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 이런 건 여행이 아니야!(6)
* * *
간단한 기술 하나조차 능숙하게 사용하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던 영식에 비해, 우르는 제법 익히기 쉬웠다.
여러 가지 선행 조건을 만족해야 완벽한 기술이 되는 영식과 다르게, 우르는 그저 마나의 흐름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됐으니까.
힘들 거라고 겁준 것치곤 그럭저럭 할 만한 수준이었다.
‘우르는 현재 내 몸과 궁합이 잘 맞을 거라는 니힐리스의 말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네.’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런 상황에 적응해버린 게 더 큰 이유 같지만 말이다.
여태까지 구른 짬이 얼만데.
이 정도 훈련쯤이야 별거 아니지.
“그 정도면 됐다. 떠나도 좋다.”
“예전엔 한 달 가까이 훈련만 시키시더니, 웬일이십니까? 아직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네 습득력이 비정상인 거다. 그 어떤 단원도 너만큼이나 빠르게 우르를 체득한 녀석은 없었으니까.”
“다른 단원들은 얼마나 걸렸는데요?”
“보통은 재능 있는 녀석이라고 해도 마나와 합을 맞추는 데만 두 달 가까이 걸린다. 재능이 없는 녀석은 평생을 익혀도 사용할 수 없지. 이건 비단 우르만 그런 게 아니다. 영식 또한 마찬가지지. 하지만 너는 다르다. 양쪽 모두에 재능이 있는 경우니까.”
“그 정도라고요?”
내가 그런 재능충이었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설마요. 전 그냥 운이 좋은 사람일 뿐이죠.”
“아니, 확신할 수 있다. 넌 재능이 있어.”
“에이, 그럼 제가 이렇게 빌빌거리고 있겠습니까. 진짜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골머리를 아프게 하는 귀찮은 문제 따위 한 번에 다 해결했겠죠.”
“조금 띄워줬더니 오만한 소리나 하는구나. 재능이 있다는 말은 전지전능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무언가를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할 수 있다는 말일뿐이지. 나도, 그 잘난 클로에와 오스카도, 모두가 마찬가지다. 다 똑같은 사람에 지나지 않아.”
여태까지 니힐리스가 내게 해주었던 조언 대부분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해하기도 쉬웠고.
하지만 이 조언만큼은 잘 모르겠다.
초능력 같은 게 없던, 원래 내가 살던 세계의 이야기라면 또 몰라.
여긴 초능력자들로 득시글거리는 세상이잖아.
전지전능에 가까운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버젓이 여기저기에 존재하는데, 모두가 다 똑같은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군.”
“네, 모두가 똑같은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기엔, 예시로 든 클로에나, 오스카만 해도 전지전능에 가까운 힘을 부리지 않습니까.”
“그것이야말로 네가 힘을 얻은 뒤로 오만해졌다는 증거다. 이전을 생각해보도록. 네 동기들부터 시작하여, 레온을, 이리나를, 진조를 쓰러트릴 때도 그리 생각했더냐? ‘재능이 없으니 이길 수 없다’라고? 웃기는군. 그렇다면 네게 진 녀석들은 모두 너보다 재능이 부족했던 사람이냐?”
“그건 절대 아니죠. 하지만… 재능이 있다는 것과 그건 조금 다른 이야기 아닙니까.”
“그깟 재능, 없으면 좀 어떠한가. 네가 말하지 않았더냐. ‘패배할 걸 알면서도 물러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고. 설마 재능이 없다고 뒤로 물러설 셈은 아니겠지? 만약 그리 생각했다면 실로 실망스럽겠군.”
“…”
“넌 재능이란 말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재능은 있기 마련이니까. 단지 그 재능을 살리느냐, 살리지 못하느냐, 또는 악하게 쓰느냐, 선하게 쓰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당연히 힘과 재능에 굴복할 거란 말은 아니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어떠한 기대조차 하지 않을 시절에도 난 나만의 방식으로 다른 재능 있는 녀석들과 겨뤄왔으니까.
그 또한 나만의 재능을 살린 것이라면 살린 것이겠지만, 격의 차이라는 게 분명 존재는 하기에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정말로 내게 니힐리스를 뛰어넘을 재능이 있었다면, 여태껏 이런 개고생은 하지 않았을 테니.
하지만, 니힐리스가 내게 어떤 말을 전하려는 지는 대충 알 것만 같았다.
“…괜한 이야기를 한 것 같군. 재능 이야기는 잊어도 좋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저, 처음 가졌던 마음을 잊어선 안 된다는 거다.”
그는 고개를 돌려 천천히 머나먼 북쪽으로 향했다.
하고 싶은 말은 다 전했다는 듯이.
실망한 것 같아 보이는 그 모습에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어, 나는 등에 대고 외쳤다.
“그래도 재능은 없어도, 스승님 금방 정도는 이길 것 같으니 너무 걱정하진 마십쇼!”
어처구니없는 내 말에, 니힐리스가 그 자리에 우뚝하고 섰다.
그러고는 내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또 무슨 잔소리를 늘어놓으려나 하고 고민하던 찰나.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가면의 입 부근 위로 손가락을 올려, 호를 그릴 뿐이었으니까.
그가 내놓은 대답은 웃음.
분명 웃음이었다.
니힐리스가 처음으로 직접 보여준 감정이었다.
* * *
짧디짧은 폐관 수련을 끝마친 나는 프리실라가 있는 에든버러로 이동했다.
뭔가 대화가 싱겁게 끝난 기분이 들어 찜찜하긴 했지만, 프리실라를 만나는 것보다 중요하진 않았으니까.
그렇게 약속 장소에서 기다린 지 대략 5분, 저 멀리에서 언제나처럼 새하얀 빛깔을 한 그녀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성진아.”
한달음에 달려온 프리실라가 곧장 내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최근 들어 묘하게 울적하고 기운 없는 표정만 짓더니,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유난히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뭔가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러게,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나야 늘 똑같지. 평범하게 잘 지냈어. 너는? 잘 지낸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잘 지낸 것 같아 보이는 수준이 아니다.
이전과는 다르게 껴안는 느낌부터가 다른 게, 과하게 잘 먹고 잘 지낸 게 아닌가 걱정되는 정도였으니까.
물론 살쪄 보인다는 이야기까진 아니었다.
너무 말라서 수척해 보이기 직전의 경지까지 갔던 게 얼마 전의 프리실라였으니까.
오히려 지금이 보기 좋았다.
“그래? 티 나는 부분이라도 있어?”
“평소보다 안색이 좋길래. 얼마 전엔 표정도 어둡고, 살도 빠진 것 같아 보였거든. 이젠 건강해 보이네.”
“확실히 그렇지?”
다행이다.
살쪄 보인다는 뜻으로 해석해서 토라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렇게 받아들이진 않았어.
프리실라 성격상 그런 식으로 반응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긴 하겠지만.
“근데, 안 본 사이에 머리가 꽤 길어졌네. 다시 다듬어줄까?”
그런가?
잘 모르겠다.
덥수룩해 보일 정도로 길진 않은 것 같은데.
앞머리를 내려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나야 프리실라가 해준다고 하면 좋지만.
“그럼 나야 좋긴 한데, 시간이나 장소 같은 건 어떻게 하게?”
“우리 집에서 해주면 되지. 데이트 끝나고 나서.”
그 말인즉슨, 자기네 집에서 자고 가란 소리 아니야.
어째 애들이 점점 과감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착각일까.
아니, 물론 사귄 지 꽤 오래됐으니, 점점 관계에 진전이 생기는 건 당연한 거지만, 수줍어하던 것치곤 이상하게 많이 대담해졌단 말이지.
그렇다고 거절할 생각은 절대 없었다.
“그래. 데이트 끝나고. 우선 밥부터 먹고 생각하자. 예약해둔 곳이 있거든.”
“좋아.”
위치를 알려주자마자 프리실라는 내 팔을 잡아끌고 레스토랑으로 달려갔다.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게, 보기 좋네.
앞으로도 이렇게만 지낼 수 있다면 좋겠는데.
* * *
“딱히 별로 한 건 없었네. 데이트라기보단 도시 구경만 시켜준 기분인데. 미안.”
“괜찮아. 재밌었으니까. 야경도 멋지고.”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걷기만 해도 새로운 게 여행 아니던가.
물론 계속 걷기만 하면 그 풍경에 익숙해져서 지겹겠지만, 적어도 아직까진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뭣보다도 프리실라가 내 옆에 있고.
“그런데, 뭔가 고민거리라도 있어?”
“아니, 왜?”
“그냥, 이 칼튼 힐에 올라온 이후로 뭔가 생각에 잠겨있는 듯한 표정이 됐길래.”
프리실라는 궁금증에 가득 찬 눈으로 날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 숨기려고 했건만.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사실 있기는 해. 별 건 아니긴 한데.”
“뭔데?”
“프리실라, 내가 재능 있는 사람 같아?”
갑자기 무슨 헛소리냐는 듯이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프리실라.
하나, 내가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는, 자세를 조금 고쳐 앉고 운을 떼기 시작했다.
다만, 고개는 날 바라보는 것이 아닌, 하늘을 향한 채였다.
“있지, 예전에 네가 유성우 보여주겠다고 암초로 데려갔던 거. 기억나?”
“기억하지.”
“난 처음에 무슨 이상한 짓을 하려고 그러는 건가 걱정도 조금 했는데, 우려했던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더라. 그때 알았어. 넌 생각보다 되게 단순한 사람이라는 걸.”
그러게.
분명 할 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던 거 같은데, 지금 와서 보니 병신짓도 그런 병신짓이 없었구나.
“…그래서,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해?”
“우리가 흔히 사람들이 재능을 발휘할 때 반짝인다고들 하잖아. 유명한 사람을 보고 ‘스타’라고도 하고.”
“그렇지.”
“하지만, 꼭 별이어야만 반짝일 수 있는 걸까? 그렇지 않아. 여기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불빛도, 이렇게나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는걸.”
하늘을 바라보던 프리실라의 눈은 어느샌가 내 눈과 마주했다.
그녀는 그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재능이 있냐고? 물론이야. 난 누구보다 네 반짝임을 가까이서 본 사람이잖아?”
“난”
“다른 대단한 히어로들에 비하면 초라하지 않냐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사람들은 말 그대로 별일 뿐이야. 닿을 수도 없는 저 높은 곳에서 막연하게 존재할 뿐인 별. 아무리 저 하늘의 별들이 실제론 도시의 야경보다 밝다 한들, 우리 눈에는 도시의 불빛이 더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지.”
때맞춰 불어온 산들바람이 자연스럽게 정적을 가져다 놓았다.
나부끼는 잎새의 흔들림이 멎어 들자, 그녀는 다시 정적을 거두어갔다.
“별보다 조금 어둡고, 별보다 조금 낮은 곳에 있으면 어때? 적어도 내게는 네가 가장 반짝이고 있는걸.”
“그걸로 괜찮은 걸까?”
“나도 옛날엔 너처럼 생각했었어. 하지만, 이젠 아니야.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빛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누군가에겐 한낱 가로등 등불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누군가에겐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이 빛나고 있다는 걸 알아주는 이만 있으면 돼.”
프리실라의 따스한 손이 내 손 위로 포개어졌다.
난 그 맞닿은 손이 떨어지지 않도록, 꽉 붙잡았고.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프리실라.”
“뭐가?”
“나를 가로등에 빗대서 이야기하던 거 아니었어?”
“아니, 넌 단순히 가로등이 아니야. 처음 만났을 적에는 저 하늘의 별이었고, 얼마 전까지는 내 곁에서 빛나며 길을 밝혀주던 등불이었지.”
“그럼 지금은 뭔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그녀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했다.
“모든 것. 내 모든 것이야. 내 반짝임을 되찾아준 게 다름 아닌 너니까. 그러니까, 부디 빛을 잃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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