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K리그 클래식. 파이널 (6)
나는 현재 풀백으로서 좋은 평가를 받고 뛰고 있긴 하지만.
나의 정확한 포지션을 말하자면, 풀백 겸 미드필더라고 말하겠다.
저번 시즌에서도 풀백으로 2경기를 뛰면, 수비형 미드필더로 1경기 정도는 뛰었고. 이번 시즌에 들어서 비중이 조금 더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출전이 꽤 있었으니까.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직도 내 주 포지션을 풀백이라고 하기엔··· 난 여러 면에서 아직 미드필더의 물이 덜 빠져있었다.
패스할 사람을 찾기 위해선 한 쪽으로만 고개를 돌리면 되는데. 아직 미드필더일 때의 습관이 남아 있어서 공 받기 전에 습관처럼 왼쪽까지 고개를 둘러보는 것도 그렇고.
내 드리블에 집중하기보단, 계속해서 상대편이 어디 있는지부터 의식하는 것도, 다 미드필더 때 들였던 습관들이다.
당연한 게, 10년 가까이 미드필더로 살다가 2년 남짓 풀백으로 살았다고 습관같은 게 다 바뀌어버리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기계 아니겠나.
그러니, 당연히 FC 서울에서도 내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가능성을 테스트해봤다. 그리고 그 결과는.
-좋네요, 패스 각 보실 줄도 알고, 판단도 빠르십니다. 왜 고양에서도 그렇고, 상무에서도 이따금씩 미들로 썼는지를 알겠네요.
나쁘진 않았다. 다만 명백한 한계점도 있었는데
-다만 몸 자체가 스피디하게 움직이는 쪽에 좀 더 치중되어서 마크가 붙었을 때 몸을 돌리면서 볼을 주는 능력은 별로시네요. 단독으로 쓰이기보단 보호해주거나 볼 배급 부담을 덜어줄 다른 선수가 필요해 보입니다.
고양에서 실패한 이유 중 하나인 내가 중앙에서 잘 버텨내면서 볼을 전개해줄 능력이 없다는 것.
그 밖에도 에이전트님께서 하신 말씀도 있었다.
-유럽을 노리니, 개인적으로 주 포메이션은 왼쪽 풀백으로 고정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수비형 미드필더는 공급이 넘쳐나는 데 비해 풀백은 정말 공급이 적은 편이라서요.
그래서 여기에 온 이후론 경기에선 계속 윙백 내지 풀백으로만 뛰었다.
하지만. 이런 평가도 들었고.
-다만 볼 배급을 해줄 다른 선수들이 있다면 충분히 1인분 이상은 가능하실 거고, 주전은 몰라도 백업으로서는 이 정도면 충분한 기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습은 꾸준히 해 보죠.
에이전트는 추가적으로 이런 말도 덧붙였다.
-그래도, 훈련 정도는 꾸준히 해 두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풀백들은 멀티플레이어인 경우가 많아서, 그러지 않으시면 겸업이 가능한 풀백들에게 살짝 밀릴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수미로서의 연습은 꾸준히 해 뒀다.
그리고 그 연습과정에서 나오게 된,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맡은 역할은 바로.
[아, 오스마르, 굉장히 멀리까지 나갑니다! 저렇게까지 올라가도 괜찮을까요? 바로 전북 선수들이 달려들고 있습니다!]
현재 서울의 빌드업을 맡고 있는 오스마르 주장.
[오스마르, 길게 끌지 않고 바로 패스합니다! 이준혁!]
그가 받는 압박을 풀어줄. 또 다른 빌드업 리더로서 기동하는 것.
[받고, 바로 뿌립니다! 길게 끌지 않는 이준혁!]
[왼쪽으로! 왼쪽에 윤일록 선수가 볼을 잡습니다! 윤일록 크로스-! 박주영!]
[아, 살짝 머리를 빗나갑니다. 그렇지만 좋은 시도였어요! 아주 빠른 역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몇 번을 하다 보면.
[아, 이호 선수, 철저하게 이준혁 선수를 따라다니기 시작합니다!]
[몇 번이나 위협적인 패스를 날렸으니까요. 저게 당연한 거죠!]
당연히 나에게도 압박이 들어오는데. 그게 오히려 내가 바라는 바다.
고양에서와 달리, 이렇게 나에게 압박이 들어온다면.
[아, 이준혁, 오스마르에게 바로 패스!]
또 다른 빌드업 리더에게 넘겨주면 됐으니까.
[오스마르, 바로 길게 측면으로 찔러줍니다! 주세종에게 롱 패스!, 주세종, 슛-!]
[아, 권태순, 잡아냅니다! 서울이 정확한 롱 패스를 뿌려줄 선수가 중앙에만 두 명이다 보니 전북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계속 위협적인 기회가 나오네요!]
문제는. 이렇게 공격이 잘 풀린다고 해도.
[그렇지만, 결국 골은 안 터졌습니다!]
***
[후반 36분]
전북 현태 1 : 1 FC 서울
***
결국 골이 터지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홈 팀이라서 심판이 추가시간도 길게 주지 않을 겁니다! 서울이 우승하고 싶다면 지금 빨리 결과를 내야 해요!]
[아, 말씀하시는 순간 전북이 최전방에 있던 김신욱 선수도 대놓고 내려버렸습니다! 이제 10분만 버티면 된다는 거죠!]
젠장.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나는, 이 경기가 K리그에서, 아니 사실상 인생에서 트로피를 들 마지막 기회일 가능성이 크다. 유럽의 리그 우승권 강팀에 내가 가게 될 리는 없으니까.
그런데 단 한 경기, 단 한 골 차이로 우승을 몇 번이나 맛본 놈들에게 그대로 빼앗긴다고?
‘배알 꼴린다고, 그거.’
우승 좀 나눠가지자, 새끼들아.
“Hey! 준! 올라가! 라인 올린다! 하프까지!”
“오케이!”
그 순간, 우리의 최종 수비라인은 3선.
나는 이젠 2선 구역까지 올라가기 시작했다.
[서울도 급하군요! 라인을 극한까지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몇 가지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는데.
‘보인다.’
저 선수들이 어떤 생각으로 패스를 하는지, 어느 방향으로 패스를 주려고 하는지, 정말 뻔하게 눈에 보였다.
아직, 저 놈들이 최후방까지 압박을 제대로 안 당해본 상태였기에. 조금 안일해져 있었던 거였다.
‘신형민, 최철순, 그리고 로페즈에서-’
[로페즈, 공을 받습니다. 고광민, 달려듭니다.]
지금이다!
[로페즈, 이제성에게- 아! 볼을 빼앗았습니다! 이준혁! 이준혁!]
[이준혁, 인터셉트에 성공합니다!]
포지션 이탈해가면서 한 도박이 먹혔다.
그럼, 이제 누구한테 줘야 하지?
세종이한테? 주영이 형님한테? 아니면 일록이한테?
‘젠장, 압박이 심하니 뺏기 전에 봤어야 했는데, 제발 지금 적절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없다. 젠장, 없다고.
바로 원 터치로 선수에게 볼을 줄 수가-
-준혁아아-!
···있구나!
[이준혁! 측면의 고요한한테 길게 연결합니다!]
-요한 선배님, 저는 측면에서 골대 가까이에 있는 수비수만 어떻게든 제쳐내고 공격수 앞쪽으로 볼 보내면 그게 좋은 크로스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만 되어도
[고요한, 땅볼 크로스!]
-꽤 위협적인 크로스가 될 때가 많더라고요.
-삑! 삑! 삐이익-!
[박주영! 박주영이 해냅니다!]
[박주영이! 해냅니다! 후반 88분! 이건 결정타입니다!]
“으아아아-악-!”
“됐어요! 됐어! 형님! 됐다고요!”
“봤냐! 봤냐고! 내가! 형이 해결사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요한이 형님에게 달려갔다.
“잘했어요! 형! 진짜 개쩔었어! 개쩔었다고! 말한 그대로였어!”
“으아-아아-! 봤냐! 봤냐고!”
“어! 어! 봤어! 봤다고! 존나 잘했어억!”
그리고 그렇게 순수한 기쁨을 절제하지 않고 풀다 보니.
-삐삐삑!
정말로 고의가 아니었는데도, 시간을 꽤나 끌어버렸다.
[아, 서울 선수들, 주의를 받고 있습니다.]
[하하, 서울 입장에선 저게 맞긴 하죠. 이제 급한 건 전북이고, 서울은 시간을 끌어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삐익-!
[이제, 정규시간은 끝났고요! 추가시간 5분이 주어집니다!]
“막아내자! 막아내자고! 이것만 막으면 우승이다!”
물론 그 5분도 쉽지 않았다.
[아, 레오나르도! 크로스-! 신형민-!]
[헤딩-! 아-! 벗어납니다아-!]
“골킥이에요! 골킥!”
“코너킥이지! 코너킥이야!”
그 짧은 시간에도, 그들은 위협적인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팀이었으니까.
[주심이 코너킥을 선언합니다.]
[시간상, 전북의 마지막 공격입니다!]
“진짜로 마지막이다! 막자고!”
“야! 다들 올라와! 시발! 태순이형도 올라오라고 해! 어차피 시간 안 남았잖아!”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의 정규 시즌 마지막 플레이, 우승을 결정지을 수 있는 그런 순간입니다!]
[로페즈의 발끝에서, 전북 팬들이 기적을 이뤄낼 수 있을까요!]
-뻥!
[찼습니다!]
[아, 유현! 볼을 쳐냅니다! 하지만 멀리는 날아가지 않고!]
[이제성, 볼 잡고 바로 다시 크로스!]
그만 끝내자. 새끼들아!
-뻐-엉!
‘끝났냐! 끝났지! 5분 한참 지났잖아! 이제 끝났다고 해! 휘슬 불라고!’
-삐이이이익-!
***
<2016 K리그 클래식 38Round>
[경기 종료]
전북 현태 1 : 2 FC 서울
[골]
FC 서울 : 아드리아노(45), 박주영 (88)
전북 현태 : 레오나르도(69)
***
“끝났다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
[경기 종료됩니다! FC 서울이! 서울이! K리그 우승을 차지합니다!]
[2016 K리그 클래식 챔피언! FC 서울입니다!]
“으아아아아-! 우승이다! 우승이라고!”
“우승이다! 우승이야!”
“주영이형! 감사합니다!”
“형은 신이야! 신이라고! 국대 재승선 가자!”
[시즌 중반 이후로 1위는 항상 전북의 것이었지만, 마지막의 마지막에 서울이 짜릿한 역전 우승을 이루어냅니다!]
“이야아-아!”
“으아아아아!”
“으아아- 아. 아.”
“왜 그래 형?”
“···푸하. 더 이상은 못 뛰겠네. 발목 나가리다.”
“그런데 뛴 거야?”
“당연하지 시발! 우승이라고!”
[그럼, 잠시 후 이어지는 우승 세레모니, KBS의 디지털서비스 myK를 통해서 웹과 모바일로 시청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KBS였습니다.]
“자, 자, 이제 이거 들어! 들자고!”
“얘들아! 이거 안 태워도 된다! 이거 들고 저기로 가자! 요한이 부상당했으니까 천천히 걸어거자!”
“다들 티셔츠도 입고! 자, 다들 입어! 이것도 안 버려도 된다고!”
그리고 우리가 나눠든 걸개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2016 K리그 클래식-
-CHAMPIONS-
***
그 걸개를 들고, 천천히 관중석으로 돌아가자, 보였다.
내일 월요일부터 당장 힘들고 지친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오~ 오~ 오오, 오~ 오~ 오오, 오~오! F! C! 서! 울!
-오~ 오~ 오오, 오~ 오~ 오오, 오~오! F! C! 서! 울!
최소한 오늘만큼은, 우리들의 경기를 통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하루 중 하나가 되었다는 미소를 지으며 노래를 부르는.
-절대강자! 축구지존! FC서울! F! C! 서! 울!
저 3천여명의 팬들이 말이다.
그걸 보자 우리도 그 물결에, 함께했다.
“오~ 오~ 오오, 오~ 오~ 오오, 오~오! F! C! 서! 울!”
“절대강자! 축구지존! FC서울! F! C! 서! 울!”
그리고 이 순간이 영원히 기억되도록, 그 노래와 함께 다들 사진기를 들면서.
“오스형! 뭐야 그 셀카봉은!”
“HaHa, 우승 기념!”
“나도 나도!”
“주형이형! 왔어요! 헹가레 받으시죠! 하나-둘!”
만세!
그렇게 다들 이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처럼 웃고, 또 웃으면서.
다들 하나같이 그냥 웃음이 나왔다.
하염없이, 웃음이 나왔다.
-챔피언! 챔피언! 챔피언! 챔피언!
그리고, 시상대가 준비되는 순간 느꼈다.
‘우승했네.’
그래, 끝났다.
더 이상, 나는, 국내에는 여한이 없다.
내가 들어올리길 원했던 컵 중, 아시안 챔피언스리그를 못 든 건 아쉽지만.
-챔피언! 챔피언! 챔피언! 챔피언!
이제, 여기에서 이룰 건 다 이뤘다.
내가 꿈꾸던 것들은, 다 이루어냈다.
그러니, 순수하게 기뻐하고.
또, 환호하자.
지난 2년간 정말이지 쉬지 않고 달려와준 나에게.
“자, 오스형! 들어요! 들어!”
“Okay! 하나- 둘- 셋!”
-퍼-엉!
“우워어어어-!”
-We are the champions~
“주영이형도 또 들어야죠! 자, 형도 들어요!”
“그래, 그 다음은 요한이 너도 들어라!”
그러니.
“준혁이 너도 들어라! 어시했잖아!”
“감사합니다!”
마지막 트로피일지도 모를, 이 황금색 K 트로피의 감촉을 잊지 말자.
앞으로 그 어떤 태풍이 오더라도, 고난이 오더라도.
이 감촉을 떠올리면 기운을 다시 차릴 수 있도록.
그리고.
-텅빈 피치위를 바라보-라.
-그들의 땀방울이 보이는가~
-다치고! 숨이차도! 최선↗을 다하는-
-서울의 전사위해 이 노랠 바친다
저 팬들의 목소리도 잊지 말자.
-우-리가 사랑하고!
-모두가- 좋아하는!
-그! 자랑스-런 이름!
-서!울! 크게외쳐라~
평생 잊지 말자.
-우-리가 사랑하고!
-모두가- 좋아하는!
-그! 자랑스-런 이름!
-서!울! 크게외쳐라~
저 목소리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나를 다잡아주는, 목소리가 되어줄 테니까.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정말로,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모두가- 좋아하는!
-그! 자랑스-런 이름!
-서!울! 크게외쳐라~
저를, 저희들을 응원해주신 여러분들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
<2016 K리그 클래식 우승팀>
-FC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