 속수무책이라는 의미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나도 네가 무얼 걱정하고 있는지 안다. 이 애비가 손이 닿는대로 막아보마."
내 불안한 표정을 읽었는지 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투박하고 굳은살이 박혀있어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지만 마음이 평온해졌다.
"엄마도 다과회에서 최대한 상황을 살펴볼게. 엄마는 우리 아이작이 힘들지 않았으면 하거든."
"어머니..."
이 얼마나 따뜻한 온기란 말인가. 나는 감동했다는 표정으로 부모님을 바라봤다.
내가 이들을 부모로 인정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따스한 온정 때문이다.
이윽고 어머니는 흐뭇한 미소를 짓더니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러니 아이작. 이 엄마가 하나만 물어도 되겠니?"
"뭔데요?"
"다음 편은 언제 나오니?"
"... ..."
"이 엄마는 릴리랑 진이 이어지는 걸 기다리고 있단다."
내 감동 물려내.
나는 방긋방긋거리는 그녀의 얼굴을 황망하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감동도 감동이지만 어머니에게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진이 최종보스입니다. 어머니...'
내가 쓴 제논 일대기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 러브 라인을 타는 조연이 있다. 방금 어머니가 언급한 '릴리'와 '진'이다.
참고로 진은 마족이고 릴리는 성직자, 그것도 차기 성녀라 추앙받는 인물이다.
이것만 본다면 애틋한 러브 라인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야 전생에서 사탄대학 교수라고 불렸던 인물.
최후반부, 진은 대악마를 완전히 소멸시키기 위해 잔재를 받아들여 이야기의 진 최종보스로 승격할 예정이다.
멘탈이 흔들린 주인공이 쓰러트리지만 유언으로 릴리를 애타게 찾는 건 덤이고.
'...진짜 좆 됐다.'
가족이 내 소설을 읽는 건 괜찮다. 그런데 막상 입으로 들으니 가슴이 쫄린다.
지금이라도 해피 엔딩으로 바꿀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태까지 뿌려놓은 떡밥과 복선이 많아 그럴 수도 없는 노릇.
어차피 엔딩까지 시간이 남아있으니 그때까지 내 목숨줄은 붙어있을 것이다.
"여보. 아이작도 이제 곧 아카데미에 입학할텐데 너무 부담주지 마. 그러다 이야기가 엉뚱하게 흘러가면 어쩌려고?"
"어머. 아이작 작가님? 제가 혹시 실례를 저지른 건..."
"아, 좀!"
결국 수치심에 내가 버럭 소리치자 부모님이 제 개성에 맞는 웃음을 터뜨리셨다. 그에 반해 내 얼굴은 실시간으로 붉어지는 중이지만.
"미안하구나 얘야. 아무튼 아카데미는 무학(武學)보다는 문학(文學)으로 들어갈테냐?"
아버지가 웃음을 멈추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앞으로 내가 입학하게 될 아카데미를 떠올렸다.
아카데미, 그러니까 '헤일로 아카데미'는 이 나라 최고의 교육기관이다.
최고의 교육 기관인만큼 어마어마한 교육 과정을 자랑하는데, 그냥 전생의 대학교와 똑같다.
단지 무력에 집중하는 무학과 지력에 집중하는 문학, 이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을 뿐.
'내가 무학에 왜 들어가?'
이 세상은 몬스터가 존재하는지라 호랑이나 사자, 심지어 코끼리조차 '따위'로 취급하는 괴물들 천지다. 그리고 나는 여타 소설 속 주인공처럼 무력에 재능이 없다.
옛날에는 아버지가 자기처럼 기사가 되라며 혹독하게 훈련시켰으나 내가 워낙 빌빌거려서 포기하셨다.
"네. 전 무학보다는 문학이 더 좋아서요."
"흠... 알겠다. 대신 매일마다 체력 훈련은 필수다. 알겠니?"
"물론이죠."
체력 훈련은 꼬박꼬박 받고 있다. 체력 훈련은 단순히 체력 뿐만이 아니라 인내심도 길러줬으니까.
당장 컴퓨터 앞에 30분도 못 앉아있던 내가 3시간 동안 집필할 수 있는 집중력을 갖게 됐다. 그 덕택에 한 달마다 책 한 권 씩 출판할 수 있던 거고.
다만 펜촉으로 집필한 탓에 굳은살이 심하게 박혔지만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혹시 아카데미에 가서도 계속 쓸 생각이니?"
이번에는 어머니가 질문하셨다. 그녀는 내가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학업에 집중할까봐 염려하는 모습이다.
자식이라면 응당 학업에 집중하는 게 당연한데 어머니는 반대로 내 소설을 더 걱정하는 중이다.
조금 황당하긴해도 내 소설의 파급력을 생각하자면 이해가 되는 수준이다.
"뭐... 쓰긴 써야죠. 쉬는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닐테고. 대신 짧아도 한 두 달에 한 권이 나올 것 같아요."
"아쉽구나. 그래도 학업에 집중하렴. 거기에 형이랑 누나가 있을테니 필요하면 부르고."
"네."
헤일로 아카데미는 귀족이라면 반드시 입학해야 하는 곳이라 내 형제자매가 있다.
다만 학생으로 있는 게 아니라 조교로 활동하고 있다. 조교는 몇몇 뛰어난 학생들만이 가질 수 있는 일종의 직책이다.
거기다 말만 조교지 이미 그들은 수많은 기사단에서 눈 여겨 보고 있는 인재 중의 인재라 할 수 있다.
"그나저나 신기하구나. 네 형이랑 누나는 전부 기사가 됐는데 너는 작가라니."
"날 닮은 거겠죠. 저도 소싯적에는 글을 꽤 잘 썼다고요."
"그럼 한 명 더 낳아볼까? 이번에는 어떨지 궁금하네?"
"어머. 이이도 참. 아이작? 아빠랑 엄마는 잠깐 나갈테니까 조금 있다 보자~"
부모님은 오붓하게 팔짱을 끼며 내 방에서 나갔다. 나는 한바탕 폭풍이 스쳐지나간 듯한 상황에 눈을 깜빡거렸다.
"...후우."
땅이 꺼져라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여전히 와닿지 않았다.
나는 단지 전생의 직업을 살려 글을 쓴 것뿐인데 그 파장이 무시무시했다.
'오늘 집필은 글렀네.'
그리 중얼거리며 곱게 접었던 신문을 도로 폈다. 신문을 펴자마자 내 작품에 대한 소식들로 빼곡히 차있었다.
가끔 가다가 몇몇 유명 인물들이 문학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비판하는 글귀도 있었으나 말끔히 묻혔다.
'...이게 이렇게 칭송 받을만한 일인가?'
호평은 그렇다 치고 마족들에 대한 취급이 달라졌다는 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악마가 세상을 집어삼켰을 때가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이고, 마족이 차별 받았던 역사는 무려 100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다. 그런데 고작 내가 쓴 소설 하나로 그러한 차별이 사라졌다니 쉬이 믿지 못할 수밖에.
사실 내 작품은 깔끔하게 묻혔는데 상심하지 않도록 아버지가 뒷공작을 벌였다는 게 더 신빙성이 높다.
오죽하면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파급력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후우... 그냥 빨리 완결 짓고 다른 거나... 응?"
시큰둥하게 신문을 넘기다가 문득 눈에 밟힌 소식이 하나 있었다.
-헬리움의 공주 세실리 드라트 아이실리아 빈. 헤일로 아카데미에 입학할 거라고 말해... 미네르바 제국도 흔쾌히 허가.
-제논 일대기의 영향으로 마족을 향한 차별적인 시선이 완화된 지금, 각 국가들의 교우를 위해...
"... ..."
지랄하지 마, 십팔.
******
"정말 괜찮겠느냐? 세실리, 나는 마족의 왕이기 전에 너의..."
"괜찮아요. 아빠. 전 이미 모든 준비를 끝냈는걸요?"
은은한 빛만이 비추는 어두운 공간 속에서 두 남녀가 말을 나누고 있었다.
칠흑처럼 새까만 머리카락,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핏빛 눈동자. 마지막으로 악마처럼 머리에 솟아나있는 뿔까지.
그들은 마족이었다.
"이건 제가 선택한 일이에요. 그리고 이종족과 마족이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지금이 적기라는 걸 아빠도 아시잖아요?"
흑단 같은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기른 미녀가 앞의 남자에게 말했다.
고혹적인 목소리에 맞게 그녀의 미모 또한 치명적이라고 할만큼 우아하고 아름다웠으며, 몸매 또한 뭇 남성의 음습한 마음을 자극할 정도로 성숙했다.
이러한 외모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사람의 마음을 홀릴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건 그렇다만..."
그녀의 질문에 앞에 있던 남자가 팔짱을 끼며 쓴웃음을 지었다.
여인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것 같지만 마족은 원래 인간보다 수명이 길다. 그러니 마족이 상대적으로 젊은 외모를 갖고 있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어서 여인의 아버지이자 세간에 '마왕'이라 불리는 남자, 데스칼 드라트 아이실리아 빈 헬리움은 자신의 딸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빠도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래. 그 책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나서부터 우리 동족을 향한 시선이 달라졌다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감정의 골은 쉽게 아물지 않는 법이란다."
데스칼의 말마따나 마족을 향한 차별적인 시선은 대폭 줄어들었지만, 그동안 발생한 갈등의 골은 여전히 깊은 상황이다.
세상에는 아직도 악마가 된 마족들이 존재하고, 그 마족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설령 그것이 자의가 아니더라도 피해가 발생한 순간부터 문제가 생긴다.
그에 마왕의 딸이자 헬리움의 하나밖에 없는 공주, 세실리는 빙긋 웃더니 조곤조곤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아빠도 제논 일대기를 읽으셨죠? 5권의 마지막에 사크란이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나나요?"
"... ..."
데스칼은 답하지 않았다.
그 장면은 마왕인 자신에게도 큰 여운을 남겼던 순간이었으니.
동시에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는 마족이 '악마'가 아니라 '인간으로 증명하길 원하는 종족'으로 각인시켜줬다.
그 순간만큼은 다른 누구도 아닌, 사크란이 진정한 주인공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한편 세실리는 데스칼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본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사크란은 최후의 순간 자기가 지켜낸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어요. 소중한 이들을 위해 스스로 악마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것이 진정한 인간의 용기이며, 희생일지어니. 나는 악마가 아닌 인간으로 죽는 것이다. 라면서."
"... ..."
"비록 허구의 이야기지만, 저는 절대 허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분명 이 이야기를 쓴 저자는 과거 동족에게 큰 은혜를 입은 게 틀림없어요.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감동적이면서 우리 동족의 애환을 고스란히 드러낸 이야기를 적지 않았겠죠."
두 손을 꽉 마주 잡으며 황홀하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세실리. 그녀는 감동에 젖어 본인이 무슨 얼굴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 했다.
허나 만약 아이작이 이 모습을 본다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거 게임에서 본 거라고. 어차피 전생의 일이라 표절 문제도 없겠거니 해서 아무 생각없이 쓴 거라고.
안타깝게도 세실리가 그걸 알 도리가 없었다. 스스로 착각하고 있을 뿐.
데스칼은 상상의 나래에 빠져있는 세실리를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조용히 거들어줬다.
"...거기다 사크란은 악마화를 한 동족을 처단하는 '악마 사냥꾼(Devil hunter)'의 수장이지. 너도 알고 있겠지만 우리 헬리움에서도 똑같은 임무를 맡는 비밀 단체가 있어."
제논 일대기에는 욕망을 이기지 못해 악마가 된 동족을 처단하는 결사단체가 있다.
명칭은 '악마 사냥꾼'이며 악마의 힘을 일부 받아들여 여타 마족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갖고 있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헬리움에서도 비슷한 임무를 맡는 결사조직이 있다는 것.
"'리퍼(Reaper)' 말씀이시죠? 물론 알고 있죠. 제 추측이지만 아마 이 책의 저자는 리퍼의 단원에게 은혜를 받았을 거예요."
세실리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시 혼자만의 착각에 빠졌다.
아이작이 이 상황을 본다면 아까처럼 말할 것이다.
그것도 게임에서 본 거라고. 진짜 어떤 의미도 의도도 없이 적은 거라고.
허나 방금도 말했다시피 이들이 아이작의 마음을 알 턱이 없으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때문에 바깥에서도 악마 사냥꾼이 진짜 존재하냐는 의심을 받는 중이란다. 덕분에 양지로 나올 기회로 삼을 수 있게 됐지."
악마로 변한 동족을 같은 동족이 처치한다. 이것만 봐도 리퍼가 얼마나 강한지, 또 얼마나 거룩하고 숭고한 조직인지 알 수 있다.
또한 리퍼는 본래 같은 동족이었던 악마를 처단할 때마다 끔찍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다. 그래서 리퍼는 힘에 취해 악마로 변하는 것보다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율이 훨씬 많다.
이러한 임무의 특수성으로 인해 음지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나 제논 일대기가 나온 이후로 양지로 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더 나아가 책을 읽은 몇몇 고위 마족들이 기왕 이렇게 된 거 정식적으로 창단하는 게 어떠냐는 말까지 꺼냈다. 거룩한 숙명을 스스로 받아들이며 아무런 대가도 없이 활동하는 리퍼에게 호재도 이런 호재가 없다.
"아무튼 네 의지가 그렇다면 말리진 않으마. 대신 미네르바 제국에 저자가 있을 거라는 확신은 하지 마렴. 익명으로 낸 걸 보면 아마 은거한 현자일 확률이 크니까. 설령 우연히 만나도 반드시 예의를 차리렴."
"아빠도 참. 저도 이제 성인이라고요?"
세실리는 데스칼의 걱정섞인 말에 손을 내저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도 데스칼은 자신의 표정을 감추지 못 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인 것도 있지만, 워낙 장난기가 많은 세실리인지라 아버지로서 불안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에 혹해 음흉하면서 욕망어린 손길이 뻗어온다? 그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세실리는 산 하나 즈음이야 가뿐하게 날려버릴 힘을 갖고 있다. 괜히 헬리움의 차기 마왕으로 거론되는 게 아니다.
"아~ 빨리 만나고 싶어요. 우리 마족의 은인이시여..."
세실리는 두 손을 꼭 맞잡으며 저자와 만날 일을 고대했다.
데스칼은 중증이나 다름없는 그녀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