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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과 세 번의 밤을 보내면-82화 (8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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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단어에 엘레나가 호기심을 보였다.

“거기에 가보고 싶어요.”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

엘레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정원은 다 완성된 거 같은데요?”

“거긴, 온실이거든.”

“아……. 그럼, 더욱 가보고 싶은데.”

“곧 완성이 되니, 그땐 데려가 주지.”

“알았어요. 기대할게요.”

엘레나는 깊이 꽃향기를 들이마셨다.

‘후회’의 정원을 지나 다른 정원으로 들어섰다.

연둣빛의 꽃들과 푸른 식물들이 가득 차 있었다.

“여기는 이름이 뭐예요?”

“생명.”

“아.”

초록색으로 가득한 정원의 이름에 걸맞다고 생각했다.

“살아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니까요. 나도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어요.”

전쟁터에 나가면서도 치유력이 있었기에, 목숨이 위협받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로, 죽음을 가까이 느끼고는 살아있는 순간들이 더 소중해졌다.

“참, 어떻게 피를 줄 생각을 했어요?”

“뭐라도 해야 했으니까.”

“아…….”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피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어.”

“맞네요.”

단순한 생각이었지만, 그것이 엘레나를 살렸다.

덕분에 치유력도 찾았고.

“다시 당신한테 능력이 돌아가서 다행이야.”

“치유력을 계속, 갖고 싶지 않았어요?”

“날 뭘로 보는 거야?”

칼립소의 얼굴에 금이 갔다.

“설마, 그래서 내가 보름에 안 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럼, 왜 안 온 거예요?”

“나중에 갔었어. 너무 늦게 갔지만.”

“왜요?”

“사냥을 갔거든.”

고작 사냥이라니.

엘레나의 마음이 가라앉았다.

“귀한 은빛 사라타를 잡았어. 아마 당신도 좋아할 거야. 꼬리가 세 개나 달렸거든.”

“꼬리가 세 개요? 그런 건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보여줄까?”

엘레나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칼립소는 뒤에 따르는 시종에게 손짓으로 명했다.

기다리는 동안 엘레나는 다시 정원을 거닐었다.

초록빛의 꽃과 풀들은 안정감을 주었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귓가를 간질이자, 얼굴에 살며시 미소가 그려졌다.

이런 좋은 것들도, 살아있지 않으면 누리지 못할 것 아닌가.

“……얼마 전, 요하스 자작을 처형했어.”

“네?”

“이번 사건의 배후에 있었거든. 신전 건축 공모에서 탈락한 후, 앙심을 품은 것 같아. 몇몇 귀족들이 거기에 동조를 했고.”

칼립소는 카토 공작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요하스 자작을 조사하면서, 상당수의 귀족들이 함께 모의했다는 것이 수면에 드러났다.

다른 귀족들은 모두 재산을 몰수하거나 유배를 보냈지만, 카토 공작이 문제였다.

선대 시절부터 함께한 가문인데다가 꽤 치밀하게 증거를 인멸하여, 결정적인 증거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일단 직위를 해제하고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럼, 다 해결된 건가요?”

“그렇지.”

괜히 카토 공작의 이야기까지 해서 엘레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이네요. 하지만 희생이 컸겠네요.”

“가지는 쳐야 더 높게 자라니까. 당신 일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터질 문제였어. 오히려 빨리 잘라내서 다행이야.”

그건 사실이었다.

데릭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요하스 자작과 그 무리들은 상당량의 비리도 함께 저질렀다.

그런 기득권이 위협받자, 뭉친 무리들이기에 이번 기회에 싹을 자르는 것이 향후에는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걷다보니 ‘생명’의 정원이 거의 끝나갔다.

“여기는 뭐예요?”

푸른색의 정원을 보며 말했다.

하늘빛과 푸른 빛, 그리고 보랏빛 꽃들이 섞여 피어있었다.

“평화.”

“이름이 마음에 드네요.”

“당신도 전쟁을 좋아한 거 아닌가? 기사로도 참여했잖아.”

칼립소가 이상한 듯 물었다.

“기사생활은 좋아요. 대련도 좋아하고요. 하지만 전쟁은 싫어요. 무의미한 피를 너무 많이 흘리잖아요.”

“그렇군.”

“케이타 제국과 가이아 제국도 이렇게 평화로웠으면 좋겠어요.”

하늘은 맑고, 정원은 푸르렀다.

때마침 새들이 와서 나무에 사이좋게 앉았다. 사이 좋은 부부인 양, 서로 부리를 비비며 놀았다.

칼립소와 엘레나는 잠시 멈춰 홀린 듯이 두 새들을 지켜보았다.

* * *

안토니안은 요사이 불안함을 느꼈다.

요하스 자작이 처형당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엘레나를 함정에 빠뜨리다니.’

엘레나가 죽을 뻔했다는 소문까지 들리자, 안토니안의 불안은 더 심해졌다.

‘미친놈 같으니라고.’

히르타인을 통해 요하스 자작을 만났을 때는 꽤 괜찮아 보였다.

만남을 통해 엘레나를 가이아 제국으로 빼내 올 생각이었다.

‘혼인식만 올리게 하고 다시 돌려보낼 작정이었는데.’

엘레나가 결혼 전에 죽어버리면, 자신의 황위도 보전하지 못한다.

지금 안토니안의 힘을 유지하는 것은 겉보기에는 히르타인들 같아 보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신탁의 계시에 있었다.

엘레나가 죽어버리면, 신탁의 계시도 이뤄지지 못하고, 그렇다면 황제에 오를 수도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히르타인을 데리고 온 지금, 가이아 내에서도 자신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히르타인들은 확실히 문제가 많았다.

옆에 두니, 건드리는 놈들이 없다는 장점도 많았으나, 무작정 그들의 행패를 눈감아주는 것도 힘든 노릇이었다.

그러던 와중 무슨 일인지 베리우스 황제의 호출을 받고 안토니안은 긴장한 채로 황궁으로 갔다.

“안토니안.”

“예, 폐하.”

오늘 베리우스의 안색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며칠 전 케이타 제국에서 서신이 왔네.”

꿀꺽.

안토니안은 마른침을 삼켰다.

“요하스 자작이 처형되었다군. 안토니안, 자네가 요하스 자작이랑 관련이 있었다고 하던데?”

“폐하. 그건…….”

안토니안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어디까지 밝혀졌는지 모르지만, 요하스 자작이 처형당할 정도라면 상당 부분 드러난 일일 것이다.

“……사실입니다.”

안토니안은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하스 자작과 협력해 엘레나를 데려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엘레나가 위험에 처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소신은 그저 엘레나를 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케이타 제국의 반발 세력을 이용하려 했습니다.”

“알지.”

“네?”

오히려 안토니안이 당황했다.

“안토니안, 짐이 알아. 자네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가…… 감사합니다.”

안토니안은 표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여 깊숙이 엎드렸다.

“하루빨리 엘레나를 데려와야 할 텐데……. 쿨럭.”

베리우스는 잔기침을 했다.

“폐하, 송구하나 요새 기침이 잦아지신 듯합니다.”

“쿨럭.”

베리우스 애써 기침을 진정시켰다.

사실, 어제저녁에도 의원이 건강에 대해 엄중히 경고했다.

케이타 제국의 서신을 받고 안토니안을 부른 것은 이런 베리우스의 사정과 관련이 깊었다.

다른 대신들은 다들 안토니안에 대해 수군거리며, 이번 일 역시 비난했지만, 베리우스의 생각은 달랐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은 베리우스에게 가장 큰 걱정은 승계였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식으로든 행동을 해 주는 안토니안이 고맙고 든든했다.

대신들은 당장의 평화에 취하고, 케이타 제국이 주는 단물에 빠져서 엘레나를 데려오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오직 안토니안만이 엘레나를 데려오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안토니안, 짐은 이제 경만 믿어.”

“소신의 뜻을 헤아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빨리 엘레나를 데려와 혼인식을 올려야 할 텐데 말이야. 그래야 짐 역시 든든하고.”

“맡겨만 주십시오. 꼭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쿨럭.

베리우스는 다시 나오는 기침을 참으며 안토니안에게 말을 건넸다.

“최근 들어 짐의 건강이 심상치 않아.”

“폐하, 그런 말씀 마시옵소서.”

“안토니안, 경에게 처음으로 이야기하는 거야.”

안토니안은 긴장했다.

요 며칠 기침이 심하다고는 하였으나, 감기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

‘만약, 베리우스 황제가 정말 위독한 거라면?’

안토니안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황위에 앉을 수 있는 날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폐하, 저를 케이타 제국의 사신으로 파견시켜주십시오.”

“뭐?”

“이렇게 된 이상 제가 직접 가서 엘레나를 데려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안토니안.”

베리우스 황제가 손짓하자, 안토니안이 그의 앞으로 왔다.

베리우스는 손을 뻗어 안토니안의 어깨에 얹었다.

자신의 후계에 대한 신뢰의 표시였다.

“결심해 줘서 고맙네, 어서 엘레나를 데려와 위대한 제국을 건설하게.”

“염려 마십시오. 폐하.”

“다만…….”

베리우스 황제는 우려하는 바를 안토니안게 말했다.

“요새 자네에 대해 걱정하는 시선이 많아.”

“알고 있습니다.”

“특히 히르타인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아.”

“폐하, 하지만 아직 우리의 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알아, 다만 주의하라는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그럼, 물러가게.”

“다음에는 더 좋은 소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베리우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가 믿을 사람은 안토니안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베리우스 황제는 이제 조금 쉬고 싶었다.

천성이 유약하고 겁이 많았던 베리우스에게 황제의 자리는 늘상 버거운 자리였다.

엘레나와 혼인하고 안토니안이 황위에 오르면, 자신은 엘리자베스와 함께 휴양지로 갈 생각이다.

안다르 의원에게 건강에 대한 경고를 받은 후에는 더욱 그랬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승계를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지금 아리엘이 제2황녀의 역할을 생각보다 잘해주고 있었지만, 신탁의 계시는 무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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