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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화 〉 이런 건 여행이 아니야!(5) (144/173)

〈 144화 〉 이런 건 여행이 아니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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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기술을 배우느라 여념이 없던 나머지 아이나에게 연락하는 걸 잊고 있었다.

새로 배운 기술의 성능이 상상 이상이었던지라, 다른 게 눈에 뵈지 않는 상황이었던 탓에.

대체 그 기술이 뭐길래 죽고 못 사는 사이인 아이나의 연락조차 까먹을 정도인가 하면…

* * *

“무슨 기술인데 그렇게 분위기까지 잡아가면서 말씀하시는 거죠?”

“우리가 만났던 첫날, 내가 처음 썼던 검법을 기억하고 있나?”

“기억하고 있죠. 한 번 휘두르니까 수십 명이 쓰러졌던 그거, 맞죠?”

“용케 기억하고 있군.”

워낙 압도적인 위용이었던 탓에 아직도 생생하게 뇌리에 박혀있다.

휘릭 하니까 갑자기 다 죽어있고, 막 그랬으니까.

그걸 지금 배운다는 소리인가?

배울 수야 있다면 무지 좋긴 하겠지만, 내가 아직 그 정도의 기량은 갖추지 못했을 거 같은데.

“근데 그거, 배울 수 있기나 한 겁니까? 제가 스승님을 처음 만났던 시절에 비하면야 많이 성장하긴 했지만, 스승님에 비하면 아직 한참 모자란 수준이잖아요.”

“당연히 아직은 힘들겠지. 그건 평범한 기술이 아니라, 네 의지가 투영된 무형의 검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니까.”

절대 무리겠군.

무협지에 등장하는 심검 비슷한 거란 말이잖아.

절대 고수의 경지에 다다랐을 때나 배울 수 있는 걸 내가 어떻게 배워.

“그럼 제가 배울 수 있는 기술도 아는데 굳이 그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뭡니까?”

“너는 요령껏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느냐.”

…알고 있었구만, 이 양반.

확실히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마나실을 이용하면, 심검 비슷한 연출을 해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마저도 내게는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는 거지.

마나실을 다루는 거야 별로 힘든 일까진 아니지만, 마나글레이브를 다루면서 동시에 마나실까지 다루는 건 아예 다른 차원의 난이도다.

왜, 판타지 세계관에 나오는 더블 캐스팅은 상당한 경지에 도달해야지만 사용할 수 있지 않던가.

지금 내게 마나글레이브와 마나실을 동시에 운용하라는 건 이제 막 마법사 소리를 듣기 시작한 사람에게 갑자기 더블 캐스팅을 써보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고 마나실만 운용하자니 예리한 감을 가진 적을 상대할 땐 심검이 아니라는 게 금방 들통날 테고.

“이론상으로야 가능합니다만, 실전에선 쓰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내가 선물해준 마나글레이브의 분광 프리즘은 뒀다 어디에 쓰려고 그러는 게냐. 게다가, 그 마나글레이브엔 특수한 기능도 달려 있다고 네 입으로 설명해놓고서.”

맞아! 그게 있었지?

오버드라이브 모듈로 마나글레이브를 과충전 상태로 끌어올린다면, 검신을 분광 프리즘으로 쪼개도 그 위력이 떨어지는 일이 덜할 터.

분광 프리즘으로 산란(??)시킨 마나 줄기는 마나 실처럼 운용할 수 있게 되고.

가능하겠는데?

“긴 시간은 무리겠지만, 잠시나마라면 해볼 법하겠네요.”

“그럼 연습을 시작하지. 다시 한번 보여줄 테니, 집중해서 관찰하도록.”

그때와 똑같다.

열 한 마리의 반딧불이가 이지러지듯 날아다니다, 한 점으로 모여든 뒤 사라지는 모습.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며 적을 꿰뚫는 검이 아닌, 유연한 움직임으로 무수한 변곡점을 만들어내는 형상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안목이란 게 조금은 생긴 지금의 나에게 이 기술은 어딘가 조금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예리하고 절도있게 움직이는 검법이란 느낌보단,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긴 채 내키는 대로 움직이는 듯한 모양새였으니까.

“그 기술의 이름은 뭡니까?”

“마르두크.”

여태까지 들었던 기술명들이랑은 좀 다르네.

그 전의 것들은 분명 개발자가 따로 이름을 지어준 케이스였는데, 이번엔 아예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이름이잖아.

뭔가 특별한 점이라도 있나?

“그거,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이름이잖아요. 그 기술만 뭔가 이름이 다른 데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그야, 영식이 아닌 7성, 우르의 기술이니.”

지나가듯이 들어는 본 기억은 있다.

니힐리스가 영식의 역사에 대해 가르쳐줄 때, 그리고 아이나가 마나글레이브 검법의 종류에 관해 설명해 줄 때 잠깐 이야기가 나왔었지.

다만 배워본 적은 없었다.

애초에 우르 자체가 미완성인 영식을 토대로 개량한 기술이라, 굳이 배울 필요도 없다고 느끼기도 했었고.

니힐리스 또한 내게 우르의 기술은 하나도 알려주지 않았었다.

그런데 인제 와서 갑자기 우르를 가르치는 이유는 또 뭐람.

“미완성인 영식보다는 강하지만, 완성된 영식보다는 약한 게 우르잖아요. 근데 굳이 그걸 배울 필요가 있는 겁니까?”

“나는 네가 영식을 완성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나, 현실에 순응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 아니겠느냐. 머지않아 네 위명은 세간에 널리 퍼지게 될 거다. 문제는 그전까지 네가 영식을 완성하리라는 보장이 없지.”

“미완성인 기술뿐인 영식으론 앞으로 마주치게 될 빌런들을 상대하기 어렵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영식의 기술 대부분이 대인전에 특화된 기술이라는 거다. 네가 위명을 떨치게 된다면 수많은 떨거지 또한 따라붙을 텐데, 아무리 네가 강해진다 한들, 대인기만으론 동시에 덤벼드는 녀석들을 모조리 제압하기는 힘들지 않겠나.”

즉, ‘파티 끼고 레이드만 다니는 지금이야 대인기만으로 충분하지만, 나중에 혼자서 하드 캐리 해야 하는 때가 오면 광역기 없이 못 버티지 않겠냐’ 이런 말이네.

그걸 대비해서 미리 광역기를 익혀두라는 거고.

의도는 잘 알겠다.

실제로 내게 큰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그런 거면 이렇게 무게까지 잡아가며 설명할 필요는 없지 않았나?

어차피 같은 곳에 뿌리를 둔 검법이니, 배우는 것도 쉬운 거 아냐.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근데, 어차피 영식을 베이스로 하는 우르라면 배우는 것도 쉬울 텐데, 마치 힘든 여정이 될 것처럼 겁까지 주시는 이유는 뭡니까?”

“아니, 절대 쉽지 않다. 뿌리는 같을지언정, 기술이 발현되는 방식이 영식과 정 반대니까. 그래도 네게는 그나마 쉬울지도 모르겠군.”

“뭐가 어떻게 다른 거죠?”

“영식은 마나를 지배한다. 우르는 마나에게 지배당하고.”

방금 느낀 위화감이 이거였구나.

어쩐지 뭔가 다르더라.

다른 영식의 기술에선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 생동감은 마나에서 비롯한 거였군.

“그럼, 반딧불이 춤추는 듯한 그 움직임은 의도한 게 아니라, 마나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뿐이었군요.”

“눈썰미가 빠르군. 정확하다.”

“근데, 제게는 쉬울지도 모르겠다는 건 무슨 말씀이신가요?”

“영약 덕에 차츰 풀려나고 있다곤 하지만, 넌 여전히 마나의 주박에 묶여있는 채 아니더냐. 우르는 마나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검법이니, 마나에 이끌려 다니는 중인 네 몸 상태와 궁합이 아주 좋지. 우르를 배우기엔 가히 최고의 상황이라 말할 수 있다.”

‘운이 좋군.’

그 한 마디로 모든 걸 정리할 수 있었다.

어쩌다 받게 된 클로에의 불법 시술 하나로 이렇게 많은 이득을 거둘 줄이야.

세레나의 영약으로 시원찮아진 몸 상태도 회복할 수 있게 됐고 물론 공짜는 아니었지만, 괜찮은 광역기인 우르까지 배울 기회를 얻은 셈이었으니까.

게다가 영약의 효과가 발휘되는 데엔 시간도 제법 걸리는 터라, 마나의 주박에서 풀려나기 전까지 우르를 배울 말미 또한 마련한 셈이었다.

그럼 블레이크가 나에 관한 기사를 쏟아낼 즈음이 돼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도 안심할 수 있으리라.

영약의 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을 거고, 우르도 어느 정도는 숙련된 상황일 테니.

이 모든 상황이 놀라울 정도로 딱 맞아 떨어지고 있으니, 운이 좋다고 할 수밖에.

“뭔가 또 더러운 수작을 생각해낸 모양이군.”

“제가 뭘요.”

“네 표정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이렇게 즐거운 상황에선 웃어 줘야지.

안 그런가?

“아무튼, 스승님의 말을 따라서 손해본 적은 한 번도 없으니, 이번에도 스승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철저히 네 이익만 좇겠다는 소리로만 들리는구나. 뭐, 네 놈의 그런 태도도 익숙해지는 참이지만.”

“열심히 배우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음대로 하거라. 다만, 우르를 배우기 전에 네가 알아야 할 문제점이 있다.”

“또 뭐길레.”

“아까 말했듯이, 영식과 우르은 완전한 대척점에 있는 극상성의 기술이다. 어느 한쪽만 수련한다면 그 감각에만 익숙해져서 다른 쪽을 다루기 무척이나 어려워지지. 균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조화를 유지해야 한다.”

니힐리스의 선언에 실실거리고 있던 내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야, 저 말은 훈련량을 두 배로 늘리라는 이야기나 다름없었으니까.

균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우르도, 영식도, 똑같이 연습하라는 말이었다.

“시작하도록 하지. 전보단 지금의 표정이 보기 좋군그래.”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가면 아래의 표정은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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