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기분 전환.
* * *
이튿날 아침.
강의실에 가기 전, 정말로 내 모습이 그렇게나 많이 변했나 싶어 거울을 한번 들여다보았다.
‘내가 보기엔 변한 걸 잘 모르겠는데. 피부가 조금 좋아진 정도인가?’
미묘하게 달라진 점은 있었으나, 다른 사람이라고 착각할 정도의 큰 변화는 없어 보였다.
사소한 차이가 사람의 인상에 큰 변화를 준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이 볼 때 그렇다는 것 아닌가.
당사자인 나에게는 별반 다를 바 없이 똑같은 ‘박성진’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그래도 약간의 기대감 정도는 품고 있다.
다른 녀석들도 세레나처럼 격한 반응을 보일까, 하는 기대.
아마 대부분은 별생각이 없을 것 같다만.
기껏해야 미적지근하게 ‘조금 꾸미고 나왔나 보네?’ 하고 끝 아닐까.
허나, 예민한 그녀들이라면 또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들뜬 마음을 안고 강의실로 나섰다.
* * *
“뭐냐, 너답지 않게 신경 쓴 그 모습은. 전보다 한결 나아지긴 했지만… 영 어색하다는 느낌이 드는군.”
정작 외모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눈치챈 사람은 아이나나, 프리실라가 아닌, 카타리나였다.
그 정도로 많이 변했다고?
이 클래스 내에서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둔감한 그녀가 내 변화를 알아차렸다는 건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마주친 게 카타리나였다는 점을 고려해도 말이다.
“딱히 꾸미거나 그런 건 아닌데, 변한 게 티가 나?”
“못 믿겠다면 저기 있는 아이나나 프리실라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나.”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이긴 하겠네.”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으나, 이젠 완전히 익숙한 장면이 되어버린, 화목하게 담소를 나누는 아이나와 프리실라의 모습.
슬그머니 다가가 둘 사이에 앉자, 둘은 보기 드문 태도를 내비쳤다.
아이나는 신기하다는 듯이 내 얼굴 여기저기를 잡아당겼고, 프리실라는 분홍색의 홍조를 띠운 채 내 얼굴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많이 변한 것 같아 보이나 보네?”
“그렇게 크게 변하진 않았지만, 조금 관리를 받은 분위기야. 정돈되어 보이는 게, 확실히 전보다 깔끔해졌네.”
“꾸미고 다니지 않아서 드러날 일이 없던 외모가 드러난 느낌? 원래도 그렇게 나쁜 외모는 아니었으니까.”
조금 충격이었다.
실제로 외모를 거의 가꾸지 않는 편이긴 했지만, 약간 분위기가 산 것만으로 이렇게까지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낼 줄은 몰랐으니까.
“지금이 훨씬 나아?”
“당연하지. 진작 이러고 다녔으면 얼마나 좋아. 기왕이면 잘생긴 편이 더 낫잖아.”
“종종 꾸미고 다니면 좀 더 괜찮았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어. 직접 보니 더 좋은걸.”
무심코 볼멘소리를 낼 뻔했지만, 지금까지 내 행색을 회고해 보니, 내겐 그럴 자격이 없다는 걸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잘생겼다는 소리를 들을까, 말까 한 나와는 다르게, 얘네는 꾸미지 않아도 예쁘다 못해 아예 얼굴에서 빛이 나는 수준이었으니까.
추레한 꼬라지로 돌아다니던 내 모습에 불만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니지만 말이야. 네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든, 난 변함없이 너를 좋아했을걸.”
“어차피 잘생긴 사람은 차고 넘치니까… 개성있게 생긴 편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해.”
내가 중요한 사실을 하나 잊고 있었네.
이 세계의 사람들은 하나 같이 다 평균 이상의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는 거.
원래 살던 곳이라면 지금 내 외모도 그럭저럭 썩 나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곳 기준이라면 나는 그저 ‘개성있게 생긴 사람1’에 지나지 않는 셈이었다.
게다가, 얘네는 그 이세계인을 기준으로도 특출나게 예쁜 편에 속했으니, 이런 나를 좋아하겠다 마음먹는 데엔 나름 대단한 결심이 필요했겠지.
“앞으로도 쭉 이렇게 지낼까?”
“우리한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야기지만, 너, 바쁘지 않아? 그렇게 여유 부릴 짬은 있고?”
“그런 쪽에 흥미가 생겼으면, 내가 조금 관리해줄까? 미용 쪽엔 소질이 없는 건 아니라서. 네가 괜찮다면 그쪽으론 얼마든지 다듬어줄 수 있는데…”
“아냐, 됐어. 괜찮아.”
손사래까지 쳐가며 반대의 의사를 표했다.
이건 내가 꾸민 것이 아니라, 클로에의 영구적인 시술 덕분이었으니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별것도 아닌 일로 바쁜 프리실라를 귀찮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프리실라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진심으로 한 이야기였는지, 묘하게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어?”
“응, 엄청.”
프리실라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었나?
심지어 꽤 오래된 희망 사항 같았다.
아, 그래서 종종 내 머리를 빗어넘기던 거였구나.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렇게까지 오랜 소망이었다면야, 뭐.
허락해줘도 괜찮지 않을까.
“좋아, 맡겨볼게.”
“그럼 강의가 끝나는 대로 바로 하러 가자.”
“그래.”
프리실라가 해주는 코디라.
믿고 맡겨보아도 나쁠 건 없겠지.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곤 하지만, 프리실라는 우리 중에서도 꽤 패션 감각이 뛰어난 편이니까.
그 와중, 아이나는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떠오른 아이디어라도 생긴 걸까?
* * *
강의가 끝난 시각.
프리실라는 녹초가 된 나를 이끌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방향으로 보아하니, 서문 쪽인 것 같았다.
“서문으로 가는 거지?”
“응, 그쪽에 아는 미용실이 있어서.”
“지금도 단정하고 괜찮지 않나?”
“기왕이면 세련되고 어울리는 헤어스타일로 깎는 게 낫잖아.”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헤어스타일이라곤 반삭, 귀두컷, 바가지머리, 투블럭 정도뿐이었다.
그 외에는, 만화 속에서나 가끔 보던 리젠트컷이나 모히칸 스타일 정도.
물론, 그런 머리를 하게 될 일은 없겠지만.
프리실라의 취향은 어디까지나 보편적인 축에 속하니까.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헤어스타일을 맡길 일은 없겠지.
아무튼, 그렇게 프리실라와 함께 도착한 곳은 서문의 어느 작은 미용실.
단출한 실내 장식, 텅 비다시피 한 손님들의 자리, 협소한 공간만을 보곤 정녕 이곳을 믿어도 되는 건가 의심했지만, 이발사 아저씨의 모습을 본 뒤로 그런 걱정은 덜어도 되겠다 싶었다.
여기저기 물감이 튄 듯, 알록달록하게 염색된 앞치마.
그 앞치마를 가득 채운 여러 종류의 미용 가위.
이 세계는 고사하고, 내가 살던 세계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든 구시대의 면도칼.
후줄근한 차림과는 달리 유일하게 세련된 분위기를 띤 머리 스타일까지.
척 보기에도 달인의 기백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얘는 입학한 지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니면서 이런 곳은 어떻게 알았담.
“프리실라구나. 어서 오렴. 벌써 머리 자를 때가 되었던가?”
“아뇨, 전 아직 한참 남았죠.”
“그럼, 드디어 우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모양이구나. 얼마든지 환영이지.”
“그것도 아니에요. 얘 머리 맡기려고 왔어요.”
“아쉽구나. 그럼 어디 한번 볼까.”
미용사 아재는 살짝 이맛살을 찌푸린 채, 가늘게 뜬 눈으로 내 머리를 이모저모 살펴보더니, 주머니에서 빗과 가위를 꺼내 들었다.
“생각해둔 건 있고?”
“올백 가르마펌이요. 괜찮지 않겠어요?”
“내가 보기에도 꽤 잘 어울릴 것 같지만, 본인 의사가 가장 중요한 법이지. 어때, 너는 괜찮니?”
“저는 다 괜찮아요.”
“그렇다면야, 뭐. 지금 바로 시작하자.”
아재의 말에 따라 정면의 거울을 마주 보는 자세로 앉았다.
다시 보니 전보다 많이 잘생겨진 것 같기도 하고.
단순히 다른 녀석들의 바람기가 들어가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우, 부럽다. 숱이 엄청 빽빽하네. 늙어서 머리 빠지는 일로 고생할 일은 별로 없겠네.”
“좋죠. 귀찮은 점도 많지만, 탈모가 되는 것보단 훨씬 나으니까요.”
“그러게나 말이다.”
확실히 이 사람, 엄청난 고수다.
일체의 주저함 없이 뭉텅뭉텅 머리카락을 잘라내면서도, 가위질은 리듬감을 잃는 법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 능숙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요즘 들어 너무 피곤해서였을까.
나는 자연스레 잠에 빠져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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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가위질의 박자가 달라진 것 같아 고개를 들어보니, 거울에 비치고 있는 프리실라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의 아재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미용에 어느 정도 소질이 있다는 게 가볍게 던진 농담은 아닌 모양이었는지, 꽤 그럴싸한 모양새로 내 머리를 다듬어가고 있었다.
“앗, 깼구나.”
“아저씨는 어디로 가고?”
“실은, 이러려고 여기 왔어. 직접 잘라주고 싶었거든. 잠든 사이에 아저씨는 다른 볼일 보러 가게 하고, 교대했지. 원래 아저씨가 깎은 척하다가 나중에 놀라게 해줄 생각이었는데…”
“그럼, 다시 자는 척이나 할까?”
“됐어. 이미 들켰는데 무슨.”
차라리 일어나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순간을 즐기지 못했을 테니까.
참 신기하단 말이지.
신경이라곤 존재조차 하지 않는 게 머리카락으로도 다정한 손길은 느낄 수 있다는 게.
“이제 다 됐어.”
“벌써? 이제 머리만 감으면 돼?”
“완전히 끝은 아니고. 눈썹이나 잔털 정리 같은 마무리는 해야지. 따라와. 감겨줄게.”
미용실 안쪽의 널찍한 의자는 마치 왕좌에라도 앉은 기분을 들게 했다.
살다보니 이렇게 호사를 누리는 날도 다 오는구나.
진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만 같았다.
“물 온도는 적당해?”
“괜찮아.”
“그럼 이대로 할게.”
눈을 감은 채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있으니, 그녀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손놀림이 날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히 거품을 잘 내기 위해 그러는 것인가 했는데, 혹여 내가 아파하기라도 할까 봐 그러는 모양이었다.
좀 더 세게 해줘도 괜찮았을 텐데.
뭐, 그래도 이건 이거 나름대로 좋으니까.
그렇게 팔자에도 없는 행복을 누리고 있을 때, 갑자기 프리실라의 손길이 멀어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떠보니, 그녀가 눈을 감은 채로 귀여운 장난을 시도하러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 아까는 속아주지 못했으니, 이번에는 속아주리라.
나는 말없이 다시 눈을 감고는, 그녀의 입맞춤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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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비워 달라할 때부터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젊은 놈들은 어쩜 저렇게 다 똑같은지 몰라. 나도 옛날엔 저랬었지만… 아니지, 저 정도면 얌전하게 지랄하는 축에 속하는 건가?”
그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왔던 길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딱히 되돌아갈 곳은 없었지만, 잠깐의 시간 정도는 양보해주어도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며.
* * *
뭔가 영 어색하네.
내가 이런 머리를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는데.
주제에 맞지 않는 감투를 쓴 듯한 기분이었다.
“잘 어울린다. 전보다 훨씬 나아. 인물도 훤해 보이고.”
“그래?”
미용실 아재 또한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믿을만 하겠지.
고수의 눈에도 그렇다고 하니.
“자리를 빌려줘서 고마워요. 아저씨.”
“고마우면 한 달만이라도 여기서 일해주면 안 될까? 일손이 너무 부족해.”
“농담도 참.”
간절함이 깃든 게, 아무리 봐도 저 눈빛은 농담조가 아닌데.
“혹시라도 생각이 바뀌면 연락 다오. 부탁이다.”
“안녕히 계세요!”
그제야 프리실라도 그것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는지, 재빠르게 내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다만, 다급하게 붙잡았다는 것치곤, 둘은 서로의 손을 놓는 법이 없었다.
서문에서 벗어나는 순간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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