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K리그 클래식. 파이널 (5)
후반전이 시작되었을 때 두 팀은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서울은 그대로였고. 전북 역시 단 한가지의 변화만 취했다.
[아, 전북이 후반전 시작과 함께 김보겸 선수를 교체합니다.]
***
전북 현태
In 이호/Out 김보겸
***
[이호 선수가 필드에 투입되는군요. 지상파 방송을 함께하시는 축구팬 여러분께서는, 옛날 독일 월드컵 때 뛰던 선수라고 기억하시면 될 겁니다.]
그렇게 펼쳐진 후반전에서, 경기장에 있던 전북의 팬들은 굉장히 아우성을 질렀다.
-우우우우우!
그도 그럴 게, 한 골을 넣고 난 후.
[주세종- 오스마르, 오스마르- 최태현, 최태현- 고요한.]
[고요한-다카하기, 다카하기-최태현, 최태현- 다카하기.]
서울이 뭔가 패스를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수비진에서 위로 잘 올라가질 않고 계속 자기 진형에서 얌생이처럼 공을 돌리기만 하고 있었고.
[이호 선수, 공을 빼앗습니다!]
-삐익!
[아, 서울의 파울입니다. 전북의 프리킥.]
[다카하기 선수, 옐로 카드입니다.]
가끔 기회가 생기나 싶으면 걸핏하면 파울이나 저지르면서 노골적으로 시간을 끄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우우우우우-!
[아, 전북 팬들의 야유소리가 엄청납니다. 서울이 시간을 끌고 있다고 판단하는 거겠죠?]
당연히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제 급한 쪽은 전북이었다. 무조건 한 골을 넣고 다시 무승부로 만들어야만 그들이 우승할 수 있었고, 서울은 시간을 끌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그러나 해설자의 생각은 살짝 달랐는데.
[글쎄요, 이건 서울이 의도한 것도 있긴 한데, 전북의 교체 전술이 잘 먹혀든 거라고 봅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지금 서울의 패스가 앞으로 전혀 나아가질 못하고 있기 때문이죠.]
화면에서 파울 장면을 다시 보여주는 화면을 띄워주자, 해설자는 추가설명을 덧붙였는데.
[방금 전 다카하기 선수의 파울 전 위치를 보면, 공을 받고 바로 주세종 선수에게 찔러주려고 했었습니다.그러나 이호 선수가 잽싸게 달라붙으면서 공을 주기가 어려웠고, 결국 빼앗기면서 파울을 저지르게 된 거죠.]
그 해석이 보여주는 뜻은 명확했다.
[그걸 보면 지금 서울은 시간을 끌려고 하는 것은 맞지만, 그 이상으로 전북 선수들의 압박이 힘겹기 때문에 이러고 있는 중이라고 봅니다.]
[음- 하지만 서울이 의도한 것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어찌 되었든 지키기만 하면 되니까요.]
물론 해설자도 처음엔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 생각을 접은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기엔 서울의 패스플레이가 너무 본인 수비 진형에서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본디 저런 패스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볼을 빼앗기더라도 덜 위험하도록 중앙 센터라인 쪽까지는 볼을 끌고 나가는 게 일반적이다.
상대편 지역에서 볼을 돌리다 빼앗기면 그래도 팀이 그걸 보고 재정비할 시간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자신의 공격진영에서 공을 빼앗긴다면 그건 패스 한 번에 바로 골로 이어질 가능성이 꽤나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서울은 자기 진영에서 볼을 돌리고 있었다. 게다가.
[잠글 거라면 더 좋은 방법도 많습니다. 아드리아노 선수나 다카하기 선수를 빼고 수미를 하나 더 투입하거나 하면 수비가 훨씬 안정적이고 저런 실수도 나오지 않았겠죠.]
비록 올해 득점왕의 자리는 놓쳤지만. 그래도 2년 연속 많은 골을 넣으며 K리그를 대표하는 골게터가 되어가고 있는 아드리아노
킥이 좋고 가끔씩 나오는 로빙 패스가 정말 수준급인 다카하기.
이 두 선수는 공격시에는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들이지만, 수비시엔 보여주는 게 크게 없는 선수들임에도 남겼다는 것을 보면?
[그래서 저는 지금 서울의 이 상황은, 의도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군요, 포메이션상 미드필더 숫자로는 분명 서울이 밀릴 게 없는데, 후반 들어서 왜 이렇게까지 중앙 싸움에서 밀리기 시작한 걸까요?]
당연히 캐스터는 해설자에게 설명을 유도했고, 해설자는 그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예,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분명 숫자가 맞습니다. 1명보다는 2명이, 2명보다는 3명이 같은 구역에 있을 때 더 강하기에. 이 인원을 어떻게 배분하느냐가 전술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실, 이 말에는 하나 명심해야 할 게 있습니다. 제가 항상 전술을 설명할 때마다 하는 말이 있었죠?]
그 말을 몇 번이고 들은 캐스터는, 오래되지 않아 금새 떠올릴 수가 있었다.
[음, 축구에 만능인 전술은 없다- 는 말씀 말씀이신가요?]
[바로 그렇습니다. 축구는 양 팀 모두가 똑같은 11명의 선수를 쓰기 때문이죠.]
강팀이라고 선수 12명을 쓰는 게 아니고.
약팀이라고 선수 10명을 쓰는 게 아니다.
모두가 같은 숫자의 선수만을 쓰기에, 어느 한 쪽에 인원배치를 늘려 부분적인 강점을 가지는 전술을 짤 경우에, 어느 한 쪽은 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 약점을 최대한 커버하는 방법이 세 가지가 있죠.]
[그게 뭔가요?]
[먼저 가장 간단하고 직관적인 방법부터 말씀드리자면 첫째는 선수들이 상대팀 선수들보다 더 많이 뛰는 겁니다.]
너무나 뻔한 대답이었지만, 너무나 확실하고 직관적인 대답이기도 했다.
[포메이션적으로는 숫자 싸움에 밀리는 공간일지라도 그 옆에 있던 선수들이 활동량을 높여 2명이 공격올 때 2명이 막고, 3명이 막게 하면 오히려 포메이션상으로는 약점임에도 어느 순간에는 강점이 되기도 하죠.]
그래서 현대 축구에서 하나같이 활동량 활동량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남들보다 1.1배, 1.2배를 뛰는 선수들이 모이면 11명이 뛰고도 마치 12명이 더 뛰는 효과를 낼 수가 있기에. 그런 머릿수 싸움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축구계에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현대 축구에서 판타지스타는 죽었다고요. 그 이유가 그겁니다. 아무리 볼을 잘 차도, 아무리 골을 잘 넣어도 이 활동량 부분에서 크게 밀린다면, 그 선수는 팀의 족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두 번째는 뭘까요?]
[마침 좋은 예시가 저기 보이네요, 두 번째는 저겁니다.]
김신욱이 오스마르와 김남춘과의 공중볼 다툼에서 기어이 볼을 따내는 모습을 보고 해설자가 그렇게 말하자. 캐스터는 다음 말이 무엇인지 예측할 수 잇었다.
[두 번째는 피지컬이군요?]
[예, 맞습니다. 피지컬이 두 번째입니다. 이건 숫자 우위를 만들기도 하고, 숫자 우위를 무효화시킬 수도 있죠.]
피지컬에서 한 선수가 상대편 한 명을 상대로 상대적인 우위를 가짐으로서 2명이 달라붙도록 유도하면? 그게 바로 숫자 우위다.
그리고, 피지컬이 10인 선수를 피지컬이 5인 선수 둘이서 막는다고 했을 때, 숫자 우위가 이루어질까? 아니다. 10이 그냥 5인 선수 둘을 박살내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이게 숫자 우위의 무효화다.
[아, 골 못 넣음에도 주전으로 기용되는 떡대 좋은 중앙 공격수들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 기용되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거기에서 골까지 넣으면 이제 월드클래스 선수가 되는 거죠.]
그와 함께, 해설자는 결론짓듯이 말했다.
[이 두 가지 때문에 서울이 중앙의 미드필더 싸움에서 밀리는 겁니다.]
그 말과 함께, 해설자는 하나하나 선수들을 짚어가며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지금 전북의 중앙에 위치한 미드필더는 이호, 이제성, 신형민 선수입니다. 이 세 선수는 모두 활동량이 뛰어나고, 피지컬이 나쁘다는 평을 받은 적이 없는 선수들이죠.]
[반면 지금 서울의 중앙에 있는 선수들은 주세종, 다카하기, 최태현 선수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셋 모두 피지컬이나 활동량 둘 중 하나는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선수들이죠.]
사실상 중앙의 숫자 우위가 오히려 전북에게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지금 저렇게 서울이 공을 잡으면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신들의 진형에서 볼을 돌리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삐이익!
[아, 최태현 선수의 파울입니다!]
[저렇게, 위험한 상황이 나오게 되고, 그러다 보니 막기 위해서 파울이 잦아질 수밖에 없죠.]
[그렇군요, 전북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 찬스입니다! 레오나르도 선수가 준비하고 있습니다.]
-골!(짝짝) 골!(짝짝) 골!(짝짝)
[레오나르도, 슛-!]
-삑! 삑! 삐이이-익-!
그 순간.
-우와아아아아아-!
3만 명의 연두색 물결이 일제히 일어났다.
[골-! 레오나르도, 골입니다!]
[전북을 구원하는 천금과도 같은 동점골! 이제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승리의 여신이 다시 전북에게 웃어주기 시작합니다!]
-오 오 렐레! 오 오 렐레-! 오 오 렐레 !오 오 렐레-!
-오 오 렐레! 오 오 렐레-! 어이! 어이! 어이! 어이!
[이 넓은 전주성에서 소리가 웅웅거리는 공진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해설하는 저희 귀가 다 먹먹해지는데요!]
[그렇습니다. 저희도 지금 큰 소리를 내서 말해야만 서로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입니다!]
3만 명이 쿵쿵거리며 응원가를 부르는 모습은, 그럴 만한 위압감이 충분했다.
***
<2016 K리그 클래식 38Round>
[후반 25분]
전북 현태 1 : 1 FC 서울
[골]
FC 서울 : 아드리아노(45)
전북 현태 : 레오나르도(69)
***
[이제 서울은 급해요! 남은 시간은 20분! 적은 시간은 아니지만, 결코 길다고 말할 수도 없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 안에 실점하지 않고 골을 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서울의 선수들도 그걸 안다는 듯이, 일제히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자
[아, 그러고 보니 해설위원님께서 방금 전 두 가지만 말씀하셨는데, 마지막 한 가지가 뭡니까?]
그 말에, 해설자는 짧막하게 대답했다.
[스피드, 스피드입니다.]
-*-*-*-
‘젠장, 빌어먹을, 이러면 완전 나가린데, 중앙이 완전히 먹혀버렸어.’
내가 도와주고 싶어도, 로페즈랑 최철순 선배님 막기에도 벅차서 뭐 어떻게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다. 이게 뚫리면 훨씬 더 치명적이니까.
‘씨발, 거의 다 왔는데, 이대로 지는 건 아니겠죠. 감독님?’
아니라고 말씀해 주세요. 제발.
무슨 수 좀 내 주세요.
- 삐익!
[아, 서울이 대규모로 선수를 교체합니다!]
[무려 3명 교체네요!]
***
FC 서울
In 박주영/Out 데얀
In 윤일록/Out 다카하기
In 고광민/Out 최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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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뭐야? 이렇게 되면···
“얘들아! 빨리 진형 갖춰라!”
“잠깐만요, 주영 선배님, 이거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 말에, 박주영 선배님은, 믿을 수 없는 말씀을 하셨다.
“내가 데얀 자리에, 일록이는 세종이랑 자리 바꾸고 세종이는 다카하기 자리에, 준혁이 너는 태현이 자리에!”
“······!”
잠깐, 뭐라고?
연습이야 했지만, 지금 그걸 이렇게 쓴다고?
시즌 마지막 경기에?
하, 하하. 젠장.
분명 연습은 했지만··· 그리고, 나쁘진 않았지만.
“형, 잠깐만요-”
“지금은 급하다, 그리고 감독님이 말씀하셨다. 시간 없어!”
아니 그래도 그렇지, 시발, 이건 암만 봐도 나한테 볼 배급을 도맡아서 하라는 말씀이신데.
‘젠장, 부담감에 몸이 울렁거리는 것 같은데.’
그렇지만.
“Hey, 준! 빨리 이동해! 시간 없어! 해 보자고!”
부담감을 느낄 시간도 없었다.
‘그래 시발, 까라면 까야지, 뭐.’
감독님이 저렇게 말씀하셨다는 거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말씀이시니까 말이다.
그리고-
[아, 이준혁 선수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이동합니다!]
[서울에선 처음으로 보여지는 모습이네요!]
이 자리야말로 내가 얼마나 이전과 달라졌는지가 명백하게 보여질 자리이기도 하니까.
‘마지막 경기, 답안지가 나올 경기로 아주 좋긴 하지..’
나는, 과연 달라졌을까?
풀백으로 내려가서 성장한 ‘것’ 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성장을 해낸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